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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희 님의 서재입니다.

백수를 지망하는 황자의 영지 운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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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한제희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6
최근연재일 :
2024.06.27 05:24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4,937
추천수 :
148
글자수 :
226,161

작성
24.05.20 04:39
조회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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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대장장이들의 자존심 싸움

DUMMY

"전하, 잠시 괜찮으시겠습니까?"


토벌 준비를 마치고 나온 크리스토퍼에게 카밀이 다가온다.


"괜찮긴 한데, 무슨 일이야?"


"이것 좀 봐주셨으면 합니다."


카밀이 내민 손 위에 장검이 하나 들려있다.

그 형태가 매우 눈에 익다.


"마그이와나 소재로 만든 검이잖아. 이게 왜?"


"이건 이곳 대장장이가 아닌, 황도에서 온 검 장인이 제작한 겁니다."


"이게?"


서둘러 카밀이 내민 검을 살펴본다.

여기저기 살펴 봐도 콜린이 만든 것과 다르지 않다.

혹시나 싶어서 카밀을 슬쩍 노려본다.


"정말입니다."


시선의 의미를 눈치챈 카밀이 쓴웃음을 짓는다.


"어제 완공된 시설에서 만든 겁니다."


"원래 있던 걸 참고해서?"


"그렇습니다."


아무리 견본이 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똑같이 만들다니.

설비가 완공된 지 하루 밖에 안 된 걸 감안하면 더욱 놀랍다.


"파셀 보좌관에게 듣기로는 이걸 크리아스 지방에 팔기로 했다지요?"


"이걸 포함한 마그이와나 소재의 모든 장비지."


카밀의 말을 정정해주면서 크리스토퍼는 작게 한숨을 내쉰다.

고작 이거 하나 가지고 되겠냐?

제국에서 장검 사용률이 높은 건 사실이다.

그래도 하나의 장비 만으로는 큰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차라리 방어구라면 얘기가 다를 텐데···.


"참, 지금 생각난 건데."


"무엇인지요?"


"왜 방어구 장인은 안 데려 왔어?"


카밀이 데려온 장인들은 대부분 무기 장인.

그나마 방패 장인이 있긴 했지만, 듣자 하니 그는 검과 한 세트로 하는 걸 선호한다고 한다.

즉, 방어구보다는 무기의 부속품에 가까운 수준.

그런 그가 다른 방어구를 제작할 거 같진 않다.

이걸 이제야 깨닫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지만, 지금은 일단 무시하기로 한다.


"어, 그게 말입니다···."


카밀의 눈동자가 매우 흔들린다.

이상한데?

머리 좋은 이 녀석이 이런 질문을 예상 못할 리가 없는데.


"사실 장인들을 선택한 건 제가 아닙니다."


"그럼 누군데? 둘째 형님?"


"황제 폐하이십니다."


그 말에 크리스토퍼는 이맛살을 찌푸린다.

무기 장인 위주로 뽑은 게 큰형이라고?

시야가 넓은 큰형이라면 아무 생각 없이 그러지는 않을 게 틀림없다.


"사실 저도 무기 장인 위주로 뽑은 게 이상해서 폐하께 여쭙긴 했습니다만."


"그래서? 뭐라고 하셨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주는 건 크리스토퍼 전하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시더군요."


"쳇!"


기분이 확 나빠진다.

이런 깡촌에 보낼 거면 지원이라도 확실히 해주든가.

이렇게 어중간해선 되레 불쾌감만 준다는 걸 모르나?


"이건 어디까지나 제 의견입니다만."


이쪽 기분이 나쁘다는 걸 눈치챈 카밀이 조심스럽게 대안책을 내놓는다.


"무기는 황도에서 온 그들에게 맡기시고, 방어구는 이곳의 대장장이가 맡으면 어떨까 싶습니다만."


"콜린에게?"


콜린이 방어구 전담이라.

괜찮은 얘기긴 하지만···.


"당사자에게 물어보는 게 좋겠군."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가시죠."


그 길로 카밀과 함께 콜린의 대장간으로 향한다.

슬슬 도착하려던 찰나,


"아, 글쎄! 이 이상은 거절한다니까!"


콜린의 분노에 찬 외침이 대장간 밖까지 들려온다.

무슨 일이지?

열린 문틈으로 보니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콜린과 황도에서 온 무기 장인 몇몇이 대치 중이었다.


"나로선 알려줄 수 있는 건 다 알려줬다고 하지 않나!"


"그렇게 화만 낼 일이 아닙니다."


화를 버럭버럭 내는 콜린의 말을 한 장인이 받아친다.

콜린과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남성의 표정이 꽤 굳어 있다.

기분이 안 좋은 건 그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애초에 우리가 여기까지 온 건 그쪽의 업무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잖습니까?"


"그렇다고 대뜸 장비 제작법을 내놓으라는 게 말이 되나?!"


콜린의 얼굴이 점점 더 달아 오른다.

저러다가 혈압으로 쓰러질 거 같아서 서둘러 중재에 나서기로 한다.


"워, 워. 다들 진정하도록."


"앗! 저, 전하 오셨습니까?"


크리스토퍼의 등장을 눈치챈 콜린과 황도의 무기 장인들이 서둘러 고개를 숙인다.


"고성이 오가는 걸 봐선 무슨 문제가 있나 보군. 대체 뭐지?"


"소, 송구합니다."


콜린이 다시 한 번 머리를 조아린다.

하지만 조심스러운 것도 잠시일 뿐.

이내 고개를 들고는 따지듯이 상황을 설명한다.


"이 사람들이 글쎄, 제 장비 제작법을 전부 알려 달라고 협박하는 게 아니겠습니까요?"


"전하 앞에서 말조심하시오!"


"누가 협박을 했다는 겁니까?!"


"그럼 앞으로 장비 제작하지 못하게 막겠다는 게 협박이 아니면 뭐야!"


"다들 조용히 하도록."


카밀의 무거운 한마디에 다들 입을 꾹 다문다.


"제작법 정도 알려주는 게 뭐 어렵다는 거지?"


카밀이 이해 못하겠다는 듯 콜린에게 묻는다.


"이들은 무기 제작이 전문이니 무기 제작법만 알려주면 될 텐데."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또 다시 콜린이 버럭 소리친다.


"디르케 백작께서 보시기에 단순한 제작 레시피겠지만, 그걸 하나 완성하기 위해 제가 며칠을 고생한 줄 아십니까?"


그 말에 크리스토퍼의 마음이 짠해진다.

맞는 말이니까.

몬스터의 소재를 이용해서 장비를 만든다.

이 계획이 나온 이후 가장 많이 노력한 게 콜린이다.

그의 열정과 노력은 크리스토퍼와 헨릭은 물론이고, 아르크의 주민들도 인정할 정도다.


"하지만 이들은 황명을 받고 여기까지···."


"그만."


어떻게든 반박하려는 카밀을 크리스토퍼가 만류한다.


"여럿이서 콜린 한 명을 너무 압박하진 말라고."


"전하···."


본인을 감싸주는 말에 콜린이 감동한다.


"하지만 전하."


조금은 훈훈해진 분위기를 카밀이 바로 깨버린다.


"이들은 전하와 슈레인 지방을 위해 먼 황도에서 왔습니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냐는 듯한 반응에 카밀과 무기 장인들이 당혹해한다.


"멀리서 왔다고 하면 뭐, 이쪽에선 뭐든 내어줘야 하나?"


"그건 아닙니다만···."


"그대들에게 묻지."


말끝을 흐리는 카밀을 무시하고 무기 장인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대들은 진심으로 슈레인 지방의 발전을 위해 온 건가?"


"물론입니다!"


크리스토퍼의 질문에 그들은 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이곳의 발전은 곧 제국의 발전 아닙니까?"


"거기에 한 몫 도움이 된다면 저희가 뭐든 못 하겠습니까?"


"그럼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뭐라고 생각하지?"


"그야···."


새로운 질문에 무기 장인들이 생각에 잠긴다.


"이곳의 영주이신 전하께서 원하시는 걸 알아두는 일 아니겠습니까?"


"땡!"


크리스토퍼는 두 팔로 크게 X자를 만든다.

자신이 원하는 걸 알아야 한다고?

웃기네.

그게 평생 일 안 하고 놀고 먹고 사는 거라면 들어줄 수나 있나?


"정답은 현재 이곳 상황이 어떤지 파악하는 것이지."


"그, 그거라면 저희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정답을 못 맞춘 게 억울한지, 한 장인이 따지듯 나선다.


"다른 지방에 팔 수 있는 장비를 제작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콜린 씨의···."


"시끄럿! 떽떽거리지 말라고!"


결국 크리스토퍼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른다.


"제대로 시작도 안 한 주제에 불평만 늘어놓으면 어쩌자는 건데!"


서슬 퍼렇게 화내는 영주의 모습에 카밀과 무기 장인들은 물론이고, 콜린의 안색이 창백해진다.


"콜린!"


"예, 옛!"


크리스토퍼의 부름에 콜린이 잔뜩 긴장한다.


"그대의 의견을 묻지, 이들에게 무기 제작을 맡기고 그대가 방어구 제작을 담당할 생각 있나?"


"그건···."


콜린은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제안에 따르기 싫은 걸까?

어쩌면 맡을 의향은 있지만 이들 앞에서 인정하기 싫은 건지도 모른다.


"중요한 일이니 꼭 대답해줘야 해."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내 콜린이 결심한 듯 입을 연다.


"전하께서 원하신다면 제가 방어구를 전담하겠습니다. 다만···."


"다만?"


"제가 괜찮은 무기의 제작법을 만든다면 그걸 표준으로 삼을 건지 고려해주십시오."


"너무하지 않습니까!"


콜린이 내건 조건에 황도의 무기 장인들이 바로 반발한다.


"저희들은 한 종류의 무기만 만드는데!"


"그걸 꼭 방해해야 합니까?!"


"이것도 텃세라고요!"


"조용!"


크리스토퍼의 고함에 다시 조용해진다.

이대로는 끝이 안 나겠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할 텐데.

고민하던 중, 손에 들린 마그이와나 소재의 장검이 시야에 들어온다.

까맣게 잊은 와중에도 계속 들고 있다니.

···잠깐만.


"혹시 여기에 이걸 만든 사람 있나?"


"접니다."


장검을 들어 올리자, 콜린과 마주하던 중년의 남성이 한 발짝 나선다.


"그대군. 꽤 괜찮게 만들었어."


"감사합니다."


남성의 얼굴에 자랑스러운 미소가 떠오른다.

그걸 본 콜린이 못마땅한지 작게 혀를 찬다.


"어떻게 견본만 보고 만들 수 있지?"


"뭐, 일반 장검의 제작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몬스터 소재가 들어간다는 것만 빼면요."


그러자 콜린이 입을 벙긋거린다.

뭔가 말하려나 싶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몬스터 소재를 넣은 것 외에는 그대의 방식이 쓰였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대답을 듣고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생각에 잠긴다.

전에 콜린에게 듣기로는 단순히 몬스터 소재만 넣는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했다.

이 장검의 도신이 붉은 건 주조 작업할 때 녹인 금속에 마그이와나의 가죽과 비늘을 넣었기 때문.

하지만 그 비율에 따라 강도가 크게 다르다고 했다.


"그대의 이름이 뭐지?"


"안드레 칼뤼스입니다."


"안드레, 자네가 만든 이 검이 이제까지 콜린이 만든 검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하나?"


"물론입니다."


안드레의 대답에는 일말의 망설임이 없다.

황제인 큰형에게 선택 받아서 그런지, 자긍심이 남달라 보인다.


"카밀."


안드레에게서 시선을 거둔 다음, 카밀을 부른다.


"현재 완공된 건 검 전용 대장간 뿐인가?"


"그렇습니다만, 지금 속도로 봐선 모레에 활을 전문으로 제작할 공방도 곧 완성될 듯 싶습니다."


일부러 대장간이라 불렀건만, 카밀이 굳이 공방으로 고쳐 부른다.

이곳과는 선을 긋겠다는 건가?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그럼 이렇게 하지."


크리스토퍼가 안드레와 콜린을 번갈아 바라본다.


"오늘 난 황야로 나갈 생각이야."


"무슨 일이 있습니까?"


"별일 없어. 그저 새로운 몬스터를 토벌하려는 것뿐이니까."


카포러스의 장비 제작법도 어느 정도 자리 잡혔다.

슬슬 새로운 몬스터의 소재를 손에 넣어야겠다 싶던 참이다.


"그렇게 되면 안드레와 콜린, 그대들에게 소재를 절반씩 나누어 주지."


"예?"


"그 말씀은···."


"그대들은 그걸 가지고 내게 맞는, 그리고 그 몬스터를 떠올릴 수 있는 장검으로 만들면 돼."


그중 더 낫다고 판단한 무기의 제작법을 표준으로 삼겠다고 말을 덧붙인다.


"그 제작법을 만든 이의 의견을 들어주는 걸로 하지. 어떻게 생각하나?"


"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대답한 건 콜린이다.

아직까지 그가 다룬 몬스터 소재는 단 두 종류 뿐.

하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안드레보다는 경험이 있는 자신이 낫다고 판단한 듯하다.


"저도 이의 없습니다."


곧이어 안드레도 찬성 의사를 밝힌다.

황제에게 직접 선택 받은 장인으로서 절대 질 수 없다는 투쟁심이 느껴진다.


"그리고 하나 더."


크리스토퍼가 검지를 세운다.


"활 장인도 여기 있나?"


"예."


안드레의 뒤에서 왜소한 체격의 남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대의 이름은?"


"니콜로이입니다, 니콜로이 넬브."


"니콜로이, 그대는 공방이 완성되는 대로 카포러스 소재로 활을 만들도록."


"그거라면 이미 존재하지 않습니까?"


"콜린이 만든 건 견본으로 삼으라는 게 아냐. 그대만의 방식으로 만들어 보라는 거지."


"알겠습니다."


니콜라이가 고개를 숙이면서 제안을 받아들인다.

눈빛이 강렬한 걸 봐선 그 역시 자신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내가 결정을 내릴 때까지 절대 분란을 일으키지 말도록, 알겠나?"


"옛!"


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이들을 보면서 내심 안도한다.

이걸로 겨우 상황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군.

물론 아직 해결해야 할 건 많지만, 당분간은 괜찮겠지.

스스로 생각해도 최고의 방법을 생각해냈다고 뿌듯해하는 크리스토퍼다.

그런 그를 뒤에 있는 카밀이 물끄러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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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를 지망하는 황자의 영지 운영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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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어둠 속 몬스터와의 재회 24.06.27 12 1 11쪽
41 계획에도 없던 예정 24.06.24 20 1 12쪽
40 헌터 길드의 2인자, 페로스 텔루어드 24.06.23 26 2 12쪽
39 파견의 의도 24.06.22 26 2 13쪽
38 또 다른 헌터의 등장 24.06.20 32 2 12쪽
37 시험 운영 24.06.19 35 2 12쪽
36 작은 불협화음 24.06.18 35 2 11쪽
35 정체를 숨기려는 자와 협조하는 자 24.06.16 37 2 11쪽
34 그동안 카밀이 안 보였던 이유 24.06.15 48 2 13쪽
33 예상 외의 방문자 24.06.13 48 3 11쪽
32 부상 +1 24.06.12 49 2 12쪽
31 비룡의 둥지 24.06.08 49 3 11쪽
30 대안책 24.06.07 55 4 11쪽
29 지하 동굴에서의 노역 작업 24.06.05 54 3 11쪽
28 긴급 상황 뒤에 해야 할 일 24.06.04 53 2 12쪽
27 거인 나무의 숲, 더 깊은 곳으로 +1 24.06.03 64 2 13쪽
26 루이스의 결심 24.06.02 70 2 12쪽
25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대가 24.06.01 81 2 12쪽
24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 24.05.31 79 2 12쪽
23 어둠 속에 숨은 사냥꾼 24.05.30 78 2 12쪽
22 파비안의 동행 24.05.29 82 1 12쪽
21 소년 파비안과 약사 루이스 24.05.28 89 3 14쪽
20 원했던 결과, 하지만··· 24.05.27 108 2 11쪽
19 합작품의 성능 평가 24.05.26 109 2 12쪽
18 극단의 조치 24.05.25 118 2 12쪽
17 토벌 성공, 그리고··· 24.05.24 128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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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어둠 속에서 나타난 바위의 용 24.05.22 122 4 11쪽
14 황자이면서 황자답지 않은 그 사람 24.05.21 134 3 13쪽
» 대장장이들의 자존심 싸움 24.05.20 140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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