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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희 님의 서재입니다.

백수를 지망하는 황자의 영지 운영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한제희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6
최근연재일 :
2024.06.27 05:24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4,949
추천수 :
148
글자수 :
226,161

작성
24.06.16 07:23
조회
37
추천
2
글자
11쪽

정체를 숨기려는 자와 협조하는 자

DUMMY

"야, 카밀! 일어나!"


아직까지 정신을 못 차린 카밀을 깨운다.

몸을 흔들어 보기도 하거나 뺨을 살짝 때려 봐도 카밀의 눈이 떠지지 않는다.


"으으···. 닭 머리···."


그 와중에도 악몽이라도 꾸는 건지, 괴로워하면서 잠꼬대까지 한다.

···이 녀석, 지금 자는 거야?


"일어나라니까!"


솟구치는 짜증을 억누르지 못하고 카밀을 허공으로 던져버린다.


"크헉!"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한 카밀이 비명을 지른다.

정신을 차렸는지, 고개를 들어 이리저리 살피던 중 황자와 눈이 마주친다.


"전하? 이게 대체 무슨···. 아앗?!"


멍한 눈으로 중얼거리나 싶더니, 이내 바닥에서 몸을 일으킨다.


"정말 너무하십니다! 어떻게 절 기절시키실 수 있죠?"


"그러는 너는 잘 했냐?"


적극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는 부하를 크리스토퍼가 싸늘하게 바라본다.


"네놈이 처음부터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으면 그런 일도 없었잖아."


"제가 뭘 숨겼다고···. 헉!"


황자의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달은 카밀이 총기 장인을 바라본다.

장인이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는 걸 보더니 안색이 창백해진다.


"반드시 비밀로 하라고 했건만···."


"굳이 숨길 필요 뭐 있어?"


"그야!"


뭐가 문제인지 모른다는 황자를 향해 카밀이 억울하다는 듯 외친다.


"혼자서도 몬스터를 뚝딱 사냥하는 모습을 전하께 보이고 싶었다고요!"


"마그이와나를 뚝딱 사냥할 수 있다며?"


"최약체 몬스터를 사냥하는 건 일반 병사도 할 수 있잖습니까?!"


"소리 좀 그만 질러!"


계속되는 소음을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친다.

다른 건 다 참아도 히스테릭하게 소리 지르는 것만큼은 도저히 못 넘기겠다.


"아무튼 마그이와나를 잡을 수 있다고 하니까, 시간이 빌 때마다 기사들과 함께 토벌 업무에 들어가도록 해."


"···전하."


"뭐, 네가 노력한 결과니까 나한테 고마워할 필요는···."


"이왕이면 전하와 동행하면 안 되겠습니까?"


"···그런 얘길 하려면 최소 퀴로안기스는 가볍게 토벌할 실력을 갖추라고."


말도 안 되는 제안을 바로 거부하고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다.

조금은 감동했나 싶었는데.

괜한 기대를 한 건 아무래도 자신인 듯싶다.


"실례합니다."


겨우 상황이 마무리될 때쯤 누군가가 공방으로 들어선다.


"여기가 활 공방이 맞습···. 전하?"


문을 열고 들어선 건 줄리안이다.

황자와 우연히 만날 줄 몰랐던 탓인지 꽤 놀란 눈치다.


"줄리안이군. 어쩐 일이지?"


"아, 제 석궁의 수리를 부탁하러···."


"줄리안?"


황자의 뒤에 있던 카밀이 줄리안을 보면서 아는 체한다.


"이야~. 오랜만인걸. 잘 지냈나?"


"어, 어···."


친한 척하는 상대와 달리 줄리안은 혼란에 빠진다.


"뭐야? 둘이 아는 사이였나?"


"그렇습니다. 같은 아카데미 출신인데다가···."


"으아악!"


카밀의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줄리안이 갑자기 비명을 지른다.

그 소리에 다들 깜짝 놀라는데,


"자, 잠깐 나 좀 봐!"


그 틈을 노린 줄리안이 카밀을 강제로 끌고 나간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크리스토퍼와 장인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그들이 나간 문만 바라볼 뿐.


"···실례했습니다."


잠시 후, 다시 돌아온 줄리안이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인다.


"못 보일 꼴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그건 상관 없는데, 카밀은?"


"디르케 공작가의 영식이시라면 곧 들어오실 겁니다만."


그 말에 크리스토퍼가 살짝 눈썹을 찌푸린다.

디르케 공작가의 영식이라.


"카밀과는 아카데미를 졸업한 이후로는 교류하지 않았나 보군."


"그,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놀란 탓에 줄리안의 눈이 커진다.


"그야 카밀 그 녀석, 지금은 디르케 백작으로 불리고 있으니까."


카밀이 디르케 공작가의 영식으로 불린 건 아카데미를 졸업하기 전의 일.

졸업 이후부터는 정식 후계자란 명목으로 디르케 백작의 지위를 얻었다.


"그, 그랬군요."


"정말 몰랐나?"


"예, 졸업한 이후로 만난 건 지금이 처음이라···."


"친하지 않나?"


"글쎄요. 아카데미 재학 시절에는 만나면 서로 인사를 주고 받긴 했습니다만."


줄리안이 팔짱 낀 채로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그 태도를 봐선 그리 친밀하지 않은 사이라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나저나 놀랍군. 자네도 아카데미 졸업생이라니."


아카데미.

제국의 교육 시설을 뜻하는 말로, 크게 초등과 고등으로 나뉜다.

초등은 제국민의 모든 아이들이 다닐 수 있는 곳이지만, 고등 부문은 입학 시험에 통화해야만 들어갈 자격을 얻는다.


"내가 기억하기로 카밀이 다닌 고등 아카데미는 귀족이나 그에 준하는 자들만 다니는 곳이었던 거 같은데."


"그, 그게···. 그겁니다! 후원이요!"


"후원? 귀족이 그대를 고등 아카데미에 보내줬나?"


"귀족···은 아니고, 제가 살던 마을의 부호가 입학 대금을 지원해주었습니다."


"이유는?"


"제 잠재성을 눈여겨봤다더군요. 정작 졸업한 이후 헌터가 되었지만요. 아하하."


웃어 넘기려는 줄리안을 보면서 겨우 결론을 내린다.

이 녀석, 거짓말을 하고 있군.

아카데미의 졸업생, 그리고 카밀과 아는 사이라는 점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거짓.

정작 줄리안 본인은 앞뒤가 맞는 변명을 했다고 안도하는 눈치다.

허술하긴.

매일 같이 거짓이 오가는 황궁에서 나고 자란 크리스토퍼가 보기에 그의 거짓말은 어설프기 짝이 없다.


"아카데미를 졸업했다면 그대도 꽤 우수하다는 거군."


"기대를 가져주신 건 감사드립니다만, 턱걸이로 겨우 졸업해서요."


그러니 큰 기대는 하지 말라는 줄리안의 의도가 전해진다.


"죄송합니다, 전하. 중요한 볼일이 있어서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줄리안이 바로 공방을 나선다.

도망쳤군.

꼬리가 잡힐까 봐 먼저 자리를 피했다는 사실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런, 이런."


줄리안이 열고 나간 문으로 카밀이 들어온다.


"저 녀석은 여전히 솔직하지 못하다니까."


"그 말인즉슨, 줄리안이 거짓말쟁이라는 건가?"


"그것과는 좀 다릅니다."


카밀이 멋쩍다는 듯 뺨을 긁적인다.


"타인이 묻기 전까지 자신의 처지나 알고 있는 걸 먼저 말하지 않는 녀석이죠."


"아까 나한테는 대놓고 거짓말하던데."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정체를 숨겨야 하니까요."


역시 그랬나.

예상했던 얘기라 카밀의 말에도 전혀 놀라진 않는다.


"혹시나 해서 묻겠는데, 카밀···."


"줄리안 뷔터의 정체가 뭐냐는 질문이라면 대답해드릴 수 없습니다."


"쳇!"


카밀에게 선수를 빼앗겼다는 게 분해서 혀를 찬다.

반대로 그 태도에서 몇 가지 확신을 얻었다.


"너랑은 절친이었나 보지? 별것도 아닌 걸 숨기려 드는 게 똑같던데."


"뒤에 하신 말씀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습니다만."


잠시 황자를 향해 눈을 흘기면서 카밀이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곧 포기했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린다.


"아까 줄리안의 말을 듣고 꽤 섭섭했습니다. 아카데미 다닐 때는 그렇게 늘 붙어 다녔는데."


"그와는 아카데미에서 처음 만났나?"


"직접 만난 건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후였습니다만, 이름은 알고 있었죠. ···아."


갑자기 카밀이 입을 다물지 못하는 얼빠진 반응을 보인다.

눈치챘나?

본인이 말실수했다는 사실을.


"그렇군."


"저, 전하. 방금 제가 말씀드린 건···."


"뭘 얘기했던가? 줄리안과는 아카데미에서 처음 만났다는 것 외에는 들은 기억이 없는데."


"절대 다른 곳에서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그랬다가는 제가 줄리안 녀석에게 죽을 수도 있다고요!"


"걱정 마. 그럴 일은 전혀 없을 테니까."


타인이 죽이려고 해서 카밀이 곱게 죽어줄 위인인가.

그런 의도로 한 말이라는 걸 굳이 밝히지 않는다.


"정말이죠? 약속하신 겁니다!"


못을 박아두긴 했지만 카밀이 그 이상으로 물고 늘어지지는 않는다.

역시 설명하지 않길 잘 했다니까.

일일이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설명이라도 했다면···.

이런 식으로 산뜻하게 대화가 마무리되지 않았을 게 뻔하다.


"여러분도 지금 있었던 일을 절대 외부에 발설하면 안 됩니다, 알겠습니까?"


"예, 옛!"


내심 뿌듯해하는 사이, 카밀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장인들을 다그친다.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가 이내 깨닫는다.

줄리안 때문이라고.

그의 정체를 숨기는 일에 동참하는 거라고.

그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부탁 혹은 협박을 받은 건 분명해 보이는데.

물어봐도 대답을 기대하긴 어려울 터다.


"간다."


"예? 어딜 가시려는 겁니까?"


"당연히 저택이지."


나가려던 걸음을 멈추고 얼빠진 질문을 던진 카밀을 돌아본다.


"가서 서류 작업을 마저 해야 할 거 아냐."


"그, 그렇군요."


납득한 카밀과 장인들의 배웅을 받으면서 공방을 나선다.


***


"헌터 길드를 만들자."


"···예?"


헨릭의 인상이 마구 구겨진다.

산책하러 나갔던 황자가 돌아오자마자 하는 말이 저거라니.


"모르시는 거 같아 굳이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제국 내에는 이미 헌터 길드가 존재합니다."


헌터 길드.

헌터들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

여기에 가입해야만 헌터가 될 수 있고 의뢰를 받을 수 있다.


"정 원하신다면 슈레인 지방에 지부를 내어 달라는 요청서를 보내겠습니다."


"아니, 그쪽과는 별개로 이곳만의 헌터 길드가 있어야 해."


"그게 무슨···. 아아."


두통이라도 느껴졌는지 헨릭이 이마를 짚는다.


"제대로 설명 부탁드립니다."


"제국에 많은 헌터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중 몇 명이나 대형급 몬스터를 상대했을 거 같아?"


"거의 없겠죠. 슈레인을 제외한 다른 지방에서는 대형급 몬스터가 나타나는 건 극히 드무니까요."


"내가 알기로 헌터 길드에서 랭킹제를 사용한다던데."


"그렇습니다. 헌터로서 많은 활약을 할수록 랭크가 올라가는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죠."


"랭크가 높은 헌터가 온다고 해서 바로 퀴로안기스나 디프로이를 상대할 수 있다고 보나?"


"그건···."


헨릭이 드물게 말끝을 흐린다.

그도 잘 알 터다.

헌터로서 아무리 많은 경험을 쌓았다고 해도 대형급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그것과 결을 달리 한다는 걸.


"헌터 길드의 지부를 내봤자, 그쪽 시스템에 맞춰줘야 하잖아. 그럴 바엔 차라리 이쪽만의 방식을 만드는 게 낫지 않겠어?"


"전하께서 뭘 원하시는지는 잘 알겠습니다."


헨릭이 손을 들어 그거면 충분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분명 일리가 있는 제안이긴 합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있나?"


"적임자가 없습니다."


"적임자?"


"슈레인만의 헌터 길드를 세우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습니다만, 그 이후 운영을 맡을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아, 그거라면 걱정 마."


이번에는 크리스토퍼가 보좌관의 말을 막는다.


"그 일을 맡아줄 만한 사람이라면 알고 있으니까."


"그게 누군지···. 서, 설마?!"


안경 너머의 눈동자가 커진다.

꽤 놀란 눈치인걸.


"네가 예상한 그대로야."


보좌관의 보기 어려운 표정에 작은 만족감을 느끼면서 크리스토퍼는 적임자의 이름을 댄다.


"줄리안 뷔터, 그를 헌터 길드의 운영자로 세우도록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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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를 지망하는 황자의 영지 운영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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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계획에도 없던 예정 24.06.24 20 1 12쪽
40 헌터 길드의 2인자, 페로스 텔루어드 24.06.23 26 2 12쪽
39 파견의 의도 24.06.22 26 2 13쪽
38 또 다른 헌터의 등장 24.06.20 32 2 12쪽
37 시험 운영 24.06.19 36 2 12쪽
36 작은 불협화음 24.06.18 36 2 11쪽
» 정체를 숨기려는 자와 협조하는 자 24.06.16 38 2 11쪽
34 그동안 카밀이 안 보였던 이유 24.06.15 49 2 13쪽
33 예상 외의 방문자 24.06.13 48 3 11쪽
32 부상 +1 24.06.12 49 2 12쪽
31 비룡의 둥지 24.06.08 49 3 11쪽
30 대안책 24.06.07 56 4 11쪽
29 지하 동굴에서의 노역 작업 24.06.05 54 3 11쪽
28 긴급 상황 뒤에 해야 할 일 24.06.04 53 2 12쪽
27 거인 나무의 숲, 더 깊은 곳으로 +1 24.06.03 64 2 13쪽
26 루이스의 결심 24.06.02 71 2 12쪽
25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대가 24.06.01 82 2 12쪽
24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 24.05.31 79 2 12쪽
23 어둠 속에 숨은 사냥꾼 24.05.30 78 2 12쪽
22 파비안의 동행 24.05.29 82 1 12쪽
21 소년 파비안과 약사 루이스 24.05.28 89 3 14쪽
20 원했던 결과, 하지만··· 24.05.27 108 2 11쪽
19 합작품의 성능 평가 24.05.26 110 2 12쪽
18 극단의 조치 24.05.25 119 2 12쪽
17 토벌 성공, 그리고··· 24.05.24 128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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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어둠 속에서 나타난 바위의 용 24.05.22 123 4 11쪽
14 황자이면서 황자답지 않은 그 사람 24.05.21 135 3 13쪽
13 대장장이들의 자존심 싸움 24.05.20 140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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