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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희 님의 서재입니다.

백수를 지망하는 황자의 영지 운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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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한제희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6
최근연재일 :
2024.06.27 05:24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4,945
추천수 :
148
글자수 :
226,161

작성
24.05.22 07:09
조회
122
추천
4
글자
11쪽

어둠 속에서 나타난 바위의 용

DUMMY

"조용하네."


작은 램프의 불빛으로 주위를 살피던 크리스토퍼가 중얼거린다.

밧줄을 타고 도착한 지하 동굴은 어둡고 고요하다.

혹시라도 더위를 피하러 온 몬스터가 있을까 했지만,


"뭐야, 아무 것도 없잖아."


천장이 무척 높은 동굴에선 몬스터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있는 거라곤 돌로 된 내부와 고요함 뿐.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도 쪽 팔리는데.

뭐라도 건질 게 있나 싶어 주변을 탐색하기로 한다.


"음?"


이곳저곳을 살피던 크리스토퍼의 눈에 뭔가 반짝이는 것이 비친다.

뭔가 싶어 다가가자, 특이한 형태로 벽에 붙은 광물을 발견한다.


"이런 건 처음 보는데."


마치 우유를 연상시키는 불투명한 하얀색.

그리고 가시처럼 뾰족한 형태라니.

무기 수집을 취미로 한 덕분에 나름 광물에 조예가 깊은 크리스토퍼지만 이런 건 처음 본다.

혹시 콜린이나 황도의 무기 장인들이라면 알아보지 않을까?

일단 샘플로 떼어가기 위해 가방에서 채집용 단검을 꺼낸다.

땅! 땅!

단검과 광물이 부딪히는 소리 만이 동굴 내부를 채운다.


"이걸로 됐겠지? ···음?"


광물의 샘플과 단검을 가방에 넣은 직후, 조용히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귀에 닿는 건 고요한 침묵 뿐.


"잘못 들었나?"


분명 무슨 소리를 들은 거 같은데.

의아해하면서도 몸을 돌리던 그때, 갑자기 지면에서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몸이 흔들릴 정도는 아니지만, 마음에 불안감이 생기기에는 충분했다.

광원이라곤 작은 램프의 불빛과 천장의 구멍 사이로 비춰진 햇빛 뿐.

게다가 혼자이다 보니, 두려움이 점점 더 커져만 간다.

돌아가자.

서둘러 입구로 향하기로 한다.


"어, 어라?"


이상하게 앞으로 나아갈수록 바닥의 진동이 더욱 커진다.

대체 뭔가 싶어서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리고 뒤를 돌아봤는데,


"으아악!"


***


"으아악!"


"저, 전하?!"


입구 근처에서 대기하다가 안쪽에서 들린 비명을 듣고 니그로가 깜짝 놀란다.

어떻게 하지?

당장 안으로 들어가야 하나?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지둥 거리던 그때,


"으아아~!"


비명과 함께 크리스토퍼가 입구 밖으로 뛰쳐나온다.


"전하?! 어찌 된 일입니까?"


"그, 그게 말이야···!"


가파른 길을, 그것도 빠르게 올라온 것치곤 크리스토퍼의 호흡이 멀쩡하다.

내뱉는 숨조차 거친 기색 따윈 전혀 보이지 않으니까.

하지만 얼굴에선 핏기가 싹 사라졌다.


"커다란 바위가 굴러오는데···!"


"바위가요?"


니그로가 고개를 내밀어 입구 안을 살짝 들여다본다.

보이는 거라곤 여전히 어둠 뿐이지만, 안에서 의문의 소음이 들려온다.

잠시 후, 어둠 속에서 뭔가가 밖으로 뛰쳐나온다.

아니, 튕겨 나왔다고 해야 하나?


"으악!"


그걸 보고 놀란 크리스토퍼가 비명을 지른다.


"바, 바위가 혼자 굴러다닌다!"


그의 검지가 가리킨 건 커다란 바위.

얼마나 큰 지 지름만 해도 크리스토퍼의 두 배는 되어 보인다.

그렇게 큰 바위가 저 혼자 여기저기 잘도 굴러다닌다.


"유령이라도 달라붙은 건···."


"전하, 저건 바위가 아닙니다."


놀란 황자를 안심시키려 니그로가 차분히 설명한다.


"아까 말씀드렸던 삭스트라입니다."


"사, 삭스트라? 용이라고 했던 그거?"


몬스터란 얘기에 크리스토퍼도 냉정을 되찾는다.

그리고 바위, 아니, 삭스트라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인정 못 해!"


버럭 화를 내기 시작한다.


"저게 어딜 봐서 용이야?!"


"지금 몸을 말고 있어서 그렇지, 엄연한 용입니다."


"···그렇단 말이지?"


묘한 표정을 지은 크리스토퍼는 걸음을 옮긴다.


"전하?!"


갑자기 걸음을 멈춘 황자를 보고 니그로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거기 계시면 위험합니다! 삭스트라가 달려온다고요!"


다급한 외침에도 크리스토퍼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저 허리춤에 있던 검을 칼집에 꽂힌 채로 집어들 뿐.


"와 봐."


그 말에 따르듯 삭스트라가 크리스토퍼를 향해 굴러온다.

둘이 부딪히기 바로 직전,


"이얍!"


크리스토퍼가 기합을 외치면서 양손으로 잡고 있던 검을 크게 휘두른다.

그러자 굴러오던 삭스트라가 저 멀리 날아가 버린다.


"허걱!"


그 광경을 본 니그로의 입이 떡 벌어진다.

이게 말이 돼?

어떻게 한 사람이 휘두른 검에 몇 배는 더 크고 무거운 용이 날아갈 수가 있어?

이 상황이 도무지 않는 니그로와는 달리,


"후우."


큰 일을 낸 당사자는 상쾌하게 이마의 땀을 닦아낸다.

그 사이, 저 멀리 날아간 삭스트라는 벽에 부딪히고는 바닥에 쓰러진다.


"그으으···."


고통에 찬 신음을 내는 그것을 크리스토퍼는 가늘게 뜬 실눈으로 찬찬히 살핀다.


"아, 확실히 용이 맞긴 하네."


배를 드러낸 채 뒤집어진 삭스트라를 보면서 확실히 인정한다.

튼튼한 두 다리와 두툼한 두 날개.

거기에 도마뱀을 연상시키는 꼬리까지.

···용치곤 어째 몸이 짧고 굵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건 그냥 넘어가자.


"···그리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요."


열심히 설명할 때는 안 믿어주더니.

착잡한 마음에 니그로의 어깨가 축 처진다.


"그런데 저 녀석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가는 칼날만 무뎌지겠는데."


삭스트라의 몸 여기저기에 단단한 바위가 돋아나 있다.

아니, 붙인 건가?


"니그로, 저거 진짜 바위가 맞아?"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저건 비늘이 변화한 겁니다."


삭스트라의 주식은 광석.

그 탓에 성장할수록 비늘이 단단한 바위처럼 변한다고 한다.


"오호, 그런 게 가능한가 보네."


크리스토퍼가 감탄하던 사이, 내내 버둥거리던 삭스트라가 겨우 자세를 바로 잡는다.


"저, 전하!"


"물러서. 일단 상대라도 해볼 테니까."


평소의 참격이 먹힐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타격 공격은 먹히지 않을까?

아까의 공격도 상당히 잘 들어가기고 했으니까.


"돌아가면 암석 파괴용 폭탄 제작을 건의해야겠어!"


말을 마치자마자 삭스트라에게 달려든다.


"그으윽!"


상대의 돌격에 크게 포효한 삭스트라 역시 그대로 달려온다.

아마 머리를 이용한 박치기 공격을 시도하는 듯하다.


"어림 없지!"


직선으로 달려오기만 할 뿐인 단순한 공격을 높이 뛰기로 피한다.

그리고 삭스트라의 머리 위로 검을 내리 꽂는다.


"그윽!"


칼집 채로 꽂은 탓에 검이 머리를 꿰뚫지는 못했다,

그래도 타격이 상당했는지, 충격을 이기지 못한 삭스트라의 몸이 크게 휘청거린다.

공격이 먹혔다!

틈이 생긴 걸 눈치챈 크리스토퍼는 서둘러 삭스트라의 몸 아래로 이동한다.

그리고 튼튼해 보이는 두 다리 중 하나를 검으로 후려친다.

쿵!

결국 한 다리로 버티지 못한 육중한 몸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다.


"좋았어!"


"전하! 위험합니다!"


작은 승리감에 도취한 크리스토퍼의 귀에 니그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위험하긴 뭐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삭스트라의 몸이 크게 들썩거린다.

순간적으로 위험을 느끼자마자, 서둘러 떨어진다.

잠시 후, 그가 있던 자리 위로 삭스트라가 몸을 굴린다.


"···와우."


하마터면 깔릴 뻔 했다는 사실에 크리스토퍼가 혀를 내두른다.


"이 녀석, 나랑 성격이 비슷한데."


"무슨 의도로 그런 말씀을 하신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틀림 없이 오해하신 겁니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니그로가 태클을 건다.

그가 말한 건 둘째 치자.


"지금 내가 한 말이 들린 건가?"


"들립니다, 그것도 아주 잘."


"좋겠군, 귀가 밝아서."


짧게 만담을 나누는 동안, 삭스트라가 다시 몸을 일으킨다.

두 번이나 쓰러진 탓에 몸에 붙은 바위가 상당히 많이 떨어져 나갔다.


"그으으···."


대적자를 바라보는 삭스트라의 눈이 매섭다.


"···이 녀석도 눈이 있긴 하네."


"당연하지 않습니까? 눈이 퇴화됐다고 말씀 드린 적이 없다고요."


또 다시 니그로가 태클을 걸던 그때, 삭스트라가 몸을 둥글게 만다.


"이 자식!"


또 다시 달려들겠다고?

그럼 다시 한 번 날려주는 수밖에.

크리스토퍼 역시 검을 두 손에 쥔 채 자세를 잡는다.

하지만···.


"어엉?"


순간 크리스토퍼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쪽으로 달려들 줄 알았던 삭스트라가 반대쪽을 향해 굴러갔기 때문이다.


"야! 어딜 도망 가?!"


이대로 놓칠 줄 알고?

서둘러 뒤를 쫓으려는 찰나,


"추적은 포기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어느 새 다가온 니그로가 그를 만류한다.


"어째서?"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까요."


니그로가 검지를 뻗어 하늘을 가리킨다.

동굴 입구에 들어설 때만 해도 중천에 떠 있던 해가 어느덧 서쪽의 지평선을 향해 가고 있다.


"이런."


상황을 깨닫고 크리스토퍼는 짧게 혀를 찬다.

지하 동굴에 있었던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던 모양이네.


"그런데 빈 손으로 갈 순 없잖아."


"일단 저것들이라도 주워갈까요?"


니그로의 시선이 바닥에 떨어진 삭스트라의 바위 잔해로 향한다.

일반 바위와 큰 차이가 있긴 한가 싶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시간 없으니까 빨리 주워."


가방에서 꺼낸 자루를 펼친 다음, 그 안에 바위 잔해를 담는다.

얼추 채우고는 등에 짊어 지려고 하는데,


"크윽!"


가볍게 짊어진 황자와 달리 니그로가 엄청 무거워한다.

이쪽보다 절반도 안 되는 양에 힘들어하기는.

그보다 이런 걸로 장비를 만들 수나 있나?

자루를 나르는 와중에도 내심 걱정이 끊이질 않는다.


***


"전하, 이건···."


"바위 아닙니까?"


자루의 내용물을 콜린과 안드레가 다소 허망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럴 줄 알았다니까.

맥 빠진 두 사람의 반응에 크리스토퍼의 어깨도 축 늘어진다.


"그냥 바위가 아닙니다."


보다 못한 니그로가 설명에 나선다.


"이건 삭스트라라는 용의 바위 비늘입니다."


"비늘? 이게?"


"아니, 어딜 봐서 용의 비늘이라는 건가?"


"니그로에게 따지지 마."


황자의 한마디에 콜린과 앙드레가 동시에 입을 다문다.


"생긴 건 이래도 이걸 용에게서 얻고 여기까지 옮기느라 힘들었다고."


"역시 전하!"


갑자기 옆에 있던 카밀이 감탄하면서 손뼉을 치기 시작한다.


"보나 마나 엄청 단단했을 용에게 직접 대적하시다니!"


"당연하지. 그게 내 일인데."


"다음에는 부디 제 동행을 허락해주시기 바랍니다."


"널? 왜?"


"그야 전하의 도움이 되기 위해서지요."


"필요 없어. 짐만 될 게 뻔한데 뭘."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카밀이 어떻게든 본인의 유용성을 어필하려 애쓴다.


"아, 맞다."


그런 그를 무시한 채, 크리스토퍼는 가방을 뒤적거려서 광물의 샘플을 꺼낸다.


"혹시 이게 뭔지 아는 사람 있나?"


"뭡니까? 광물치곤 색이 참 특이하군요."


"이런 건 태어나서 처음 봅니다만."


콜린과 안드레는 물론, 그 뒤에 있던 무기 장인들 역시 전혀 모르겠다는 반응만 보인다.


"그럼 쓸 만한 광물인지 알아봐 줄 수 있겠나?"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제가 반드시 알아내겠습니다!"


"이거 놓게! 전하께서 내게 명하셨잖나?"


"무슨 소리입니까? 전하의 시선에 제게 향하고 있는데."


광물의 샘플을 두고 콜린과 안드레가 또 말다툼을 하기 시작한다.


"그만! 전에 분명히 말했을 텐데.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 분란을 만들지 말라고."


그러자 두 사람이 다시 입을 다문다.

그 와중에도 서로를 노려보는 모습에 크리스토퍼의 입에서 큰 한숨이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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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어둠 속 몬스터와의 재회 24.06.27 12 1 11쪽
41 계획에도 없던 예정 24.06.24 20 1 12쪽
40 헌터 길드의 2인자, 페로스 텔루어드 24.06.23 26 2 12쪽
39 파견의 의도 24.06.22 26 2 13쪽
38 또 다른 헌터의 등장 24.06.20 32 2 12쪽
37 시험 운영 24.06.19 35 2 12쪽
36 작은 불협화음 24.06.18 36 2 11쪽
35 정체를 숨기려는 자와 협조하는 자 24.06.16 37 2 11쪽
34 그동안 카밀이 안 보였던 이유 24.06.15 49 2 13쪽
33 예상 외의 방문자 24.06.13 48 3 11쪽
32 부상 +1 24.06.12 49 2 12쪽
31 비룡의 둥지 24.06.08 49 3 11쪽
30 대안책 24.06.07 55 4 11쪽
29 지하 동굴에서의 노역 작업 24.06.05 54 3 11쪽
28 긴급 상황 뒤에 해야 할 일 24.06.04 53 2 12쪽
27 거인 나무의 숲, 더 깊은 곳으로 +1 24.06.03 64 2 13쪽
26 루이스의 결심 24.06.02 70 2 12쪽
25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대가 24.06.01 82 2 12쪽
24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 24.05.31 79 2 12쪽
23 어둠 속에 숨은 사냥꾼 24.05.30 78 2 12쪽
22 파비안의 동행 24.05.29 82 1 12쪽
21 소년 파비안과 약사 루이스 24.05.28 89 3 14쪽
20 원했던 결과, 하지만··· 24.05.27 108 2 11쪽
19 합작품의 성능 평가 24.05.26 110 2 12쪽
18 극단의 조치 24.05.25 119 2 12쪽
17 토벌 성공, 그리고··· 24.05.24 128 4 12쪽
16 추가분 요청 24.05.23 122 3 13쪽
» 어둠 속에서 나타난 바위의 용 24.05.22 123 4 11쪽
14 황자이면서 황자답지 않은 그 사람 24.05.21 135 3 13쪽
13 대장장이들의 자존심 싸움 24.05.20 140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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