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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희 님의 서재입니다.

백수를 지망하는 황자의 영지 운영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한제희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6
최근연재일 :
2024.06.27 05:24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4,946
추천수 :
148
글자수 :
226,161

작성
24.06.07 07:00
조회
55
추천
4
글자
11쪽

대안책

DUMMY

"발 치우라고···!"


양팔에 힘을 주어 몬스터의 앞발을 들어 올리려고 한다.

겨우 숨 쉴 공간은 생기긴 했지만 이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기진맥진.

상대와의 체격 차이가 너무 큰 탓이다.


"아우, 진짜···!"


그럼에도 크리스토퍼는 포기하지 않는다.

이대로 있다가는 짓눌려 죽거나 눈앞에 보이는 날카로운 이빨에 물려 죽거나.

아무튼 죽는다는 결과 밖에 없다는 걸 잘 알기에.


"으그그···!"


젖 먹던 힘을 다해서 몬스터의 앞발을 밀어 올린다.

반대로 몬스터는 앞발에 무게를 싣는다.

사냥꾼과 먹잇감의 실랑이가 한참 이어지던 그때,


"전하!"


누군가의 외침이 들리더니, 갑자기 몬스터가 몸을 휘청거린다.

지금이다!

힘이 빠진 틈을 타서 몬스터의 앞발을 밀어 버리고 서둘러 빠져 나온다.

그 사이, 몬스터는 몸을 비틀거리면서 동굴 안쪽으로 도망친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안도감을 느낄 새도 없이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자세히 보니 지하 동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을 병사들이다.

그중에는 쿠르트도 있다.


"죄송합니다, 전하."


다가와서 한쪽 무릎을 꿇은 쿠르트가 사죄의 말부터 건넨다.


"명령에 따르긴 했습니다만, 도저히 전하만 두고 갈 수가 없어서···."


"아니, 오히려 고맙네."


자책하는 쿠르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다.


"그대들이 조금만 늦게 왔더라면 지금쯤 몬스터의 밥이 되었을지도 모르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반쯤 농담 삼아 한 말에 병사들이 기겁한다.

···좀 심했나?


"그보다 몬스터에게 뭘 했기에 제대로 대응도 안 하고 도망가나?"


"이겁니다."


빈스가 가방 안에서 종이로 둥글게 말린 무언가를 꺼낸다.

그게 뭔지는 크리스토퍼도 잘 알고 있다.


"마비 가루?"


"예, 이걸 화살촉에 달아 몬스터에게 쏘았습니다."


아하, 그래서 몬스터가 비틀거린 거였나.

마비 가루라면 자신도 가지고는 있지만, 지금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섬광탄이 먹히지 않았다는 충격 때문일까?


"어쨌든 고맙네. 덕분에 살았군."


"아, 아닙니다!"


황자의 감사 인사에 병사들이 다들 감동한 눈치다.

···고맙다는 한마디에 이렇게까지 감격할 일인가?


"아르크로 돌아가지. 꾸물대다가는 다른 몬스터가 습격할지 모를 일이니."


"예, 옛!"


아직 위험이 남았을 수도 있는 황자의 말에 병사들이 서두르기 시작한다.

광석이 든 자루를 회수하거나, 근처에 다른 몬스터가 있는지 확인하기도 한다.


"먼저 올라가시지요."


그중에서도 병사들이 가장 신경 쓰는 건 황자다.

하마터면 죽을 뻔할 게 안쓰러워서 그러는 건 알겠지만,


"···혼자 갈 수 있다고."


밑에서 밀어주려는 것까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


"이번에는 정말 위험했군요."


침대 위로 드러누운 주군을 헨릭을 내려다본다.

말만 들어서는 무척 걱정하는 것 같지만, 표정이 매우 담담하다.


"내 걱정을 하긴 해?"


"···? 당연하지 않습니까?"


무슨 말을 허냐는 듯 헨릭이 미간을 찌푸린다.


"전하께 무슨 일이 생기면 곤란하죠, 이곳 슈레인 발전의 중역을 맡으시지 않으셨습니까."


"야! 이···!"


하마터면 욕이 입 밖으로 튀어 나올 뻔했다.

즉, 걱정된 건 자신이 아니라 슈레인의 발전에 도움이 될 인재라는 거잖아.

갑자기 인생의 무상함이 느껴진다.

나름 오래 알고 지내온 헨릭과도 이 모양인데.

진심으로 자신을 아껴줄 사람이 있기나 한가?


"아무튼 지하 동굴은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겠군요."


주군이 깊은 고민에 빠진 와중에도 헨릭이 현재의 문제를 꼬집는다.


"알리콘은 거기서만 구할 수 있으니까요."


"알리콘? 그게 뭐지?"


"오늘 전하께서 쿠르트 켈른과 함께 캐오신 그 광물 말입니다."


우유 빛깔에 불투명하고 길쭉한 광물.

그런 광물이 발견된 건 슈레인의 황야, 그것도 지하 동굴 뿐.

즉, 이번에 새로 발견됐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름이 없었고, 부를 호칭이 없으니 사람들 간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다.

그래서 적당한 이름을 붙었다고 헨릭이 말한다.


"알리콘이라. 들어본 적 없는 단어인데."


"유니콘의 뿔이란 뜻입니다."


"꽤 어울리는걸."


그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적절한 이름이었다.


"그 알리콘이 쓸 만하긴 한가?"


"콜린 씨나 다른 무기 장인들이 말하기로는 일반 강철보다는 훨씬 강도가 좋다더군요."


“흐음.”


"생각보다 놀라지 않으시는군요."


"그 얘기라면 전에도 들었으니까."


굳이 놀랄 필요가 있을까.

강도가 우수하기로 낫다는 헬론 합금보다 더 낫다고 들은 게 언제적인데.

그 이후로도 꾸준한 연구를 위해 몇 번이나 자신이 지하 동굴로 갔단 사실도 잊었나.


"그 외에 다른 장점은 없나?"


"있기는 합니다만···."


말끝을 흐리는 보좌관을 크리스토퍼가 희한하다는 듯 바라본다.

별일이네.

이 녀석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엄청 드문 일인데.


"뭔데 그래?"


"장비를 만든 장인들 말로는 소재에 숨겨진 능력을 끌어낸다고 하더군요."


“무슨 뜻이야?”


"예를 들어, 마그이와나 소재의 장비라면 약하게 불 속성이 부여되는 걸 확인했습니다."


"저, 정말?!"


조금씩 감기던 눈이 확 떠진다.

장비에 속성이 부여되다니.

그런 건 극소수의 마법사 중에서도 인챈트 전문 마법사, 인챈터만이 가능한 일.

워낙 인챈터의 수가 적은 만큼 인챈트된 장비의 가격도 만만찮다.

그 예로 크리스토퍼가 애용하는 검에도 내구력 강화 효과가 걸려 있다.

일반 장검에 비하면 조금 더 버티는 게 고작이지만, 그런 효과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성 한 채 값이 나온다.


"그럼 강철로 만든 무기보다 몇 배는 비싸게 나온다는 건가?"


"몇 배라뇨. 최소 몇십, 정말 괜찮은 건 몇백 배는 더 비쌀 겁니다."


상상 이상의 발언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지금의 몇백 배나 더 받을 수 있다니.

그렇게만 된다면 앞으로의 개발비를 걱정할 필요가 없을 터다.


"그럼 본격적으로 알리콘 사용을···."


"그러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헨릭이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를 펼쳐 보인다.

지금 말한 문제가 하나도 아닌 둘이나 된다는 뜻이다.


"먼저 소재가 걸리더군요."


"무슨 뜻이야?"


"마그이와나, 카포러스, 삭스트라, 디프로이, 그리고 퀴로안기스."


헨릭이 이제까지 토벌한 몬스터의 이름을 나열한다.


"그 모든 소재를 써봤습니다만, 나중에 잡은 퀴로안기스 소재 장비가 가장 효율이 높더군요."


"오호."


이제껏 토벌한 몬스터 중 가장 난이도가 높았던 게 퀴로안기스다.

즉, 토벌 난이도가 어려운 몬스터의 소재를 사용할수록 알리콘이 끌어낼 수 있는 효과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또 다른 문제는 알리콘의 매장량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걸 위해서라도 지하 동굴을 개발해야 한다, 이건가?"


"그렇습니다."


헨릭이 담담하게 맞장구친다.


"문제는 개발 여력이 되냐는 건데···."


이 말을 꺼낸 직후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흐른다.

지하 동굴을 개발한다.

무척 쉬울 거 같지만 막상 그러자니 따질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현재 기사들의 상태는 어떻지?"


"이제 막 디프로이 토벌을 시작한 참입니다."


"즉, 퀴로안기스를 상대할 수준은 아니라는 거군."


헨릭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한다.

곤란한데.

전신으로 밀어붙이는 디프로이와는 다르게 퀴로안기스는 빠른 속도로 승부하는 타입.

게다가 지하 동굴에 퀴로안기스와 비슷한 종류의 몬스터도 발견됐다.

지하 동굴 개발을 위해서라도 퀴로안기스 정도는 토벌할 수 있어야 한다.


"처음 보는 몬스터를 여유 있게 토벌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지?"


"최소 한 달은 걸릴 겁니다."


"한 달이라···."


잠시 고민에 빠진다.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일까.


"일단 지하 동굴 개발 건은 보류하도록 하지. 적어도 기사들이 퀴로안기스 토벌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그럼 알리콘 장비 쪽은 어떻게 할까요?"


"그쪽도 보류해."


"···예?"


헨릭이 눈을 깜빡거린다.

지금 주군의 지시를 제대로 들었는지 의심하는 눈치다.


"알리콘으로 만들 수 있는 장비는 다 만들어 봤지?"


"그렇습니다만."


"그 중에서 억만금에 팔만 한 게 있나?"


"글쎄요."


헨릭이 고개를 기울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나마 퀴로안기스의 소재가 들어간 창이나 크로스보우가 낫긴 합니다."


"'그나마'라고?"


"솔직히 자신 있게 선보이기에는 좀 애매한 감이 있다고 봅니다."


"그럼 보류하자고. 나중에 더 좋은 소재를 얻을 수도 있잖아."


"아, 알겠습니다."


주군의 의도를 눈치챈 헨릭이 서둘러 대답한다.


"전하께선 대량생산보다는 장비의 희소성을 우선시하시겠다는 거군요."


"왜? 별로야?"


"아닙니다. 오히려 그쪽이 더 나은 수익을 낼 수 있겠죠."


그러면서 묘한 시선으로 주군을 바라본다.


"물론 전하께서 얼마나 좋은 소재를 가져오시냐에 따라 다르겠습니다만."


"···노력할게."


굳이 압박을 가하는 보좌관을 크리스토퍼가 째려본다.

보류하자는 게 그렇게 마음에 안 드나?

지금으로서는 그게 최선이라 그렇게 말했을 뿐인데.

그보다 좋은 소재라.

그런 게 있나 고민하다가 문득 한 가지 방법을 떠올리고는 저도 모르게 몸서리친다.


"전하? 왜 그러십니까?"


"아, 아냐. 아무것도···."


보좌관에게는 별일 아니라고 하긴 했지만, 계속 느껴지는 한기에 팔뚝을 문지른다.

순간 미치기라도 했나?

어떻게 그 방법을 떠올리지?

실행했다가는 진짜로 죽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든 그 생각을 떨치려 고개를 세게 젓는다.


"그럼 쿠르트 켈른의 노역 건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와중에 헨릭이 또 다른 안건을 제시한다.

참, 그게 있었지.


"알리콘 건 외에 뭐 급한 게 있나?"


"이렇다 할 건 없습···. 아, 딱 하나 있군요."


뭔가 생각났는지 헨릭이 서둘러 말을 고친다.


"혹시 황야의 바위 지대를 넘은 곳에 위치한 돌산을 보셨습니까?"


"보긴 봤지."


바위 지대에 도착하면 큰 갈림길이 나온다.

흘러가는 물을 따라가면 늪지대가 나오고, 반대로 올라가면 돌산이 보인다.

그 얘기를 한다는 건···.


"가능하면 그곳을 탐색했으면 합니다."


···역시나.

저 말이 나올 줄 알았다니까.


"굳이 거길 갈 필요가 있어?"


어떻게든 돌산에 가는 걸 피하기 위해 적절한 이유를 요구하기로 한다.


"지난번 저와 기사들이 삭스트라 토벌에 갔었습니다만."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려는 듯 헨릭이 턱 끝을 매만진다.


"돌산 쪽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걸 보았습니다."


"정확히 뭔데?"


"모르겠습니다. 거리가 먼 탓에 잘 안 보여서요."


하지만 뭔가가 있었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라고.

동행하던 기사들도 목격했다는 게 헨릭의 주장이다.


"그게 뭔지 전하께서 밝혀주셨으면 합니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온다.

몬스터에게 습격 당한 걸 핑계로 좀 쉬어 볼까 했는데.

역시 제 계획은 뜻대로 되는 법이 없다고 내심 불평하는 크리스토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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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또 다른 헌터의 등장 24.06.20 32 2 12쪽
37 시험 운영 24.06.19 35 2 12쪽
36 작은 불협화음 24.06.18 36 2 11쪽
35 정체를 숨기려는 자와 협조하는 자 24.06.16 37 2 11쪽
34 그동안 카밀이 안 보였던 이유 24.06.15 49 2 13쪽
33 예상 외의 방문자 24.06.13 48 3 11쪽
32 부상 +1 24.06.12 49 2 12쪽
31 비룡의 둥지 24.06.08 49 3 11쪽
» 대안책 24.06.07 56 4 11쪽
29 지하 동굴에서의 노역 작업 24.06.05 54 3 11쪽
28 긴급 상황 뒤에 해야 할 일 24.06.04 53 2 12쪽
27 거인 나무의 숲, 더 깊은 곳으로 +1 24.06.03 64 2 13쪽
26 루이스의 결심 24.06.02 70 2 12쪽
25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대가 24.06.01 82 2 12쪽
24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 24.05.31 79 2 12쪽
23 어둠 속에 숨은 사냥꾼 24.05.30 78 2 12쪽
22 파비안의 동행 24.05.29 82 1 12쪽
21 소년 파비안과 약사 루이스 24.05.28 89 3 14쪽
20 원했던 결과, 하지만··· 24.05.27 108 2 11쪽
19 합작품의 성능 평가 24.05.26 110 2 12쪽
18 극단의 조치 24.05.25 119 2 12쪽
17 토벌 성공, 그리고··· 24.05.24 128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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