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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희 님의 서재입니다.

백수를 지망하는 황자의 영지 운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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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한제희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6
최근연재일 :
2024.06.27 05:24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4,940
추천수 :
148
글자수 :
226,161

작성
24.05.26 08:11
조회
109
추천
2
글자
12쪽

합작품의 성능 평가

DUMMY

"정말 너무하십니다, 전하···."


울상 지은 카밀이 불평을 늘어놓는다.


"제가 미우시면 그냥 말씀하시지."


"딱히 그런 생각은 안 했는데."


"제 꼴을 보고도 그런 말씀이 나오십니까?!"


황자의 태평한 한마디가 못마땅했는지, 카밀도 울분을 터뜨린다.


"왜 제가 이런 복장을 해야 하는 거죠?!"


지금 카밀은 마그이와나 소재의 방어구를 착용한 상태다.

거기에 손에는 검까지 들려 있는 게 영락없는 전투에 나가려는 사람의 모습이다.


"그리고 여긴 대체 어딥니까?"


"투기장."


카밀의 질문에 크리스토퍼가 간결하게 대답한다.

그 이름에 걸맞게 높고 튼튼한 목제 벽이 그들 주변을 감싸고 있다.


"숲을 개간할 때 잘라낸 목재들을 어떻게 쓸까 하고 헨릭이 고민한 결과지."


"그렇군요. 역시 파셀 보좌관은 유능한 인재···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무심코 맞장구치던 카밀이 서둘러 원래의 화제로 돌린다.


"제가 왜! 여기서! 이 복장으로 있냐고 여쭙고 있는 겁니다!"


"그야 네가 그 검의 성능을 시험해야 하니까."


"그러니까 왜 제가···."


"네 입으로 말했잖아. 너 사무직 체질이라고."


"그랬죠."


"그 말인즉슨, 무기를 다루는 게 엄청 서툴다는 뜻이잖아."


"옳으신 말씀이십니다만, 그게 어쨌다는 겁니까?"


대화가 이어질수록 카밀의 고개도 기울어져 간다.

여기까지 말했는데도 아직까지 의도를 눈치채지 못한다니.

장비를 착용한 탓인가?

살짝 유능함이 떨어진 거 같기도 하고.


"즉, 네가 사용할 수 있는 장비라면."


하는 수 없이, 크리스토퍼가 결론을 말해주기로 한다.


"범용성 하나만큼은 확실하다는 거잖아."


"···그걸 꼭 제가 증명해야 합니까? 비전투원이라면 저 말고도 많잖아요. 파셀 보좌관도 있고."


"헨릭은 안 돼. 황야 적응 훈련 중인 기사, 병사들을 지휘해야 하니까."


"지휘라면 저도 할 수 있습니다!"


"웃기지 마."


부관의 간절한 외침을 코웃음으로 날려버린다.

그가 책상 앞에서 얼마의 세월을 보냈는지 크리스토퍼는 아주 잘 알고 있다.

병사들 훈련 과정도 모를 게 뻔한 사람에게 어떻게 지휘를 맡겨?


"잔말 말고 해, 상관 명령이니까."


"윽!"


딱 잘라 말하니 카밀도 입을 다물고 만다.

어쩔 수 없겠지.

상관의 명령은 곧 법.

특히나 황자이나 슈레인 영주인 크리스토퍼의 명령은 절대 거역할 수 없을 게 뻔하다.


"전하!"


멀리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온다.

목제 장벽 사이에 만들어진 커다란 철창이 달린 문.

그 위에서 빈스가 팔을 크게 흔든다.


"이쪽 준비는 마쳤습니다!"


"좋아, 내가 신호할 때까지 대기하도록!"


"예!"


"무, 무슨 준비를 했다는 겁니까?"


카밀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무척 겁이라도 먹었는지, 그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린다.


"딱히 대단한 건 아냐."


걱정일랑 붙들어 매라는 듯 크리스토퍼는 느긋하게 설명한다.


"마그이와나의 준비가 끝났다는 얘기니까."


"마, 마그이와나요?!"


기대와는 반대로 카밀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지, 지금 저보고 마그이와나를 상대하라는 말씀이십니까?"


"괜찮아, 대형 몬스터 중에서는 가장 약한 부류라고."


"그건 전하에게만 통용되는 얘기겠죠!"


억울하다는 듯 외치는 카밀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당장 마그이와나를 상대해야 한다는 사실이 여간 두려운 게 아닌가 보다.


"걱정할 거 없어. 진짜 위험하면 내가 상대할 테니까."


"정말이죠? 저 버리고 도망간다거나 하시는 거 아니죠?"


"내가 언제 너한테 거짓말한 적 있냐?"


"없습니다, 예···."


나름 납득할 만한 결과가 나왔는지, 카밀이 겨우 안정을 되찾는다.

그에 반해 내내 그를 달랜 크리스토퍼는 이미 진이 다 빠진 뒤였다.


"그럼 시작한다."


"예, 옛!"


시작한다는 말에 카밀이 자세를 잡는다.

이제껏 무기도 제대로 다뤄본 적이 없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검을 잡은 모습이 엉성하기만 하다.


"무게는 어때?"


"꽤 무겁군요. 두 손이라면 그나마 들겠지만, 한 손으로 드는 건 도저히 안될 거 같습니다."


"그렇군."


부관의 의견을 듣고 크리스토퍼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한손검인데도 무겁다라.

아무래도 삭스트라의 소재는 기동성을 중시하는 무기와 궁합이 안 맞는 듯하다.

활을 포함한 원거리 무기들 제작에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보고도 있었고.


"빈스! 철창을 열도록!"


"알겠습니다!"


대답이 돌아오기가 무섭게, 게이트의 철창이 위로 올라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안에서 마그이와나 한 마리가 뛰쳐나온다.


"히익!"


그걸 본 카밀이 경악한다.


"너, 너무 크지 않습니까?!"


"무슨 소리야?"


잔뜩 겁 먹은 부관을 크리스토퍼가 인상 쓴 얼굴로 노려본다.


"너도 알 거 아냐, 저 정도면 엄청 작은 개체라는 걸."


카밀이 아르크에 온 이후로도 매일 기사들이 마그이와나를 토벌했다.

즉, 카밀 역시 마그이와나의 사체를 매일 본다는 뜻이다.

그런데 저렇게 작은 것도 못 알아보다니.

내일부터는 해체 작업 감독도 맡겨야겠다.


"쉬이이···."


크리스토퍼와 카밀을 발견한 마그이와나가 혀를 낼름거린다.

바로 공격하지 않지만, 그래도 이쪽을 향한 시선에서 경계김이 가득하다.


"으아아···."


그 시선에 카밀이 겁을 먹고 만다.


"정신 차려, 기선에서 제압 당하면 바로 달려든다고."


"예, 옛!"


상관의 따끔한 일침에 카밀도 눈에 힘을 준다.

여전히 자세가 어설프지만, 그래도 투지가 생겼는지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이것만 잘 기억해둬."


본격적인 공격에 들어가기 전, 크리스토퍼가 충고부터 전한다.


"마그이와나의 공격은 별 거 없어. 앞에 있으면 그대로 몸을 들어 찍어 누르려 하고, 옆에 있으면 그대로 굴러와."


그러니 한 장소에만 머무르지 말라고 조언하자, 카밀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가!"


부관의 허리를 세게 두드리고는 뒤로 빠진다.

카밀이 위험해지면 바로 구해주긴 하겠지만, 일단 그가 공격하는 모습을 지켜볼 생각이다.


"야앗!"


카밀이 달려가면서 검을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린다.

그리고 마그이와나에게 다가가자마자 바로 내려친다.


"쉬익!"


공격을 받은 마그이와나가 비명을 지른다.

비록 카밀이 힘을 담긴 했지만, 검의 기본 공격력도 상당해 보인다.


"으아악!"


바로 이어진 마그이와나의 반격에 카밀이 바로 자리를 옮긴다.

얼마나 마음이 급했으면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진짜 엉성하네.

디르케 공작가에서는 검술 같은 거 안 가르치나?


"전하~!"


부관의 처절한 외침에도 크리스토퍼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의 관심사는 단 하나.

카밀이 어떻게 움직이느냐다.


"이익!"


도와달라는 부름도 무시한 상관을 카밀이 힐끔 노려본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다시 검을 들고 마그이와나에게 달려든다.

그가 노린 건 마그이와나의 굵고 짧은 다리.

가로로 벤 그 자리에서 피가 철철 흐른다.


"호오~!"


그 모습을 크리스토퍼가 흥미롭게 바라본다.

가로베기는 요령 없는 초보자가 하면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는다.

게다가 팔 힘도 없을 카밀의 공격이니 더욱 그럴 터.

그런데도 저 정도의 상처를 남기다니.


"으앗!"


그 와중에 카밀이 검을 놓치고 만다.

워낙 요령이 없다 보니 필요 이상으로 검을 크게 휘두른 게 문제였다.


"쉬익!"


적이 무방비라는 걸 알아차린 마그이와나가 바로 공격한다.

무기의 성능 시험은 이걸로 됐겠지.

그렇게 판단한 크리스토퍼는 단숨에 날아간 검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부관을 공격하려던 마그이와나의 목 아래를 베어버렸다.

경동맥을 일격에 베인 마그이와나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다.

잠시 몸을 들썩이긴 하지만, 이내 눈을 감고 만다.


"헉, 허억···."


카밀이 거친 숨을 계속 내뱉는다.

그 와중에도 죽은 마그이와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괜찮아?"


"예? 아, 예···."


상관의 질문에 대답하긴 했지만, 여전히 얼이 빠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자신을 압도하던 마그이와나가 죽는 장면이 꽤 충격이었나 보다.


"고생했어."


그런 부관을 크리스토퍼가 일으켜준다.


"이제껏 네가 한 일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데."


"···그건 받아들일 수 없겠군요."


뭐가 못마땅한지 카밀이 이맛살을 찌푸린다.


"제가 이곳에 온 이후로 한 일이 좀 많았습니까? 특히 무기 장인들과 공방 관리는···."


"알아, 안다고. 너 고생 많이 하는 거."


불평을 늘어놓는 부관의 어깨를 크리스토퍼가 가볍게 두드린다.


"이왕이면 황궁 일도 열심히 하지 그랬어?"


"무,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전 황궁에서도···."


"시치미 뗄 거 없어, 이미 다 들었으니까."


심하게 말을 더듬는 부관을 크리스토퍼는 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본다.


"너 강등됐다며. 작은형님의 보좌관에서 일반 사무관으로."


"그, 그, 그걸 어떻게···. 설마 파셀 보좌관이 황궁에?!"


"내가 황궁에 연락 넣으라고 지시했지."


"전하~!!!"


카밀의 처철한 목소리가 투기장을 가득 채운다.

그러거나 말거나.

크리스토퍼는 검을 쥔 채로 출구로 향한다.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카밀이 서둘러 그 뒤를 따른다.


"대체 어디까지 알고 계신 겁니까?"


"네가 라이벌인 칼덴 소후작과의 승부에 몰두하다가 작은형님께서 친히 명하신 일도 새까맣게 잊었다고 들었지."


"크흑···."


카밀이 가슴까지 쥐어 뜯을 정도로 괴로워한다.

그 모습을 크리스토퍼는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황도와는 먼 슈레인 지방이라면 본인 치부를 안 들킬 거라 생각한 건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 거라면 이쪽에서는 좀 고민할 필요가 있겠다.


"그, 그래도 말입니다, 전하!"


카밀이 유능한 게 맞나 고민하던 그때, 당사자가 다급하게 변명을 늘어놓는다.


"전하와 슈레인 지방의 발전을 위하는 건 진심입니다."


"여기서 실적을 세워서 다시 작은형님의 보좌관이 되려는 게 아니고?"


"제 진심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물론 그런 마음이 없지 않아 있긴 하지만."


오히려 그쪽이 진심인 거 같은데.

그렇게 말하고 싶은 욕망을 꾹 누르면서도 투기장 바깥으로 나서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 길로 향한 곳은 대장간.


"오셨습니까, 전하?"


황자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콜린과 안드레가 반겨준다.


"그···. 검의 성능은 어떠셨는지요?"


"나쁘진 않더군. 사소한 부분만 고치면 괜찮아지겠어."


"사소한 부분이라면···."


"아무래도 삭스트라의 소재는 무게감을 주는 무기에 맞을 듯 싶어."


"한손검보다는 대검이 낫다는 말씀이시군요."


"하지만 대검으로 만든다면 그만큼 무게가 더 늘어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최소한 부분만 삭스트라의 소재를 쓰고 장식 부분은 훨씬 가벼운 카포러스의 소재로 하는 게 어떻겠나?"


"그거 괜찮은 아이디어군요. 그럼···."


황자의 제안에 맞춰 두 사람이 의견을 주고 받는다.

그 모습이 크리스토퍼에게 놀라움을 주었다.

설마 일주일 사이에 이렇게까지 합을 잘 맞추게 될 줄이야.


"이 두 사람, 엄청 친해졌군요."


황자를 따라 대장간에 들어선 카밀로 놀라긴 마찬가지다.

두 사람을 내내 지켜보던 그가 놀랄 정도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결과다.

역시 극단적인 수단을 쓰길 잘했다니까.

스스로의 결단이 불러온 결과에 크리스토퍼는 무척 뿌듯해한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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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또 다른 헌터의 등장 24.06.20 32 2 12쪽
37 시험 운영 24.06.19 35 2 12쪽
36 작은 불협화음 24.06.18 35 2 11쪽
35 정체를 숨기려는 자와 협조하는 자 24.06.16 37 2 11쪽
34 그동안 카밀이 안 보였던 이유 24.06.15 48 2 13쪽
33 예상 외의 방문자 24.06.13 48 3 11쪽
32 부상 +1 24.06.12 49 2 12쪽
31 비룡의 둥지 24.06.08 49 3 11쪽
30 대안책 24.06.07 55 4 11쪽
29 지하 동굴에서의 노역 작업 24.06.05 54 3 11쪽
28 긴급 상황 뒤에 해야 할 일 24.06.04 53 2 12쪽
27 거인 나무의 숲, 더 깊은 곳으로 +1 24.06.03 64 2 13쪽
26 루이스의 결심 24.06.02 70 2 12쪽
25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대가 24.06.01 82 2 12쪽
24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 24.05.31 79 2 12쪽
23 어둠 속에 숨은 사냥꾼 24.05.30 78 2 12쪽
22 파비안의 동행 24.05.29 82 1 12쪽
21 소년 파비안과 약사 루이스 24.05.28 89 3 14쪽
20 원했던 결과, 하지만··· 24.05.27 108 2 11쪽
» 합작품의 성능 평가 24.05.26 110 2 12쪽
18 극단의 조치 24.05.25 118 2 12쪽
17 토벌 성공, 그리고··· 24.05.24 128 4 12쪽
16 추가분 요청 24.05.23 122 3 13쪽
15 어둠 속에서 나타난 바위의 용 24.05.22 122 4 11쪽
14 황자이면서 황자답지 않은 그 사람 24.05.21 134 3 13쪽
13 대장장이들의 자존심 싸움 24.05.20 140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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