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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희 님의 서재입니다.

백수를 지망하는 황자의 영지 운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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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한제희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6
최근연재일 :
2024.06.27 05:24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4,938
추천수 :
148
글자수 :
226,161

작성
24.06.01 08:04
조회
81
추천
2
글자
12쪽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대가

DUMMY

"이것도 부탁드려요."


파비안이 황자가 앉은 의자 오른편으로 들고 온 바구니를 내려놓는다.

양손으로 안아야 겨우 들 수 있을 만큼 큰 바구니.

그 안에 이름 모를 하얀 광석이 꽉꽉 채워졌다.


"으엑···."


어마어마한 양의 광석을 크리스토퍼는 다소 질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너무 많은 거 아냐? 지금까지 갈은 것도 이 정도 양이었는데."


그러고는 왼쪽을 바라본다.

그곳에도 바구니가 놓여 있지만, 안에 들은 건 광석과 같은 하얀색의 고운 가루.

양이 적어 보이는 건 단순히 곱게 갈아서 그렇게 보일 뿐.

그 전에는 파비안이 가져온 것과 비슷한 양의 광석이었다.


"아직 멀었어요."


싫은 티를 팍팍 내는 황자를 향해 파비안이 천연덕스럽게 대꾸한다.


"전하께서 작업하실 게 아직 다섯 바구니나 남았는데요."


"푸흡···! 콜록! 콜록!"


말도 안 되는 작업량에 놀라 사레까지 들리고 말았다.


"아주 날 잡았지?!"


지금까지 했던 작업, 광석을 가루로 내는 일에만 대체 몇 시간이나 매달렸는지.

그런데도 남은 작업이 몇 배나 더 남았다고?


"도대체 이 광석은 뭐야?!"


눈앞 작업대 위에 있던 광석 하나를 거칠게 집어 든다.

대리석을 연상시키는 백색이지만, 그 단단함은 차원이 다르다.

어릴 때 황궁에 있던 보석을 부순 적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사파이어도 있었다.

하도 투명해서 잘 부서질 줄 알았건만.

그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사파이어는 무척 단단했다.

지금 든 광석도 그때 부순 사파이어처럼 단단하기 그지없다.


"이건 포티스 광석이라는 건데요."


파비안이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추출한 성분이 금속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역할을 하거든요."


"그게 중요한가?"


"그럼요! 불순물이 사라지지 않으면 금속의 강도가 낮아진다고요."


아, 그런가.

금속의 강도가 낮아진다는 건 곧 충격에 약하다는 뜻.

그런 걸로 장비를 만들어 봤자 오래 못 가겠지.


"이제까지는 어떻게 했는데?"


"저랑 선생님이 번갈아서 망치로 두들겼죠. 그걸로도 추출은 가능하긴 한데, 광석의 입자가 고울수록 더 좋아요."


그래서 가루로 내라고 한 건가.

좋아, 알았다고.

거기까지는 이해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이 필요해?"


지금까지 크리스토퍼가 한 것만 두 바구니.

그런데도 그 네 배나 되는 양을 더해야 한다고?

이쯤 되면 의심하는 것도 당연하다.


"혹시 나중에 하기 귀찮다고 나한테 몰아준 거 아냐?"


"그, 그, 그럴 리가요. 아하하···."


파비안이 애써 부정하지만, 떨리는 목소리와 메마른 헛웃음이 대답을 대신한다.

역시나.

금속 중화제 30개 분량보다 훨씬 넘은 양이었군.


"안 해."


"아, 안 돼요!"


작업 거부 선언을 한 황자를 파비안이 창백해진 안색으로 말린다.


"전하께서 안 해주시면 저랑 선생님은 일주일 넘게 그것만 깨야 한다고요!"


"이미 내가 할 만큼은 했잖아!"


"그, 그건 그렇지만···."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역시 필요 이상의 작업을 시킨 거 맞지?!"


"아니, 그게···!"


"그게 대가입니다."


크리스토퍼와 파비안이 서로 목청을 높이던 중, 차분한 목소리가 끼어든다.

고개를 들자, 문 앞에 서 있는 루이스와 눈이 마주친다.


"좀 조용히 해주실 수 없으십니까? 너무 시끄러워서 작업에 집중하기가 영 어렵군요."


"아, 미안···이 아니라, 뭐? 대가?"


반사적으로 사과할 뻔했지만,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뭔 소리야? 대가를 받는다는 얘긴 못 들었다고!"


"작업을 도와주신다고 하셨잖습니까?"


"그건 파비안 둘이서 내일 아침까지 금속 중화제 30개를 못 만든다고 하니까 어쩔 수 없었던 거고!"


"덕분에 저희도 철야를 하게 됐습니다만."


황자의 급한 주문을 맞추느라 못 자게 된 건 이쪽도 마찬가지.

루이스의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어 입을 다문다.


"게다가 금속 중화제라면 앞으로도 계속 필요로 하시겠죠?"


"아마 그렇겠지."


"그렇다면 지금 하시는 작업도 결국에는 전하께 도움이 되는 셈이겠군요."


"크윽···!"


크리스토퍼의 어깨가 움츠러든다.

비, 빈틈이 없어!

이렇게까지 말 잘 하는 사람은 단 세 명.

큰형과 작은 형, 그리고 헨릭 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납득하신 듯하니 작업의 속행을 부탁 드립니다."


황자가 더 이상 불만을 늘어놓지 못 할 거라 판단했는지, 루이스는 그대로 문 밖으로 나가 버린다.


"후우···."


스승이 사라지자마자, 파비안이 안도한 듯 가슴을 쓸어 내린다.


"진짜 아슬아슬했네."


"뭐가?"


"선생님은 화가 나면 저렇게 말을 잘 하시더라고요."


"엉? 방금 그게 화를 낸 거였어? 왜?"


"그야 전하께서 고래고래 소리 치셨으니까 그렇죠."


원래 루이스는 타인의 소음이 싫어 이런 늪지대에서 살고 있다.

그런 그의 집에서 버럭 고성을 냈으니.


"솔직히 전하께서 쫓겨나시는 게 아닐까 했거든요."


"···다행이네, 안 쫓아내서."


추가 노동을 해야 하는 건 불쾌하지만, 이것도 다 앞날을 위해서다.

슈레인의 발전을 위해서 몬스터 소재를 이용한 장비를 만들어야 하고,

또 그 장비를 제작하려면 금속 중화제가 필수니까.


"좋아! 해보자고!"


마음을 다잡고 작업대 앞에 앉는다.

금속 중화제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서라면 광석 몇 바구니가 대수냐.


"파비안, 갈아야 할 광석 전부 가져와."


"알겠습니다!"


힘찬 대답과 함께 파비안이 바깥으로 나간다.

혼자 남은 크리스토퍼는 광석을 망치로 부순 다음, 그걸 막자 사발에 넣는다.

그리고 막자로 그걸 곱게 가는 작업에 몰두한다.


***


"···하, 전하! 일어나세요!"


"으, 으응?!"


누가 어깨를 세차게 흔드는 바람에 놀란 크리스토퍼가 눈을 뜬다.


"작업 중에 주무시면 어떡해요?!"


"미, 미안···."


타박하는 파비안에게 짧게 사과하고는 졸린 눈을 비빈다.

아무래도 분쇄 작업을 하던 중에 깜빡 잠들었나 보다.

앞으로 작업할 게···


"···두 바구니나 남았네."


아직도 작업이 안 끝났다는 사실에 어깨가 축 처진다.

잠도 못 자고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일단 뭐 좀 드시고 하세요."


파비안이 황자의 손에 들린 막자와 막자 사발을 치운다.


"배가 고파서는 작업도 할 수 없잖아요."


배가 부르면 졸려서 더 작업에 더딜 거 같은데.

멍한 머리로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도 소년에게 이끌려 1층으로 내려간다.


"오셨습니까?"


주방에서 냄비 안을 젓던 루이스가 내려오는 두 사람을 발견한다.


"전하께선 앉아 계시죠. 파비안, 그릇 가져오너라."


"예."


멍한 황자가 적당히 앉는 사이, 루이스는 제자에게 받은 그릇에 스튜를 담는다.


"드시죠."


그리고 그걸 황자 앞에 내려놓는다.

고기와 버섯, 감자 등이 들어간 스튜다.

그 안에 들어간 향초 냄새에 눈이 확 떠진다.


"잘 먹겠네."


스푼으로 한 입 떠먹으니 투박하면서도 정감 있는 맛이 느껴진다.


"맛있군.'


"전하께 내어드리기에는 변변찮습니다만."


"이 정도면 훌륭한데, 뭐."


다소 겸연쩍어하는 루이스를 이해 못하겠다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평소 식사는 아르크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챙겨주곤 한다.

대체적으로 만족스럽긴 하지만, 맛 하나만큼은 이 스튜가 더 낫다.


"무슨 비법이라도···. 아, 이 향초가 특이한데."


"제가 허브 여러 개를 조합한 겁니다. 괜찮으시면 좀 나눠드리죠."


"부탁하지."


아르크 주민 중 누가 스튜를 만들어줬더라.

돌아가면 헨릭에게 물어보고 받아온 허브를 넣어보라고 말해야지.


"별일이네요."


자기 몫의 스튜만 먹던 파비안이 신기하다는 듯이 말한다.


"선생님께서 누군가와 이렇게 대화하시는 건 처음 봐요."


"넌?"


"제가 질문을 하면 대답을 해주시긴 하죠. 어, 아니, 글쎄 같은 짧은 대답이 전부이긴 하지만."


"그래도 질문 말고 대화도 할 거 아냐?"


"그런 거 없어요. 식사 시간에 마주 앉아도 내내 조용한 걸요."


"파비안."


스승의 조용하면서도 박력 있는 한마디에 재잘거리던 파비안이 입을 다문다.

그 뒤로 들리는 거라곤 스푼이 그릇에 살짝 부딪히는 소리 뿐.

···좀 불편한데.

크리스토퍼가 식사할 때면 옆에서 헨릭이 말을 걸어주곤 한다.

대부분 그날 할 일이나 사후보고이긴 하지만, 그래도 식사 시간이 지루하지 않을 정도는 된다.


"미겔 선생."


"말씀하시죠."


황자의 부름에 루이스가 고개를 든다.

말이 나오길 기다리는 모습에 크리스토퍼는 서둘러 화젯거리를 떠올리려 애쓴다.


"그···. 그대가 만든 약을 아르크의 잡화점에서도 판다고 했지?"


"그렇습니다만."


"주로 뭐가 잘 나가지?"


"보통 상처에 바르는 연고나 감기약을 자주 찾곤 합니다."


"황도에서 약학을 배웠다면서? 그 과정에 금속 중화제 같은 것도 배우나?"


"아뇨, 그건 테르코 지방에서 지낼 때 근처에 사는 연금술사에게 배운 겁니다."


"연금술사가 가르쳐 줬다고? 왜?"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크리스토퍼가 알기로 연금술사는 금속 관련 전문가.

그런 사람이 왜 약사에게 금속 중화제의 제작법을 알려줬을까?


"대단한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약의 대가였을 뿐입니다."


"야, 약값 대신 레시피를 줬다고?!"


입이 떡 벌어진다.

뭐야, 이게?

그쪽이 더 어이가 없잖아!


"대체 뭐 하는 인간이야, 그 연금술사?"


"뭐랄까, 좀 괴짜였습니다."


···루이스 입으로 괴짜란 말이 나오다니.

보통 만만한 인간이 아니라는 게 벌써부터 느껴진다.


"자기 손으로 오리할콘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죠."


"컥···!"


"괜찮으세요?!"


입 안에 있던 스튜 건더기를 뿜을 뻔한 걸 겨우 참아냈다.

그래도 잔기침이 멈추지 않아 파비안이 건넨 물잔을 받아 든다.


"후우···."


물 한 컵과 함께 입 안의 내용물도 삼키면서 겨우 사태가 진정된다.


"대체 오리할콘이 뭔데 전하께서 놀라시는 거예요?"


"전설의 금속이지."


숨을 몰아쉬는 황자를 대신해 루이스가 대답한다.


"나도 자세한 건 모르지만, 무게에 비해 강도가 엄청나다고 하더군."


"호오~."


별 대단한 설명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파비안의 눈이 반짝거린다.

전설의 금속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는 연금술사라.

그렇게만 들으면 낭만적이긴 하지만,


"뜬구름 잡는 거 같은데."


그게 크리스토퍼의 솔직한 심정이다.

전설의 광물 오리할콘.

그 이름을 찾을 수 있는 건 오래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신화의 문헌.

당연히 제작법 같은 게 나올 리가 없다.

그런 걸 만들겠다고 하다니.

제정신인가?


"그래서 늘 돈이 없었죠."


루이스가 안타깝다는 듯이 말을 잇는다.


"실력은 있는 사람이라 현실에만 눈을 돌렸다면···."


"그 연금술사, 이름이 뭐지?"


"이자크 네우탄입니다."


"아직도 테르코 지방에 살고 있나?"


"그럴 거라 생각합니다. 다른 곳으로 이주하려고 해도 돈이 없으니까요."


그렇냐면서 크리스토퍼는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 자에게서 또 배운 건 없나?"


"무슨 결정을 만드는 걸 가르쳐주긴 했습니다만, 어디에 쓰는 건지는 모르겠군요."


"결정?"


"이자크 말로는 무슨 특수 효과를 담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만."


"나중에 만들어 줄 수 있나?"


황자의 질문 하나하나에 루이스가 최대한 자세하게 답변해준다.

정작 그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옆에 앉은 소년이 자신들의 대화 장면을 유심히 바라본다는 사실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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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작은 불협화음 24.06.18 35 2 11쪽
35 정체를 숨기려는 자와 협조하는 자 24.06.16 37 2 11쪽
34 그동안 카밀이 안 보였던 이유 24.06.15 48 2 13쪽
33 예상 외의 방문자 24.06.13 48 3 11쪽
32 부상 +1 24.06.12 49 2 12쪽
31 비룡의 둥지 24.06.08 49 3 11쪽
30 대안책 24.06.07 55 4 11쪽
29 지하 동굴에서의 노역 작업 24.06.05 54 3 11쪽
28 긴급 상황 뒤에 해야 할 일 24.06.04 53 2 12쪽
27 거인 나무의 숲, 더 깊은 곳으로 +1 24.06.03 64 2 13쪽
26 루이스의 결심 24.06.02 70 2 12쪽
»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대가 24.06.01 82 2 12쪽
24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 24.05.31 79 2 12쪽
23 어둠 속에 숨은 사냥꾼 24.05.30 78 2 12쪽
22 파비안의 동행 24.05.29 82 1 12쪽
21 소년 파비안과 약사 루이스 24.05.28 89 3 14쪽
20 원했던 결과, 하지만··· 24.05.27 108 2 11쪽
19 합작품의 성능 평가 24.05.26 109 2 12쪽
18 극단의 조치 24.05.25 118 2 12쪽
17 토벌 성공, 그리고··· 24.05.24 128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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