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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희 님의 서재입니다.

백수를 지망하는 황자의 영지 운영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한제희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6
최근연재일 :
2024.06.27 05:24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4,947
추천수 :
148
글자수 :
226,161

작성
24.06.19 08:56
조회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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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시험 운영

DUMMY

"자, 얼른 옮겨요!"


카밀의 지시에 따라 병사들이 마그이와나의 사체를 수레에 싣는다.


"백작님, 준비한 수레 만으로는 전부 옮기기 어려울 거 같습니다만."


그렇게 보고한 빈스가 어딘가를 바라본다.

한쪽 구석에 잔뜩 쌓인 마그이와나의 사체.

못해도 서른은 족히 넘을 양에 다소 질린 듯한 눈치다.


"그렇다면 서둘러야겠군요. 빨리 아르크로 옮겨 놓고 돌아오라고 하세요."


카밀이 지시한 대로 수레가 이곳과 아르크를 바쁘게 움직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크리스토퍼는 기시감을 느낀다.

이 장면, 예전에 봤던 기억이 있는데.


"정말이지, 도통 믿기지 않습니다."


옆에 서 있던 줄리안이 혀를 내두른다.


"전하께서 토벌 담당이라고는 하셨지만, 이렇게까지 많은 수를 상대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 정도야 뭐, 여기에 온 직후부터 하루가 멀다고 해댔으니까."


말을 내뱉고 나서 살짝 걱정스러운 마음이 든다.

좀 거만하게 들렸으려나.


"역시 대단하시군요."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줄리안은 조금도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오히려 황자를 존경스럽다는 시선으로 바라볼 뿐.


"만약 헌터가 되셨다면 금방 솔 랭크를 받으셨을 거 같습니다."


"솔 랭크가 뭔가?"


"헌터 길드에서 헌터의 성과에 랭크를 정해줍니다."


헌터 랭크는 가장 낮은 새트에서 시작해서 루프, 파이르, 에오우, 메르, 룬, 가장 높은 솔이 있다고 한다.

즉, 줄리안이 말하고 싶은 건 이거다.

황자가 헌터가 된다면 최고 랭크에 오르는 건 시간 문제라고.


"그대 랭크는 뭔가?"


"에오우입니다."


"헌터 활동을 시작한 게 5년 전이라 했으니, 경력에 비해 랭크가 빨리 올랐군."


"이것 저것 안 한 일이 없으니까요."


멋쩍게 웃는 줄리안을 크리스토퍼가 빤히 쳐다본다.

젊은 나이에 많은 일을 했다니.

그렇겠지.

집안과 절연도 했겠다, 먹고 살기 위해선 뭐든 해야 했을 터다.


"아까 보니까 카밀에게 적절한 지시를 내리던데."


가족 얘기를 꺼낼 순 없으니 다른 화제로 돌린다.


"헌터로 활동할 때도 누군가를 이끌어준 적이 많았나?"


"많지는 않습니다만, 몇 번 신참들과 함께 의뢰를 맡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에게 지시를 내리는 게 익숙하다고 줄리안이 말한다.


"오호라~. 그렇단 말이지?"


"···왜 그런 눈빛으로 절 바라보시는 겁니까?"


'아니. 딱히 이상한 의도는 아니야."


노골적인 경계심을 드러내는 줄리안을 안심시키려 양손을 들어 올린다.


"그저 그대가 이번에 설립될 슈레인의 헌터 길드의 운영자에 적합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니까."


"전하, 전···."


말을 잇지 못하는 줄리안의 표정이 매우 복잡해 보인다.


"아까 카밀에게 듣기로는."


다음 말이 나오길 기다리다 못해 크리스토퍼가 말문을 연다.


"헌터 길드 운영자 자리를 그대가 부담스럽게 여긴다던데."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이유가 뭐지?"


"전하께서 기대하시는 만큼 전 대단한 인간이 못 되니까요."


"그런 걸 요구한 기억은 없는데."


크리스토퍼의 고개가 기울어진다.

줄리안에게 대단한 걸 기대해서 헌터 길드의 운영을 맡기려고 한 게 절대 아니다.


"그 자리를 부탁한 건 그대가 적임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전 그 적임자에 안 맞는다니까요."


다소 흥분했는지 줄리안의 목소리가 살짝 커진다.

필사적인 그의 태도에 조금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줄리안, 정말로 헌터 길드의 운영을 맡기 싫은 건가?"


그냥 돌직구로 물었다.

어차피 혼자 고민해 봐야 대답이 나올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질문을 받은 줄리안은 머뭇거리기만 할 뿐.

이렇다 할 대답을 들려주진 않는다.


"줄리안?"


"그···. 싫은 건 아닙니다."


망설임 끝에 나온 대답은 의외였다.


"사실 단체를 운영하는 일에 관심이 있긴 했습니다만···."


"이참에 하면 되잖아."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아십니까?"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줄리안이 한숨을 푹 내쉰다.


"지금 아르크에 헌터라곤 저 뿐이긴 하지만, 나중에는 많은 헌터들이 정착하겠죠?"


"그러길 바라고 있지."


"고작 신참 헌터 몇 명을 이끌어 봤을 뿐인 제가 그 많은 인원을 감당할 자신이 없습니다."


"···너무 앞서가는 거 아닌가?"


솔직히 어이가 없다.

현재 아르크에 헌터들이 모이는 걸 목표로 개발 중.

실제로 그렇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는 것 정도는 크리스토퍼도 알고 있다.

몇 년 뒤에나 있을 법한 일을 지금부터 고민한다니.

의외로 고민을 사서 하는 타입인가?


"아무튼 길드 운영에는 관심이 있다, 이건 맞지?"


"예, 예···."


"그렇다면 시험 삼아 해보는 건 어떤가?"


"시험···입니까?"


황자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줄리안이 어리둥절해한다.


"막 길드에 가입한 신참 헌터가 있다는 가정 하에 한 번 해 봐."


"가, 가정이라니."


설명을 듣자 줄리안이 몹시 당황해한다.


"가상 인물로 머릿속에서 연습해보라는 말씀이십니까?"


"뭔 소리를 하는 건가? 그럴 리가 없잖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줄리안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노려본다.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고 다닌 건지, 원.


"신참 헌터 역을 맡아줄 사람이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 말도록."


"그게 누굽니까?"


"어이~! 카밀~!"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리던 카밀을 부른다.


"부르셨습니까, 전하."


이름이 불리자마자 카밀이 이쪽으로 다가온다.


"요즘 바쁜가?"


"저 말입니까? 아뇨, 무기 장인들도 각자 자리를 잡은 터라 자잘한 조정 외에는 딱히 할 일은 없습니다만."


"그럼 너 임시로 헌터가 되라."


"···예?"


"줄리안이 시험 삼아 길드 운영하는데 조력 좀 하라고."


그러자 카밀의 시선이 황자와 친우를 번갈아 오간다.


"농담이시죠?"


"너랑 농담 따먹기나 할 만큼 내가 한가한 줄 알아?"


"주, 줄리안···?"


"협조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황자는 물론이고, 친우까지 딱 잘라 말하니 농담이 아니라는 걸 카밀도 눈치챈다.


"어째서 접니까?!"


그래선지 큰 목소리로 따지기 시작한다.


"그런 일이라면 굳이 제가 아니더라도···."


"현재 아르크에서 가장 한가하면서 토벌 자체는 가능하지만 아직은 서툰 사람이 너 밖에 없어서."


"그리 말씀하시면 저 섭섭합니다."


카밀이 볼멘소리를 늘어놓는 걸 어깨를 으쓱하는 걸로 넘긴다.

섭섭해 봤자지.

사실을 얘기했을 뿐인데.


"그렇게 됐으니 내일부터 해보도록 하지."


"내일부터요?!"


"그, 그건 너무 빠르잖습니까?!"


"불평 할 시간 있으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나 해."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을 놔둔 채 크리스토퍼는 걸음을 옮긴다.


"아, 거기. 너무 심하게 탄 건 그냥 땅 속에 묻어버려."


카밀을 대신해 병사들을 지휘하다 보니 눈치채지 못한다.

두고 온 두 사람이 고개와 어깨를 푹 숙인 채 좌절했다는 걸.


***


"···어째서 전하께서 여기 계신 겁니까?"


서류에 뭔가를 적어가던 카밀이 슬쩍 노려본다.

그 모습이 크리스토퍼에게는 그리 대수롭지는 않았다.

이 녀석, 아직도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건가.

이쯤 되면 포기할 법도 한데.


"그야 네가 잘 하는지, 헌터 길드는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 궁금해서."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얼씨구?

이제는 대놓고 불평하시겠다?

이런 일에 억지로 끌고 들어온 게 미안해서라도 좋게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대로 뒀다가는 나중에 귀찮아질 거 같으니 한 번 잡고 가기로 한다.


"그러고 보니 둘째 형님에게서 편지가 왔었지."


"바, 발리엔 전하께서요?!"


작은형 얘기가 나오자마자, 카밀의 얼굴이 사색이 된다.


"편지에는 뭐라고···."


"슬슬 널 돌려 보내달라고 하던데. 굳이 네가 여기 남아봤자 딱히 할 일이···."


"저 앞으로도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전하를 보필하겠습니다!"


힘차게 외친 카밀이 서류 작성을 서두른다.


"여깄네, 줄리안!"


그리고 다 쓴 서류를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줄리안에게 건넨다.


"···예, 서류는 잘 받았습니다."


다소 어색한 목소리로 말한 줄리안이 서류 끝에 도장을 찍는다.


"이걸로 디르케 백작님, 아니, 카밀 디르케 씨는 저희 엑스페토 길드의 헌터가 되셨습니다."


"잠깐. 엑스···. 뭐?"


"길드 이름을 엑스페토라고 지어봤습니다. 슈레인 소속 헌터 길드는 너무 길어서요."


"아, 그런 거였나."


엑스페토, 엑스페토.

그 단어를 곱씹을수록 괜찮게 들린다.

줄리안의 네이밍 센스가 제법인걸.


"그 다음은? 뭘 하면 되지?"


카밀이 다급하게 다음 할 일을 묻는다.

길드 이름 따윈 아무래도 좋은 듯하다.


"현재 디르케 씨의 헌터 랭크는 최하위인 새트입니다."


"여기서도 헌터 길드의 랭킹제를 도입할 생각인가?"


"그러는 편이 헌터들의 동기 부여에 도움이 될 거라 판단했습니다."


보통 랭크라는 건 그 헌터가 얼마나 일을 잘 해줬는지에 대한 증명에 가깝다.

랭크가 높을 수록 헌터 길드에서도 우대해주는 게 많다.


"헌터 중에서도 랭크를 올리는 일에만 집중하는 사람도 여럿 봤습니다."


"오호~."


새로운 사실에 크리스토퍼의 흥미가 돋는다.

역시 현직 헌터라서 그쪽 방면으로 아는 게 많다니까.


"아, 혹시 기존의 헌터 길드의 랭킹제를 사용하면 나중에 문제가 될까요?"


"괜찮아. 문제가 되지 않도록 이쪽에서 조정하지."


"감사합니다."


줄리안이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혹시라도 발생할 문제점도 파악하는 점도 가산점을 줄 만하다.


"그래서? 난 뭘 하면 되냐고."


카밀이 뚱한 표정으로 재차 같은 질문을 던진다

···저 녀석, 본인이 아르크의 관리자 중 한 명이라는 자각도 없나?

지금 줄리안이 한 얘기도 귀담아 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현재 새트 랭크인 디르케 씨께 맞는 의뢰가 1건 있습니다."


줄리안이 책상 서랍을 열어 한 장의 서류를 꺼낸다.


"숲에서 산딸기를 채집하는 의뢰입니다만."


"산딸기 채집? 그런 걸 누가 왜 의뢰한 거지?"


"의뢰인은 술집 주인이시고, 산딸기주를 만들 예정이라고 하시더군요."


참고로 저 의뢰는 진짜다.

어제 헨릭에게 사정을 설명했더니, 그 길로 저택을 나섰다.

잠시 후 돌아와서 의뢰서를 내밀었다.


"디르케 백작이 아직 토벌에 서투니 이걸 전해주시지요."


그 행동력에 감탄 밖에 안 나온다.


"하아···."


의뢰서를 받아든 카밀이 무거운 한숨만 내쉰다.

기껏 신참 헌터 역을 맡은 걸로도 모자라, 이런 하찮은 의뢰나 맡아야 한다니.

이런 생각을 하는 게 표정으로 다 드러난다.


"참, 둘째 형님께 보낼 답장 쓰는 걸 깜빡했네."


"산딸기 채집이면 금방 끝나겠군. 그럼 다녀오지!"


은근슬쩍 협박하자마자, 그걸 눈치챈 카밀이 쏜살같이 방을 빠져나간다.

그러게 누가 불평하랬나?

아무래도 작은형에게는 카밀에게 맡긴 직책이 있다는 답장을 써서 보내야겠다.


"어···."


카밀이 열고 나간 문을 보던 줄리안이 어쩔 줄 몰라 한다.


"왜 그러지?"


"그게···. 원래 의뢰를 수락하면 그걸 서면으로 남겨야 합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지금은 상관 없지만, 헌터가 많아지게 되면 누가 어떤 의뢰를 맡았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아, 그런 거였나."


미처 그 부분은 깨닫지 못했다.

그런 게 확실하지 않으면 하나의 의뢰를 두 사람이 중복으로 맡을 수도 있다.

그러한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일일이 서면으로 남길 필요가 있긴 하다.


"다음부터 그렇게 하도록. 오늘 건 그냥 넘어가고."


"그리하겠습니다."


대답을 하면서도 줄리안이 또 다른 종이를 꺼내 뭐라 기입한다.

슬쩍 들여다 보니, 카밀이 산딸기 채집 의뢰를 받았다는 문구가 적혔다.

너무 성실한 거 아냐?

이런 생각과 함께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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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를 지망하는 황자의 영지 운영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2 어둠 속 몬스터와의 재회 24.06.27 12 1 11쪽
41 계획에도 없던 예정 24.06.24 20 1 12쪽
40 헌터 길드의 2인자, 페로스 텔루어드 24.06.23 26 2 12쪽
39 파견의 의도 24.06.22 26 2 13쪽
38 또 다른 헌터의 등장 24.06.20 32 2 12쪽
» 시험 운영 24.06.19 36 2 12쪽
36 작은 불협화음 24.06.18 36 2 11쪽
35 정체를 숨기려는 자와 협조하는 자 24.06.16 37 2 11쪽
34 그동안 카밀이 안 보였던 이유 24.06.15 49 2 13쪽
33 예상 외의 방문자 24.06.13 48 3 11쪽
32 부상 +1 24.06.12 49 2 12쪽
31 비룡의 둥지 24.06.08 49 3 11쪽
30 대안책 24.06.07 56 4 11쪽
29 지하 동굴에서의 노역 작업 24.06.05 54 3 11쪽
28 긴급 상황 뒤에 해야 할 일 24.06.04 53 2 12쪽
27 거인 나무의 숲, 더 깊은 곳으로 +1 24.06.03 64 2 13쪽
26 루이스의 결심 24.06.02 70 2 12쪽
25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대가 24.06.01 82 2 12쪽
24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 24.05.31 79 2 12쪽
23 어둠 속에 숨은 사냥꾼 24.05.30 78 2 12쪽
22 파비안의 동행 24.05.29 82 1 12쪽
21 소년 파비안과 약사 루이스 24.05.28 89 3 14쪽
20 원했던 결과, 하지만··· 24.05.27 108 2 11쪽
19 합작품의 성능 평가 24.05.26 110 2 12쪽
18 극단의 조치 24.05.25 119 2 12쪽
17 토벌 성공, 그리고··· 24.05.24 128 4 12쪽
16 추가분 요청 24.05.23 122 3 13쪽
15 어둠 속에서 나타난 바위의 용 24.05.22 123 4 11쪽
14 황자이면서 황자답지 않은 그 사람 24.05.21 135 3 13쪽
13 대장장이들의 자존심 싸움 24.05.20 140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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