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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희 님의 서재입니다.

백수를 지망하는 황자의 영지 운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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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한제희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6
최근연재일 :
2024.06.27 05:24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4,948
추천수 :
148
글자수 :
226,161

작성
24.06.02 10:09
조회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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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루이스의 결심

DUMMY

"···49, 50. 예, 확인했습니다."


수량을 확인한 헨릭이 뒤로 물러서자, 두 명의 병사가 유리병이 담긴 상자를 들고 이동한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미겔 선생님. 필요 수량보다 더 챙겨주시고."


"아닙니다."


황자 보좌관의 말에 루이스가 고개를 가로 젓는다.


"제자와 저, 단 둘만으로는 원하시는 수량에 못 맞췄을 겁니다."


"그러시겠죠."


맞장구친 헨릭의 시선이 어디론가 향한다.

또 다른 병사들이 들것으로 누군가를 나르고 있다.


"아이고, 나 죽는다···."


그 위에 실린 건 황자인 크리스토퍼.

축 늘어진 채 잠꼬대하듯 중얼거리는 주군을 헨릭이 물끄러미 바라만 본다.

참으로 한심한 꼴이긴 하지만, 딱히 불쾌하진 않다.


"전하를 엄청 부려 먹으셨나 보군요."


그 말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루이스의 한쪽 눈이 살짝 올라간다.


"···뭐, 그렇죠."


그래도 부정하진 않는다.

실제로 이때다 싶어 금속 중화제와는 관련되지 않은 작업까지 시켰으니까.


"파셀 보좌관···이라고 하셨죠? 뭐 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무엇인지요?"


"전하의 힘이나 체력이 월등히 뛰어나 보이는 건 제 착각입니까?"


"아뇨, 제대로 보신 겁니다."


착각이 아니라고 헨릭이 딱 잘라 말한다.


"크리스토퍼 전하께선 선천적으로 남다른 힘과 체력을 타고 나셨습니다."


"선천적이라면···."


"생후 3개월 만에 사용하시던 아기 장난감이 죄다 부서졌다고 합니다."


"크흡···!"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얘기에 놀랐는지, 루이스가 숨을 크게 들이켠다.

그래도 정말이냐고, 거짓말 아니냐고 되묻지는 않는다.


"그···. 사람을 대하시는 태도도 뭐랄까, 황족답지 않으시던데."


"제가 처음 뵀을 때부터 격식 없이 대하긴 하셨죠."


"···원래부터 특이하신 분이셨던 거군요."


그 말에 헨릭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흐음."


루이스의 시선이 들것에 실려가는 황자에게 향한다.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릴 만큼 밤새 열심히 일했다.

단단한 포티스 광석을 전부 갈아줬을 뿐만 아니라, 동이 틀 때까지 수동 원심분리기도 돌렸다.

그 덕에 파비안과 일주일 넘게 걸렸을 작업을 단 몇 시간 만에 끝났다.

'선황의 3남은 게으름의 대명사'라는 소문이 거짓말이 아닐까 의심할 정도다.


"영주님만 아니었다면 아예 고용해도 됐을 텐데."


"필요하시다면 가끔 빌려드리겠습니다."


"하하, 사양하죠. 노동력에 비례해 좀 시끄러우시니까요."


루이스가 멋쩍게 웃는다.

밤새 일을 하던 황자의 입에선 불만이 끊이질 않았다.

겨우 조용해졌나 싶을 때는 구석에서 졸고 있었고.


"그래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말씀, 전하께서 정신을 차리시면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그 말을 끝으로 헨릭이 기사와 병사들을 데리고 그곳을 떠난다.

아까까지의 소란스러움이 거짓말인 듯 오두막 근처에는 정적만 흐른다.

잠시 주변을 살피던 루이스가 안으로 들어선다.

문을 닫자마자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식탁에 엎드린 채 잠든 제자의 모습이었다.


"쿨···."


세상 모르게 자고 있는 제자를 깨우기가 미안했다.

그래서 작은 담요를 그 위에 덮어 주었다.


"주무시면 안 된다니까요. 아직 할 일이···."


제자의 잠꼬대를 듣고 루이스가 피식 웃었다.

밤새 저 말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틈만 나면 구석에서 졸고 있던 황자를 깨우다가 나중에는 옆에서 대놓고 감시했다.

무척 심각한 상황일 거 같지만, 그때의 제자는 무척 신나 보였다.


"그런 표정을 얼마 만에 본 거지?"


8년 전, 막 제자가 됐을 때만 해도 무척 개구쟁이였던 소년.

그랬던 그가 시끄러운 걸 싫어하는 스승에 맞춰 필요한 말만 하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려 했던 루이스지만, 그의 눈꺼풀이 점점 닫혀간다.


***


"슬슬 일어나시죠."


"···싫어."


"벌써 해가 떴습니다. 아침 식사하셔야죠."


"안 먹어. 그냥 잘래."


그렇게 대꾸한 크리스토퍼는 이불을 머리 끝까지 끌어 올린다.


"더 이상은 안 됩니다."


말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헨릭이 강제로 이불을 걷어 버린다.


"어제 하루 꼬박 쉬셨으면 충분하잖습니까?"


"전혀! 충분하지 않아!"


몸을 일으킨 크리스토퍼가 빼앗긴 불에 손을 뻗는다.

그걸 눈치챈 보좌관이 재빨리 뒤로 물러나는 바람에 실패해버렸지만.


"너도 밤새서 일해 봐. 하루 쉬는 걸로는 부족하다는 걸 알 테니까."


"저도 밤이라면 여러 번 샜습니다만, 하루눈커녕 반나절만 쉬면 충분하던데요."


"에잇! 됐으니까 이불 내놔!"


그대로 침대에서 일어난 크리스토퍼가 보좌관에게 향한다.

말이 안 통한다면 남은 건 실력 행사 뿐.

그대로 이불 탈환 작전에 들어가려던 찰나,


"전하!"


오늘 저택 경비 담당을 맡은 기사가 방문을 두드린다.


"왜?"


"저···. 알현 신청이 들어왔습니다."


"···뭐?"


순간 뭔 소린가 했다.

알현이라니.

그 절차를 밟는 사람이 아르크에 있던가?

혹시나 싶어 헨릭을 바라보지만, 그 역시 놀랐는지 눈을 깜빡거린다.


"누굽니까, 알현 신청한 사람이?"


"루이스 카밀 씨입니다만."


"에엑~?!"


신청인의 이름을 듣고는 턱이 빠질 뻔했다.

루이스가 왔다고?

시끄러운 게 싫다는 이유 만으로 몬스터가 득실대는 늪지대에 사는 그가?


"일단 응접실로 모시세요. 좀 기다려 달라는 양해의 말도 잊지 말고."


"알겠습니다."


헨릭의 지시가 내려지자마자, 기사의 발소리가 멀어진다.


"···대체 왜 왔대?"


"글쎄요."


주군의 질문에 어깨를 으쓱거린 헨릭이 이불을 침대 위에 잘 정리해둔다.


"그걸 알고 싶으시다면 직접 대면하는 방법밖에는 없겠습니다만."


"칫!"


짧게 혀를 차고는 욕실로 향한다.

보좌관이 대신 만나주지 않을까하고 조금은 기대했건만.

뜻대로 되지 않아 조금 불쾌하긴 하지만, 루이스가 직접 방문했다는 것도 신경 쓰인다.

서둘러 몸단장을 마친 다음, 1층의 응접실로 향한다.


"오셨습니까?"


안으로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루이스가 몸을 일으킨다.


"별 일이군. 그대가 이곳 아르크까지, 그것도 날 만나기 위해서 올 줄이야."


"상의 드리고 싶은 게 있어 염치를 무릅쓰고 찾아뵈었습니다."


"일단 앉지."


황자가 1인용 소파에 앉는 걸 본 루이스도 다시 자리에 앉는다.


"그래, 내게 상의할 게 있다고?"


"전에 제게 제안하신 걸 아직 기억하고 계십니까?"


"제안이라면 아르크 근처로 거처를 옮기라고 했던 그건가?"


"예."


루이스의 고개가 무겁게 끄덕여진다.

순순히 인정하는 모습에 조금 놀랐다.

제안하자마자 단칼에 거절해서 두 번 다시 얘기 못 할 줄 알았는데.

게다가 거절한 장본인이 다시 얘기를 꺼낼 줄이야.


"그사이 마음이 바뀌기라도 한 건가?"


"전 여전히 시끄러운 게 싫습니다만···."


말을 하다 만 루이스가 작게 한숨을 내쉰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르크 근처에서 지내는 편이 여러 모로 낫다는 결론이 나왔지요."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뭔가?"


"이번에 전하의 도움을 받으면서 깨달았습니다. 앞으로는 더 많은 약이 필요할 테고, 저희 둘 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걸요."


여차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도 아르크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늪지대에서 인력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

그럴 바엔 차라리 소음을 좀 참는 편이 낫다.

이게 루이스가 내린 결론이다.


"그런···가."


루이스의 말에 납득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안 간다.

인력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낀 건 알겠다.

그래도 마음이 너무 빨리 바뀐 감이 있는데.


"그래서? 구체적으로 뭘 해주길 바라나?"


"우선 거처로 삼을 만한 곳을 정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약초가 많이 나는 숲 근처가 좋겠군요."


"숲이라."


그 말을 중얼거리면서 뒤에 서 있는 보좌관을 돌아본다.


"숲을 개간한 곳은 공방 거리가 들어섰습니다만."


헨릭이 안경을 살짝 치켜세운다.


"그래도 극히 일부에 불과하니 괜찮은 장소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직접 보러 가도 되겠습니까?"


"괜찮고 말고. 원한다면 동행하지."


"송구스럽지만 부탁 드립니다."


황자의 동행에도 루이스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

너무 담담하지 않나 싶으면서도 그러려니 넘어가기로 한다.

그 황자에게 밤새 일거리를 끊임 없이 넘겨줬던 사람이니까.


"헨릭, 너도 따라와."


"알겠습니다."


크리스토퍼와 헨릭, 루이스는 저택을 나와 아르크 입구로 향한다.


"전하, 좋은 아침입···. 헉!"


그러던 중, 광장 근처에서 조나단과 마주친다.

그는 함께 있던 루이스를 보고는 몹시 당황한다.


"미, 미, 미겔 선생님?! 어, 어째서 여기에···."


"안녕하세요, 펠먼 씨."


어쩔 줄 몰라 하는 조나단과는 달리, 루이스는 느긋하게 인사를 건넨다.


"이사 건으로 전하를 찾아 뵈었습니다."


"이사···. 엥? 아르크로 오시는 겁니까?"


"그건 아니지만, 가능하면 근처로 올까 하고···."


"잘 됐습니다, 잘 됐어요!"


루이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조나단이 손뼉까지 치면서 기쁨을 드러낸다.


"선생님께서 근처로 와주신다면야 저희야 더할 나위 없죠!"


"무슨 일입니까?"


흥이 난 조나단의 목소리를 듣고 다른 주민들도 모여든다.


"앗, 전하!"


"안녕하십니까?"


"그런데 거기 계신 분은···."


다들 황자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루이스를 바라본다.


"혹시 약사이신 미겔 선생님 아니십니까?"


"아이고, 맞네, 맞아!"


"선생님께서 아르크엔 어쩐 일이십니까?"


"그게 말일세."


질문을 퍼붓는 주민들에게 조나단이 대신 대답한다.


"이번에 아르크 근처로 이사를 하시겠다더군."


"예?! 저, 정말요?"


"아하하, 아침부터 좋은 소식이 들리는군요!"


조나단과 마찬가지로 주민들 역시 루이스의 이사를 크게 반긴다.

그렇겠지.

의사가 없는 이곳 아르크에서는 약사의 존재가 매우 크니까.


"어디 좋은 장소라도 생각하셨습니까?"


"지금부터 알아볼 참이오. 가능하면 숲이 좋을 거 같아서."


"그렇다면 새로 집을 지어야겠군요."


"마침 정착한 인부들도 여럿 있으니 협력을 부탁해야겠어."


"미겔 선생님,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고, 고맙소."


루이스의 떨떠름한 대답에 만족했는지, 조나단과 주민들이 자리를 뜬다.

그 와중에도 몇 번이나 돌아보면서 고개를 숙이는 건 덤이다.


"후우···."


다시 주변이 조용해지자, 루이스가 작게 한숨을 내쉰다.


"다행이군, 주민들은 그대가 근처에 와주는 걸 몹시 반기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딱히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루이스가 이마를 짚는다.


"역시 시끄러운 건 성미에 안 맞습니다."


"아하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모습을 보고 크리스토퍼가 작게 웃음을 터뜨린다.

본인은 질색이라는 식으로 말하긴 하지만, 막상 그리 싫은 눈치는 아니었으니까.


"어찌 됐든 이곳 주민들에게 신세 좀 져야겠군요."


"신세라. 그렇게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 같은데."


"무슨 의미입니까?"


"이곳의 불문율 중 하나가 필요할 때는 서로 돕고 사는 거니까."


그러니 부담 갖지 말라는 황자의 말에 루이스의 표정이 복잡해진다.

그걸 보니 감이 온다.

이 사람,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네.


"호의가 정 부담스럽다면 대가라도 준비하는 게 어때?"


"대가라. 뭐가 좋겠습니까?"


"그대는 약사니까 약주 정도는 만들 수 있겠지?"


"술을 만들라는 거군요. 하아···."


황자의 조언에 루이스가 한숨을 내쉰다.

보답으로 술을 만드는 건 영 내키지 않는 눈치지만, 그래도 싫다는 얘기는 하지 않는다.


"가시죠. 얼른 장소를 물색하고 돌아가야겠습니다."


"음, 그래야 돌아가서 술을 빚을 수 있니까."


"이번에도 도와주시겠습니까?"


"사양하지. 술을 즐기는 편이 아니거든."


딱 잘라 거절하자, 루이스에게서 혀 차는 소리가 들려온다.

또 밤 새서 일하는 건 사양이라고.

그렇게 다짐하면서 숲으로 향하는 걸음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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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어둠 속 몬스터와의 재회 24.06.27 12 1 11쪽
41 계획에도 없던 예정 24.06.24 20 1 12쪽
40 헌터 길드의 2인자, 페로스 텔루어드 24.06.23 26 2 12쪽
39 파견의 의도 24.06.22 26 2 13쪽
38 또 다른 헌터의 등장 24.06.20 32 2 12쪽
37 시험 운영 24.06.19 36 2 12쪽
36 작은 불협화음 24.06.18 36 2 11쪽
35 정체를 숨기려는 자와 협조하는 자 24.06.16 37 2 11쪽
34 그동안 카밀이 안 보였던 이유 24.06.15 49 2 13쪽
33 예상 외의 방문자 24.06.13 48 3 11쪽
32 부상 +1 24.06.12 49 2 12쪽
31 비룡의 둥지 24.06.08 49 3 11쪽
30 대안책 24.06.07 56 4 11쪽
29 지하 동굴에서의 노역 작업 24.06.05 54 3 11쪽
28 긴급 상황 뒤에 해야 할 일 24.06.04 53 2 12쪽
27 거인 나무의 숲, 더 깊은 곳으로 +1 24.06.03 64 2 13쪽
» 루이스의 결심 24.06.02 71 2 12쪽
25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대가 24.06.01 82 2 12쪽
24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 24.05.31 79 2 12쪽
23 어둠 속에 숨은 사냥꾼 24.05.30 78 2 12쪽
22 파비안의 동행 24.05.29 82 1 12쪽
21 소년 파비안과 약사 루이스 24.05.28 89 3 14쪽
20 원했던 결과, 하지만··· 24.05.27 108 2 11쪽
19 합작품의 성능 평가 24.05.26 110 2 12쪽
18 극단의 조치 24.05.25 119 2 12쪽
17 토벌 성공, 그리고··· 24.05.24 128 4 12쪽
16 추가분 요청 24.05.23 122 3 13쪽
15 어둠 속에서 나타난 바위의 용 24.05.22 123 4 11쪽
14 황자이면서 황자답지 않은 그 사람 24.05.21 135 3 13쪽
13 대장장이들의 자존심 싸움 24.05.20 140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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