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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까스 한입 하실래예

공작가 막내도련님이 도술로 다 씹어먹음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새글

이기준
작품등록일 :
2024.05.21 21:54
최근연재일 :
2024.07.03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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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1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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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불구경 (2)

DUMMY

두 기사단이 약 50미터 거리를 두고 마주보았다. 레이븐 기사단은 약 200여명이었고, 오키드 기사단은 100명을 간신히 넘겼다. 머릿수로는 레이븐이 오키드를 압도했다.


그들은 그렇게 마주 바라본 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서 거리가 더 좁아지면 그때는 유혈사태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마벨 측에서 기사 한 명이 말을 몰아 앞으로 나섰다. 그는 30미터 앞까지 다가가 말을 멈추며, 느리지만 힘있는 투로 말했다.


"멈춰라, 너희는 퀘르쿠스 소유의 농지를 무단으로 훼손하고 있다."


레이븐 쪽에서 비웃음이 나왔다.


"기사라는 놈들이 상인의 따까리를 자처하는군."


"퀘르쿠스의 땅은 단순한 사유지가 아니라, 기근 피해를 입지 않은 몇 안 되는 농토다. 너희는 지금 공작령의 밥줄을 끊으려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모기도 아니고 왜 자꾸 앵앵거리는 거냐? 허리에 찬 검은 장식이냐?"


마벨의 기사는 잠깐 침묵하더니, 스산한 어조로 말했다.


"기사가 주군의 허락도 없이 검을 휘두를 수는 없다. 그건 너희도 마찬가지일 텐데."


"크리스 님께서는 잘난 척 훈계를 하는 놈을 보면 언제든지 주먹으로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라고 명령하셨지."


"정당한 이유도 없이 무력을 쓴다면 기사와 깡패가 뭐가 다르지?"


레이븐 기사들은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이 낄낄거렸다.


"옷에 꽃이나 그리고 다니는 놈들 답게 허락이 없으면 싸우지도 못하나보군. 그러면 주군 핑계를 대면서 '공작령의 밥줄'을 우리가 끊는 걸 구경이나 하고 있으라고."


레이븐 측이 다시 밭을 뭉개기 시작했다. 마벨의 기사는 고삐를 당기며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무기를 쓰지 말고 막아라!"


마벨의 기사들이 레이븐 기사단을 몸으로 막았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그들은 말에서 내려 서로를 주먹과 발로 후드려 패기 시작했다.


"새대가리 주제에!"


"가서 꽃이나 기르시지!"


퍽퍽 소리가 살벌하게 울려 퍼졌다. 사람이 앞뒤로 날아다니기도 했다.


"음······."


라슬로가 비텐에게 물었다.


"이런 일이 자주 있나요? 기사분들이··· 주먹다짐을 벌이는 거요?"


다른 단원들도 황당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완전무장을 한 기사들이, 검집을 달랑거리면서, 서로를 향해 인정사정없이 주먹을 휘두르는 모습이란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다.


"아니니까 지금 많이 봐 둬."


"왜 저러시는 거죠?"


"여기서 무기를 뽑으면 그건 분란이 아니라 내전이거든."


아버지께서 두 눈 퍼렇게 뜨고 살아계신데, 섣불리 내전을 일으켰다간 자기들 주군이 박살날 거라는 것 정도는 아는 거지.


전원 각성 능력을 가진 초인들이다 보니, 주먹다짐이라고 우습게 볼 일은 아니었다. 다들 이를 악문 채, 발정기가 온 숫양처럼 서로를 머리가 터져라 들이받는 중이었다.


그렇게 대규모 박투가 한창인 와중에, 성벽 위에 제삼의 깃발이 올라왔다. 이번에 등장한 깃발은 어느 세력의 소속이 아닌, 솔리타스의 신성한 상징을 담고 있었다.


"당장 그만두지 못할까!"


성벽 위에서 한 노인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노인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빙긋 웃어버렸다.


목소리의 주인은 콜린 주교였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에너지가 넘쳐나셨다.


"이 한심한 놈들, 기껏 무술을 배워 놓고는 하는 일이 쌈박질밖에 없느냐! 그럴 기운이 있으면 나가서 봉사라도 해! 지금부터 네놈들 중에서 누구 한 놈이라도 싸움질을 계속하면, 내 솔리타스께 맹세코 그 기사단은 신성마법의 국물도 없을 줄 알아라!"


기적이 일어났다. 서로를 향해 이새끼 저새끼 거리면서 악을 쓰던 수백 명의 기사들이, 할아버지의 말 한 마디에 싸움을 멈춘 것이다.


기사들이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싸울 수 있는 이유는 신성마법의 놀라운 효능 덕분인데, 수틀리면 치료를 해주지 않겠다고 하니 이것보다 더 무서운 협박이 어딨겠어.


"오늘 운 좋은 줄 알아라."


"주교님만 아니었으면 너희야말로 다 뒤졌어, 알간?"


두 기사단은 서로를 부축한 채, 다리를 절뚝이며 성시로 돌아갔다. 신전에 가면 콜린에게 2차로 털릴 테지만, 그거야 자업자득이고.



**



한바탕의 해프닝이 지나간 후, 특별 캠프의 1일차 훈련이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두 기사단의 싸움을 본 이후 단원들은 의욕으로 불타올랐다. 그들은 탈리아의 지시대로 불평 한 마디 없이 훈련장 바닥을 굴러다녔다.


단원들이 열심히 훈련을 받는 사이에, 나는 연금술 공방엘 들렀다.


"어떻게 됐지, 카스파르?"


"완성했습니다."


카스파르가 떨리는 손으로 검은 색 환약을 건넸다.


이것이 나의 연단술과 그의 연금술을 합쳐서 만든, 이 세계 최초의 단약(丹藥)이다.


물론 정식 버전은 아니다. 스칼렛 블레이즈 한 뿌리를 통째로 넣어 만들었건만, 증류 과정이 부실해 엑기스의 절반 가량이 날아가고 말았다.


정식 버전을 출시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지금은 소기의 성과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단약을 단원의 머릿수대로 정교하게 잘라냈다. 그리고 한 조각씩 음료에 넣어, 이른바 카로이식 '특제 드링크 프로토타입'을 완성했다.


"이 불그죽죽한 걸 마시라고요?"


"이게 어디가 어때서?"


"색이 너무 벌건데, 대체 안에 뭘 넣으신 겁니까? 마족이라도 갈아 넣으신 건 아니겠죠?"


비텐이 의심 가득한 투로 물었다.


"쭉 들이켜. 몸에 좋은 거야."


비텐이 망설이는 사이에 샤카가 앞으로 나왔다. 그녀는 음료를 순식간에 입에 털어넣은 뒤, 스칼렛 블레이즈의 빨간 물이 묻어난 입술을 슥 닦으며 말했다.


"강해지는 느낌이예요. 최강에 한 발짝 더 다가갔다고 해야 하나."


그녀의 말을 들은 단원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음료에 손을 뻗었다.


"정말 힘이 솟는 것 같은데요?"


"마족이 들어있어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특제 드링크를 마신 단원들은 훈련의 피로도 잊고 펄펄 뛰어다녔다.


나는 닷새 후에도 단약을 하나 만들어와 쪼개주었다. 사이사이에 모험가 길드에서 공수한 5, 6등급 마력원도 무지하게 퍼먹였다.


단원들은 그동안 내 진법 속에서 환상과 싸우며 빠른 속도로 경험을 쌓았다.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건 경험을 실력으로 만들어줄 마력이었다.


훈련 캠프가 진행될수록 마벨과 크리스의 감정의 골은 깊어졌다. 이제 두 사람에게 나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하루가 멀다하고 레이븐과 오키드가 맞붙었다는 뉴스가 나돌았다.


덕분에 성시의 분위기는 뒤숭숭하기 그지없었다. 오죽했으면 난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속도가 빨라졌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특별캠프의 종료를 하루 앞뒀을 때, 그러니까 성 로칸드 축일이 나흘 남은 시점이었다. 물자를 사러 성시에 들렀던 단원들이 급보를 알려왔다.


"재무국이 습격을 받았다고?"


"예, 레이븐 기사단이 정문의 방비를 뚫고 내부에 불을 질렀다고 합니다."


"언제?"


"방금 들은 소식입니다."


기어이 크리스가 대형사고를 쳤다. 감사자료가 아버지께 넘어가서 좋을 게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잠시 성시에 다녀오마."


"재무국에 가시려는 겁니까?"


"그래."


마벨과 크리스를 싸움 붙인 건 나지만, 재무국의 관료들은 그저 자기 직분에 충실했을 뿐이다. 무고한 사람들이 다치는 건 내가 바라던 일이 아니다.


"현장 상황이 녹록지 않을 겁니다. 저희가 보좌하겠습니다."


"먼저 가 있을 테니 뒤따라 와."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나는 캠프를 빠져나와, 축지법을 써서 들판을 쭉쭉 가로질렀다.


나는 순식간에 외성벽에 도달해, 허공을 답보하여 단숨에 성벽을 뛰어넘었다. 공중에서 잠깐 뒤를 돌아보았는데, 기사단원 전체가 날 쫓아 들판을 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성벽을 그대로 주파할 줄은 몰랐는지, 놀란 모습이 역력했다.


나는 민가의 지붕 위에 사뿐히 착지한 뒤, 지붕과 지붕을 타넘으며 나아갔다.


재무국은 낡은 고성을 개조한 건물을 본부로 쓰고 있었다. 고성의 창문과 종탑에서 불길이 치솟는 중이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연기의 색깔이 짙어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성 주변에 모여있었는데, 그 중에는 불을 끄기 위해 출동한 소방관도 보였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이, 고성을 포위한 레이븐 기사단의 흉흉한 기세 때문에 옴짝달짝도 못하는 중이었다.


"다치고 싶지 않으면 물러나라!"


"살인자!"


"안에 사람이 있어요, 들어가서 구해야 합니다!"


소방관과 재무국의 직원들이 정문으로 진입하려 했으나, 기사들의 신경질적인 손짓 한 번에 우르르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나는 직원들의 앞으로 나섰다.


"이덴 공자 전하!"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았다.


"안에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발, 이덴 공자님의 신위를 발휘하여 주십시오!"


직원들이 땅에 엎드리며 간곡한 목소리로 호소했다. 나는 정문을 향해 또박또박 걸어갔다.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나와 기사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더 못 가십니다."


거구의 기사가 팔짱을 끼며 길을 가로막았다.


"왜지?"


"너무 위험합니다. 공자님의 안전을 위한 조치이니, 양해를 해주시죠."


"안전이라."


나는 도력을 끌어내 손을 앞으로 뻗었다. 냉기가 파도처럼 뻗어나가, 정문 앞까지의 모든 것을 꽁꽁 얼려버렸다.


"이제 안전해졌으니 들어가도 되나?"


기사들이 주춤거리며 좌우로 물러섰다. 나는 얼음의 길을 지나 고성의 안으로 들어갔다.


성 안은 불과 연기의 도가니였다. 불길이 너무 강해 돌바닥이 녹아내릴 지경이었다. 나는 두 손을 모으며 진언을 외웠다.


수영술(水靈術),

용우(用雨)의 장.


일진광풍이 불어와 연기를 성 바깥으로 내몰았다. 연기가 빠져나간 자리에 짙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났다.


먹구름은 천장 위를 떠돌며 국지성 소나기를 퍼부었다. 술법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냐면, 잠시 뒤에 신발이 침수되었을 정도였다.


불길이 지나간 자리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화상 피해를 입은 사람은 없었지만, 대부분 연기 때문에 질식해가는 중이었다.


"허어억······ 허어억······."


그들은 생사의 기로에 매달려 있었다. 사제를 부를 틈조차 없었다. 당장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송장을 떼로 치우게 될 판국이었다.


나는 한 사내의 입을 벌리고, 술법을 발동했다.


풍영술(風靈術),

호풍(呼風)의 장.


손바닥 안에 공기의 덩어리가 강력하게 응축되었다. 나는 그것을 사내의 입에 다짜고짜 쑤셔 넣었다.


스승님이 이 방법으로 질식해가던 사람을 구해낸 적이 계셨다. 공기 대신 연기를 들이마신 사람한테는, 그 이상의 공기를 마시게 하는 수밖에 없다면서.


"쿨럭, 쿨럭···!"


사내가 몸을 웅크리며 격한 기침을 토했다. 생명 반응이 돌아오고 있었다. 그를 마저 돌볼 틈은 없었다. 나는 사내를 바닥에 내려놓은 뒤, 다음 사람에게 공기 덩어리를 집어넣었다.


"이덴 님!"


"이덴 님, 무사하십니까!"


사람들의 숨을 한 명 한 명씩 되돌리고 있을 때였다. 단원들이 고성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들을 돌아보지 않으며 지시했다.


"테오, 넌 사제를 데려오고! 프레드, 넌 여기 와서 환자를 분류하는 걸 도와!"


"알겠습니다!"


"나머지는 부상자가 더 있는지 찾아 봐!"


단원들이 제때 도착해준 덕분에, 너무 늦지 않을 때에 응급조치를 다할 수 있었다. 가까스로 구해낸 직원들 중에는 낯익은 자도 있었다. 서기관 오필즈였다.


"이, 이덴 님······."


그는 벽에 몸을 기댄 채, 검댕이 가득 묻은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죄, 죄송합니다. 감사 자료가···."


"말하지 말고 쉬어. 내가 한 건 임시조치에 불과하니까."


오필즈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나는 그의 숨이 붙어있는 걸 다시금 확인하고는, 바깥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성을 빠져나왔다.


고성 밖은 잠깐 사이 분위기가 바뀌었다. 레이븐 기사의 숫자가 몇 배로 늘어나 있었는데, 숫자만 늘어난 게 아니라 기세도 등등해졌다.


이유는 알 것 같다. 그들의 주군이 와 있었거든.


크리스는 검은 예복을 빈틈없이 차려입은 채 레이븐의 간부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는 몇 년 사이 키가 훌쩍 컸다. 기운도 훨씬 강해져서, 어릴 때부터 천재라고 칭송받던 재능이 유감없이 개화한 모습이었다.


크리스의 맞은편에는 마벨이 서 있었다. 마벨도 기사들을 잔뜩 거느린 채였다.


"크리스, 나의 동생아."


마벨이 특유의 자상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아무리 내가 네 형이라지만, 잘못을 무한정 눈감아 줄 순 없단다."


"무슨 잘못 말이지?"


"근 보름 사이에 네 부하들이 저지른 수많은 악행들을 모른 척 할 셈이냐? 꼭 이 형이 사람들 앞에서 네 치부를 드러내야만 하겠니?"


"웃기는 소리하고 앉았네."


크리스가 냉소적으로 말했다.


"난 네 그 가식적인 웃음이 싫어, 마벨. 마치 너만 착한 사람이고, 다른 사람만 잘못이 있다는 식으로 구는 그 역겨운 이중성 말이야. 나야말로 네 진짜 모습을 알려줄까, 응? 그토록 인품이 고매하다는 영주 대리께서, 왜 동생들 상회만 조사를 하고, 본인 상회는 내버려두는 거지? 왜 네 고매한 정의는 항상 너만 빗겨가는지, 실체를 폭로해 줘?"


마벨은 여전히 웃었으나, 눈이 웃지 않고 있었다.


"오해를 했구나. 내 상회도 곧 조사가 예정되어 있다. 재무국이 워낙 바쁜 탓에 일정이 다소 지체되었을 뿐이지."


"아, 그러셔? 그러면 이건 어떨까. 스칼렛 블레이즈가 처음 발견된 장소가 교외의 농장이라는데, 우리 형제들 중에서 유일하게 농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마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크리스는 승기를 감지한 듯 미소를 지었다.


"나도 조사를 해 봤어, 마벨. 너만 사람을 쓰는 게 아니야, 사람은 나도 많다고. 기근을 일으킨 범인을 잡아내는 게 그렇게 중요하다면서, 기근의 시작지점이 네 농장 부근이라는 걸 공표하지 않은 이유가 뭐지? 뭘 그렇게 숨기고 싶은 거냐?"


"크리스, 난 재무국에 불을 지르고, 소방 행위를 방해한 죄인을 잡으러 온 것이지, 너와 입씨름이나 하자고 온 게 아니다. 네가 적절하게 처신하지 않는다면, 나는 이 많은 시민들 앞에서, 법이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평등은 무슨. 개소리 작작 하라고."


마벨이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오키드 기사단이 일제히 무기를 뽑았다.


"크리스 에스테르지와 방화 용의자들을 모조리 체포해라."


"그래··· 이렇게 나오셔야지."


크리스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레이븐 기사단도 무기를 뽑았다. 진형을 갖춘 그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날개를 편 한 마리의 까마귀 같았다.


"그놈의 법이 얼마나 평등한지 보여달라고."


두 기사단이 거칠게 맞붙었다. 구경꾼들은 메뚜기 떼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뒈져라, 까마귀 새끼들아!"


"이 위선자 놈들! 죽어!"


고성 앞 광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기합과 비명, 그리고 온갖 각성 능력이 난무했다. 이번에는 주군의 지시를 받아서인지 무기의 사용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그 와중에 광장에 세워진 아버지의 동상은 잘못 휘둘러진 공격에 박살이 나서 바닥을 나뒹굴었다.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었다.


고성의 불길은 아직도 완벽히 잡히지 않았다. 나는 어디까지나 응급처치만 해뒀을 뿐이라, 피해자들의 회복이 시급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피해 상황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직 눈앞의 상대에게 증오심을 불태우기만 할 뿐.


그때였다.


"공작 각하께서 오셨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가, 극단으로 치닫던 국면에 찬물을 끼얹었다.


"······뭐?"


크리스와 마벨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성 로칸드 축일은 나흘이 남았을 텐데?"


그 순간이었다. 웅장한 나팔 소리가 사면의 성벽에서 울려 퍼졌다.


"아, 아버지는 어디 와계시냐?"


마벨이 물었다. 나는 그가 저렇게 당황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이미 성문 안에 들어와 계십니다!"


멀찍이서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수천 기의 기마가 땅을 울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레이븐과 오키드는 이 순간 사열을 위해 정렬해야 할지, 그들의 주군을 보위해야 할지조차 결정하지 못했다.


모두가 황망해하는 가운데, 회색 마갑을 빈틈없이 두르고, 철벽 같은 갑옷을 걸친 기사들이 등장했다.


아버지의 근위기사이자 공작령 최강의 기사단인 스틸 가드였다. 레이븐도, 오키드도, 스틸 가드와는 감히 눈조차 마주치지 못했다. 그들이 성시에서 이권다툼이나 벌일 때, 저들은 제국의 최북단에서 마족을 쳐죽이고 다녔다. 그야말로 지옥의 불길로 단련된 전사들이었다.


스틸 가드가 광장에 도열을 마치자, 다른 기사들보다 체격이 남다른 남자가 말을 몰아 나왔다. 나는 그를 보는 순간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나의 아버지, 드렉 에스테르지 공작.


마치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실제로 아버지가 말을 몰아 광장 중앙으로 나서는 동안, 감히 그 누구도 숨을 편하게 내쉬지 못했다.


그가 고삐를 당겨 말을 멈췄다. 그의 시선은 검은 연기가 치솟는 고성에 닿았다.


"탈론."


"예, 전하."


"재무국의 화재를 진압하고, 피해자를 구출하라."


"명 받듭니다."


장신의 호위무관이 근위기사 일부를 거느려 떠났다.


아버지의 시선은 이제 광장의 난장판으로 향했다. 그의 눈길이 목이 잘린 채 쓰러진 동상에 멈추었다.


"아, 아버지···."


"제가 전부 설명드리겠습니다."


마벨과 크리스는 어린애처럼 어쩔 줄 몰라하는 모양새였다. 아버지는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셨다. 대신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차가운 어조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집무실로 따라와라, 당장."


작가의말

피드백을 많이 주셔서, 제목을 '공작가 막내 도련님이 신선해요!'로 바꾸고자 하는데, 어떠신가요?

아이디어를 주신 독자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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