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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까스 한입 하실래예

공작가 막내도련님이 도술로 다 씹어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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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이기준
작품등록일 :
2024.05.21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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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9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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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3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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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과일 서리 작전 (2)

DUMMY

나는 벽을 박차고 단번에 지붕 위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나는 몸길이 육십 센티미터 정도의 커다란 도마뱀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확신할 수 없었다. 녀석이 내게 달려와 몸을 부비적대고,


"삐이이익 - "


익숙한 소리로 울고 나서야 깨달았다. 도시락의 몸집이 간밤에 두 배로 커져버렸다는 걸.


나는 정원을 샅샅이 뒤져서 부정할 수 없는 증거를 찾아냈다. 도마뱀 모양의 하얗고 반투명한 껍질이 발화석 위에서 익어가는 중이었는데, 도시락이 탈피하고 남긴 흔적이었다.


무려 석 장이나.


나이테처럼 슬금슬금 자라던 녀석이 갑자기 급격히 커진 이유는 화염 거인의 내단을 꿀꺽한 것 때문일 것이다.


밥을 더 먹은 것도 아니고, 성장을 촉진할 만한 다른 변수가 끼어들었던 것도 아니니까.


그러나 어떻게 녀석이 결계를 무시하고 정원을 멋대로 빠져나올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정원에 붙여둔 부적들은 화염 거인과 싸울 때 썼던 부적보다 훨씬 강력하고, 숫자도 많다. 이 엄청난 힘을 깔끔하게 무시할 수 있다는 건······.


각성 능력.


이거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이게 아니라면 부적술이 허술했다는 말이 되는데, 그럴 가능성은 결단코 없으니까.


그날 이후 도시락은 어디를 가든 내게 꼭 붙어다녔다. 녀석은 내가 자기 먹으라고 내단을 챙겨왔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상황이 이쯤 되니 이상한 죄책감이 들더라고.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이라지만, 날 이토록 잘 따르는 녀석을 잡아먹을 궁리만 하는 게 맞나?


몸에 좋다고 하면 뭐든 입에 쑤셔넣고 본다던, 스승님이 말씀하신 이기적인 도사들과 난 뭐가 다를까 하는.


물론 암만 내가 죽을 병에 걸린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세상에 드래곤이 이놈 한 마리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 이야기책을 읽으면 널리고 널린 게 사악한 드래곤이던데, 굳이 나 좋다는 놈을 잡아다 심장을 빼먹겠다는 건 좀 야만적이지 않나 싶다.


그렇게 생각하니 녀석을 '도시락'이라고 부르는 게 조금 껄끄러워졌다.


"도시락의 이름을 바꾸시겠다고요?"


내 이야기를 들은 릴리는 손뼉을 치며 반색했다.


"정말 잘 생각하셨어요! 다들 그 이름으로 부르기 민망해했거든요."


반응을 보아하니, 도시락을 먹거리로만 대했던 건 궁에서 나 한 명 뿐이었던 것 같다.


"이 녀석한테 어울릴 만한 좋은 이름이 있어?"


"'루비'는 어떠신가요?"


"루비?"


어감은 마음에 든다.


"네, 눈이 루비처럼 붉어서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녀석한테 들인 돈이 한두 푼도 아니니까.


"좋아."


나는 어깨에 앉은 도마뱀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넌 이제부터 루비다."


"삐이익--!"


루비가 마음에 든다는 듯이 소리높여 울었다.



**



루비는 더 이상 결계 안에 머무르지 않았다. 내 곁에서 잠을 청하는가하면, 궁 안의 시원한 그늘을 찾아 아무렇게나 누워있곤 했다.


덕분에 좋은 일도 생겼다.


정원을 뜨겁게 유지하기 위해 연간 60만 바트라는 거액의 돈을 퍼붓고 있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사라졌다는 점.


나쁜 점도 있었다. 녀석이 화염 거인의 내단에 맛을 들린 모양인지, 평소 먹던 밥에 입도 대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궁의 모든 인원이 팔을 걷어붙였다. 루비가 먹을 수 있을만한 것을 알아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루비, 네가 좋아하는 고기 반찬이란다. 와서 먹으려무나."


조리장은 자신이 아는 모든 레시피를 한 차례씩 시도했으나, 모두 처참한 실패로 돌아갔다.


"스타라이트 한 잎 어떠니?"


정원 관리인은 아끼던 허브 이파리를 내밀었다. 그가 평소 나무와 풀들을 얼마나 아끼는지를 고려한다면 놀랄만한 제안이었다.


그러나 루비는 혓바닥만 날름거릴 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배가 덜 고파서 그렇습니다. 이럴 때는 운동을 시켜서 땀을 쫙 빼주면 됩니다."


비텐은 루비에게 목줄을 채우고 궁 주변을 산책했다. 그는 날이 저물 때까지 쉬지 않고 산책로를 달렸으나, 루비는 조금도 지치지 않았고, 본인만 나가 떨어지고 말았다.


"자, 밥이다."


모든 이가 답을 몰라 끙끙댈 때, 탈리아가 당당하게 등장했다.


"먹어."


그녀가 가져온 것은 길드와 공급계약을 맺은 5등급 마력의 원천이다.


탁월한 판단이었다. 루비는 영물이다. 마력만으로도 얼마든지 성장에 필요한 양분을 구할 수 있다는 거지. 그러니까 내단을 먹고 몸집이 커진 게 아니겠어.


가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루비의 입이 점점 벌어졌다.


그리고······.


"삐이익--! 삐익-!"


녀석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마력의 원천을 밀어냈다.


"당황스럽군요. 이것 말고는 먹을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더 높은 등급의 마력의 원천을 가져와야 하나?


모두가 당혹스러워하는 와중에 릴리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기다란 과일을 하나 가져와 루비의 입에 가까이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루비가 과일을 덥썩 깨물어 야금야금 먹기 시작한 것이다.


"죄송해요."


그녀가 변명하듯이 말했다.


"도련님 드리려고 아껴둔 과일이라서, 가급적 다른 걸 먹이고 싶었거든요."


"그게 뭔데?"


"마벨 님께서 보내주신 스파클링베이에요. 시장에서 사온 스파클링베이는 안 먹고, 오로지 마벨 님께서 보내주신 것만 좋아하더라고요."


우리는 즉시 검증에 들어갔다. 형님이 선물로 보내온 스파클링베이와, 시장에서 사온 평범한 스파클링베이를 가져왔다.


릴리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의 손에는 시장에서 사 온 평범한 스파클링베이가 들려 있었는데, 루비는 그쪽 방향으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차이일까요? 제 눈에는 다 똑같은 과일인 걸요."


릴리가 알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마벨 공자님의 과일이 크기가 좀 더 큽니다."


"윤기가 잘잘 흐르고, 색깔도 좋네요."


탈리아와 비텐이 번갈아 말했다.


나는 형님이 보내온 스파클링베이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형님의 과일은 크기나 빛깔이 남다르기도 하지만, 표면에 희미한 기가 코팅되어 있다는 점이 달랐다.


어디서 이런 차이가 발생한 걸까?


내가 아는 것이라면 형님의 과일은 각성 능력으로 생장이 촉진되었다는 점뿐이다.


각성 능력으로 키운 작물이라 남다른 면모가 있다는 건가? 그래서 영물인 루비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까?


"형님은 지금 어디 계시지?"


"공작 각하를 대신해 공작저에서 영주 대리직을 수행중이십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외출복을 걸쳐 입었다.


"공작저로 가야겠다. 마차를 준비해다오."



**



나는 형님을 만나기 위해 공작저를 방문했다. 가벼운 목적의 방문이기 때문에 따로 수행원을 거느리진 않았다.


"이덴 에스테르지 공자 전하이십니다."


나는 공작저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의 집무실로 안내되었다. 형님은 아버지의 의자에 앉아, 아버지의 이름을 새긴 도장을 찍는 중이었다.


큰형님은 올해 열아홉 살을 맞이한 준수하고 성실한 청년이었다. 무술 훈련과 밭일로 다져진 건장한 몸, 귀족과 평민들에게 두루두루 인정받는 품성.


"이덴이냐."


형님이 활짝 웃었다.


"널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도와 줄 일이라도 생긴 거니?"


"네, 정확하시네요."


"맞춰보마. 최근에 기사단을 창설했다고 들었는데, 네 사람들을 키워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그것도 고민이 많긴 하죠. 돈을 버는 것부터 훈련 코스를 짜는 것까지, 무엇 하나 저절로 되는 게 없더군요."


"난 열다섯에 개인 기사단을 만들었다. 나도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넌 항상 날 앞서가는구나."


마벨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조언을 하나 주자면 너무 조급해하지 않는 게 좋다. 네가 크리스와 여러가지 문제를 겪고 있다는 건 알지만, 급한 마음으로 일을 추진하다보면 나오지 않던 실수가 나오기 마련이다."


"네, 잘 해야겠죠."


"그래··· 내게 잔소리나 듣자고 온 건 아닐 테고, 우리 막내에게 무슨 용무가 있는 걸까?"


"얼마 전에 보내주셨던 스파클링베이 말입니다. 혹시 몇 개 더 보내주실 수 있을까 해서요."


마벨이 흐뭇하다는 듯이 웃었다.


"어지간히 마음에 든 모양이로군?"


"실은 저희집 도마뱀이 밥을 안 먹고 그것만 먹거든요."


"도마뱀이라면 혹시 네 정원에서 키우는 그 몬스터 말이냐?"


"네. 루비라고 합니다."


"흐음."


별안간 마벨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항상 사람 좋게 웃던 그인지라 약간의 변화도 크게 느껴졌다.


"미안하지만 스파클링베이는 네게 보내준 게 올해 수확량의 마지막이었다."


"그럼 혹시 다른 과일은 있나요?"


"없다. 여유가 있다면 기꺼이 나눠줬겠지만, 남은 게 단 하나도 없으니 그러지 못하겠구나. 미안하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하필이면 그 몇 개 안 되는 과일이 올해의 마지막 수확이라니.


없다는 걸 달라고 우길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나는 그쯤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궁으로 돌아온 나는 릴리에게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었다.


"이상하네요."


"뭐가?"


"마벨 공자님은 공작령에서 가장 넓은 농장을 가지고 계신 걸요. 여러 백작령에 경계가 걸쳐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고 알아요."


"형님은 나눠줄 과일이 전혀 없으시다는데?"


"그럴 리가요. 매년 남는 과일을 처분하기 위해 상회도 거느리고 계신 분이시고, 스파클링베이는 이제 막 수확철인 걸요."


듣고 보니 더 이상했다. 내가 아는 마벨 형님은 동생이 밉다고 해서 과일 몇 개를 아낄만큼 치졸한 사람은 아니었다.


정확히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형님이 내게 중요한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어찌됐건 내겐 루비의 밥이 급했다. 화염 거인의 내단을 삼킨 덕인지 아직은 기운이 팔팔하지만, 곧 먹을 게 떨어지면 무슨 난동을 부릴지 모를 일이다.


"마벨 님의 농장에 가서 과일 몇 개를 따오면 어떻습니까?"


비텐이 물었다.


"그거 도둑질이잖아."


"농장이 그렇게 크다는데, 과일 좀 따간 게 대수겠습니까?"


"아니, 그래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몇 푼 안 하는 거 아닙니까? 어차피 새들이 과일을 쪼아먹는다거나, 짐승이 몰래 들어오는 일도 많을 텐데, 도마뱀 먹이 몇 개 가져갔다고 농사가 망하겠습니까? 게다가 마벨 공자님이 인품 좋기로 유명하시잖아요? 사정을 알면 충분히 이해를 해주실 것 같은데요."


나는 몇 분에 걸친 비텐의 설득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래, 구경을 가보는 정도는 나쁘지 않겠지."


루비가 좋아하는 과일이 더 있을지도 모르고, 각성 능력자가 짓는 농사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루비!"


손가락을 튕기자, 루비가 두두두 달려와 어깨 위로 잽싸게 올라갔다.


"가자, 아이쇼핑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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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과일 서리 작전 (4) +3 24.06.25 2,269 78 14쪽
31 과일 서리 작전 (3) +7 24.06.24 2,333 81 12쪽
» 과일 서리 작전 (2) +5 24.06.23 2,472 78 11쪽
29 과일 서리 작전 (1) +5 24.06.21 2,590 93 13쪽
28 화염 거인 (3) +15 24.06.20 2,650 101 12쪽
27 화염 거인 (2) +6 24.06.19 2,646 82 12쪽
26 화염 거인 (1) +6 24.06.18 2,732 93 13쪽
25 해프닝 (0) +4 24.06.17 2,773 87 13쪽
24 창단 (4) +4 24.06.16 2,905 8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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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창단 (2) +3 24.06.13 3,137 87 11쪽
21 창단 (1) +4 24.06.12 3,423 107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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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수상한 애완동물 (2) +6 24.06.09 3,826 106 15쪽
18 수상한 애완동물 (1) +5 24.06.08 3,894 122 13쪽
17 경매 (0) +6 24.06.07 3,866 105 15쪽
16 용돈벌이 (3) +3 24.06.06 3,920 120 13쪽
15 용돈벌이 (2) +3 24.06.05 4,042 110 14쪽
14 용돈벌이 (1) +1 24.06.04 4,224 106 11쪽
13 가정 교습 (3) +3 24.06.03 4,464 128 10쪽
12 가정 교습 (2) +6 24.06.02 4,490 137 10쪽
11 가정 교습 (1) +3 24.06.01 4,651 13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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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불과 얼음의 노래 (1) +4 24.05.29 5,082 14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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