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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까스 한입 하실래예

도술 쓰는 공작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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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이기준
작품등록일 :
2024.05.21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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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0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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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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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창단 (1)

DUMMY

나는 뒷짐을 진 채 이글거리는 정원을 내려다보았다. 벌겋게 달아오른 발화석 사이를 약 삼십 센티미터 남짓한 도마뱀이 뛰어다니는 중이었다.


지난 오 년간 도시락은 두 배 가량 성장했다. 두 배라고 하면 대단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실제로는 손바닥 만한 녀석이 팔뚝만해진 것에 불과했다.


"여기 계셨습니까."


루시안이 멀찍이서 소맷자락을 휘적이며 다가왔다. 그는 내 곁에 나란히 서더니, 도시락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바라보며 한 마디 했다.


"조금씩 자라고는 있군요."


"'조금씩' 자란다는 게 문제지. 이 속도라면 천 년은 지나야 드래곤이 되는 꼴을 보겠다."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게 중요합니다. 뭐든 사랑이 있어야 빨리 자라는 법이죠."


"키워서 심장을 빼먹을 궁리만 하는 중인데 그게 가능하겠냐."


도마뱀이 슬금슬금 내 쪽으로 다가왔다. 녀석은 나와 루시안의 사이에 쏙 끼어들어 머리를 부비적거렸다.


루시안이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충분히 가능해 보입니다만."


"밥 달라는 거야. 밥 주는 사람은 알아보거든."


나는 잘게 자른 고기를 녀석에게 한 점씩 먹여주었다. 녀석은 주면 주는대로 먹성 좋게 받아먹는데, 먹은 게 다 어디로 가는지는 의문이었다.


나는 도시락을 배불리 먹인 뒤, 루시안과 함께 산책로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상업지구에서 까마귀가 행패를 부리더군."


"레븐셰이드 말씀이로군요."


"그래. 슬슬 방법을 강구해야겠어."


지난 오 년간 루시안의 사업은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다. 그는 지저분한 일에는 손을 대지 않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철저하게 지켰다.


덕분에 그레이 상회는 '깨끗한' 사업의 30퍼센트 이상을 장악할 수 있었지만, 대신 오랫동안 기반을 닦아온 음지 사업 전부를 크리스에게 내주었고, 크리스는 레븐셰이드란 상회를 간판으로 내세워 이제는 양지까지 넘보는 중이었다.


"용병 몇 놈을 손봐줬다고 해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건 아실 겁니다. 놈들의 뒤에는 레이븐 기사단이 버티고 있으니까요. 저도 나름대로 용병들을 굴리는 중입니다만, 용병을 아무리 모아봤자 기사의 상대는 되지 못합니다."


기사들은 어릴 때부터 각성 능력을 발현하여, 값비싼 마력의 원천을 먹으며 무술을 갈고 닦았다. 어중이떠중이들이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역시 우리도 기사가 있어야겠지?"


"예, 더는 미룰 수 없습니다."


5년 동안 기사단 창설이 미뤄진 이유는 순전히 도시락 때문이었다. 연간 60만 바트가 녀석의 난방비로 들어가는 상황이라 다른 곳에 눈을 돌릴 형편이 못 됐다.


그러나 루시안의 사업이 일취월장한 덕분에, 이제는 난방비를 제하고도 여윳돈이 연 200만 바트에 달했다. 지금이야말로 미뤄온 숙원사업을 추진해볼 적기였다.


"기사단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건 두 가지입니다. 우수한 각성 능력자, 그리고 마력의 원천이죠. 마력의 원천이야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구하겠습니다만, 우수한 각성 능력자를 구하는 건 전적으로 이덴 님 하시기 나름입니다."


두 형님을 거르고 날 선택할 이유를 만들어주란 소리다.


형님들은 나보다 몇 년 일찍 태어나, 일찌감치 귀족과 각성 능력자들을 장악했다. 후발주자의 입장에서 판세를 뒤집으려면 강력한 한 방이 필요했다.


"맡겨 둬. 생각해둔 게 있으니."


"복안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아주 유명한 사람을 영입할 거라고만 알아두면 돼."


"아주 유명한 사람이라······궁금하군요. 도대체 어느 정도의 유명세이기에 이덴 님의 물망에 든 것인지요."


"보면 알아."


나는 빙긋 웃었다.



**



기사단 창설을 위한 본격적인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나는 궁의 안 쓰는 회의실에 임시로 본부를 만들고,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두 호위기사를 불러들였다.


"비텐, 탈리아."


"예."


"예, 주군."


"알다시피 나는 실무를 맡아본 적이 없으니, 너희가 기사단의 간부가 되어 줘야······비텐, 너 수염 어디갔냐?"


비텐의 트레이드마크인 붉은 수염이 싹 밀려있었다. 멀끔하게 턱을 드러낸 모습이 보기 좋았지만, 안 그러던 녀석이 갑자기 턱을 까고 나타나니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제 수염은 어디로 갔을까요?"


비텐이 음울한 어조로 물었다.


"면도 사유는 연인의 취향이라고 합니다."


탈리아가 비텐을 대신해 대답했다.


"아, 얼마 전에 소개를 받았다던?"


최근에 비텐이 아리따운 아가씨와 붙어 다니는 모습을 언뜻 본 것 같기도 했다.


"그래··· 사랑하는 사람이 원한다면 수염 정도는 밀 수 있지."


그러고 보니 수염만 정리한 게 아니었다. 사자갈기 같던 붉은 머리칼도 뒤로 돌려 묶어서, 용모가 훨씬 단정해졌다.


"어제 차였습니다."


"응?"


나는 정말로 당황해버렸다.


"왜 차였는데?"


"턱이 못생겼다는군요."


나는 입을 벌리고 비텐을 쳐다보았다. 비텐은 내 앞만 아니었더라면 굴을 파서 지저세계로 내려가버릴 듯한 분위기였다.


"원한다면 휴가를 줄 수도 있어, 비텐."


"괜찮습니다."


비텐이 시무룩하게 말했다.


"일로 사람을 잊겠습니다. 저를 마음껏 굴려주십쇼."


"진짜 괜찮겠어?"


"괜찮지 않을 것 같습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비텐은 오히려 의욕을 냈다. 나는 그의 의사를 존중하기로 했다.


"그럼 본론으로 돌아가지. 너희 두 사람이 새로 창설될 기사단의 간부 자리를 맡아줬으면 하는데, 기사단장은 이미 적임자가 있어. 그러니 너희들은 부단장과 1조장 자리를 나눠 가져야겠다만······."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훑어보았다.


"둘 중 누가 더 강하냐?"


모험가의 전설이라는 '붉은 늑대' 비텐과, 레스터 시 최후의 생존자인 탈리아.


그들은 아버지의 근위기사단에서 가려 뽑은 인재다. 둘 모두 공작령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대단한 재능의 소유자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태껏 그들이 싸우는 모습은커녕 대련을 하는 것조차 본 적이 없다.


"접니다."


"제가 이깁니다."


두 사람의 입에서 대답이 동시에 나왔다.


"누가 이긴다고?"


그들은 서로를 스윽 쳐다보더니, 이번에도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당연히 저 아니겠습니까?"


"접니다."


"야, 탈리아. 왜 네가 날 이긴다고 생각하냐? 내가 너 목검 쥐는 법 가르쳤던 거 기억 안 나냐?"


"그건 십오 년 전의 일입니다, 선배."


"시끄러, 십오 년이 지나도 선배는 선배야. 한 번 선배는 영원한 선배라는 말도 몰라?"


"물론 경께서는 영원한 제 선배이십니다. 실력은 제가 더 뛰어나지만."


두 사람의 사이에서 불꽃이 튀었다. 평소 같으면 비텐이 한 수 접어주고, 탈리아는 적당한 선에서 훈수를 두는 모양새가 만들어졌겠으나, 비텐은 평소의 비텐이 아니었고, 탈리아는 평소의 탈리아 그대로였다.


간부로 누구를 앉히느냐는 건 중요한 문제였다. 단순히 측근들에게 한 자리씩 뿌린다는 접근이어서는 안 됐다.


기존의 각성 능력자를 모조리 형님들이 쓸어간 상황이다. 내 기사단에는 각성 능력을 갓 발현한 어린 친구들이 주로 입단하게 될 텐데, 그들에겐 믿고 따를만한 롤모델이 필요했다.


젊고, 유능하고, 선망의 대상이 될 만한 인물.


단장으로는 그런 인물이 적임이겠지만, 부단장은 기사단의 무력을 담당할 압도적인 강자여야만 했다.


"좋아. 둘이 대련해 봐."


"지금 말입니까?"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지. 정원으로 내려 와. 거긴 더 부술 것도 남아있지 않으니."


나는 두 기사를 데리고 정원으로 향했다.


황량한 정원을 향해 손가락을 튕기자, 멀찍이서 도시락이 도도도 달려와 다리를 타고 어깨 위로 기어 올라갔다.


중요한 소재를 다른 사람에게 뺏기는 일이 없도록, 나는 도시락에게 신호를 보내면 가장 안전한 장소에 숨게끔 훈련을 시켜두었다.


가장 안전한 장소란 물론 나의 품 안이다. 이것이 지난 5년 동안 이룬 가장 빛나는 성취라고나 할까.


"자, 이제 다 때려 부셔도 돼."


나는 대결을 위해 잠시 진법을 해제했다. 두 사람은 열기가 가신 도마뱀 사육장 위에서 서로를 마주 바라보았다.


"포기하는 게 좋을 거다, 후배야. 난 한 번 발동이 걸리면 대충 하는 법이 없거든."


"저는 대충 하겠습니다. 선배께서 다치실 수도 있으니까요."


비텐의 눈에서 불꽃이 파바박 튀었다.


"진짜 마지막 기회다. 험한 꼴 보기 전에 패배를 인정하시지?"


"저야말로 망신을 피할 마지막 기회를 드리죠."


두 사람에게서 엄청난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각성 능력자의 등급은 하급, 중급, 상급, 마스터, 그랜드 마스터의 다섯 단계로 나뉜다.


시장에서 만났던 용병들은 끽해야 하급이었다. 평범한 무인들은 평생 발버둥쳐봤자 하급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오직 재능을 타고난, 선택받은 소수만이 중급 각성 능력자가 될 수 있다. '기사'라고 일컬어지는 자들이 대부분 이 등급에 해당된다.


그리고, 기사 중에서도 특출난 엘리트만이 상급 능력자라 불릴 자격을 갖춘다.


마스터급부터는 그야말로 천외천(天外天)이라 할 수 있는데, 특히 그랜드 마스터급의 각성 능력자는 드넓은 공작령에서 내 아버지인 드렉 공작과 카로이, 단 둘뿐이었다.


투둑··· 투두둑···.


비텐의 온 몸에서 붉은 털이 돋아났다. 가죽 옷이 쭉쭉 찢어지고,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송곳니가 날카롭게 돌출하고, 손톱은 갈고리처럼 길어졌다.


강화계 각성 능력,


'붉은 늑대.'


강화계 능력을 쓰는 모습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변신을 완료한 비텐은 그야말로 한 마리의 짐승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우우우우 - "


비텐이 고개를 높이 쳐들고 하울링을 했다. 샛노란 눈동자에 흉포한 야성이 번득였다. 녀석의 머리엔 이성이라고는 남아있지 않는 듯했다. 어쩌면 대결이 과열되는 양상을 막기 위해 내가 개입해야만 하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몰랐다.


녀석의 등급은 상급의 끝자락.


전설적인 모험가라는 명성에 걸맞은 힘이다.


그리고······.


탈리아가 힘을 개방했다.


순간 나는 귀를 의심했다. 어디선가 무척 볼품없는, 깨갱거리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일단 비텐이 탈리아의 기운에 치여 뒤로 날아가 버린 것만은 확실했다.


탈리아의 장검에서 보라빛 기운이 뭉클뭉클 뿜어져 나왔다. 나는 얼핏 들었던 그녀의 별명을 떠올려냈다.


'불경한 탈리아.'


그녀는 저주계 각성 능력인 '불경한 안개'를 다룬다. 물질의 모든 구성요소를 핏빛 녹물로 만들어버리는 무시무시한 능력이다.


각성 능력의 우열은 모를 일이나, 그녀의 힘이 상급을 넘어 마스터급의 반열에 올라 있음은 분명했다.


"그만, 거기까지!"


나는 비텐의 안위를 위해 대결에 개입했다. 탈리아는 나를 스윽 돌아보더니, 발출한 기운을 서서히 거둬들였다.


비텐은 팔다리를 대자로 뻗은 채 미지근한 도마뱀 사육장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변신은 이미 풀린 채였지만, 그는 좀처럼 일어날 줄을 몰랐다.


"혹시 어떤 데미지를 입혔다거나···."


"저는 아무런 공격도 하지 않았습니다."


탈리아가 잘라 말했다.


나는 비텐에게 가까이 다가가보았다. 그는 옷이 다 찢어져 벌거벗은 모습이었다.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커다란 눈을 황소처럼 끔뻑거리고 있었는데, 눈빛이 아까와 달리 아주 맑았다.


"비텐."


"······이덴 님."


그가 슬픈 어조로 말했다.


"저 그냥 휴가 가겠습니다."


"아니, 가긴 어딜 가. 일로 사람을 잊겠다면서? 탈리아가 부단장을 맡고 너는 1조장을 하면 돼. "


"그러면 10조장, 아니지, 이덴 님께서 떠올릴 수 있는 가장 큰 숫자를 제 직함 앞에 붙여주십시오. 그래야만 납득이 될 거 같습니다."


비텐의 자존감은 이미 지저세계에 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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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불과 얼음의 노래 (1) +1 24.05.29 1,151 3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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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뜨겁고 화끈한 것 (2) +2 24.05.26 1,210 3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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