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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까스 한입 하실래예

공작가 막내도련님이 도술로 다 씹어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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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이기준
작품등록일 :
2024.05.21 21:54
최근연재일 :
2024.06.26 22:31
연재수 :
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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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459
추천수 :
1,296
글자수 :
180,813

작성
24.06.19 22:00
조회
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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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글자
12쪽

화염 거인 (2)

DUMMY

화염 거인이 두 마리면 내단도 두 배인 셈이로군.


"토르발그는 수컷입니다."


스루달이 고개를 숙여 내게 점잖게 조언했다. 나는 이게 뭔 소리인가 싶었다. 지금 내단이 두 배가 되었다는데, 거인의 성별이 뭐가 중요하냐는 거지.


"화염 거인은 암컷이 훨씬 크고 강합니다. 다른 등급의 개체라도 보아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그렇군."


역시 생태학자를 데려오길 잘했네. 이래서 사람··· 오거는 배워야 해.


3등급보다 한 등급이 더 높을 것 같으면 2등급이다. 몬스터의 등급과 각성 능력자의 등급을 기계적으로 매치시킬 수는 없지만, 2등급이면 일반적으로 그랜드 마스터급이 와줘야만 상대가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레벨이다.


"혹시 다른 주의할 것이 있나?"


"체온이 매우 뜨겁고, 완력이 아주 강합니다. 불가피하게 상대를 해야 한다면 육탄전은 가급적 피하시는 게 좋습니다."


오거에게 완력이 강하다는 말을 들으려면 어느 정도여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칼드릭, 네 작전도 말해다오."


"요새로 이동해서 설명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이다."


나는 칼드릭과 함께 요새로 향했다. 병사들은 남작이 오거와 함께 돌아오자 경계를 풀고 창끝을 아래로 내렸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니, 병사들의 눈에 어린 공포가 뚜렷하게 보였다. 그들은 대부분 이십대 언저리의 청년들이었다.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 날이 훨씬 많은 사람들인데, 그들의 삶은 지금 너무나 큰 시련을 맞닥뜨렸다.


나는 칼드릭과 함께 방책 위로 올라갔다. 방책은 좁은 골짜기를 좌우로 틀어막고 있는 형국이었다.


"작전 개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칼드릭이 손을 뻗어 요새의 진입로를 가리켰다.


"보시는 방향으로, 길을 따라 깊이 10미터의 함정이 넓게 파여 있습니다."


함정은 낙엽과 흙으로 잘 위장된 상태였다.


"함정 안에는 연금술로 만든 폭발물이 잔뜩 쌓여 있습니다. 폭발물은 화염 거인의 높은 체온에 반응할 것입니다. 일단 폭발물이 터져서 거인이 피해를 입으면,"


그가 골짜기의 좌우, 가파른 낭떠러지 위를 가리켰다.


"좌우 절벽에서 바위가 떨어집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의 손이 방책 위에 도열한 이십여 명의 사수를 향했다.


"독을 묻힌 화살 세례가 쏟아집니다. 이후에는 거인의 피해 상태를 보고 방책 문을 열고 나갈지 농성을 할지를 결정합니다. 이상입니다."


"화염 거인이 꼭 이 길로 온다는 보장이 있나?"


그가 요새 뒷쪽에 쌓인 장작들을 가리켰다.


"저쪽에 커다란 장작불이 보이실 겁니다. 화염 거인은 불빛과 연기에 이끌리기 때문에, 불을 피워서 유인한다는 계획입니다."


"아직 불을 피워두지 않았는데, 이유는?"


"빌로이 백작님께 지원 요청을 드렸습니다. 백작님께서 보내주실 지원군을 기다리던 중이었습니다."


"정말로 백작이 지원군을 보낼 거라고 생각하나?"


"······."


칼드릭은 한참 망설인 끝에 대답했다.


"···어렵다고 보입니다. 백작님께는 더 큰 고충이 많으시니까요."


그게 맞을 것이다. 빌로이 백작은 최근에 에스테르지 성시에 있는 별장을 내게 매각했다.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몰라도, 자금 사정이 원활해 보이진 않았다.


"좋아. 불을 피워 봐."


그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일단 생긴 건 봐야지."


칼드릭의 얼굴에 만감이 교차했다. 그는 이를 악물더니, 내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드립니다, 이덴 공자 전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그간 그가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칼드릭은 허리를 펴고는 병사들의 앞으로 걸어나갔다. 목청을 한 차례 가다듬더니, 날 가리키며 힘차게 외쳤다.


"모두 잘 듣거라, 이 분은 드렉 공작 각하의 셋째 아드님이신 이덴 에스테르지 공자 전하이시다!"


그는 병사들이 놀랄 틈도 주지 않고, 웅변적인 어조를 이어나갔다.


"이덴 에스테르지 공자 전하께서, 우리 영지를 괴롭혀 온 화염 거인을 무찌르기 위해, 강력한 지원군을 이끌고 오셨다!"


"우린 살았어···!"


"솔리타스께 가호 있으라!"


병사들이 감격에 부르짖었다. 칼드릭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렇다, 솔리타스께서 우리를 저버리지 않으셨다! 화염 거인은 이덴 공자 전하의 막강한 힘 앞에 쓰러질 것이다!"


그가 두 주먹을 불끈 쥐자,


"우와아아아!"


병사들이 용기백배했다.


칼드릭이 병사들의 용기를 북돋아주는 이유는, 정말로 용기가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들이라고 바보는 아니다. 방진을 잘 짜고 창을 높이 들면 거인이 옳다구나 하고 죽어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은 승산 없는 싸움을 맞이했다. 예정된 참사가 벌어지고 나면, 세상 누구도 오늘 이 자리에 의기로운 백여 명의 청년이 있다는 걸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이 비슷한 일이 얼마나 자주 벌어질까? 사실 공작령의 영민들은 대부분 이런 개차반 같은 환경에 노출되어있는 게 아닐까?


"장작에 불을 붙여라, 지금부터 화염 거인을 유인하겠다!"


병사들이 기름 먹인 횃불을 쌓인 장작 위로 던졌다. 곧 거대한 불길이 일어나, 시커먼 연기를 요새 위로 뭉게뭉게 피어 올렸다.


"불을 피운다고 곧장 화염 거인이 나타나지는 않을 겁니다."


스루달이 말했다.


"인식하는 데에 시간이 걸리고, 이동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립니다. 인식을 하더라도 당장 먹이를 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병사들을 미리 잘 먹여둬야겠군."


칼드릭이 스루달을 올려다보더니, 정중하게 물었다.


"귀공은 성함이 어찌 되십니까?"


"스루달이라고 합니다."


"스루달 경, 경의 식성··· 선호하는 음식에 대해 가르쳐주실 수 있겠습니까?"


"구운 고기면 뭐든지 가리지 않습니다. 아, 고기 위에 블루민트를 잔뜩 뿌려주시면 더 좋습니다."


묘한 장면이었다.


남작이 오거에게 식성을 묻는 것도 웃기고,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기사에게 존칭을 쓰는 것도 흥미롭다.


아마 나의 호위기사라는 특수한 지위가 반영이 된 것이겠지.


곧 남작의 지시로 부대 전체에 음식이 푸짐하게 지급되었다. 나는 남작과 함께 요새와 동떨어진 가건물에서 따로 식사를 했다.


"변변찮은 음식이 없어서 송구스럽습니다."


"뭘, 이 정도면 잔칫상이지."


농담이 아니다. 나는 일 년 내내 나물만 뜯어먹고도 살 수 있다. 남작이 내온 음식은 사냥으로 조달한 짐승을 불로 익히고 조미를 한 것인데, 이만하면 더 바랄 게 없지.


칼드릭은 잠시도 쉬지 않았다. 그는 식사를 마치자 요새를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병사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면서 독려를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는 창을 쥔 병사들의 자세를 교정해주기도 했는데, 워낙 작은 영지인 탓에 영주와 검술 교관의 경계마저 희미한 듯했다.


배울 점이 많은 사람 같다. 나도 이제 나만의 기사단을 이끌어야 하는 입장이 되었으니.


잠깐 사이 사방이 제법 어두워졌다. 산기슭이라 해가 지는 속도가 평지보다 훨씬 빨랐다. 이대로 날이 저무나 싶을 때, 절벽 위에 배치해둔 초병이 절박하게 외쳤다.


"옵니다! 전방! 초대형 개체 두 마리가 접근중입니다!"


반대쪽 절벽에서도 깃발이 올라왔다.


"몬스터입니다! 화염 거인으로 추정됩니다!"


요새는 쑤셔진 벌집처럼 움직였다. 병사들이 벌떼처럼 튀어나와 정해진 위치로 이동했다. 스루달은 대기중인 돌격대에 합류했고, 나는 방책 위로 올라가 칼드릭을 만났다.


"···놈들입니다."


칼드릭이 초조한 투로 말했다.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무언가 엄청난 게 접근해오는 중이었다.


산새들이 푸드덕거리며 날아 오르고, 땅은 위아래로 요동을 쳤다. 우지끈거리는 소리, 나무둥치가 꺾이고 짓밟히는 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뚜렷하게 들려왔다.


단지 달리는 것만으로도 숲의 일각을 무너뜨릴 정도의 괴물.


3등급 몬스터, 화염 거인이다.


"왔습니다!"


초병의 보고는 숫제 비명처럼 들렸다.


골짜기의 사이로, 붉은 털에 휘감긴 거인이 나타났다. 칼드릭이 말한 대로 거인은 두 마리였다. 둘 다 오거인 스루달보다도 덩치가 더 컸는데, 둘 중 한 마리는 그야말로 초월적인 몸집을 자랑했다.


"···저게 암컷이겠군."


나무로 지어진 요새는 거인의 앞에서 모래성만큼이나 하찮아 보였다. 놈들은 요새 위에 바글거리는 인간들을 발견하더니, 목을 쭉 빼며 오금이 저릴 듯한 포효를 내질렀다.


- 그아아아아아아.


한껏 끌어 올려둔 병사들의 용기가 일순간에 증발해버렸다. 저것은 포식자의 포효였다. 저것 앞에서 인간은 한낱 먹잇감에 지나지 않았다.


"궁수, 조준!"


칼드릭이 목 쉰 소리로 외쳤다. 궁수들이 장력의 한계까지 시위를 잡아당겼다. 거인들은 두 다리를 쭉쭉 뻗으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육박해왔다.


그때, 함정이 발동했다. 거인의 거대한 몸집이 삽시간에 바닥으로 꺼져버렸다. 동시에 벼랑 위에서 바위를 줄달아 굴렸고,


"쏴라!"


수십 발의 화살이 함정 안으로 쇄도했다.


귀가 먹먹한 폭음과 함께, 폭염과 흙더미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자욱한 흙먼지 때문에 함정 안쪽의 상황이 잘 보이지 않았다.


"통했나?"


칼드릭이 희망 섞인 어조로 중얼거렸다.


"···해치웠나?"


병사들의 머릿속에도 같은 희망이 떠오른 모양이다. 저런 파상공세를 당하고도 살아남을 생물이 있겠냐는 거겠지.


안타깝지만 내겐 흙먼지 안의 상황이 뚜렷하게 보였다. 병사들의 공격은 거인의 짜증만 불러일으켰을 뿐이다.


곧, 구덩이 밖으로 기다란 손이 튀어나왔다. 연이어 거대한 동체가, 마치 넝쿨에 호박이 딸려 나오듯이 함정을 쑤욱 빠져나왔다.


"쏴, 마구 쏴라!"


칼드릭이 다급하게 외쳤다. 화염 거인이 또다시 포효를 내지르자, 화살은 폭풍 같은 음파에 휩쓸려 가랑잎처럼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마, 말도 안 돼······."


병사들의 얼굴에 공포가 선연해졌다. 압도적인 힘 앞에서 정신력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분명해지는 순간이었다.


쿵, 쿵.


이제 거인과 성벽간의 거리는 지척이었다.


"맡은 자리를 지켜라! 충격에 대비하라!"


칼드릭이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나는 그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예?"


칼드릭이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날 홱 돌아보았다. 그를 보고 난 한 가지를 깨달았다.


지금까지 내가 만나 본 가장 용기있는 남자가, 오로지 기댈 곳이 신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어떤 표정을 짓는지.


"여기부턴 내게 맡겨라."


"예? 하지만···!"


나는 고개를 돌리며 외쳤다.


"스루달!"


"예, 주군!"


성문 앞에서 대기중이던 스루달이 기운차게 대답했다.


"넌 수컷을 맡아라!"


"아닙니다, 제가 암컷을 맡겠습니다!"


"내가 암컷, 네가 수컷이다. 명령이니까 그렇게 알아!"


유망한 조장 후보를 이런 전투에서 잃고 싶지 않았다. 나는 스루달의 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이제는 투닥거릴 시간조차 없었다.


"공자 전하!"


나는 목책을 박차며 힘차게 도약했다. 기겁한 칼드릭이 뒤통수에다 대고 외쳤다. 나는 잠깐 동안 허공을 새처럼 유영하여, 암컷 화염 거인과 같은 높이에서 눈을 마주쳤다.


석탄처럼 이글거리는 두 눈.


시야를 가득 채우는 터무니없는 사이즈.


전설상으로나 전해질, 진짜 영물과의 싸움이다.


거인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놈은 오로지 눈앞의 먹을 것에만 정신이 팔린 상태였다.


나는 지고의 경지라는 허공답보(虛空踏步)로 공중을 평지처럼 달려가, 부적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쏴아아아아아.


부적이 좁은 골짜기에 북해의 설풍을 토해냈다. 난데없는 동장군에 사방천지가 새하얗게 얼어붙었다. 거인이 주춤하는 사이, 뾰족한 얼음 기둥이 쏜살같이 날아가 놈의 턱주가리를 돌려놓았다.


거인의 고개가 기우뚱거리더니, 천천히 돌아가 내게로 고정되었다. 석탄 같은 눈에 새빨간 핏발이 가득했다.


"와라."


나는 손을 까딱여 놈을 도발했다.


"도시락 2호 자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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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수상한 애완동물 (2) +3 24.06.09 1,398 40 15쪽
18 수상한 애완동물 (1) +5 24.06.08 1,423 38 13쪽
17 경매 (0) +4 24.06.07 1,383 38 15쪽
16 용돈벌이 (3) +3 24.06.06 1,409 42 13쪽
15 용돈벌이 (2) +2 24.06.05 1,457 38 14쪽
14 용돈벌이 (1) +1 24.06.04 1,535 40 11쪽
13 가정 교습 (3) +2 24.06.03 1,604 45 10쪽
12 가정 교습 (2) +3 24.06.02 1,609 48 10쪽
11 가정 교습 (1) +1 24.06.01 1,674 44 10쪽
10 불과 얼음의 노래 (3) +1 24.05.31 1,743 46 11쪽
9 불과 얼음의 노래 (2) +2 24.05.30 1,746 48 12쪽
8 불과 얼음의 노래 (1) +1 24.05.29 1,794 5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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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뜨겁고 화끈한 것 (2) +2 24.05.26 1,857 5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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