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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까스 한입 하실래예

공작가 막내도련님이 도술로 다 씹어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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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이기준
작품등록일 :
2024.05.21 21:54
최근연재일 :
2024.07.01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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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6.27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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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세무조사 (1)

DUMMY

다프네가 다시 날 찾아올 줄 몰랐다. 나는 사실 그녀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 하이클리프는 제국의 중앙에 기반을 둔 명문가라서, 가문의 사람과 면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아는 건 두 가지뿐이다. 그녀가 선한 사람이라는 것과, 마벨의 음모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 정도.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시종이 다프네의 방문을 알렸다. 나는 일어나서 그녀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죄송해요. 기별도 없이 찾아뵈어서."


"아닙니다. 제가 먼저 초대해 드렸어야 하는데요."


다프네가 다정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마벨과 달리 표정을 숨기는 재주가 없었다.


릴리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을 두 잔 가져왔다. 연금술의 부산물로 만든, 그녀가 자랑하는 특제 레시피였다.


다프네는 찻잔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수심이 드리워 있었다.


"마벨 님은 좋은 분이세요."


그녀가 말했다.


"모든 분께 항상 친절하시고, 언제나 일에 열심이시죠. 제게는 과분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이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설마 연애 문제로 상담을 하러 온 거라면, 내가 그런 문제에 전혀 도움이 안 될 거라고 말을 해주고 싶다. 도사란 하늘의 이치를 공부하는 사람이지, 사람의 이치에 대해서는 젬병이니까.


"대단하신 분이죠. 본받을 점이 많다고 봅니다."


"그런데··· 너무 완벽하신 나머지, 가끔은 다가가기 어렵다는 느낌을 받기도 해요. 그 분이 뭘 좋아하시는지,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저는 더 알고 싶지만, 같은 공간에 있어도 좀처럼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거든요."


마벨의 생각을 알아서 득 될 건 없다고 장담한다.


다프네의 처지에는 동정이 간다. 머나먼 타향에 시집살이를 하러 왔는데, 하필 걸려도 그런 남자한테 걸리고 말았으니.


변방이라고는 하지만 에스테르지 영지의 사교계도 만만치 않다. 굴러온 돌 입장인 그녀는 많은 귀부인들에게 이런저런 견제를 받고 있을 것이다. 이럴 때 곁에서 힘이 되어줘야 할 남편은 바깥을 나돌며 수상한 짓거리나 벌이는 중이고.


"미안해요. 동생한테 할 이야기는 아닌데······."


그녀가 어색하게 웃었다.


"아닙니다. 저도 가능한 한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이건 진심이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결혼 자체를 파투내버리고 싶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근래에 곤란한 일을 겪고 계신데, 혹시 도련님께서 도움을 주실 수 있을까요? 마벨 님은 너무 바쁘셔서, 말을 붙여보기가 힘들거든요."


"어떤 일이죠?"


"집안의 치부와 관련된 일이라··· 자세한 사정은 아버지께 직접 들으시는 게 나으실 거예요."


그녀가 불안한 듯이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절대 부담을 드리려는 건 아니에요. 저희 본가가 수도에 있기도 하고, 아버지께서도 제게 따로 도움을 구하신 적이 없거든요. 혹시 수도에 가실 일이 생긴다면 하이클리프 가에 들르는 걸 고려해주시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나는 수도에 갈 일이 뭐가 있을까 떠올려보았다. 만약 내가 후계자 구도에 들어가있지 않은 쩌리라면 수도의 명문 아카데미에서 학자나 전문가의 길을 걸었을지도 모르지만, 엄연히 나는 계승경쟁 중인 적자다. 수도에 갈 일이 있다면 오로지 관광의 목적일 뿐일 것이다.


"당장은 그럴 일이 없지만, 혹여 수도에 가게 된다면 꼭 댁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해요."


다프네가 한결 안심이 된 듯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참, 마벨 님께서 그레이 상회를 세무조사해야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레이 상회는 제가 알기로 막내 도련님을 돕는 곳일 텐데요, 맞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습니다만, 혹시 왜 세무조사를 하겠다는 건지 들으셨나요?"


"별 일은 아닐 거예요. 상인들을 관리하는 건 영주 대리로서 당연한 공무의 집행이니까요. 그렇지만 그 말씀을 하실 때 마벨 님의 표정이 조금 불편해 보였어요. 아시죠? 평소에 표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분이시라 기분이 평소 같지 않으면 오히려 더 티가 난다는 거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다프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디 두 분의 오해가 잘 풀렸으면 좋겠어요."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우리 형제의 관계 회복을 바랐다. 그래서 사소한 일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 귀띔을 해주러 온 듯한데,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나저나 이 타이밍에 세무조사라니, 치졸하기 짝이 없다. 날 못 건드리니 주변을 치겠다는 건가.


안타깝게도 마벨은 다프네 앞에서는 표정 관리가 안 되는가 보다. 그는 약혼녀의 선의가 자신의 계획을 어떻게 뒤틀어 놓을지 짐작도 못 할 것이다.



**



나는 다프네가 궁을 떠나자마자 그레이 상회로 달려갔다.


상회에는 아직 불벼락이 떨어지지 않은 듯했다. 인부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긴 하지만, 많은 물류가 오가는 곳이라 평소에도 이 정도로 활기가 넘치는 곳이었다.


상회장의 사무실은 여느 귀족의 응접실 못지 않은 호사스러운 장소였다. 루시안은 그 호사를 누리지도 못한 채, 수많은 서류 사이에 파묻혀 있었다.


"갑자기 어쩐 일이십니까?"


그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바쁜가?"


그가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눈을 깜빡이면서, 여유작작한 투로 말했다.


"곧 땅이 회복될 거라고 장담하셔서, 난민을 재정착시키기 위한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고난이 저 같은 장사치에게는 기회가 되는 법이지요."


"좋은 생각이다만, 지금은 잠시 접어 둬. 곧 이곳으로 세무조사가 들어올 예정이거든."


"세무조사라니요?"


루시안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잘못 아셨을 겁니다. 재무관과 저는 점심을 같이하는 막역한 사이입니다만, 세무조사 계획은 들어본 바가 없습니다."


"그 윗선이야."


"재무관의 윗선이라면······."


루시안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설마 마벨 영주 대리 말씀이십니까?"


"정확해. 형님 지시니까 재무관 재량으로는 막지 못해."


"예상했던 대로 나오는군요."


루시안은 유쾌한 미소로 불쾌함을 드러냈다. 말이 되는가 싶은데, 그에게는 그런 재주가 있었다.


"본인을 잡아 넣을 순 없으니 변죽만 울려대는 겁니다. 법을 자기 손에 쥐고 휘두르는 이상 자신이 다칠 일은 없으니까요."


"형님의 최우선 목표는 스칼렛 블레이즈을 찾아내는 거야. 형님 앞에서는 태워버렸다고 말씀드렸지만, 그걸 믿을 만큼 순진한 사람은 아닐 테니."


"회수한 스칼렛 블레이즈는 이덴 님께서 가지고 계시잖습니까."


"그래··· 그러니 그걸로는 널 엮지 못하겠지. 대신 뭐든 흠집을 찾아서 널 잡아넣으려 들 거야. 스칼렛 블레이즈를 회수하지 못할 거면, 내 주변을 쳐내기라도 해야 속이 시원할 테니."


"공권력이 제 휴가를 챙겨주려는 모양이로군요."


···긍정적인 자세는 높이 쳐줘야겠다.


"어때. 그레이 상회의 상태는? 건덕지를 줄만한 게 있나?"


"없습니다."


루시안이 자신있게 말했다.


"이덴 님과의 계약사항이 있으니, 그 점은 안심하셔도 됩니다. 불법도 없고 문제가 될 만한 사업도 전부 정리했습니다."


"세상에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오는 사람 없다는데."


"그런 사람을 지금 보고 계십니다만..."


루시안이 미간을 슬쩍 찌푸렸다.


"······생각해 보니 5년 전의 자료를 꼬투리잡으면 문제가 될 수도 있겠군요. 그때는 제가 부끄러운 일들을 한두 가지 벌렸던 게 아니라서 말입니다."


지금의 모습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5년 전에는 '루시안'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사람들이 질색을 할 정도로 그의 평판은 바닥을 기어다녔다.


그 인성 좋다는 비텐조차 루시안을 걸렀을 정도면 말 다했다.


"설마 5년 전 자료를 아직도 가지고 있진 않겠지."


"왜 아니겠습니까? 상인의 덕목은 철저한 기록이죠. 모두 본부의 기록실에 고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나는 이마에 손을 짚었다.


"그거 당장 치워야 해. 전부."


"항구에 임대해둔 창고가 몇 군데 있습니다. 우선 그곳으로···."


그때였다. 사무실 아래층이 별안간 시끄러워졌다. 나와 루시안은 자리에서 동시에 일어나, 창문 바깥을 내려다보았다. 갑옷을 입은 기사들, 검고 푸른 제복을 입은 관리들 수십 명이 상단 마당으로 들어서는 중이었다.


"저 자가 여길 왔군요."


루시안은 아는 얼굴을 발견했는지 당황한 눈치였다.


"누구?"


"마벨 공자님의 개인기사단, '오키드'의 2조장인 버치입니다. 환영을 다루는 마스터급의 실력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환영을 다루는 실력자라고?"


"정정하죠. '공작령 최강의 환영술사'라고요."


환영술사라면 짚이는 점이 있었다. 그나저나 세무조사라면서 기사들을 선봉으로 세우다니, 이래서야 의도가 너무 투명하잖아.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당장 기록실을 정리해야겠습니다."


루시안이 창가에서 멀어지더니, 큰 소리로 직원들을 불렀다.


직원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기록실로 구르듯이 들어가 서류함을 잔뜩 들고 나왔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루시안이 자기 책상 뒤에 만들어둔 비밀통로였다.


그러나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옮겨야 할 기록은 산더미인데, 기사들은 이미 현관에 들어서는 중이었다.


"상회장은 어디에 있나?"


"지금부터 이곳은 재무국의 관리구역이다!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지시에 복종하라!"


그들은 큰 소리로 인부들을 닦달하며, 중앙 계단으로 향했다.


"저라도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봐야겠군요."


루시안이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말했다.


"아니, 여기는 내게 맡겨."


나는 로비 아래를 살펴보았다. 오키드의 조장일 듯한, 붉은 머리를 뻣뻣하게 세운 여성이 감찰단을 이끌고 계단 위로 올라오는 중이었다.


그녀가 나를 쳐다보았다. 강렬한 눈빛에서 꽤 또렷한 적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마벨과 달리 본심을 숨길 생각이 없는 듯했다.


내가 씨익 웃자, 그녀는 날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더니, 2층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는 턱을 괴고는 그들이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마스터급의 환영술사라.


아마 형님의 농장에 함정을 설치하는데 일조한 자였겠지? 형님 앞에서 조잡하다고 까긴 했지만, 그렇게 형편없는 솜씨는 아니었다.


마스터급이라고 하면 공작령 전체에서 드문 실력자다. 아마 그녀는 최강의 환영술사라는 권위에 평생 도전을 받아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오늘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나는 진언을 외우며 계단 난간을 두드렸다.


칠성연환진(七星連環陳).


공간을 왜곡해 환영 속을 빙빙 돌게 만드는 진법이다.


이제부터 그들은 이 박스형의 단순한 건물 안에 얼마나 많은 침실이 있으며, 수영장에, 분수대에, 끝없는 복도에, 안 그래도 복잡한 길을 곡예단이 누비고 다니는 꼬락서니를 보게 될 것이다.


길을 뚫고 나오는 건 오로지 그들의 리더인 버치라는 여자의 역량에 달려있다.


"얼마 정도 걸리지?"


나는 루시안에게 물었다.


"두 시간··· 항구까지 기록실을 완전히 이전하려면 적게 잡아도 세 시간은 필요합니다."


"알았어."


나는 난간에 기대어 계단 아래에 펼쳐진 환영을 내려다보았다.


"다녀 와. 세 시간 정도 놀아주고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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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화염 거인 (3) +18 24.06.20 3,825 144 12쪽
27 화염 거인 (2) +7 24.06.19 3,810 116 12쪽
26 화염 거인 (1) +7 24.06.18 3,930 13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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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창단 (4) +5 24.06.16 4,130 120 13쪽
23 창단 (3) +4 24.06.15 4,115 138 14쪽
22 창단 (2) +4 24.06.13 4,392 121 11쪽
21 창단 (1) +5 24.06.12 4,744 144 21쪽
20 수상한 애완동물 (3) +6 24.06.11 5,111 134 14쪽
19 수상한 애완동물 (2) +7 24.06.09 5,209 142 15쪽
18 수상한 애완동물 (1) +7 24.06.08 5,291 168 13쪽
17 경매 (0) +8 24.06.07 5,268 136 15쪽
16 용돈벌이 (3) +4 24.06.06 5,318 160 13쪽
15 용돈벌이 (2) +6 24.06.05 5,500 152 14쪽
14 용돈벌이 (1) +2 24.06.04 5,737 141 11쪽
13 가정 교습 (3) +4 24.06.03 6,001 166 10쪽
12 가정 교습 (2) +7 24.06.02 6,023 17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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