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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까스 한입 하실래예

공작가 막내도련님이 도술로 다 씹어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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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이기준
작품등록일 :
2024.05.21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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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9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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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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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과일 서리 작전 (3)

DUMMY

나는 형님의 농장을 둘러보기 위해 비텐과 함께 행장을 꾸렸다. 탈리아까지 데려갈 수는 없었다. 그녀가 없으면 기사단은 돌아가지 않는다고 봐야했다.


"릴리, 형님의 농장이 어디에 있지?"


"잠시만요, 지도를 보면서 알려드릴게요."


릴리가 에스테르지 공작령이 그려진 지도를 가져왔다. 그녀는 형님의 농장이 있을법한 위치를 펜으로 표시해주었다.


"제가 아는 곳은 이 세 군데예요. 전부 성시에서 멀지 않은 곳이죠."


나는 릴리가 건넨 지도를 가방 안에 넣고, 루비를 말등 위에 얹은 채, 비텐과 함께 궁을 나섰다.


따로 간식이나 돈을 챙기진 않았다. 엎어지면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운 곳이라, 농장을 둘러본 뒤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올 생각이었다.


성시의 서쪽 성문을 빠져나왔을 때였다. 코를 찌르는 듯한 악취가 풍겨왔다.


"이게 무슨···."


악취의 근원은 사람이었다. 성문 밖에 난민촌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난민들이 해자를 쓰레기통으로 쓰는 모양인지, 해자 안에 오물이 가득했다.


"나리, 한 푼만 부탁드립니다!"


"처자식이 굶고 있습니다.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주변의 난민들이 몰려와 구걸을 하기 시작했다.


"이놈들, 감히 누구의 앞을 가로막는 거냐!"


비텐이 위협적으로 소리치자, 난민들이 혼비백산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굳이 그럴 것까진 없었어, 비텐."


"···안전을 위한 조치였습니다."


비텐이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괜찮아. 내가 그 정도로 약하진 않으니까."


아버지는 공작령의 방패 같으신 분이다. 아버지가 북방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계시기에 사람들은 마족에게 유린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방패만 가지고는 행복할 수 없다. 사람이 사람다운 삶을 영위하려면 농사도 잘 되어야하고, 번듯한 집이 있어야하고, 시장에는 좋은 물건이 넘쳐나야 한다.


안타깝게도 공작령은 최근 잇따른 기근 때문에 힘든 시기를 보내는 중이다. 공작의 아들로서,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단지 불쾌한 장면으로만 넘기기는 어렵다.


"사실 저도 마음이 편치는 않습니다. 저도 집도 뭣도 없는 떠돌이 출신이니까요."


"네가 모험가가 되기 전의 일인가?"


"예. '모험가'라고 부르니까 뭔가 되게 있어보이지 않습니까? 실은 반대입니다. 삶이 불안하니까 모험이라도 해봐야 한다는 거죠. 저도 운 좋게 각성 능력에 눈을 뜨기 전에는 하루하루를 어떻게 벌어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한 처지였습니다."


"네가 어릴 때도 공작령에 기근이 들었나?"


"그건 아닙니다. 기근은 최근 십 년 사이에 심해졌습니다."


내가 태어난 날을 전후해서 공작령의 사정이 나빠지다니, 공교로울 일이다.


나는 비텐과 대화를 나누며 난민촌을 계속 살펴보았다. 판자와 넝마를 엮어 만든 집은 집이라기보다 바람막이에 더 가까웠다.


열악한 위생과 주거환경도 심각하지만, 가장 부족한 건 식량인 듯했다. 갈비뼈가 훤하게 드러날 정도로 몸이 마른 아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루시안이 나의 이름으로 자선사업을 벌이고는 있다고 하지만, 이 많은 난민들을 전부 돕기에는 물자가 턱없이 부족할 듯했다.


결국 기근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중요한데, 마벨 형님은 공작 대리로서 이 사태를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



우리는 한참을 더 달려 마침내 교외의 한 농장에 도착했다. 농장은 릴리가 장담한대로 무척 넓었다. 건물에는 에스테르지 가문의 자산임을 알리는 깃발이 나부꼈고, 헛간과 창고가 즐비하게 지어져 있었다.


조금 더 다가가 보니, 작황이 또렷하게 보였다.


"삐이이이익······."


루비가 시무룩한 듯이 축 늘어졌다.


형님의 농장에는 작황이랄 게 없었다. 있어야 할 작물 대신 잡초만 그득했다. 잡초가 어찌나 크던지 내 키보다도 더 높이 자랐을 지경이었다.


"아예 농사를 짓지도 않았나본데."


"너무 바쁘셨던 게 아닐까요? 공작 대리를 맡으셨으니, 농사일은 잠시 내려놓으신 거죠."


"그럼 나한테 보내주신 스파클링베이는 어디서 왔지?"


"······어, 그러네요."


"다음 농장으로 가 보자. 거긴 사정이 다를지도 모르니까."


우리는 지도에 표시된 두 번째 농장으로 향했다. 한참 말을 달려 도착한 두 번째 농장은 사정이 훨씬 나빴다. 이곳은 땅이 너무 메말라서 잡초조차도 자라지 못했다.


"여기도 흉년이 든 모양입니다."


단순한 흉년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나는 거북등처럼 메마른 땅에 손을 짚어보았다. 토기(土氣), 즉 땅의 기운이 완전히 고갈되어 있었다.


"비텐."


"예."


나는 손을 가리켜 길을 지나는 농민을 가리켰다.


"가서 물어 봐. 혹시 형님이 농장을 어떻게 관리하시냐고, 내 신분은 노출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비텐은 말을 몰아 농민에게 다가가더니,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농민에게 동전 한 닢을 던져주고는 내게로 돌아왔다.


"마벨 님은 여기에 안 오신답니다."


"그래?"


"대신 마차에 비료를 잔뜩 싣고 서쪽 어딘가로 향하시는 모습을 봤다는군요. 몇 번이나요."


"서쪽에도 형님 농장이 있는 모양이로군."


나는 지도를 확인해보았으나, 서쪽에는 아무런 농장이 없었다.


그러나 릴리가 형님의 모든 농장을 아는 게 아니고, 지도도 정확하기만 한 건 아니니 서쪽에도 얼마든지 농장이 있을 수 있다.


내 의문은 이것이다.


왜 형님은 성시에서 가까운 농장들을 방치하고 계신 걸까?


"위치가 어디래?"


"저 사람도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고 합니다."


"그럼 서쪽 평원을 조금 둘러보자. 여기까지 와서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


"아니면 제가 힘을 써볼까요?"


"어떻게?"


"변신을 할 수 있잖습니까."


비텐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늑대 타입으로 변신하면 후각이 굉장히 예민해진단 말이죠. 마벨 님의 흔적을 추적할 수 있을 정도로요."


나는 어이가 없어서 녀석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야, 그 중요한 걸 지금 말하면 어떡하냐?"


"어··· 저는 이덴 님께서 싫어하실 줄 알았습니다."


"내가 왜?"


"그냥 상식이죠. 개가 되는 부하를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비텐이 또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너 자꾸 날 속단하는데, 그거 안 좋은 버릇이야. 나는 각성 능력에 아무런 편견이 없다고."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을 바꿔먹어야겠군요."


"그래. 그런 능력이 있으면 빨리 써먹어야지. 해가 지기 전에 성시로 돌아가려면 후딱 농장을 봐둬야 할 거 아니야."


"알겠습니다."


비텐이 말에서 내리더니, 변신능력을 발휘했다. 가죽옷이 찢어지면서, 온 몸에서 갈기와 털이 돋아났다.


"아우우우우----!"


녀석이 머리를 쳐들고 하울링하자, 흉흉한 살기가 사방으로 뻗쳐 나왔다.


왜 눈치를 본 건지는 알겠다. 우선 말들이 전부 왔던 길로 도망쳐버렸고, 바닥에 떨어진 소지품은 내가 일일이 챙겨야만 했다.


킁, 킁.


비텐이 농부가 가리킨 방향을 향해 코를 벌름거렸다.


"이쪽입니다."


그가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가자, 루비."


"삐이이이-- "


나는 루비와 함께 비텐의 뒤를 따랐다. 냄새를 맡는 동시에 길을 안내하는데도 비텐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보법을 써야만 쫒아갈 수 있을 정도였다.


각성 능력자를 데리고 다닐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것이로군. 도사도 개로 둔갑할 수는 있지만, 개의 후각을 가질 수는 없거든.


그런데 녀석이 향하는 방향이 서쪽이 아니라 남쪽이었다. 남쪽은 흉작이 너무 심해서 메마른 땅만 펼쳐진 지역이었다.


"비텐, 제대로 가는 거 맞아? 길을 잘못 든 거 아니야?"


"이 방향이 확실합니다."


비텐이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나는 그를 믿고 한동안 앞으로 나아갔다. 주변은 더 황폐해졌고, 급기야 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조차 없어지고 말았다.


극심한 흉작 탓에 주변의 농가는 초토화된 듯했다. 백골화된 뼈가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부서진 수레바퀴나, 당장이라도 귀신이 튀어나올 듯한 흉가도 보였다.


스산한 기분이 든 게 그때였다. 나는 녀석의 뒷덜미를 쥐어 뒤로 홱 잡아당겼다.


"커헝···!"


"쉿."


나는 검지를 놈의 주둥이에 갖다대었다.


"함정이다."


"···예?"


나는 턱짓으로 비텐의 앞을 가리켰다.


"방금 한 걸음만 더 갔으면 넌 죽었어."


눈앞의 풍경이 음산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각성 능력자가 비명횡사할 정도로 치명적인 함정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러나 모든 건 눈속임이다.


나는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며 짧은 진언(眞言)을 외웠다. 그러자 나뭇잎처럼 보였던 환영이 스르르 사라지며, 그 자리에 거대한 작살 함정이 나타났다.


"이, 이건 뭡니까? 왜 이런 곳에 함정이 설치되어 있는 거죠?"


"나도 그게 의문이다, 비텐."


저런 무식한 함정을 무방비하게 발동시킨다면 아무리 상급 각성 능력자라고 한들 죽음을 피할 수 없다.


환영은 아마 정신계 각성 능력자의 작품일 텐데, 제법 솜씨가 정교한 것이 최소한 중급은 되는 실력자가 아닐까 싶다.


함정 기술자와 정신계 각성 능력자의 콜라보.


개인의 작품이 아니다. 조직이 개입해있다.


"정말로 이 방향이 맞아? 형님의 냄새가 다른 사람의 말이나 옷 같은 데에 묻어있을 수도 있잖아."


"틀림없습니다. 저는 마벨 님이 이 길을 지난 석 달 동안 몇 번 드나드셨는지도 자세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는 내가 안전을 확인한 후에만 움직여. 이런 함정이 얼마든지 더 있을 테니."


"예."


비텐의 태도가 한층 신중해졌다.


이후로도 함정이 속속 나왔다. 모두 각성 능력자의 침입을 상정한 듯한 아주 복잡하고 치명적인 기관이었다.


환영은 더욱 교묘해져서, 단순히 함정을 가리는데에 그치지 않고, 함정이 있는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한 노골적인 배치가 많아졌다.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나아갔다. 내가 환영을 해제하면, 비텐이 올바른 길을 찾았다.


길은 곧게 뻗어있지 않았다. 이리 휘고 저리 휘었지만, 비텐이 이 죽음의 지대의 중심을 향해 나아가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단지 함정이 많다고 죽음의 지대인 것이 아니라, 땅이 메마른 정도도 점차 심해졌다. 마치 사막의 한가운데를 더듬어 나가는 듯했다.


"여기야, 비텐."


나는 앞서가던 비텐을 불러 세웠다.


"정말 여기가 맞습니까?"


비텐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마침내 우리는 죽음의 지대의 중심에 도착했다. 이곳은 광범위하게 펼쳐진 환영에 의해 보호받고 있었다. 비텐은 지금 메말라가는 늪과, 늪 속에서 꿈틀거리는 수많은 몬스터들을 보고 있을 것이다.


다만 나를 속이려면 멀었다.


"사라져라."


주문을 외우자 메마른 늪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녹음이 가득한 농장과, 초록 물결이 일렁이는 밭이 나타났다.


황폐한 주변부와 밭의 싱그러움이 만들어내는 부조화.


그리고 꽃이 뿜어내는 엄청난 영기(靈氣)에 놀라고 있을 때였다.


"삐이이이익---!"


루비가 어깨에서 튀어나갔다.


나는 잽싸게 녀석의 꼬리를 잡았다. 루비는 내게 꼬리가 잡힌 채 추처럼 뱅글뱅글 맴돌았다. 이 농장이 녀석이 오매불망 찾던 그곳임엔 맞는 듯했다.


"이게 전부 환상이었군요."


비텐이 침을 꿀꺽 삼켰다.


"왜 마벨 님은 이런 외진 곳에 밭을 숨겨두신 걸까요?"


"지금부터 그걸 알아봐야겠지."


나는 밭에 가까이 다가갔다.


"스파클링베이는 없군요. 그냥 꽃 같습니다."


"평범한 꽃이 아니야, 비텐."


나는 몸을 숙여 조심스레 꽃잎을 어루만졌다.


우담화는 아니었다. 생김새가 조금 달랐다. 이 꽃들은 꽃대가 더 짧고, 꽃잎이 붉은 색이었다.


그러나 머금은 기운은 우담화 못지 않았다. 중원이었다면 천 년에 한 송이 필까말까한 꽃들이, 대지에 뿌리를 박고 주변의 토기를 마구잡이로 빨아들이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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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일 서리 작전 (3) +7 24.06.24 2,352 8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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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화염 거인 (2) +6 24.06.19 2,662 82 12쪽
26 화염 거인 (1) +6 24.06.18 2,753 95 13쪽
25 해프닝 (0) +5 24.06.17 2,795 89 13쪽
24 창단 (4) +4 24.06.16 2,932 88 13쪽
23 창단 (3) +3 24.06.15 2,940 99 14쪽
22 창단 (2) +3 24.06.13 3,158 89 11쪽
21 창단 (1) +4 24.06.12 3,450 108 21쪽
20 수상한 애완동물 (3) +5 24.06.11 3,741 98 14쪽
19 수상한 애완동물 (2) +6 24.06.09 3,848 106 15쪽
18 수상한 애완동물 (1) +5 24.06.08 3,916 124 13쪽
17 경매 (0) +6 24.06.07 3,891 107 15쪽
16 용돈벌이 (3) +3 24.06.06 3,949 121 13쪽
15 용돈벌이 (2) +3 24.06.05 4,074 112 14쪽
14 용돈벌이 (1) +1 24.06.04 4,259 107 11쪽
13 가정 교습 (3) +3 24.06.03 4,494 129 10쪽
12 가정 교습 (2) +6 24.06.02 4,520 137 10쪽
11 가정 교습 (1) +3 24.06.01 4,679 136 10쪽
10 불과 얼음의 노래 (3) +6 24.05.31 4,967 132 11쪽
9 불과 얼음의 노래 (2) +6 24.05.30 4,970 158 12쪽
8 불과 얼음의 노래 (1) +4 24.05.29 5,114 14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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