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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더 님의 서재입니다.

테르센트 연대기 ~ 순백의 장군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필더
작품등록일 :
2015.04.20 11:44
최근연재일 :
2015.09.16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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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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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19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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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4화. 여신을 따르는 부족

DUMMY

"부스라스 부족"이라함은 후아트라 지방의 열일곱 부족을 말한다.


알피엑시의 북쪽에 위치한 후아트라 지방은 원래 인간이 살 수 없는 환상종의 땅이었는데, 같은 위도의 땅이 모두 얼어붙어있는 것과는 다르게 사철 변화가 거의 없이 따뜻했다.


요정과 정령에 대한 전설이 특히 많기에 저명한 마도학자들은 후아트라 땅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고, 이 지방에 테르센트 마나의 동공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 부정하는 학자는 없었다.


마나의 동공(洞空)의 영향으로 이 땅에서는 진귀한 일이 많이 일어났다. 흑비마가 태어나 번성하여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나, 이 곳의 주민들이 정령들의 보호를 받는 것이나, 열일곱 부족장을 대표하는 대부족장이 신탁을 받는 힘을 대대로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다른 지방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이제는 희미해진 과거의 영광이 되어버렸다.




마법시대.


테르센트인에게는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당연한 시기였다. 역사의 시작부터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마나의 운용을 배웠고, 부엌의 난로는 마력의 불씨가 타올랐으며, 노인들은 늦은 밤에 마도서를 읽기 위해 빛의 정령을 불러모았다. 다친 사람을 치료해 주는 것은 회복 마법을 전문으로 쓸 수 있는 치유사였고, 신관은 신의 목소리를 듣고 계시자가 되어 사람들을 이끌었다.


부스라스 부족은 대대로 대족장에게 그 신탁을 받는 힘이 계승되어 왔다. 지금은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늙은 노인도 반 백년 전에는 신의 목소리를 선명하게 듣고 부족민들의 현명한 지침이 되어왔다.




노인-제야위멘-은 침대에 누워 촉촉히 젖은 눈으로 천망의 기둥끝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 노인은 걸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늙어버렸다. 무릎의 연골은 모두 닳아서 굽힐 때마다 끼릭끼릭 소리를 냈다. 그것은 마치 티프소의 기계가 내는 소리 같다고 노인은 생각했다.


부스라스 부족은 티프소와 전쟁을 벌이던 시절, 누구보다도 용감했다. 전설의 왕 네스데라쉬트 로드리제로스의 아래에서 언제나 선두에 설 영광을 얻었다. 신은 그들을 보호했고, 흑비마는 그들을 태우고 날아올랐다. 노인은 두 아들을 잃으면서도 용맹스럽게 싸웠다. 결국은 패했지만, 노인은 단 한번도 적을 앞에 두고 물러선 적 없었다.


뚜뚝


노인의 무릎에서 뼈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발목은 힘줄이 늘어져서 너덜너덜해졌다. 한때 기창을 휘두르며 적을 도륙하던 강인한 팔은 이제는 이불조각마저 들기 버겁다.


목이 말랐지만 노인의 물병에는 물이 떨어져 있었다. 손녀며느리가 물을 채워넣는 것을 잊은 것 같다. 그러니 목이 말라도 기다릴 수 밖에 없다. 노인은 눈을 꿈뻑이고 천장 끝에 매달려 있는 거미새끼 한마리를 바라보았다. 작은 나방 하나가 거미줄을 흔들고 있었다.


이제 그는 죽음이 다가온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손자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천막에 틀어박혔다. 침대에서 하루를 보내게 된 이후 그는 오로지 신에게 기도하며 신탁을 요청했다. 여신의 목소리를 미치도록 듣고 싶었지만, 환청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노인이 밤낮없이 기도를 하는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다.


알피엑시 대륙은 어수선해지고 전쟁이 시작되었다. 젊은 영웅들이 일어나서 각자의 정의를 걸고 말을 달렸다. 부스라스 부족도 그 전쟁의 나팔에 호응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인에게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일이다. 여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 이외에는 그 무엇도 의미 없는 일이었다. 여신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다면, 여신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다면...




부족원들은 대족장 제야위멘의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신탁을 전한 마지막 신관의 죽음은 마치 부스라스 일족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 같았다.


제야위멘의 피를 이은 두 손자는 신탁은 고사하고 정령의 가호조차 받지 못했다. 그의 죽음은 역사의 중심에 있던 부스라스 일족의 전설의 끝과 같다고,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여신이여, 제 목소리를 들어주소서. 여신이여, 당신의 목소리를 제게..."


그의 닿지 않는 기도는 그가 죽는 날 밤까지 이어졌다. 그에게는 죽음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여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만 있다면, 오로지 여신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다면...'


제야위멘의 목은 타들어갔다. 곧 죽는다는 것을 느끼는 이 순간마저도 여신을 원했다. 죽기 전에 그 신성한 목소리를 한번만 들을 수 있다면, 그 어떤 여한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그의 간절함이 하늘에 닿아서일까?


기적이 일어났다.


"늙은 현자여, 제야위멘이여. 신관인 그대에게 나, 여신 엘리츠나의 목소리를 전하노라."


노인은 처음에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동시에 머리가 이상해진 것은 아닐까 염려했다. 귀를 울리는 듯한 목소리는 너무나도 그가 원하던 것이었다.


"제야위멘이여, 나를 따르는 신실한 제자여. 그대의 정성은 세상의 기이함을 뛰어넘어 나에게 닿았다. 내가 그대의 눈물에 보답하기 위해 왔노라."


노인은 눈을 떴다. 억지로 몸을 일으키기 위해 힘을 넣었다. 눈 앞에는 하얀 빛이 가물거렸다. 여신의 달콤한 목소리에 그는 눈물이 마구 흘러 내리는 것을 느꼈다.


"오오... 오오오..."


그는 소리내어 울었다. 여신은 하얀 빛과 동화되어 그의 앞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제야위멘.. 저 제야위멘이.. 부스라스 일족의 대족장이 여신을 뵈옵니다...!"


그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무릎에서 끼리릭, 하는 소리가 났지만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여신의 앞에서 고통을 느낄 여유따위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이 세상을 지키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내가 왔노라, 제야위멘이여."


여신은 그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주었다. 제야위멘은 마치 수십년 전처럼 계시를 받았다. 여신이 이렇게 나타난 적은 한번도 없었지만, 그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제야위멘은 여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계시를 내린 여신은 그에게 웃어보이고 사라진 기분이 들었다.




이튿날 새벽, 부족원들은 웅성거리며 대천막에 모였다.


앞열부터 원을 그리며 부족장과 그 이하의 직위를 갖는 부족원들이 앉았다. 부족원이 만든 원의 중심, 한가운데에서 정좌하고 있는 것은 대족장 제야위멘이었다. 이것은 신성한 의식을 위한 부족원들의 자세. 허나 오랫동안 이 대형을 갖춘 일은 없었다.


거의 십년간이나 손자들에게 뒤를 맡겼던 노인이 다시 이곳에 돌아온 것만으로도 부족원들은 동요했다. 하루이틀 사이에 죽고, 다음 대족장을 뽑아야 한다는 점에 모두가 동의하던 차에 걷지도 못하는 노인이 이 곳에 와서 매와 같은 눈으로 모두를 훑어보고 있는 것이니, 분명히 보통일은 아닐 거라 예상할 수 있었다.


젊은 지도자이자 제야위멘의 두 손자인 제신토와 클로카가 뒤늦게 대천막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노인은 소리죽여 웃기까지 했다.


"할아버지?"


제신토가 깜짝 놀라 달려가서 놀란눈으로 제야위멘을 올려다보았다.


"대족장님."


클로카는 고개를 숙였다.


"자리에 앉아라, 제신토, 클로카. 난 여신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제신토와 클로카는 놀란 눈으로 서로를 한번 마주보았다.


"여신의 말씀이라니, 할아버지, 여신 엘리츠나님의 전언을 들으셨단 말씀이십니까?"


제신토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제야위멘은 온화한, 하지만 진실된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족들의 웅성거림이 이어졌다. 화장실조차 자기 혼자 가지 못했던 노인이 부축없이 일어나 허리를 펴고 모두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기적, 그 외의 어떤 것도 아니었다.


"나, 대족장 제야위멘이 여신 엘리츠나의 뜻을 전하노라!"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당당했고, 또 엄숙했다. 부족원들은 수십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귀를 기울였다. 개중 일부는 이 기적의 감동으로 울음소리같은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발라 모다스는 티프소와 연합하여 이 세상을 멸망으로 이끌어가려 한다! 우리는 전력을 다하여 그의 군대를 꺾고, 발라 모다스에게 세계를 위협한 대가(代價)를 치르게 해야한다!"


제신토는 신탁을 받는 중이라는 것도 잊고 벌떡 일어나 외쳤다.


"할아버지, 그럴 수는 없습니다! 다리오의 악행으로 온 대륙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백성들을 지키는 발라 모다스를 우리가 어찌 공격할 수 있겠습니까!"


제야위멘의 눈에 노기가 치솟았다.


"내가 너에게 신탁을 듣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더냐! 어찌 감히 여신의 계시를 정면에서 반박하는가!"


"하지만, 할아버지..."


"대족장의 이름과 명예를 걸고 말한다! 이 전투는 신을 위함이며, 세계를 지키기 위함이다! 거부하는 부족원은 내 핏줄이라해도 용서치 않겠노라!"


늙은 부족원들은 이미 일어나서 환호하고 있었다. 클로카는 도움을 요청하듯 부족원들을 바라보았지만, 아무도 자신의 의견에 동조해줄 기색이 없었다.


클로카는 자신의 형을 딱한눈으로 쳐다보고, "형님, 신탁에 대해 우리는 거부할 수 없습니다. 일단 나가시죠."라고 속삭였다.


도망치듯이 천막밖으로 나오자마자 제신토가 절실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게 무슨 말이냐, 클로카. 발라 모다스를 돕자는 이야기를 바로 어제까지 하지 않았느냐?"


"하지만, 대족장님을 보십시오. 저분이 저렇게 일어서 있는 것은 기적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여신의 계시가 기적을 동반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 동안 단 한번도 닿지 않았던 여신이 이 상황에서 하필이면 발라를 공격하라고 말하다니, 도대체가 납득할 수 없지 않느냐! 그는 이 대륙의 희망이야. 난 어떻게든 이 전투를 막아내겠다."


"형님, 이것은 신을 위한 전쟁입니다."


클로카가 굳은 목소리로 말하자 제신토는 으르렁거리듯이 "그럼 신이 틀렸겠지. 아니면 악마의 목소리거나."라고 응답했다. 클로카의 눈에 살기가 맺혔다.


"신성모독을 하실 생각입니까?"


"모독이 아니다. 할아버지가 들은 목소리가 여신을 흉내낸 악마의 목소리일 것일 수도 있지 않겠느냐!"


"그런 생각을 다른 사람이 알면 형님은 즉시 처형될 것이오."


"처형이라고?"


제신토는 등에 맨 자기의 신장만큼이나 거대한 검 손잡이를 쥐었다.


"이 부족에서 날 처형할 수 있는자가 있나?"


클로카는 허리의 시미터를 쥐었다.


"제가 할 수 있습니다, 형님."


제신토와 클로카는 서로를 노려보았다. 대천막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 여신의 가호와 새롭게 시작된 전쟁 때문에 공기가 소란스러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는 당장이라도 깨질것 처럼 얼어붙어갔다. 누가 검을 뽑든, 무사히 넘어갈리가 없다는 것을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클로카, 형제의 우애를 생각해서라도 이 전쟁을 막는데 협조해다오."


"형님이야 말로, 절 생각한다면 신탁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제신토는 이를 악물었다. 뿌득, 하는 소리가 어금니에서 났다.


"난 내가 생각한 뜻을 지키겠다. 발라 모다스에게 가겠어."


"그렇다면 저를 뚫고 가셔야 할 겁니다."


클로카는 먼저 검을 뽑았다. 그의 검은색 시미터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너와 싸울 마음은 없다."


"전 형님을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제신토는 천천히 대검을 들어 정면을 향해 겨누었다.


"난 널 죽이고 싶지 않아."


"형님, 두번 말하게 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형님을 보내드리지 않겠다고 말씀드렸을 터입니다."


"어쩔 수 없지, 클로카. 전장에서 만나자."


제신토는 말을 마치자마자 검을 휘둘러 지면을 후려쳤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자욱한 먼지가 치솟으며 돌 파편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대천막안에서도 밖의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달려나왔다. 먼지가 사라졌을 때, 클로카의 눈에는 제신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틈을 노려 마을 밖으로 달려나간 것이다.


클로카는 다시 시미터를 칼집으로 돌려놓았다.


"형님..."


그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쫓을 수 있었지만 그는 그럴 수가 없었다.


"어찌하여 우리를 버리십니까."


그는 슬픈 표정으로 탄식했다.




1028년 8주 2일, 부스라스부족은 대군을 일으켜서 남쪽으로 진군을 시작했다. 그들의 자랑인 흑비마부대 "루벨시에람" 300기를 포함하여 강성한 기병 천 기에 보병은 일만에 이를 정도였다. 발라를 돕고자했던 그들의 군대는 이제 발라의 목을 노리게 되었다.


제야위멘은 바로 전 날까지 팔조차 못들던 늙은 몸을 이끌고 전쟁에 참여했으며, 비마대장은 사라진 제신토를 대신하여 클로카가 맡았다.


작가의말

부스라스 부족은 평화를 사랑하는 강한 전사들이었습니다. 이계의 악마와의 전투에서 그들은 세눈의 네스 아래에서 전장을 휩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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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센트 연대기 ~ 순백의 장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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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6화. 세만 요새 공성전 -3 15.09.16 92 1 8쪽
16 15화. 세만 요새 공성전 -2 15.09.14 152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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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2화. 세만 요새 공성전 -1 15.06.29 174 1 12쪽
11 11화. 호르리텐시아 수비전 -3 15.06.12 159 1 7쪽
10 10화. 호르리텐시아 수비전 -2 15.06.10 163 1 21쪽
9 9화. 호르리텐시아 수비전 -1 15.06.08 265 1 10쪽
8 8화. 실패 -2 15.06.05 176 1 8쪽
7 7화. 실패 -1 15.06.01 176 1 6쪽
6 6화. 남 랑시에의 불꽃 작전 15.05.15 178 1 9쪽
5 5화. 탈출 15.05.01 199 1 11쪽
4 4화. 미첼 아델라이다 15.04.22 159 1 9쪽
3 3화. 발라를 좇는 자 15.04.20 217 1 11쪽
2 2화. 호르리텐시아 공략전 15.04.20 184 1 15쪽
1 1화. 순백의 장군 +4 15.04.20 387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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