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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더 님의 서재입니다.

테르센트 연대기 ~ 순백의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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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더
작품등록일 :
2015.04.20 11:44
최근연재일 :
2015.09.16 00:51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3,213
추천수 :
17
글자수 :
89,102

작성
15.06.05 08:40
조회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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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8쪽

8화. 실패 -2

DUMMY

그것은 10년 전의 이야기.


안젤레스 에페르는 꽃바구니나 케이크나 피크닉을 좋아하는 평범한 소녀와는 달랐다. 그녀는 항상 건조한 무늬없는 스커트를 입었고, 짧은 금색 머리칼을 단정히 빗어내려 차가운 느낌마저 주었다. 그녀의 어머니의 유품인 리본만이 그녀의 여성성을 증명해줄 뿐, 아무래도 매력적인 소녀는 아니었다.


그녀는 항상 책장에 등을 대고 몇 권의 책을 앞에 펼쳐놓았다. 책상은 그녀에게 너무 좁았다. 그녀는 바닥에 놓인 책들을 번갈아가며 읽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의 유일한 흥미거리이기도 했다. 미첼의 곁에 오기 전까지 안젤레스는 책을 읽는 것만이 세상유일의 멋진 일이라고 믿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그녀의 학구열은 줄어들 줄 몰랐다.


안젤레스와는 완전히 다른 곳에서 유년기를 보낸 미첼은 그녀와 아무런 공통점이 없어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미첼은 항상 말 위에 있었고, 안젤레스는 항상 마루바닥위에 있었던 것이다. 굳이 비슷한 점을 찾자면, 두 사람다 평범한 여성의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15세의 미첼이 그녀가 머무르던 북랑시에의 도서관에 나타날 때까지 안젤레스는 자신에게 이모가 있다는 사실을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정신없이 읽던 책들에서 눈을 떼고 쉬려는 참이었던 안젤레스는 검고 긴 머리칼의 조금은 투박해보이는 복장의 소녀가 가벼운 걸음걸이로 그녀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자마자, 기억 속 어딘가에 있던 자신의 이모를 기억해냈다. 미첼은 너무 당당하여서 안젤레스는 그 모습에 뺨이 붉어져서 감히 눈을 마주할 수 없었다. 미첼의 그런 작은 소녀에게 속삭이듯 인사했다.


"안녕, 네가 내 조카인 안젤레스구나."


안젤레스는 그녀를 쫓기로 했다. 도서관을 뒤로 하고, 그러나 책은 끌어안고, 전장으로 향하는 미첼의 뒤를 쫓았다. 안젤레스는 걸음이 느려서 나는 듯이 달려나가는 미첼을 거의 뛰듯이 쫓아가야 했다. 미첼은 항상 그녀의 앞에 섰지만, 한번도 두고가지 않았다. 안젤레스가 올 때까지 언제나 기다려 주었다.




그것은 그녀가 가진 가장 소중한 추억. 처음 미첼을 만난 후로 한번도 그녀의 뒤를 쫓은 것을 후회해 본 적이 없었다.


미첼은 고고한 절벽 위의 단아한 꽃과 같아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경외심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런 미첼이 자신을 아껴주는 것을 느낄 때마다 안젤레스는 자신이 하는 일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느새 미첼의 참모가 되어 그녀의 가장 중요한 조언자가 되었다. 미첼이 자신에게 의지하는 것을 알게 될 때마다 안젤레스는 뛸 듯이 기뻤다.




"미첼님."


"음?"


"제가 방해되지 않으시나요?"


미첼은 뜻밖의 질문에 "어?"하고 되물었다.


"전 말도 잘 못타고 전쟁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요."


미첼은 손을 내밀어 안젤레스의 뺨을 쓸어주었다.


"안젤레스, 넌 나에게 매우 소중한 사람이야. 네가 없으면 승리를 할 수도 없고, 승리를 해도 의미가 없어."


안젤레스는 그녀의 말에 생긋 웃었다. 미첼은 멋적게 따라 웃었다.




"미첼님."


어느날 미첼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미첼님은 앞으로 어떻게 하실건가요? 발라 모다스가 거병을 했습니다. 그는 백성을 진정으로 아낄 수 있는 군주에요."


"넌 내가 그의 깃발 아래에 서야한다고 생각하니?"


"예."


미첼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아직 경험이 없어. 그는 세상을 바꿀 힘이 없어. 하지만 네가 원한다면... 그와 같은 편이 될 수 있겠지."


안젤레스는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전 미첼님을 따르고 있는데, 미첼님은 제 의견대로 한다고 하시는군요."


"음. 그러고보니 그렇군."


미첼은 끄덕이고 "하지만 안젤레스, 넌 내가 아는 누구보다 현명하고 신뢰할 수 있어. 네가 하려는 것은 결코 틀리지 않겠지."라고 말했다. 안젤레스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극찬에 답례를 했다.




"미첼님."


그녀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숲은 안개가 자욱하다. 숲에 들어온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목소리에는 피맛이 섞였다. 추격대의 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는다. 아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들리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발걸음 뿐. 미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좀 아쉬웠다.


"미첼님."


다리가 무거워서 더는 움직이지 않는데도 그녀는 계속 걷고 있었다. 미첼이 있는 곳은 이제 멀지 않았다. 그녀를 만나서 꼭 미첼을 지켜주고 싶다. 자신이 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미첼... 님."


그래서 그녀는 계속 걸음을 옮기고 있다. 숲은 안개가 가득하다. 어둠이 자욱한데도 빛이 보인다. 그 빛 쪽으로 가면 미첼이 있는걸까?


안젤레스는 이 숲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점점 걷는 것에 대한 피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마음 속을 누르고 있는 것도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전신에서 흐르던 피도 어느새 멎어있는 것 같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아도, 고통은 없다. 그녀는 열심히 걸었다. 미첼에게 가기 위해서.




별동대의 지휘를 맡았던 레네이네 노챠는 안젤레스를 구해내기 위해 분투했지만, 병사 수가 너무 적었다. 미첼의 본진에 머물고 있는 맥크로스 모르굴리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더 많은 병사가 있었다면 더 빨리 안젤레스를 구해낼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좀 더 경로를 잘 파악했다면 안젤레스를 구해낼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조금만 더 빨리 발견했어도 구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운이 조금만 더 좋았다면... 여신의 가호가 있었다면...


"안젤레스님...! 안젤레스님...!"


하지만 어떤 것도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아직까지도 따뜻한 슬픈 소녀의 앞에서 레네이네는 울부짖었다.


나무에 기대있는 그녀는 평온한 표정으로 잠든 것처럼 누워있었다. 레네이네는 이마를 바닥에 찧었다. 찢어진 이마에서 피가 흘러 안면을 적셨지만 시간을 맞추지 못한 부하의 절규는 멈추지 않았다.


"안젤레스님, 죄송해요, 죄송해요, 안젤레스님.. 제가 조금만 더 빨리 왔어도..."


그녀의 눈물이 피 웅덩이에 떨어졌다. 돈 라마네는 그런 레네이네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한시라도 빨리 미첼님께 이 사실을 전해야 한다네. 지금 우리에게 시간은 목숨보다 소중해."


그 현실적인 말에도 레네이네는 한동안이나 바닥에 엎드려 통곡할 뿐이었다. 돈 라마네는 울고 있는 소녀를 대신해서 안젤레스의 시체를 회수하게 하고, 직접 미첼에게 향할 준비를 했다.


그도 안젤레스의 죽음이 애석했지만, 슬퍼할 여유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레네이네 장군, 병사를 정비해주시오. 미첼님은 곧 안젤레스님의 복수를 하기 위해 병사를 움직이실 것이오."


그는 굳은 목소리로 조언을 하고 말에 올랐다.




"미첼님, 거의 다 왔어요."


안젤레스는 이제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숲을 달리고 있었다. 미첼을 곧 볼 수 있다고 생각하자 힘이 났다. 그래서 그녀는 진심으로 우러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미첼님?"


숲은 여전히 어둡다. 안개는 언제쯤 걷힐까?


"어디 계신가요, 미첼님?"


곧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미첼을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안젤레스는 그녀에게 어떤 말부터 할까 상상하며 숲의 양지를 따라 걸었다.


"미첼님, 곧 만날 수 있어요. 미첼님..."


햇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숲의 깊은 곳에서 울리는 안젤레스의 목소리는 아무도 들을 수 없었다.


작가의말

머스킷 등의 화약무기는 원래 테르센트에서는 흔한 무기가 아니었습니다. 티프소와의 전쟁이 끝난 후에야 이 효율이 좋은 무기는 더 자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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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6화. 세만 요새 공성전 -3 15.09.16 92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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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2화. 세만 요새 공성전 -1 15.06.29 174 1 12쪽
11 11화. 호르리텐시아 수비전 -3 15.06.12 158 1 7쪽
10 10화. 호르리텐시아 수비전 -2 15.06.10 162 1 21쪽
9 9화. 호르리텐시아 수비전 -1 15.06.08 265 1 10쪽
» 8화. 실패 -2 15.06.05 176 1 8쪽
7 7화. 실패 -1 15.06.01 176 1 6쪽
6 6화. 남 랑시에의 불꽃 작전 15.05.15 178 1 9쪽
5 5화. 탈출 15.05.01 199 1 11쪽
4 4화. 미첼 아델라이다 15.04.22 159 1 9쪽
3 3화. 발라를 좇는 자 15.04.20 216 1 11쪽
2 2화. 호르리텐시아 공략전 15.04.20 183 1 15쪽
1 1화. 순백의 장군 +4 15.04.20 386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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