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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더 님의 서재입니다.

테르센트 연대기 ~ 순백의 장군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필더
작품등록일 :
2015.04.20 11:44
최근연재일 :
2015.09.16 00:51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3,220
추천수 :
17
글자수 :
89,102

작성
15.06.01 09:03
조회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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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쪽

7화. 실패 -1

DUMMY

알피엑시 대륙 세만 근교에 있는 음영(陰影)의 숲에 이를 때까지 사바티에르는 한시도 검을 놓지 않았다. 4일간 2시간, 그것도 비를 맞으며 진흙탕에서 잔것을 빼면 휴식조차 취할 수 없었다. 안젤레스를 빼낸 것도 거의 즉흥적인 발상에 불과했으니, 그에게 계획이 있을리 없다.


그는 차가운 비를 맞으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가능한 한 빨리 안젤레스를 미첼에게 데려가야 한다는 일념이 그를 움직이게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을 객관적으로 비웃을 여유가 있었다.


그는 절대권력의 모다스 가문에 속해있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보장되는 입장인데도, 모든 것을 버리고 움직이다니, 어찌 어리석다하지 않을까.


인질을 쓰는 비겁한 행동에 발끈했을지도 모른다. 안젤레스를 겁탈하려던 간수가 지독한 냄새를 풍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곧 그런 것은 사소한 이유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오로지 발라만을 위한 감상적인 행동이었던 것이다.




발라 모다스와는 결국 검을 맞댈 수 없었다. 그가 거병했다는 소식에 사바티에르가 기뻐하던 것을 그의 형제들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발라 역시 그의 심정을 이해해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마치 짝사랑과도 같다. 어린 시절부터 발라 모다스라는 빛나는 별을 바라보던 사바티에르에게는 발라와 검을 나누는 것만이 목표였다. 단 한번 그와 목검으로 대련한 적이 있었다. 결국 쌍방 전투속행이 불가능해질 때까지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다. 그의 검은 강하고, 아름다웠다. 두 사람의 검이 동시에 부러질 때까지 13분간, 그는 발라에게 매혹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저쪽이다!"


"사바티에르는 죽여라! 안젤레스는 사지를 끊어서라도 살려야 한다!"


추격대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 가까운 외침은 그에게 살아남을 힘을 준다. 애초부터 그는 꽤나 싸움을 좋아했다. 검을 이렇게 맘껏 휘두른 것은 오랜만의 일이다. 팔의 근육이 끊어지는 고통, 호흡이 줄어드는 격한 박동, 자신의 피인지 적의 피인지 알수 없는 붉은 액체들. 그것은 극한의 쾌락으로 그에게 보답한다. 그보다 조금 앞에서 걷고 있던 안젤레스는 불안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추격대의 외침을 들었을 것이다. 그녀가 말했다.


"숲으로 들어가죠. 추격대를 떨쳐낼 수 있어요."


안젤레스도 지친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 근처의 숲은 험하기로 유명하니 결코 유리한 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추격대를 피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니, 그래서는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없어. 네 주군이 지금이라도 움직여주지 않으면 발라는 죽는다."


안젤레스는 고개를 저었다.


"이러다가는 당신이 죽어요. 사바티에르, 당신이 날 도와주는 것도, 발라를 위하는 것도 솔직히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은 감사하고 있어요. 그러니 당신이 죽어가는 것을 그냥 두지는 않을거에요."


"내가 죽어?"


사바티에르는 코웃음을 쳤다.


"난 발라와 다시 싸우게 될 때까지 안 죽는다. 네 걱정이나 하시지, 아가씨."


안젤레스는 그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건방진 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바티에르는 킬킬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확실히 추격대가 바로 뒤까지 왔으니 이대로 가는 건 안좋군. 너, 혼자서 가라. 미첼에게 빨리 돌아가서 발라를 도우라고 말해. 어차피 네가 무사히 돌아가면 그 고지식한 장군은 발라 편을 들겠지만."


"당신은 어떻게 하려구요? 죽을지도 몰라요."


"말했잖아? 발라와 싸우기 전까지 난 안죽어. 추격대를 막고 뒤따라갈 거다."


안젤레스는 머뭇거렸지만, 판단이 느리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빨리 가서 원군을 불러올게요."라고 말하고 숲으로 모습을 감췄다. 먼 길이 되겠지만, 이걸로 그녀는 추격자의 공세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사바티에르는 그렇게 생각하자 웃음이 났다.


"다시 한번 기회가 있다면 좀 더 잘해볼텐데."


그는 며칠간 들고 있던 검을 놓았다. 이 무거운 검을 더 이상 들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왼팔은 이미 괴사한지 오래이기에 양손검을 쓰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 그는 대신 다리에 차고 있던 단검을 뽑아들었다. 이정도면 충분히 들 수 있다. 아무래도 아직 더 싸울 수 있는 것 같다.


"크..."


그의 입술에서 한줄기의 피가 흘러내렸다. 한 다리는 발등이 잘려있다. 그것 때문에 계속 피가 새어나가고 있어서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것 같았다. 걷는 것도 솔직히 이 이상은 무리다.


'다시 한번 기회가 있다면 좀 더 잘 해볼텐데.'


이 희망은 너무 부질없는 것이다. 사람의 인생은 한 번. 그러니까 매 순간은 한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안젤레스를 막무가내로 데리고 탈출한 것이 그의 선택이라면, 다가오는 죽음도 그의 선택에 의한 것이다.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리!


그저 발라 모다스와 검을 나누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울 뿐이다.


그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수십여명의 병사들이 절반 밖에 남지 않은 시야에 들어왔다. 수백은 죽인 것 같은데 아직도 저만큼이나 남아있다니. 그는 하나 남은 눈을 깜빡이며 웃었다.


"제길."


그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작가의말

음영의 숲은 마법의 시대에 온갖 망령이 모여들던 마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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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센트 연대기 ~ 순백의 장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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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6화. 세만 요새 공성전 -3 15.09.16 92 1 8쪽
16 15화. 세만 요새 공성전 -2 15.09.14 152 0 9쪽
15 14화. 여신을 따르는 부족 15.08.19 149 1 13쪽
14 13화. 마후라나 15.08.17 196 1 14쪽
13 언젠가의 이야기 15.08.12 194 1 22쪽
12 12화. 세만 요새 공성전 -1 15.06.29 174 1 12쪽
11 11화. 호르리텐시아 수비전 -3 15.06.12 159 1 7쪽
10 10화. 호르리텐시아 수비전 -2 15.06.10 163 1 21쪽
9 9화. 호르리텐시아 수비전 -1 15.06.08 265 1 10쪽
8 8화. 실패 -2 15.06.05 176 1 8쪽
» 7화. 실패 -1 15.06.01 177 1 6쪽
6 6화. 남 랑시에의 불꽃 작전 15.05.15 178 1 9쪽
5 5화. 탈출 15.05.01 199 1 11쪽
4 4화. 미첼 아델라이다 15.04.22 159 1 9쪽
3 3화. 발라를 좇는 자 15.04.20 217 1 11쪽
2 2화. 호르리텐시아 공략전 15.04.20 184 1 15쪽
1 1화. 순백의 장군 +4 15.04.20 387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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