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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 님의 서재입니다.

용과 전생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sung1354
작품등록일 :
2017.11.23 17:33
최근연재일 :
2019.02.13 12:30
연재수 :
93 회
조회수 :
11,431
추천수 :
165
글자수 :
641,611

작성
17.12.27 19:03
조회
81
추천
1
글자
21쪽

학교 돌아가기

DUMMY

순간 그 자리에는 정적만이 자리했다. 나는 뭐라 해야할지 모를 감정으로 티아리스를 바라보았다.


나는 티아리스가 남자를 찬 이유가 사람을 죽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남자가 사람을 죽인 건 독단이고 티아리스의 뜻이 아니었다고.


하지만 아니었다. 티아리스는 눈앞의 시체에는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공포나 두려움은 물론이고, 미안함이나 분노마저도.


전장에서 구를 만큼 구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결코 십대의 예쁜 소녀가 가질 만한 태도는 아니었다.


그때, 누군가가 정적을 깨고 말하려고 했다.


“이, 이런 미...”


“전부 체포해라!”


누군가가 다시 그 말을 끊으며 소리쳤다. 그 목소리는 먼저 말한 사람보다 훨씬 컸다.


목소리의 주인은 티아리스의 뒤에서 들어온 또 다른 남자였다. 그 남자 뒤로는 무기를 든 수십 명의 사람들이 추가로 들어오고 있었다.


문득 소녀가 나타난 것 때문에 잊고 있던 사람, 남자2가 말했다.


“경, 경비대장 님?”


나는 시선을 잠깐 남자2쪽으로 했다가 다시 경비대장이라고 불린 남자 쪽으로 돌렸다. 저 사람이 경비대장인가.


확실히 카리스마 있는 인상이었다. 두꺼운 강철 갑옷을 입고도 자유롭게 움직이는 모습으로도 강함을 알 수 있을 것 같았고.


다만 어쩐지 다급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당신이...”


“닥쳐라! 이놈!”


경비대장은 보스놈을 향해 달려가던 중에 남자2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남자2가 무언가를 말하려 하자 배를 쳐서 막았다.


“커헉!”


“내가 그동안 너희를 방치했던 게 내 사리사욕 때문인 줄 알았느냐! 멍청한 소리! 너희들이 주변 조직을 손에 넣길 기다려 일망타진하기 위함이었다!”


쓸모없을 정도로 길었다. 거기다 남자2쪽이 아니라 이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티아리스를 보며 한 말이었다.


...한패였구만.


한 나라의 경비대장이 범죄 조직과 손잡다니! 라고 하기에는 내가 이 나라에서 썩은 꼴 본 게 너무 많다. 별 감정은 들지 않았다.


퍽! 퍽!


남자2와 그 옆에 있는 놈을 각각 머리 한 방으로 제압한 경비대장은 나를 보며 말했다.


“니놈이 할리인가?”


“예.”


“윌리엄 님의 앞이다! 얼굴을 드러내라! 칼은 내려놓고!”


나는 아직도 후드를 쓰고 있는 채였다. 아차 하고는 나이프 먼저 내려놓고 후드를 벗다가 움찔해서 티아리스를 바라보았다.


잠깐. 이걸 쓰고 있었는데 어떻게 내가 할리란 걸 알았지?


“‘어떻게 내가 할리란 걸 알았지?’라는 눈이네?”


눈치도 좋구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알아내다니.


나는 일단 후드를 마저 벗고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티아리스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티아리스는 살짝 볼을 부풀렸다. 여전히 눈은 무표정을 유지한 채인지라 위화감이 장난이 아니다.


“대답은 안 하는 거야?”


“제가 어떻게...”


“아, 형식적인 건 됐어. 그래서 할리.”


티아리스는 내 말을 끊고 볼을 다시 원상태로 돌렸다.


“너를 찾고 있었어.”


“...”


빌어먹을. 아까 가슴을 본 게 그렇게도 짜증났나. 신경 안 쓴다고 해놓고선 제기랄.


“아까 전 일이 도저히 잊히지 않아서 찾으러 갔거든. 그랬더니 방에는 완전 약했던 녀석만 있고. 거기다 짜증나게 울면서 제대로 대답도 못 해가지고. 겨우겨우 브릿이라는 녀석한테 찾으러 갔거든. 그 다음에는 뭐, 상단부터 시작해서 여관, 여러 곳에 물어물어서 겨우겨우 찾아온 거야.”


그렇게도 원한이 깊었냐! 그냥 경비대장한테 말만 해놓으면 되잖아! 젠장!


나는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 강철 갑옷을 입은 사람은 다섯. 실력은 어떨지 몰라도 최소 2단계에 이른 사람이 다섯이라는 소리다. 그리고 중에 한 명은 수도의 경비대장.


거기다 무기를 든 수십 명의 사람. 아마 경비병이겠지. 각이 잡혀 있는 모습이 깡패들처럼 쉽게 처리할 수 없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게 했다.


마지막으로 아까 티아리스한테 덤벼들었던 깡패를 베어버린 남자. 여전히 티아리스 뒤에 서 있었지만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존재감이 희미했다. 솔직히 이길 자신이 없는 사람이다.


결론. 도망갈 곳이 없다.


“거참, 왜 도망간 거야. 찾는데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럼...”


나는 순순히 무릎을 꿇었다. 티아리스를 올려다보며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티아리스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응? 왜 그래? 지쳤어?”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다. 티아리스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여전히 얼굴에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다. 목소리에도, 몸동작에도 감정이 드러나는데 얼굴만은 무표정이다.


날 용서할 생각이 없다는 거겠지. 젠장, 어떻게 도망치지... 같은 건 나중에 생각하고 절했다.


“죄송합니다!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응?”


눈만 살짝 들어 보니 티아리스는 반대쪽으로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소녀답고 귀여운 동작이었지만 여전히 얼굴만은 무표정이었다.


아, 젠장. 젠장.


소녀는 그런 내 눈길을 봤는지, 못 봤는지 내 머리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니가 나한테 잘못한 게 있던가?”


그걸 내 입으로 말하면 괘씸죄로 추가할 생각이겠지!


“그, 시험 전에...”


“아. 가슴 본 거 말이야?”


그걸 말하냐? 말로 내뱉는 거냐? 아직 20살도 안 된 소녀니까 좀 부끄러움을...


“그건 정말로 신경 안 쓰는데.”


“...예?”


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눈을 껌뻑거렸다. 티아리스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경비대장에 기사 5명에, 병사 수십 명에, 뒷짐을 선 채 티아리스의 뒤에 서 있는 존재감 없는 남자.


“...그럼 무엇 때문에 저를 체포하러 온 건가요?”


“딱히 이 사람들은 너 때문에 온 게 아닌데? 이 사람들은 저 녀석들을 잡기 위해서 온 거야.”


티아리스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묶여서 한곳에 집결된 깡패놈들이 있었다.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돼서 깡패놈들을 바라보았다. 말을 들어 보니 한 패였던 것 같은데. 왜 이 타이밍에 이놈들을 잡으러 온 거야?


“아니지. 어떤 의미에서는 너 때문에 온 게 맞나?”


“어떤 의미?”


나는 티아리스의 말 중에 단어 하나를 따라했다. 티아리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니가 이곳으로 갔단 걸 알았을 때, 아무래도 니가 이 녀석들을 싫어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경비대장을 같이 불러서 왔어.”


“예. 그러니까...”


나는 티아리스의 말을 해석하고도 알 수가 없어서 되물었다.


“...절 위해서 이 사람들을 불러온 건가요?”


“응. 그렇지.”


“왜 그런...”


티아리스는 투덜거리듯 말했다.


“아까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니가 끊었잖아.”


“죄송합니다.”


“됐어. 잘 들어. 할리, 난 널...”


나는 티아리스가 말을 집중해서 들었다. 티아리스의 입이 천천히 움직였다.


“할리이!”


티아리스의 말이 아니었다. 티아리스가 이번엔 또 뭔가 하고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꽤 여성스러운 인상의 백발의 소년이 울며 달려오고 있었다.


미아드였다. 나를 붙잡은 미아드는 울며 말했다.


“으앙. 인사도 안 하고 가버리는 게 어딨어. 나쁜 자식아.”


“야. 잠깐만. 미안한데 지금은 더 중요한 이야기가 있단 말이야.”


가까스로 미아드를 떼어내고 보니 티아리스는 골치가 아픈 듯 머리를 붙잡고 있었다. 크게 기분이 나쁜 것 같지는 않았지만 계속해서 무표정만 짓고 있으니 혹시 모른다.


나는 사과하고 이야기를 계속하려 했다.


“할리이!”


“일단 학교로 돌아와. 거기서 이야기를 계속하자. 어차피 나도 옷은 갈아입어야 하고.”


“예.”


시간차로 뛰어든 브릿을 보며 티아리스가 말했다. 나도 불만은 없었으니 승낙했다. 어차피 지금은 이야기를 못할 것 같다.


티아리스는 뒤돌아서 문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존재감이 흐릿한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브릿은 눈을 닦으며 말했다.


“다행이다. 티아리스가 용서해줘서. 이걸로 같이 학교를 다닐 수 있겠네.”


“어. 응. 그렇네.”


난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그렇다고 대답했다. 사실 아직 정말로 용서해준 건지도 이 녀석들 때문에 못 들은 상황이고.


“그보다 니들은 이곳에 어떻게 있는 거야?”


“티아리스가 너를 찾아갈 거란 말을 듣고 바로 외출 허락을 받았어. 미아드도 나랑 같이.”


“그렇구나.”


나는 계속해서 달라붙으려는 미아드를 떼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미아드를 강하게 밀어냈다.


“좀 가봐. 이것아.”


“으앙!”


미아드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울음소리를 냈다. 그틈에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무릎을 털고 미아드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만 울어. 임마.”


“흑흑. 그치만...”


미아드는 눈물을 멈추지 않고 말했다.


“너무하잖아. 인사도 안 하고 가버리다니."


“그건 미안하다니까. 그만 하고 일어나봐. 응?”


“으아앙.”


미아드는 일단 내 손을 잡고 일어섰다. 여전히 눈물은 그치지 않았지만.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미아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알겠어. 정말 미안해. 다시는 말 안 하고 가버리지 않을게.”


“으에엥. 난 너도 할머니처럼 사라져 버리는 줄 알고...”


“미안하다니까. 정말로.”


나는 미아드가 뭔지 모를 아픈 추억을 말하지 않도록 꼭 안아주었다. 잠시 후. 미아드가 울음을 그쳤다.


“...진짜 이제 다시는 가면 안 돼.”


“알겠어. 알겠어.”


옆에서 브릿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하하, 미아드는 울보구나.”


“무, 무슨 소리야! 브릿 너도 울었잖아!”


“으. 그, 그건...”


치고 들어간 미아드의 반론에 브릿이 할 말을 찾았다. 미아드의 째려보는 눈동자를 본 브릿은 황급히 말했다.


“마음의 땀이야!”


“...”


“...”


“둘 다 거기서 침묵하지 말란 말이야!”


나와 미아드의 감정 없는 시선에 브릿이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나와 미아드는 키득키득 웃었다. 브릿은 불만스러운 듯이 바라보다가 결국 고개를 젓고는 웃었다.


한참을 웃은 나는 둘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아, 그래. 다시 한 번 미안해. 사과할게.”


“응. 용서해줄게.”


“이 브릿 님이 특별히 용서해주마.”


“거만 떨지 마. 이것들아.”


우리는 계속해서 웃으며 학교로 향했다. 방금 전까지 싸움을 벌였던 나지만 기분은 좋았다.


재미있는 녀석들이랑 있으니까. 원래 학교는 지나가는 길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 녀석들이랑 같이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학교로 건물을 나서서 뒷골목을 걷다가...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응? 왜 그래?”


“아니, 가방을 두고 와서. 나이프하고.”


내 짐이 전부 들어 있는 가방이었다. 나이프는 아버지한테 받은 소중한 거고. 두고 갔다가 깡패 놈들의 물품이라고 취급되어서 버려지면 곤란한데.


“잠깐 갔다 올게. 기다리고 있어.”


“그럼 나도 갈래.”


미아드의 동행 요청에 브릿 쪽을 바라봤다. 브릿은 고개를 저음으로써 싫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괜찮겠어? 둘이라면 모를까. 뒷골목은 위험한데.”


나의 걱정스럽다는 표정에도 브릿은 자리에 탁 앉았다.


“됐어. 티아리스가 가는 곳을 졸졸 따라가다 보니 다리도 아프고. 조금 쉬고 있을 테니까 빨리 갔다 와.”


“그럼 너도 같이 있는 게 어때?”


미아드는 고개를 세차게 젓고는 내 팔에 팔짱을 끼었다.


“싫어! 그러다 도망치면 어떡해!”


“안 도망친다니까 그러네.”


미아드의 뜻은 변하지 않았다.


“안 놓칠 거야!”


“에휴. 그래, 뭐. 잠깐 동안인데 뭔 일 있겠어?”


말해놓고 보니 ‘죽음의 깃발’이라는 걸 깨달아서 브릿을 바라보았다. 아예 드러누운 모습이 일어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그냥 빨리 갔다 오자. 나와 미아드는 온 길을 되돌아서 걸어갔다. 그러는 와중에도 팔짱은 여전히 낀 채였다.


“답답한데 좀 빼지?”


“싫어.”


“에휴. 누가 보면 니가 날 좋아하는 줄...”


“무, 무슨 소리야! 난 남자인데!”


미아드의 당황한 목소리에 예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 맞아. 요새는 완전 잊고 있었지만 얘는...


“그래. 뭐. 마음대로 해라.”


“...그냥 뺄게.”


나의 관대한 말에도 미아드는 팔짱을 빼버렸다. 어쩐지 얼굴이 조금 붉어진 것 같다. 브릿과 비슷해 보이면서도 다른 방향의 빨강이었다.


의식적으로 그 의미를 해석하지 않으며 걸었다. 곧 포박된 채 끌려 나오는 수십 명의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눈을 돌렸다. 나에 대한 공포가 뼛속까지 새겨져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런 건 아주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내 가방을 찾아다녔다. 아까 문 앞에 놔뒀는데 없네? 두리번거리다 문 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병사 한 명한테 물었다.


“죄송합니다. 혹시 이 건물에 있던 물품들이 어디로 가는지 아시나요?”


“아. 그건 대장님한테 가져간 뒤, 수레를 끄는 역할이 옮길 예정입니다. 일단은 대장님한테 가보시는 게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자세히 설명을 해준 병사의 친절에 감사를 표한 뒤, 경비대장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경비대장의 옆에는 물건이 가득 쌓여 있었으니까.


경비대장은 짐들을 살펴보면서 무언가를 발견할 때마다 품에 넣고 있었다.


“경비대장님.”


“누구냐! 이런 중요한 시간에!”


경비대장은 호통을 치며 일어났다가 부른 사람이 나란 걸 깨닫고 움찔했다. 나는 비웃음을 숨기려고 노력하며 물었다.


“무얼 하고 계셨는지요?”


“아, 짐을 옮기는 병사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귀중품을 미리 보관해두는 중이었네.”


변명을 하려면 똑바로 하지? 아니면 전리품 정리와 비리의 증거를 없애는 중이라고 솔직하게 말하던가.


나는 비웃음을 참기 위해 최선을 다해 표정 관리를 하며 말했다.


“그러시군요. 저는 제가 두고 간 물건을 찾으러 왔습니다만.”


“찾아보게나. 나이프는 보관 중이었네.”


경비대장은 품에서 나이프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넸다. 나는 혹시 이것도 팔려고 했던 게 아닌가 의심하며 나이프를 받아들었다.


경비대장은 나이프를 건네고는 바로 자기 일로 돌아갔다. 나는 탐욕에 빛나는 눈깔은 보고 싶지 않았기에 빨리 짐을 뒤졌다.


있는 것의 대부분이 싸울 때 본 것들인데 한곳에 모아서 보니까 이렇게 많았나 싶었다. 찾는데 좀 걸렸다.


“아, 여기 있네.”


나는 짜증나게 많은 물품들 속에서 가방을 찾아냈다. 그리고 내 가방 생김새를 기억 못해 대기하는 미아드를 보며 입을 열려고 했다.


“검술학교 수험생이라고 들었는데.”


오늘따라 이상하게 사람들의 말이 많이 끊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바라본 곳엔 보스놈이 있었다.


혼자만 자기 부하들과 다른 곳에 있었다. 유일하게 제대로 검술을 배운 놈이니까 위험해서 여기 둔 건가? 정작 감독해야 할 경비대장놈은 놀고 있지만.


“그렇게 안 봐도 도망 안 갈 테니까 걱정 마라.”


보스놈은 내 눈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었다. 뭐, 도망치든 말든 내 관심 밖이다.


“관심없어.”


진심을 담아 말하며 뒤돌았다. 보스놈이 키득키득 웃었다.


“하긴, 잘나신 분들이 나 같은 놈이 살아 있는 말든 무슨 상관이겠어?”


살짝 비꼬는 기가 느껴졌지만 패자의 절규일 뿐. 나한테는 아무 의미도 가지지 못했다.


“할리한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다만 미아드한테는 아니었던 것 같다. 미아드는 분노해서 보스놈한테 소리쳤다. 내가 말리기도 전에 미아드가 소리쳤다.


“우리도 너랑 같은 평민이야! 그리고 할리가 잘못했다는 듯이 말하지 마! 나쁜 건 너잖아!”


“하, 같은 평민이라고!”


보스놈은 여전히 여유를 부렸다. 콧방귀를 뀌고는 비웃음을 지으며 나한테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평민이라고 다 같은 평민이냐? 저 녀석 같은 천재하고는 피가 다르다고. 피가.”


“재능 같은 건 중요한 게 아냐!”


“...뭐?”


그 말에 보스놈의 얼굴이 굳었다. 미아드는 그걸 눈치 채지 못하고 말을 이으려고 했다.


“니가 강하지 못한 건 니 노력이...”


“닥쳐! 이 개새끼야아!”


그 목소리에 이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이쪽을 쳐다보았다. 그만큼 큰 목소리였다.


그걸 바로 앞에서 들은 미아드는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시바알! 하루에 10시간씩 매일 뛰었어! 눈이고, 비고, 잠을 자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뛰었다고! 재능이 없어서 종자에서 떨어져도! 당장 먹을 빵이 없어도 뛰었다고! 제기라알!”


보스놈은 한 마디를 할 때마다 소리치듯이 크게 말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큰 소리다. 그야말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소리치고 있는 것 같다.


“노력! 할 수 있는 만큼 했다고! 정말로 노력했다고! 남들보다 못하니까! 따라갈 수 있으려고 죽도록 뛰었다고! 근데도 2단계가 안 됐단 말이야아!”


어느새 경비대장 놈마저도 이곳을 보고 있을 정도니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보스놈은 거기까지 말하고 헉헉댔다. 잠깐 동안 호흡하고는 비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있잖아? 평민이라도 상관없잖아? 재능만 있으면. 그런데 평민인데 재능도 없는 놈은 어쩌란 거야?”


“...”


“니가 얻어낸 건 니 노력으로 얻어낸 것 같아? 웃기지 마. 만약 너한테 재능이 없었...”


듣자듣자 하니 아예 애의 정신을 부셔버릴 것 같길래 차버렸다.


“커헉!”


“적당히 해라.”


난 보스놈을 싸늘하게 내려다보며 미아드를 잡아끌었다.


“가자.”


“...”


나는 그래도 따라오지 않는 미아드를 강제로 끌고 갔다. 힘을 주자 결국 미아드도 따라왔다.


뒤에서 보스놈이 소리쳤다.


“그래! 나 같은 밑바닥 놈은 그만 사라져 줘야지! 하하핫!”


“닥쳐! 이 자식아!”


뒤늦게 달려온 경비대장이 보스놈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 그치만 이미 들을 말은 다 들은 상태였다.


미아드와 나는 말없이 걸었다. 미아드는 고개를 숙인 채 우울한 분위기를 둘렀다. 1분 정도 걷다가, 미아드가 입을 열었다.


“할리.”


“일단 미안.”


오늘은 나도 말 끊는 역할로 참가하기로 했다. 미아드는 내가 사과하자 고개를 들었다.


“왜 니가 사과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음성이었다. 하루 중에 두 번이나 우는 아이를 달래는 건 싫었기에 말했다.


“요즘에 보니까 니 정신력이 너무 약한 것 같아서. 좀 단단하게 해주려고 듣게 했는데. 큰 상처를 입힌 것 같네.”


“아냐. 내가 들어야 할 말이었으니까.”


“그건 그렇지. 솔직히 그 정도 도발 정도로 울 것 같은 얼굴은 좀...”


“내 정신력 문제보다 다른 게 있잖아!”


미아드는 눈에 눈물을 그렁거렸다. 아, 일단 달래기부터 할 것 그랬나. 직구보다는 일단 감싸기부터 했어야 됐는데.


내가 고민하는 동안 미아드가 말했다.


“난... 너무 세상을 쉽게 보는 걸까?”


“무슨 소리야?”


갑자기 왜 자신의 가치관까지 나오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미아드는 진지했다.


“기사가 되려고 했으면서 정작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항상 너한테 도움만 받고. 그동안은 기사가 되려는 노력도 안 했고.”


“야.”


미아드는 말하면서 점점 고개를 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런 미아드의 얼굴을 붙잡고 나한테 끌고 왔다.


“잘 들어. 이 멍청아.”


나는 우는 애를 달래야 하는 귀찮음이라던가, 미아드가 여기서 울 경우 생길 문제는 생각지 않고 말했다.


“솔직히 니 말 다 맞아. 넌 아무것도 모르고. 나한테 도움만 받고 있고, 그동안은 노력도 안 했지.”


빡.


미아드는 천천히 시선을 내리자 박치기를 날렸다.


“아야!”


“끝까지 들어. 임마.”


미아드가 눈물 고인 눈으로 원망스러운 듯이 바라보는 것 따윈 시원하게 무시했다.


“그래도 여기 온 동안은 최선을 다 했잖아?”


“...”


미아드가 침묵하자 나는 머리를 붙잡고 있는 손 중에 하나를 떼서 머리 위에 올렸다.


“넌 최선을 다 했어. 내가 널 처음 가르치기 시작한 날부터 지금까지.”


그날, 처음 미아드가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던 날. 미아드는 일어났다. 울면서도 일어났다.


그 후에 쓰러졌을 때도. 그 후도.


“그거면 됐지. 그딴 놈 말 신경 쓰지 마.”


난 미아드의 머리를 천천히 쓸었다. 백색의 머리의 감촉을 즐기며 냉정하게 평가했다.


아, 에라 보고 싶네. 걔가 더 감촉이 좋은데.


“...응. 고마워.”


난 순간 떠오른 잡생각을 지우며 미아드를 보았다. 미아드는 눈가를 옷으로 닦으며 웃었다.


“그만 가자. 브릿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아, 잊고 있었네.”


“너도 참.”


미아드는 맑은 웃음소리를 내며 앞장섰다. 나도 흐뭇한 표정으로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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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2권 마지막화 18.01.22 71 1 16쪽
48 합격 18.01.19 93 2 17쪽
47 왕립 검술 학교에서의 일상 18.01.16 87 1 16쪽
46 드디어 3차 테스트 18.01.12 90 1 15쪽
45 강한 정신 18.01.09 76 1 17쪽
44 미아드와 포기 18.01.08 87 2 16쪽
43 테스트 전에 18.01.04 88 1 17쪽
42 할리의 수련 18.01.03 83 1 20쪽
41 제안 18.01.01 421 1 13쪽
40 티아리스 1차전 18.01.01 85 1 14쪽
» 학교 돌아가기 17.12.27 82 1 21쪽
38 깡패 죽이기 17.12.26 93 1 16쪽
37 깡패들 패기 17.12.24 88 2 15쪽
36 화풀이 17.12.23 72 2 18쪽
35 포기 +2 17.12.17 105 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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