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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 님의 서재입니다.

기(氣)를 만지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임종
작품등록일 :
2017.06.18 08:23
최근연재일 :
2017.07.26 13:54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40,528
추천수 :
407
글자수 :
123,169

작성
17.07.24 08:37
조회
647
추천
8
글자
11쪽

30화-혈향(血香)

DUMMY

주작대원들은 수련동으로 복귀했다.


이번 입동은 허진도 함께했다. 다만 그는 같은 수련생 신분이 아닌 대주로서 대우를 받았다. 물론 웅비는 아직 정식으로 임명받은 것이 아니라 그들과 같은 수련생이었다.


그들은 광장에 모여 오랜만에 몸을 풀었다.


허진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면밀히 살폈다. 오전 심법 수련이 끝나자 두 번째로 들어온 수련생들은 동관들의 가르침 아래 검법을 배웠고, 그들을 제외한 초기 수련생들은 각자 개인 수련에 들어갔다.


그러자 지켜만 보던 허진이 움직였다. 그는 동관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더니 광장 중앙에 서서 주작대원들 전부를 불러 모았다.


웅비도 예외 없었다.


"너희에게 할 말이 있다."


"알겠습니다!"


"오늘부터 새로운 검법을 배울 것이다."


다들 어리둥절하기 시작했다.


"다른 무공을 가르쳐 주시는 겁니까?"


왕소는 여전히 손을 들고 말했다.


"그렇다. 너희가 쓰는 청룡검법은 불필요한 동작이 많다. 해서, 새로운 검법은 청룡검법을 기본으로 하되 지금까지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


"한번 견식 해볼 수 있습니까?"


허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검을 뽑았다.


검은 천천히 휘둘러지기 시작했다.


청룡검법과 비슷하면서도 확연히 다른. 강맹하면서도 부드럽게 허공을 난무한다.


빠른 속도로 휘둘러지던 검은 점차 내공을 먹어갔고, 푸른 검광은 허공에 아름답게 수를 놓기 시작했다.

마치 화산파의 매화검법처럼 흩날렸고, 무당파의 태극검처럼 부드럽게 흘러갔다.


수련생들은 그의 고강한 경지에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갑자기 우뚝 선 허진. 절정을 향하던 검법은 마지막 한 수 없이 애매하게 끝났다.


참았던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허진.


"내가 만든 건 여기까지다."


"대주님께서 직접 창안하신 겁니까?"


"그렇다. 청룡검법의 기본을 바탕으로 만들어보았다. 청룡검법은 허점도 많고, 불필요한 동작이 많다. 또한, 지금까지 배운 청룡검법으론 청룡대, 현무대, 백호대 중 그 어느 곳도 넘어서지 못한다."


청룡대주 장국만 봐도 수십 년 동안 청룡검법이란 한 우물을 팠다. 그러면서 그도 무언가 부족하다는 걸 알아차렸으리라.


청룡대의 검법은 그들이 알던 것과 조금 달랐다. 백호대나 현무대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많이 부족한 검법이다. 그러나 모두 합심해서 검법을 완성해 나간다면 분명히 청룡관을 대표할 수 있는 최고의 무공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검법을 완성하는 날이 우리 주작대가 수련동 밖으로 벗어나는 날이 될 것이다."


모두의 눈빛이 반짝였다. 강해지는 것도 좋았지만 다들 이 지긋지긋한 수련동을 벗어나고 싶어 했다.


수련생들은 검법을 향한 눈빛이 더욱 뜨거워졌다. 허진이 쉽게 펼치는 모습에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아 금방 배울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막상 한두 번 휘둘러보니 기존 청룡검법보다 훨씬 난해해서 다들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둥지둥해댔다.


휘청휘청하며 허공을 휘날리는 검들은 무척이나 어색하고 불편해 보였다.


그런 그들에게 허진은 한 사람씩 차근차근 지도했다.


검법을 구경하던 웅비는 허진에게 따로 말해 혼자 수련하기로 했다. 애초에 수련방법이 달라 같이 해봤자 그들에게 방해만 될 뿐이었다.


웅비는 새로운 검법보다 강해지려는 그들의 발돋움을 부러워했다.


웅비의 실력은 어느 순간부터 멈춰있었다. 한계를 벗어나려 누구보다 열심히 수련했지만, 어딘가 벽에 가로막혀 있는 느낌이 들었다.


대기 중에 기의 농도가 점점 짙어져 웅비가 다룰 수 있는 기의 양이 많아져도, 그만큼 다른 이들도 강해졌다.


부족했다. 무의미한 수련을 버리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웅비는 일단 가장 기본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부터 생각했다.


'첫째. 기를 만질 수 있는 것.'


웅비의 손은 허공에 있는 기를 쓰다듬었다.


'둘째. 기를 뭉치는 것.'


주변의 기가 회오리치며 웅비의 손 위에서 뭉쳐 주먹만 한 구체를 형성했다. 그러나 이 방법은 효율적이지 못했다. 일반 단전의 기보다 더욱더 단단히 뭉쳐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셋째. 기를 이용해 무언가를 움직일 수 있는 것.'


주변의 돌과 목검이 공중에 떴다. 웅비가 들 수 있는 무게는 성인 남자 정도.


이 정도 힘으로는 내공을 가진 이들에게 그저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밖에 안됐다.


'넷째. 주변 사물을 인식하는 것.'


웅비는 기를 움직여 주변의 움직임을 느꼈다. 그러자 광장에서 수련하는 이들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정리하면 이렇다.


웅비는 그동안 여러 수련 중 기를 집약시키는 연습을 가장 많이 했었다.


그러나 생각해본 결과 아무리 열심히 수련한다 해도 단전에서 뽑아내는 정순한 내공보다 단단하고, 강해질 수 없었다.


웅비가 실전에서 활용할만한 건 검이 날아오는 경로를 느끼고, 기로 검의 방향을 틀어내는 것.


박투술 하나를 믿고 여기까지 왔지만, 검으로 산을 부수고 강을 갈라내는 무림인들을 상대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대책을 세워야 했다.


깊은 생각에 빠진 웅비는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대기 중의 기를 만질 수 있다면. 상대방의 단전에서 흘러나오는 기도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한참을 생각하던 웅비는 휴식시간에 방무한을 찾아갔다.


덩치 큰 남자가 자신의 앞에 그림자를 드리우자 방무한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지?"


까탈스러운 말투였다. 그러나 웅비는 그가 악의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뭐하나만 부탁하자."


"뭔데."


"검강좀 보여줘라."


뜬금없는 부탁에 방무한의 얼굴엔 황당함이 물들었다.


"갑자기 검강은 왜?"


"뭣 좀 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어찌 보면 정말 무례한 부탁일 수 있었다.


"정확한 이유를 말해봐."


웅비는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만져보려고."


"뭐?"


"만져보고 싶다고 네 검강을!"


웅비의 황당한 소리에 방무한의 무표정하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랑 지금 장난하는 건가?'


기분이 상한 방무한은 더 쏘아붙이려다 참았다. 웅비 평소 성격이 당유원처럼 장난스러웠다면 당장 화를 냈을 것이다.


그러나 한껏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웅비의 모습에 방무한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칠 수도 있다."


"각오하고 있어."


웅비는 씩 웃으며 말했다.


말과는 달리 여전히 고민하는 방무한에게 웅비가 재촉했다.


"우선 검기부터."


방무한의 검에서 반투명한 노란 검기가 부드럽게 뿜어져 나오며 검 주위를 희미하게 감쌌다.


웅비는 손을 들어 천천히 갖다 대기 시작했다.


웅비의 손이 다가오자 방무한은 침을 꿀꺽 삼켰다. 다치는 건 웅비였지만 긴장은 방무한이 하는 것이었다.


검기에 웅비에 손이 닿았다.


당장에라도 손이 베여 피가 콸콸 흘러나올 것 같았지만 생각과 달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생각보다 별거 없는데?"


"하.에


방무한은 웅비의 묘기에 기가 막혔다.


웅비는 손을 떼고 자신의 손바닥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의 손은 전과 다름없이 깨끗했다.


"검강도 한번 가보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방무한 이었다.


우웅하는 소리의 공명이 들리며 방무한의 검에 노란강기가 짙게 뿜어져 나왔다.


웅비는 이번에도 조심히 손을 댔다.


아까와는 달리 손에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강기는 웅비의 손을 당장에라도 집어삼키려는 듯 보였다.


웅비가 눈을 감고 집중하기 시작하자 방무한은 자신의 진기의 흐름이 바뀌며 내공이 웅비의 손에 흡수되는 느낌이 들었다.


정확히는 웅비의 손이 아니라 손을 타고 허공으로 흩어졌다. 점점 허공으로 뿜어지는 내공이 많아지자 방무한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검강을 거뒀다.


"이게 대체 뭐야?"


당황한 방무한의 음성이 들렸다.


웅비는 벌게진 손바닥을 털어냈다.


"내 비장의 무기."




어두운 산속 복면을 하고 있는 무리와 허진학과 태사경은 희미한 달빛 아래 목숨을 건 생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팽팽했다. 수적으로 차이가 있었으나 허진학의 검술이 빛을 발했다. 그의 검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복면인들의 검을 쳐냈다.


여러 각도에서 기묘하게 날아오는 검도 예외는 없었다.


그러나 그의 검은 거기까지였다. 복면인들의 틈을 파고들어 베어버릴 만큼 실력이 충분하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허진학이 약한 건 아니었다. 그만큼 그들의 실력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허진학들은 불리해졌다. 내공과 검술 실력이 비슷하다면 결과를 가르는 건 체력이었기 때문이다.


허진학은 복면인들의 수적 우위를 가진 전술에 점점 지쳐갔다.


물론 태사경도 열심히 검을 휘둘렀다.


그가 휘두르는 검은 충분히 매서웠다. 복면인들의 빈틈을 기가 막히게 잘 노렸지만, 번번이 맥없이 막혔다. 공격이 너무나도 단조로웠기 때문이었다.


복면인들은 허점을 찔려도 뻔히 보이는 수에 당할 만큼 약하지 않았다.


수세가 점점 불리해지자 태사경이 갑자기 주변에 있는 모두가 들릴 만큼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러자 태사경의 몸과 얼굴에 핏줄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몸도 같이 팽창하는지 넝마가 된 옷 사이사이로 부풀어 오르는 근육들이 보였다.


어두운 달빛 아래 기묘한 무공을 쓰는 태사경을 향해 한 복면인이 말했다.


"수라광혈기공?"


수라광혈기공은 살곡의 무공이었다. 이 무공은 잠력을 일순간 폭발시켜 강한 힘을 뽑아내는 마공이었다.


그러나 태사경의 모습은 그들이 알던 무공과 조금 달랐다. 청년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세는 비슷했지만, 그가 눈이 빨개지거나 뇌성이 마비되어 보이지 않았다.


전세는 달라졌다. 단조로웠던 태사경의 검은 속도가 이전 같지 않아 피하기 쉽지 않고, 쳐내자니 검에 담긴 무게가 너무나도 묵직해졌다.


더군다나 허진학도 아직 힘을 남아 있었다.


당황한 복면인들은 하나둘씩 청년과 허진학의 검에 쓰러지기 시작했다.


밤이 점점 깊어졌고 달은 구름에 가려 어두운 산속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었다.


그 어둠 아래 피를 뿌리고 나뒹구는 시체들 사이 세 명의 신형이 있었다. 복면인들은 우두머리밖에 남아 있지 않고 허진학의 검이 그의 목에 닿아있었다.


태사경은 이미 모든 힘을 소진해서인지 자리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내뱉고 있었다.


허진학이 그에게 말했다.


"살겁을 저지른 이유가 무엇이냐."


복면인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알 필요 없다."


이미 포기한 것일까. 그는 죽음 앞에서 두려워 보이지 않았다.


"시체가 마른 이유는 무엇이지? "


"죽여라."


더 말할 생각이 없는지 복면 사이로 보이는 눈이 감겼다.


허진학은 팔을 휘둘러 검으로 목을 갈랐다.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지독한 혈향이 주변을 맴돌았고, 들짐승이 피 냄새를 맡고 하나둘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허진학은 퍼져있는 태사경을 부축해 자리를 벗어났다.


태사경은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온몸에 힘이 없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들의 신형은 천천히 사라졌고, 저 멀리 어둠 속에서 허진학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청룡관으로 가자. 네 복수를 도와주겠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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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29화-피로 쓰는 주작대 +3 17.07.21 759 11 12쪽
29 28화-흔적을 쫓다. +2 17.07.19 914 9 12쪽
28 27화-비무대회(5) +2 17.07.17 1,008 11 9쪽
27 26화-비무대회(4) +3 17.07.14 1,003 9 8쪽
26 25화-비무대회(3) +2 17.07.12 990 11 9쪽
25 24화-비무대회(2) +3 17.07.11 993 11 9쪽
24 23화-비무대회(1) +3 17.07.10 861 9 8쪽
23 22화-포기로 얻어낸 이득 +3 17.07.09 964 11 9쪽
22 21화-청룡검룡 허진(3) +3 17.07.07 931 9 9쪽
21 20화-청룡검룡 허진(2) +2 17.07.06 995 8 11쪽
20 19화-청룡검룡 허진 +1 17.07.05 969 8 9쪽
19 18화-수상한 움직임 +1 17.07.04 1,062 10 10쪽
18 17화-새로운 만남 +3 17.07.03 1,067 10 9쪽
17 16화-성장하는 그들 +1 17.07.02 1,149 11 10쪽
16 15화-웅비 수련을 시작하다 +1 17.06.30 1,202 14 9쪽
15 14화-끝없는 피의 서막 +2 17.06.29 1,468 1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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