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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 님의 서재입니다.

기(氣)를 만지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임종
작품등록일 :
2017.06.18 08:23
최근연재일 :
2017.07.26 13:54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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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58
추천수 :
407
글자수 :
123,169

작성
17.07.21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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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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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글자
12쪽

29화-피로 쓰는 주작대

DUMMY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민 듯 곧게 뻗어있는 나무들과 그들의 발걸음을 막는 우거진 수풀을 거칠게 헤치고 나가는 두 명의 신형이 있었다.


그들의 몰골은 꾀죄죄함이 극에 달했지만 무언가를 찾는 맹수의 눈빛만큼은 잃고 있지 않았다.


한참 동안 이어지는 별 볼 일 없는 움직임이 답답해 보일 수도 있으나 그들의 신중한 표정을 보면 결코 그리 말할 수 없었다.


흔적은 점점 찾기 힘들어졌다. 거리가 더욱 벌어졌든지 아니면 누군가 자신들을 따라오고 있다는 걸 느껴서인지 그들의 발자국과 움직임은 조심스러워 진 듯했다.


"찾았소이다!"


허진학은 태사경의 외침에 헐레벌떡 움직였다.


보이는 흔적이라고는 주변 나뭇가지가 조금 꺾여 있을 뿐.


만약 동물의 흔적이라면 거리는 더욱 멀어지게 되리라.


하나 이 흔적 말고는 찾을 수 없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동했다.


"가자."


사천에서부터 이어진 산맥은 어느새 청해로 이어졌다.


완만했던 산맥들이 점점 가팔라지고 길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삐져나온 나뭇가지들과 삐뚤빼뚤 뛰쳐나온 돌멩이들.


듣기로 청해의 산은 높고 험준하기 이루 말할 수 없어 사시사철 눈이 녹지 않는다 했다.


준비할 수 있는 게 없어 맨몸이다시피 한 그들은 이 험준한 산을 어찌 날 수 있으랴.


허진학이야 고수라 그렇다 쳐도 태사경이 걱정이었다.


그에겐 무관이나 문파에서 무공을 배운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가 사냥할 때 휘둘렀던 검술은 저잣거리 아이들도 휘두르는 삼재검법과 비슷했다. 더군다나 딱히 형을 중요시하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허진학의 생각보다 태사경의 체력이 뛰어난 것 같았다. 삐져나온 잔가지를 요리조리 잘 피해 다니고 이곳저곳 쑤셔 나온 돌멩이들 사이를 넘어지지 않고 돌아다니는 그의 모습은 무림인이 아닌 마치 잘 훈련된 사냥꾼 같았다.


흔적은 찾기 힘들었으나 한번 찾게 되면 다음 흔적은 그나마 찾기 쉬워졌다.


만약 이 흔적이 동물의 흔적이 아니라면 그들은 정말 가까이에 있다는 것일 터.


허진학과 태사경은 주먹에 불끈 힘을 쥐고 힘겹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


곤륜파에서 마교무리를 먼저 막아낸다면. 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요행을 기대해 봤지만 그러기엔 곤륜산은 너무나도 크고 깊었다.


그때 그들의 답답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도 도와주지 않았다.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허진학은 하늘을 보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나가는 비인 것 같으니 잠시 피할 곳을 찾아보자꾸나."


그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비를 피할 곳을 찾았다.


주변의 작은 동굴을 찾은 그들은 불을 피워 다닥다닥 튀는 모닥불에 몸을 녹였다.


"그래도 여기까지 오는 길 동안은 그들이 살겁을 행하지 않았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들이 언제 다시 검을 빼 들지 모른다네."


태사경은 허진학의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그들의 본거지가 점점 가까워지고, 곤륜파의 눈치를 보느라 조심히 움직이는 것 같네."


"그러다 놓치면 어떡하오?"


"그럴 일이 없게 해야지. 그들과 우리 중 둘 중 하나는 이 곤륜산에서 뼈를 묻을 것이네."


노인의 단호한 눈빛에 청년의 눈은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내 그들을 잡고 돌아간다 해도. 평생 마교의 악행을 잊지 않고 그들을 단죄할 것이오!"


허진학은 씁쓸히 웃었다.


"십만대산. 마교의 본거지도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네. 그들도 그 안에서는 누군가의 아버지, 아들이겠지."


빗소리 때문인지 허진학의 목소리는 더욱 낮게 울렸다.


"그들이 무엇 때문에 이런 살겁을 벌인 지 모르겠으나. 내 평생 알던 그들은 순수히 힘을 추구하던 자들이었네."


그 말에 태사경이 발끈했다.


"지금 그들의 행동을 두둔하는 것이오? 내 듣기로 아주 예전 마교 교단이 생겼을 때. 무림 전체가 피로 물들었었다고 들었소!"


"두둔하는 건 아니라네. 나 또한 그 이야기를 들었다네. 단지 전부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는 거네."


"이해할 수 없소. 그들은 악인이오."


허진학은 태사경의 단호한 눈빛에 고개를 내저었다.


"그들에게 잘못이 있는 게 아니라 시대가 잘못된 것이겠지."


태사경은 더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비는 생각보다 오래 왔다. 다음날 새벽까지 멈추지 않고 쏟아지던 비는 해가 뜨는 것과 동시에 언제 그랬냐는 듯 멈췄다.


그들이 우려했던 것과 달리 다행히 흔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비 덕분에 오랜만에 단잠을 잔 그들은 이른 아침부터 추격을 시작했다.




어느덧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졌음에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무리가 있었다.


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는 가던 길을 멈추고 일행을 멈춰 세웠다.


"누군가 우리를 향해 접근하고 있다."


그 말에 일행은 다들 검 자루에 손을 올리고 언제든지 발검할 수 있도록 자세를 잡았다.


검은 옷을 입고 있어서인지 그들의 모습은 어둠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다가오는 자들은 딱히 기척을 숨기거나 하지 않는지 일행들도 하나둘씩 기척을 느끼기 시작했다.


허진학과 태사경은 나무를 밟고 단번에 그들 앞에 뛰어내렸다.


그러자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는 검을 뽑으며 말했다.


"누구냐."


작은 목소리에 내공이 담겼는지 주변의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청룡관의 허진학이네. 자네들의 목을 받으러 왔네."


기다릴 것 없었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자들은 검을 뽑았다.


물론 제일 먼저 뽑은 자는 태사경 이었다.


그는 당장에라도 그들을 향해 뛰쳐나가려 했다.


그들의 수는 일곱 명.


예상과 다르게 가장 먼저 움직인 건 허진학 이었다.



아침에 일어난 주작대원들의 표정은 다들 어두웠다.


어린 나이에 동굴에서 생활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것이었다. 가족을 만나고 싶고 친구들과 밖에서 웃고 뛰어놀아야 하는 그들은 시기를 잘못 만나 동굴 안에서 죽어라 검을 휘둘러야 했다.


물론 그들은 주작대라는 것에, 청룡관의 검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다만 맛있는 음식과 포근한 잠자리가 조금 아쉬울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내 마음을 굳게 잡았다.


혼자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믿을 수 있는 동료들과 같이 가는 것이라 힘을 낼 수 있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온 주작대원은 각자 하고 싶은 걸 했다. 부모님에게 편지를 쓰는 자들과 조금 더 잠을 자려는 자들 그리고 웅비를 포함한 몇몇은 여전히 수련했다.


숙소에서 각자 할 일을 하던 그때 갑자기 그들에게 집합 명령이 떨어졌다.


그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복장을 단정히 한 뒤 검을 챙겨 재빨리 연무장으로 모였다.


연무장은 비무대와 그 많던 천막들이 어느새 다 치워져 있었지만, 방무한이 만들어놓은 작품은 무슨 일인지 아직 치워져 있지 않았다.


동관들은 그들을 향해 눈인사하며 수련생들의 상태를 하나하나 살폈다. 수련동으로 복귀하는 날이라 그런지 그들의 상태가 걱정되었던 것이었다.


총관은 그런 그들에게 말했다.


"조금 있다 관주님이 오실 것이다. 중대발표가 있다 하셨으니 다들 경청하도록."


"알겠습니다!"


몇 분 후 저 멀리 허국이 걸어왔다.


주작대원들은 관주에 대한 예를 준비했고 허국이 다가오자 기세를 내뿜으며 예를 올렸다.


"충!"


한목소리로 울리는 경례에 허국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다들 마지막 날이라 쉬고 싶었을 텐데 방해해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짧게 말하도록 하겠네. 다름 아니라 너희들의 대주가 정해졌다네."


수련생들은 그 말에 호기심이 동했다.


대주라고 한다면 그들 눈앞에 보이는 청룡대주 장국. 그는 허국 다음으로 청룡관의 존경대상이었다.


대주는 압도적인 무위는 기본이고 자신들의 목숨을 믿고 맡길만한 성품과, 망설임 없이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자여야 했다.


"허진. 앞으로."


허국의 말과 함께 뒤에 있던 히진이 그들 앞으로 튀어나왔다.


"앞으로 주작대 대주는 허진이 맡게 될 걸세."


급작스러운 결정에 당황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련생은 허국의 결정에 수긍했다. 관주의 결정인 것도 있지만 그들이 생각해도 청룡검룡 허진이라면 주작대를 명예롭게 이끌어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힘이 넘쳤다.


허진은 혹여나 수련생들이 자신을 거부할까 하여 허국의 결정을 듣고 밤새 잠 한숨 자지 못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자신을 반겨주는 목소리에 힘을 얻고 기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웅비도 딱히 싫어하진 않았다. 하지만 허진의 실력을 소문으로만 들었지 실제로 확인해 본 자는 이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었다.


웅비와 모든 이들은 허진과 꼭 한번 대련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같이 식사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보아라."


"알겠습니다."


아직 이른 점심시간이었지만 주작대원들은 동관들의 통제 하에 허진과 식사를 하러 이동했다.



주작대와 허진이 사라지고 난 후 그 자리엔 허국과 청룡대주 장국만 남아있었다.


"허진 공자님을 대주로 세우신 이유가 있습니까?"


장국의 물음에 허국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


"무엇이 궁금한 것인가?"


"제 소견으로는 웅비 공자님 또한 대주로서 부족해 보이진 않았습니다. 한데 굳이 허진 공자님을 세우신 연유가 있을 듯하여 여쭈어본 것입니다."


장국의 말에 허국은 눈을 가늘게 떴다.


"역시 예리하구먼 그래. 자네라면 알려줄 만 하지."


허국은 방무한이 만들어 놓은 작품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뗐다.


"아마 곧 여러 문파가 봉문을 마치고 나와 피바람을 일으킬 것이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현 시국을 난세라 칭할 테지."


허국은 담담히 말했다.


"하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네. 무림엔 정말 위기일지 모르겠지만, 우리 청룡관에겐 둘도 없는 기회가 될 것이네. 위기 속에서 우리는 더욱더 성장할 것이고, 우리는 이 난세를 헤쳐 나가 현 무림을 휘어잡을 것이네."


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무림에 정말 많은 눈물과 피를 흐를 걸세. 그 중심에서 우리 청룡관이 버텨나가려면 그만큼 강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 있어야 하지."


장국은 허진의 말을 끊고 말했다.


"그들이 주작대 입니까?"


"그렇다네. 그들은 난세를 평정해 평화를 만들기 위한다는 신념으로 검을 뽑을 수 있는 자들이지."


"그래서 허진 공자님을 대주로 임명하신 겁니까?"


"아닐세. 강한 마음만으로 난세를 평정할 수 없지. 신념을 가진 그들에게 잔인한 명령을 내려줄 사람. 즉 여자와 아이를 베라 명령할 수 있는,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어가라 명령할 수 있는 그런 자가 필요했네."


"그럼 그자가 허진 공자님이란 말입니까?"


허국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님이 닦아온 길일세. 내가 검을 놓고 책을 들며 야망을 꿈꾼 것, 진이가 살인에 거리낌을 갖지 않게 된 것, 웅비가 내공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것. 모두 청룡관을 위한 것이었지."


허국의 목소리는 떨어지는 낙엽들과 함께 쓸려갔다.


"이제는 그 길을 내가 걸어나가야 하네."


작가의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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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화-피로 쓰는 주작대 +3 17.07.21 762 11 12쪽
29 28화-흔적을 쫓다. +2 17.07.19 914 9 12쪽
28 27화-비무대회(5) +2 17.07.17 1,009 11 9쪽
27 26화-비무대회(4) +3 17.07.14 1,005 9 8쪽
26 25화-비무대회(3) +2 17.07.12 993 11 9쪽
25 24화-비무대회(2) +3 17.07.11 994 11 9쪽
24 23화-비무대회(1) +3 17.07.10 861 9 8쪽
23 22화-포기로 얻어낸 이득 +3 17.07.09 966 11 9쪽
22 21화-청룡검룡 허진(3) +3 17.07.07 931 9 9쪽
21 20화-청룡검룡 허진(2) +2 17.07.06 995 8 11쪽
20 19화-청룡검룡 허진 +1 17.07.05 970 8 9쪽
19 18화-수상한 움직임 +1 17.07.04 1,063 10 10쪽
18 17화-새로운 만남 +3 17.07.03 1,069 10 9쪽
17 16화-성장하는 그들 +1 17.07.02 1,149 11 10쪽
16 15화-웅비 수련을 시작하다 +1 17.06.30 1,203 14 9쪽
15 14화-끝없는 피의 서막 +2 17.06.29 1,468 1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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