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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님의 서재입니다.

잊혀진 자의 이야기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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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작품등록일 :
2023.01.06 17:04
최근연재일 :
2024.01.05 08: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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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515,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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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0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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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누군가의 의지 - 21

DUMMY

첫 번째 준결승의 열기가 식기도 전에 다음 준결승인 트리스탄과 딜런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이미 지난 대회 결승에서 맞붙었던 적이 있는 두 사람은 결승의 코앞에서 다시 운명처럼 맞닥뜨리게 됐다.


특히나 인기가 가장 많은 트리스탄의 이름을 외치는 젊은 여인들의 음성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상대적으로 딜런을 응원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고 지난 대회 결승 결과 때문에 전문 도박사들도 9 대 1로 압도적인 트리스탄의 승리를 예측했다.


지난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그림 리퍼의 일원이 된 후에도 끊임없이 노력하던 딜런이었다. 행여 결승에 올라가 체이스에게 지더라도 트리스탄만큼은 반드시 이기고 싶었다. 그는 눈을 감아 심호흡하며 첫 라운드의 공격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반대편에 자리한 트리스탄은 그리폰 성기사단의 상징과도 같은 눈이 부신 은빛 갑옷을 입고 차분하게 말 위에 올랐다. 마지막으로 투구를 건네받아 쓰면서 대기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앞선 경기를 마친 모시프가 지친 얼굴로 관람 중이었고 서지터의 모습은 역시나 보이지 않았다.


‘준결승조차 보러 오지 않는군요. 누가 결승에 올라오든 상관없다는 뜻입니까?’


트리스탄은 조금 자존심이 상했다. 상대의 분석은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서지터는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트리스탄이 몰랐던 점이 하나 있었다. 앞선 경기가 끝나자마자 서지터는 곧장 천막으로 돌아가 갑옷을 벗어 던지고 바로 경기장으로 돌아왔다. 땀도 제대로 닦지 않은 채 서둘러 달려온 서지터는 참가자 대기석이 아닌 일반 관중석에서 파시비엔과 함께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누가 이길 거 같으십니까?”


이미 결승에 오른 서지터의 의견이 궁금했던 파시비엔이 먼저 말을 꺼냈다.


“나야 모르지. 둘의 경기를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니까.”


당연했다. 항상 1조가 먼저 경기를 펼쳤고, 서지터는 자신의 경기가 끝나자마자 경기장 밖으로 사라졌으니까. 사실 오늘도 딱히 누가 이기든 관심이 없었다. 적인 딜런이 경기를 펼치는 모습이 궁금해서 왔을 뿐이었다.


“딜런이란 저 녀석 검술은 그냥 그랬어. 마상창시합에서 준결승까지 올라온 걸 보면 검술과는 조금 다른 실력이려나? 그게 궁금해서 와본 거야.”


“압도적으로 트리스탄님을 응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난 대회에서도 트리스탄님이 딜런이란 사람을 가볍게 꺾고 우승을 했고 말입니다.”


“그렇긴 해도 3년 전 일이니까 그동안 트리스탄을 이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겠지. 어제 만났을 때 보니 꽤 적대적이더라. 아마 이를 갈고 있을 거야. 나랑 붙었을 때 느낀 건 독기 하나는 제대로 가진 거 같았거든. 그게 무모하게 욱하는 걸로 드러나긴 했지만.”


“저는 무조건 트리스탄님 편입니다. 와아아아! 이겨라!”


둘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드디어 출발 신호가 떨어지고 트리스탄과 딜런 둘이 동시에 말을 몰았다. 경기장 안의 두 사람은 마치 쌍둥이처럼 움직이며 서서히 거리가 좁혀지자 랜스를 눕혀 서로를 겨누었다.


- 퍼거걱! 퍼거거걱!


- 우오오오오!


1라운드는 안정적으로 점수를 따내기 위해 둘 다 무모한 공격 시도보단 몸통을 노렸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서로의 몸통에 랜스가 적중하며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둘의 공격이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트리스탄은 딜런의 몸통 중앙을, 딜런은 트리스탄의 오른쪽 가슴 부위를 노렸다는 점이다.


“저런······. 끝난 거 같은데?”


상대방의 출발 지점에 도착할 때 즈음 서지터가 안타까운 듯 말하자 파시비엔이 화들짝 놀라버렸다.


“네? 끝났다고 말입니까? 이제 1 대 1인데 말입니다?”


“트리스탄을 봐. 오른팔 늘어뜨린 채 랜스도 떨어뜨렸어.”


“이미 부서진 랜스를 떨어뜨린다 해서 진 건 아니지 않습니까.”


“어깨를 다친 거 같아. 갑옷 이음새 틈으로 랜스 조각이 박힌 거겠지. 사실 저런 부상은 흔해. 그래서 되도록 몸통을 공격할 땐 갑옷 중앙이나 마상창시합용 방패가 달린 왼쪽을 노리지. 일종의 상도덕이야.”


“아아, 안 됩니다.”


서지터의 예상은 정확했다. 원래 자리로 돌아온 트리스탄은 곧장 타임 요청을 하고 괴로운 몸짓을 보이며 말에서 내렸다.


“후우, 후우. 하필 첫 라운드에서······.”


“트, 트리스탄! 다친 거야?”


시종 역할을 해주던 기사단의 동료가 황급히 트리스탄의 상태를 살폈다. 어느새 경기 진행자까지 다가와 그의 부상 정도를 확인했다.


“파편 조각이 박힌 겁니까? 다친 부위는?”


“오른쪽 가슴 쪽입니다.”


“치명적이군요. 경기는 포기하고 빨리 치료를 받는 것이 좋겠습니다. 성직자!”


진행자가 대기하고 있던 성직자를 부르자 트리스탄이 그를 제지했다.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자네는 파편 조각을 좀 뽑아줘.”


예상치 못한 부상을 입었다고 해서 허무하게 경기를 포기할 순 없었다. 기사단의 동료가 다친 부위를 확인했다. 생각보다 큰 조각이 갑옷의 어깨와 오른쪽 팔로 연결된 이음새 사이에 박혀있었다.


“이 상태로는 무리야. 내가 신성 마법을 지금 써 줄 수도 없어. 바로 실격이니까. 조각은 뽑아 주겠지만 그 팔로 랜스조차 드는 건 불가능해.”


“괜찮아. 할 수 있어.”


“하아, 자네는 정말 못 말리겠군. 그럼 이 악물고 참아. 뽑을 테니.”


기사단의 동료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파편 조각을 뽑아내었다.


“크흡!”


파편 조각을 뽑고 나서야 관중들은 트리스탄이 다쳤다는 사실을 깨닫고 여기저기서 안타까운 외침이 들려왔다.


- 트리스탄님! 이겨내세요!


- 안 돼요! 흐흑!


“이렇게 응원을 받는데 포기할 순 없잖아. 피가 계속 흘러서 그러는데 간단한 응급조치 정도는 가능합니까?”


그 말에 경기 진행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지혈 정도의 간단한 조치는 허용됩니다. 그래도 이 상태로는······.”


“감사합니다. 자네는 붕대 좀 가져다줘.”


서둘러 붕대를 가져오자 트리스탄은 대충 갑옷 틈 안으로 밀어 넣었다. 제대로 붕대를 감으려면 갑옷을 벗어야 할 테고 그럼 타임 요청 시간 초과로 그 역시 실격 처리가 되어 버린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트리스탄의 안타까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성기사단의 로스 단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 부상 정도가 심한 모양이군. 결승에서 꼭 체이스와 붙고 싶다고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데. 아쉽게 됐어.”


카렌 역시 같은 기사단 소속의 트리스탄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트리스탄 오라버니는 끝까지 포기할 생각이 없는 거 같아요. 아무래도 이기긴 힘들겠죠?”


“쉽지 않을 거야. 포기하지 않는 투지만큼은 칭찬하지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힘들어. 부상 부위가 치명적이야.”


로스 단장은 자식이나 다름없는 트리스탄을 바라보았다. 그는 동료의 도움을 받아 힘겹게 말 위에 올라타고 곧바로 2라운드를 치르기 위해 랜스를 건네받았다. 반대편에서 상황을 주시하던 딜런은 찝찝하긴 해도 유리해진 자신의 상황에 미소를 지었다.


‘운이 좋군. 이런 일조차도 경기 중에 벌어지는 일부분이니 나를 탓하진 말라고. 그래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투지만큼은 칭찬해주지.’


2라운드의 깃발이 흔들렸다. 랜스를 들고 있는 것조차도 힘겨운 듯 트리스탄은 인상을 잔뜩 쓰며 이를 악물었다.


“크흡!”


하지만 트리스탄은 절반도 가지 못하고 랜스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안타까운 탄성이 경기장을 채우는 순간.


- 퍼거걱!


딜런의 랜스가 트리스탄의 머리에 적중했다. 부상에다 딜런의 공격에 충격도 만만치 않았지만, 말에서 떨어지지 않고 버텨내는 트리스탄이었다. 그의 안타까운 모습에 여기저기서 그만 포기하라는 외침이 들려오긴 했어도 트리스탄은 다시 자리로 돌아가 동료에게 말했다.


“랜스 잡고 있을 테니 붕대로 내 손에 묶어줘.”


“이만하면 충분해. 빨리 치료를 받는 게 낫지 않겠어?”


“지더라도 기권패로 지진 않아. 어서.”


2라운드처럼 최소한 말 위에서 랜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붕대로 손과 랜스의 손잡이를 칭칭 감아버렸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트리스탄의 모습을 보며 서지터가 말했다.


“대단하네. 저 정도 부상이면 바로 포기하는 게 정상인데. 괜히 차기 성기사단 단장이 아닌 건가?”


“흐잉, 너무 속상합니다. 갑작스러운 부상만 아니었으면 결승에 올라가실 텐데 말입니다.”


냉정하게 상황을 지켜보는 서지터와 다르게 파시비엔의 목소리에선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신전의 소속이었고, 많지는 않아도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트리스탄이 결승에 올라가기를 바랐다.


“그냥 운이 없었던 거지. 노리스 할아버지처럼 실력이 없는데도 무모하게 계속 도전하는 건 일종의 객기라면 지금의 트리스탄같은 경우는 투지가 넘친다, 또는 투혼을 발휘한다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하기 마련이니까. 그래도 저런 모습 때문에 지더라도 누구 하나 비난은 하지 못할 거야.”


“그래도······.”


“응원이나 해줘라.”


“네.”


파시비엔을 비롯해 수많은 관중의 응원을 받으며 트리스탄의 준결승 3라운드가 시작되었다. 붕대로 랜스를 손에 묶어놨기에 2라운드처럼 떨어뜨릴 일은 없었지만 딜런을 향해 조준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마지막 순간 정교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마상창시합에선 치명적인 부상이었다.


‘3년 전에 비하면 확실히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됐어. 흔들림이 전혀 없군.’


비록 부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트리스탄은 속으로 딜런의 실력을 칭찬했다. 그리고 트리스탄의 경기는 3라운드를 끝으로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었다.


- 퍼거거걱! 퍼거걱!


1라운드처럼 동시에 랜스가 상대방을 적중시키며 부서졌다. 하지만 딜런의 랜스는 정확히 트리스탄의 머리를 강타했고, 아쉽게도 트리스탄의 랜스는 딜런의 몸통을 다시 한번 강타했다. 최종 스코어 5 대 2. 부상임에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투혼을 보여주었지만, 트리스탄은 결국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 짝짝짝짝!


관중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승리한 딜런을 향한 환호보다는 포기하지 않은 트리스탄을 위한 박수 소리였다. 결승 진출자가 된 딜런은 이런 상황이 상당히 불쾌했다.


“쳇! 이긴 사람은 나인데 오히려 박수를 받는 건 저쪽이군.”


경기가 끝나자 틸트 베리어 중앙에서 둘이 만났다. 트리스탄이 먼저 왼손을 내밀며 힘겨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좋은 경기였습니다. 핑계는 대지 않겠습니다. 제가 졌군요. 결승에서도 좋은 경기 부탁드립니다.”


“흥! 이런 식이면 이겨도 결국 반쪽짜리 승리일 뿐이라고. 운이 없게 다쳐서 질 수밖에 없었다. 부상만 아니었으면 트리스탄의 승리였다. 사람들은 이렇게 떠들겠지.”


“결승에서 체이스님을 꺾는다면 그런 말은 쏙 들어갈 겁니다. 저보다 더 강한 분이니까요. 어쨌든 승리 축하드립니다.”


이번에도 딜런은 트리스탄과 악수하지 않았다. 딜런의 눈에는 그저 고고한 척, 잘난 척하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런 식의 승리는 그가 그렸던 승리가 아니었다. 철저하게 트리스탄을 무너뜨려 지난 대회의 앙갚음을 하는 것이 계획이었다.


트리스탄이 뻗었던 손을 거둬들이며 서둘러 치료를 받기 위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앞선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던 준결승 경기와는 다르게 오늘의 마지막 경기는 싸늘하게 마무리되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피드백과 충고, 오타 지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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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6화 누군가의 의지 - 33 23.08.25 33 1 14쪽
161 6화 누군가의 의지 - 32 23.08.24 28 1 12쪽
160 6화 누군가의 의지 - 31 23.08.23 29 1 16쪽
159 6화 누군가의 의지 - 30 23.08.22 34 1 14쪽
158 6화 누군가의 의지 - 29 23.08.21 27 1 14쪽
157 6화 누군가의 의지 - 28 23.08.18 31 1 17쪽
156 6화 누군가의 의지 - 27 23.08.17 32 1 15쪽
155 6화 누군가의 의지 - 26 23.08.16 27 1 14쪽
154 6화 누군가의 의지 - 25 23.08.15 25 1 13쪽
153 6화 누군가의 의지 - 24 23.08.14 28 1 12쪽
152 6화 누군가의 의지 - 23 23.08.11 34 1 16쪽
151 6화 누군가의 의지 - 22 23.08.10 29 1 16쪽
» 6화 누군가의 의지 - 21 23.08.09 27 1 12쪽
149 6화 누군가의 의지 - 20 23.08.08 31 1 16쪽
148 6화 누군가의 의지 - 19 23.08.07 27 1 12쪽
147 6화 누군가의 의지 - 18 23.08.04 31 1 12쪽
146 6화 누군가의 의지 - 17 23.08.03 30 2 14쪽
145 6화 누군가의 의지 - 16 23.08.02 28 1 17쪽
144 6화 누군가의 의지 - 15 23.08.01 29 2 17쪽
143 6화 누군가의 의지 - 14 23.07.31 36 2 12쪽
142 6화 누군가의 의지 - 13 23.07.28 28 1 12쪽
141 6화 누군가의 의지 - 12 23.07.27 26 1 12쪽
140 6화 누군가의 의지 - 11 23.07.26 28 1 13쪽
139 6화 누군가의 의지 - 10 23.07.25 24 1 12쪽
138 6화 누군가의 의지 - 9 23.07.24 26 2 12쪽
137 6화 누군가의 의지 - 8 23.07.21 28 2 13쪽
136 6화 누군가의 의지 - 7 23.07.20 27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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