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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님의 서재입니다.

잊혀진 자의 이야기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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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작품등록일 :
2023.01.06 17:04
최근연재일 :
2024.01.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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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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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화 누군가의 의지 - 14

DUMMY

이튿날 B조의 8경기. 우승 후보자인 트리스탄과 딜런은 무난하게 16강전에 올랐다. 그때까지도 서지터는 참가자 대기석 쪽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서지터 대신 노리스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가 B조의 경기들을 집중해서 지켜보았다.


아무리 치매에다 제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이긴 해도 마상창시합만큼은 진심이었다. 나름 꼼꼼하게 B조의 16강 진출자들에 대해 분석을 하며 손자에게 이야기해 줄 것이 많다며 들떠있었다.


그의 들뜬 마음과는 다르게 서지터는 경기장뿐만 아니라 노리스의 천막에도 없었다. 전날 여관으로 돌아가 쉬던 서지터는 해가 지고 돌아온 친구들에게 승리 소식과 함께 팔라쥬르 국왕의 관심까지 받게 된 일을 알려주었고, 일이 너무 커진다며 엄살을 부렸다. 반항 아닌 반항을 하며 결국 돌아가지 않고 여관에서 하루 지낸 것도 모자라 다음날 오후 늦도록 방에 틀어박혀 빈둥거릴 뿐이었다.


“너도 참 대단해.”


카데스가 침대에 늘어져 있는 서지터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몸과 마음의 치유가 필요해. 푹신한 내 침대를 놔두고 불편한 간이침대에서 자는 게 얼마나 불편한 줄 아냐? 정체를 들킬까 봐 조마조마한 내 마음은 또 어떻고. 나에게도 이런 힐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조금 있으면 재료 구하러 갔던 애들 돌아올 거야. 레일라가 난리 치기 전에 돌아가자.”


“하아, 진짜 지겹다. 언제 끝나는 거야.”


“오늘 B조 경기 끝났으니까 내일부터 16강전이야. 앞으로 네 번은 더 싸워야 우승이라고.”


경기 일정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있는 서지터를 위해 친절히 카데스가 설명을 해주었다.


“그동안 매일 8경기씩 치렀는데 내일 16강 경기 한 번에 다 치르고 나서 8강부터는 하루에 토너먼트 경기만 할 거야. 8강 4경기, 4강 2경기. 그리고 마지막 결승 한 경기까지 하고 나면 끝나지. 물론 그전에 떨어진 사람들 순위결정전도 치를 테고. 그런데 넌 정말 누가 올라오든 관심 없는 거야?”


“트리스탄이 올라오겠지. 지난 대회 우승자에다 실력도 장난 아니라며.”


“그렇긴 해도 너무 태평하게 있는 건 아닌가 하고.”


점차 위로 올라갈수록 여전히 서지터는 누가 올라오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유일한 걱정은 자신의 아버지에게 정체를 들통날 것만 신경쓰는 모습이었다. 임무를 망치는 것을 떠나 이런 식으로 재회하고 싶지 않았다.


“하아, 앞으로 나흘 동안 더 경기 해야 하는 게 짜증이 날 뿐이야. 8강부터는 하루에 다 몰아서 해도 되는 거 아냐? 뭘 그리 찔끔찔끔해.”


“체력적으로 부담되니까 그렇게 일정을 짜 놓은 게 아닐까? 결승은 아무래도 가장 주목받는 경기니까.”


“이러니 내가 고깝게 볼 수밖에 없는 거야. 내가 용병단에 있었을 땐 하루에 네다섯 경기도 했다고. 읏차!”


서지터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가볍게 몸을 풀었다.


“할아버지 잔소리 들으러 돌아가 볼까?”


“잘 생각했어.”


혹여라도 돌아온 레일라와 마주치진 않을까 내심 걱정하던 카데스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천막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던 걸 레일라가 보았더라면 또 한바탕 난리가 날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둘이 밖으로 나오자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화창한 봄날 노을 진 하늘을 올려다보며 두 사람은 발걸음을 옮겼다.


“날씨 조오타!”


“그러게. 노을도 예쁘게 물들었어.”


“이런 날씨에 소풍이라도 가야 하는 거 아니냐? 내가 무슨 죄가 있길래 여기서 꽁꽁 발이 묶여있는 거야.”


“이번 의뢰 해결하고 나서 가까운 곳으로 바람이나 쐬러 가자.”


“파시비엔한테 도시락 싸 놓으라고 해. 히히.”


“그럴게.”


“어?”


날씨 이야기와 소풍 이야기를 하며 경기장 근처까지 도착했다. 이동하는 도중 또 다른 두 사내가 지나쳐 가자 서지터가 고개를 돌려 그들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왜 그래?”


“방금 지나간 두 사람.”


서지터의 말에 카데스도 고개를 돌려 인파 속으로 사라져가는 두 사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는 사람들이야?”


“키가 좀 큰 사람은 며칠 전에 검술시합에서 우리한테 말 건 사람.”


파시비엔의 도시락 메뉴에 잠시 정신이 팔렸던 카데스가 미처 얼굴은 보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대답했다.


“그래?”


“그리고 그 옆에 있던 놈.”


“누군데?”


“첨 보는 얼굴이긴 한데 얼굴에 흉터가 있네?”


“흉터?”


“이러어어엏게!”


서지터가 검지로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 대 흉터의 위치나 모양을 만들었다. 몇 개월이 훌쩍 지나긴 했어도 그에겐 낯익은 흉터였다.


“그 흉터가 왜.”


“얼굴의 흉터라고 하면 뭔가 떠오르는 게 없어?”


그제야 마르테아 섬에서의 일이 떠오른 카데스가 화들짝 놀라 대꾸했다.


“너한테 당한 놈 말하는 거야?”


무의식중에 인파 속으로 사라져 간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서지터가 말했다.


“내가 만들어 놓은 상처니까 확실해. 그때 그놈 맞아.”


두 사람 모두 심장이 쿵쾅거리며 빠르게 뛰었다. 이런 식으로 적으로 상대했던 자와 우연히 마주칠지 몰랐다.


“하아, 씨이! 그새 어디로 간 거야.”


“안 보여. 잠시만요. 지나갈게요.”


아무래도 봄축제 기간이다 보니 경기장 인근에는 돌아다니는 사람이 제법 많아 그 둘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둘은 이미 인파 속에 파묻혔기에 주변을 이 잡듯 다 뒤지지 않는 이상 발견하기엔 무리였다. 서지터는 이내 걸음을 멈추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여기에 그놈들도 와 있다는 뜻인데······. 또 무슨 짓을 꾸미려는 거지?”


“확실한 거지?”


“맞다니까. 내 도발에 발끈해서 덤빈 걸 보면 그리 경험이 많거나 나이도 많은 놈은 분명 아냐. 좀 전에 그놈 스쳐 지나가서 꼼꼼하게 보진 못했어도 나이는 많아 보이지 않았어.”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카데스가 어두운 표정으로 서지터의 어깨를 짚었다.


“혼자 돌아갈 수 있지? 네가 본 게 맞는다면 애들한테 빨리 알려야 할 거 같아.”


“어, 그래. 가 봐.”


카데스는 이 소식을 알리려 서둘러 친구들에게로 향했다.


#

마이론홀드의 인근 외곽 지역. 한스는 어떻게 해서든 흰민들레꽃을 찾기 위해 엉거주춤한 자세로 풀밭을 뒤지는 중이다.


“후우, 없어. 꼭 찾아야 하는데 어쩌지?”


어제 서지터에게 전해 들은 말에 깜짝 놀랐던 한스는 누구보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있었다. 만약 어제 경기장에서 투구를 벗고 국왕 앞에 섰더라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 뻔했으니까 말이다. 정체가 발각될지도 모른다는 위험도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아끼는 친구가 또 한 번 상처 받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 더 열심히 풀밭을 수색하는 중이었다.


“한스! 한스!”


환한 얼굴의 아리엘이 폴짝거리며 뛰어와 다급하게 부르자 한스는 허리를 펴며 고개를 들었다.


“찾았어?”


“응! 방금 실프가 알려줬어. 저기 언덕 쪽에 가면 있대.”


“다행이다. 얘들아! 아리엘이 흰민들레꽃 찾았대.”


“아구구. 허리야. 정말?”


“진짜 있는 거 맞지 말입니다? 오늘도 못 찾으면 전 진짜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위대하고 자비로운 아그나달린님께서 도와주신 게 틀림없습니다.”


한스 주변에서 풀밭을 헤집던 레일라와 파시비엔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몇 날 며칠을 고생한 끝에 드디어 마지막 남은 마법 재료를 찾을 수 있으니 천만다행이었다. 세 사람은 서둘러 아리엘을 따라갔다. 넓은 풀밭 한쪽에 낮은 언덕 위로 오르자 언덕 가장 위에 군락까지는 아니어도 흰 민들레꽃이 제법 피어 있었다.


“됐다. 많이 핀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두세 번 쓸 수 있는 양이야. 충분해.”


실프 덕에 찾은 것이 뿌듯했는지 아리엘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언덕 위라 따뜻한 햇볕이 잘 드니까 좀 빨리 핀 거 같아. 한스! 나 잘했지?”


“응! 그걸 말이라고.”


“대신 꽃을 꺾거나 그러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이 아이들도 생명이니까.”


“딱 필요한 만큼 꽃잎만 조금 떼갈게. 그 정도는 괜찮지?”


“헤헤, 좋아.”


아리엘이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무자비하게 꽃을 꺾어가는 걸 아리엘이 용납할 리가 없었다. 한스 입장에선 최소 한 번 정도 쓸 재료만 구하면 되니 딱히 많은 양의 흰민들레 꽃잎도 필요 없었다.


“그럼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겠습니다.”


아리엘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스는 꾸벅 인사를 한 번 하고는 조심스레 흰민들레 꽃잎을 떼었다. 미리 펴놓은 손수건에 떼어낸 꽃잎을 차곡차곡 쌓은 후 행여 바람에 꽃잎이 날아갈세라 천천히 손수건을 접어 품 안에 넣었다.


“후우, 이제 됐어. 내일 하루 정도 햇볕에 말린 뒤에 빻아서 가루로 만들면 돼.”


아직 몇 가지 과정이 더 필요하지만, 이걸로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어서 돌아가자. 다들 고생 많았으니까 오늘은 내가 한턱낼게.”


기분이 좋아진 한스가 한턱낸다는 말에 다들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도 잠시뿐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다급한 표정의 카데스를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후우, 길이 어긋나면 어쩌나 걱정했어.”


“우리 카데스다!”


“카데스. 무슨 일이야?”


“너 표정이 안 좋다? 혹시 서지터 녀석 사고라도 친 거야?”


불안한 레일라의 말을 들은 카데스가 고개를 흔들자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우. 그럼 뭐야? 왜 그리 다급한 표정이야?”


“그게 조금 전에 그놈들을 만났어.”


“그놈들? 그게 누군데?”


“카데스님, 당황하신 모습이 너무 낯설지 말입니다. 차근차근 설명해주시면 안 됩니까?”


파시비엔의 말에 정신이 든 카데스가 원래의 모습처럼 이성적이고 차분해져 말을 이어나갔다.


“서지터랑 길에서 가면 썼던 놈 중 한 놈과 마주쳤어. 물론 가면을 쓴 상태는 아니었지만, 얘기 들어서 알지? 서지터가 얼굴에 크게 상처를 입힌 놈 말이야.”


“그러니까 얼굴에 같은 상처를 입은 사람과 마주쳤다는 뜻이야?”


“그래.”


레일라는 이성적으로 판단을 하려 애를 썼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얼굴에 비슷한 상처가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잖아.”


“그래, 잘못 봤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한스가 거들자 파시비엔까지 부정적인 말을 내뱉었다.


“그렇지 말입니다. 단순히 얼굴에 상처만 보고 알아볼 수 있는 겁니까? 혹시 다짜고짜 서지터님이 그 사람을 폭행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말입니다?”


“싸움이 나거나 그러진 않았어. 그냥 지나쳐 갔으니까. 근데 너희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잠깐 놈들과 상대를 해봐서 알아. 자세히 보진 못했어도 체격이 비슷했어. 그놈과 동행했던 사람도 얼마 전에 마주쳤던 사람이고.”


“동행했던 사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카데스는 검술시합 관람 중에 마주쳤던 자와의 일을 설명해주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후 한스가 차분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촉이 좋은 녀석이니까 한 번에 알아볼 수도 있긴 하겠지. 그럼 놈들이 우리 적이라면 이번 무투 대회에서 또 무슨 일을 꾸미고 있을지도 모르겠네? 다들 어떻게 생각해?”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레일라가 입을 열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여기서 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걸까? 하필 축제 기간에 놈들이 모습을 보였다······. 찜찜하긴 한데 딱히 떠오르는 게 없네.”


“혹시 이번 축제 기간 중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시는 국왕 폐하의 암살 계획이라든지, 아니면 정적인 귀족들을 제거하려는 수작 아닐까? 카데스 너 고향에서 만났던 할슈타인 공작을 다시 해하려는 음모를 꾸밀 수도 있잖아.”


한스의 나름 합리적인 의견이었다. 지금까지 할슈타인 공작을 살해하려는 시도는 수도의 다른 귀족들이 벌인 짓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래도 이스미르 후작이 어디까지 마수를 뻗쳤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기도 했다.


“일단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이미 날은 어두워지니 여관으로 돌아가 차분하게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피드백과 충고, 오타 지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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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6화 누군가의 의지 - 32 23.08.24 28 1 12쪽
160 6화 누군가의 의지 - 31 23.08.23 29 1 16쪽
159 6화 누군가의 의지 - 30 23.08.22 34 1 14쪽
158 6화 누군가의 의지 - 29 23.08.21 27 1 14쪽
157 6화 누군가의 의지 - 28 23.08.18 31 1 17쪽
156 6화 누군가의 의지 - 27 23.08.17 32 1 15쪽
155 6화 누군가의 의지 - 26 23.08.16 27 1 14쪽
154 6화 누군가의 의지 - 25 23.08.15 25 1 13쪽
153 6화 누군가의 의지 - 24 23.08.14 28 1 12쪽
152 6화 누군가의 의지 - 23 23.08.11 34 1 16쪽
151 6화 누군가의 의지 - 22 23.08.10 29 1 16쪽
150 6화 누군가의 의지 - 21 23.08.09 26 1 12쪽
149 6화 누군가의 의지 - 20 23.08.08 31 1 16쪽
148 6화 누군가의 의지 - 19 23.08.07 27 1 12쪽
147 6화 누군가의 의지 - 18 23.08.04 31 1 12쪽
146 6화 누군가의 의지 - 17 23.08.03 30 2 14쪽
145 6화 누군가의 의지 - 16 23.08.02 28 1 17쪽
144 6화 누군가의 의지 - 15 23.08.01 29 2 17쪽
» 6화 누군가의 의지 - 14 23.07.31 36 2 12쪽
142 6화 누군가의 의지 - 13 23.07.28 28 1 12쪽
141 6화 누군가의 의지 - 12 23.07.27 26 1 12쪽
140 6화 누군가의 의지 - 11 23.07.26 28 1 13쪽
139 6화 누군가의 의지 - 10 23.07.25 24 1 12쪽
138 6화 누군가의 의지 - 9 23.07.24 26 2 12쪽
137 6화 누군가의 의지 - 8 23.07.21 28 2 13쪽
136 6화 누군가의 의지 - 7 23.07.20 27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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