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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님의 서재입니다.

잊혀진 자의 이야기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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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작품등록일 :
2023.01.06 17:04
최근연재일 :
2024.01.05 08:00
연재수 :
2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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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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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5,958

작성
23.08.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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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화 누군가의 의지 - 24

DUMMY

“너무 늦었나?”


“미안, 검술시합 결승이 너무 늦게 끝나는 바람에.”


“아냐, 카데스가 뭐가 미안해. 시간이 촉박하긴 해도 경기 시작 전에 도착했잖아.”


한스와 카데스의 발걸음에 다급함이 느껴졌다. 파시비엔을 대신해 오늘은 카데스가 서지터를 도와주기 위해 천막으로 향했다. 마상창시합의 결승에 앞서 펼쳐진 검술시합의 결승을 지켜본 카데스는 끝이 나자마자 부리나케 움직였다.


“휴우, 도착했네.”


한스는 괜스레 미안해하는 카데스에게 씨익 웃어 보이며 천막 걷으려는 순간.


“아아악! 아프다고요! 왜 이렇게 세게 묶는데?”


“이 녀석이? 뭘 잘했다고!”


“피도 안 통할 정도로 묶으면 어쩌냐고요!”


천막 안에서는 오늘도 서지터와 노리스 영감이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 날까지 치매 걸린 노인과 싸우는 친구가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한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나랑 카데스 왔어. 너는 오늘까지 영감님이랑 싸워야 직성이 풀······.”


놀란 한스 뒤를 따라 들어온 카데스도 천막 안의 장면을 보고 말문이 막혔다.


“어! 왔냐? 파시비엔은? 걔 좀 와서 나 치료 좀 해달라고 그래.”


“뭐, 뭐야? 너 팔이 왜 그래?”


한스의 눈에 들어온 친구의 오른 팔뚝이 퉁퉁 부은 채로 팔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멀쩡해 보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카데스도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후우. 파시비엔 없어. 오늘 내가 대신 온 거야.”


“진짜? 망했네.”


“팔은 왜 그런 건데?”


“그냥 좀 다쳤어. 자세한 건 경기 끝나고 나중에 얘기해줄 테니까 파시비엔 좀 불러와.”


결승이 코앞인 상황에서 중요한 오른팔이 퉁퉁 부어있는 모습에 다급한 한스가 서지터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미친놈아! 대체 밤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영감님, 얘 팔 왜 이래요?”


“쯧쯔! 나도 몰라.”


오늘 아침. 서지터는 팔이 욱신욱신 쑤시는 통에 잠에서 깼다. 일어나보니 이미 팔뚝은 퉁퉁 부은 채였다. 지난밤 얼굴에 꽂힐 뻔한 검은 로브의 공격을 팔로 막은 것이 화근이었다. 아무래도 뼈에 금이 간 듯 보였다.


“너 어젯밤에 몰래 나가서 사고 쳤지? 제정신이야? 오늘이 결승인데?”


“나간 건 미안한데 사고는 안 쳤거든? 불의의 사고랄까?”


“불의의 사고? 조금 있으면 결승이라고! 파시비엔 불러오면 늦어!”


“그럼 결승전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얼른 얼굴이나 바꿔줘. 세수 이미 다 했어.”


“맙소사, 지금 세수가 문제야? 이런 팔로 마상창시합은 어떻게 할 건데?”


잔소리를 퍼붓는 한스가 귀찮았는지 서지터는 한쪽 귀를 후비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시작 전에 진행자한테 한번 물어보지 뭐. 치료가능 하냐고.”


“팔자 편해서 좋겠다. 몰라! 너 지기만 해? 레일라도 가만 안 두겠지만 나도 너 가만 안 둘 거니까!”


잔뜩 화가 난 한스가 쉐이프 트랜스폼 주문을 써준 후 홱 하고 천막 밖으로 나가버렸다. 오늘도 거울로 얼굴을 확인한 서지터가 천막 안에서 소리를 질렀다.


“정신 나간 자식아! 오늘도 왜 이 얼굴인데! 평범하게 안 만들어놓냐?”


한스가 아무리 화가 났더라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할슈타인 공작 근처에 파시비엔이 있을 테지만 왔다 갔다 하는 사이에 경기는 시작될 테고, 그렇다고 경기장에 대기 중인 성직자들에게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도 없었다. 다친 팔로 바로 경기를 치러야 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운이 없게도 경기장으로 향해 진행자에게 치료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을 땐 난감한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


“저, 저기. 이런 경우는 나도 난생처음인데 아무래도 형평성에 문제가 될 듯합니다. 경기 중 치료는 당연히 불가능하고 경기 시작 직전에 성직자의 치료 주문은 충분히 말이 나올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요?”


“컨디션과 몸 관리도 경기의 일부분입니다. 상대 선수도 분명 동의하지 않을 거고요.”


“그럼 어쩔 수 없죠.”


경기 진행자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 역시도 결승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체이스의 부상 상태를 보아 경기 진행이 쉬워 보이진 않았다.


“그 팔로 경기하는 거 정말 괜찮겠어?”


카데스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하자 서지터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히히, 설마 지겠어? 오늘 내가 지면 너희들한테 다 형, 누나라고 부른다.”


“너는 팔자 편해서 좋겠다.”


“시간 다 됐다. 경기장으로 들어가자.”


서지터는 윈드테일의 고삐를 잡고 경기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모습이 보이자 엄청난 환호가 쏟아져 나왔다. 이미 준결승에서 트리스탄이 져버렸으니 그를 이긴 딜런을 이겨주기를 바라는 응원과 체이스를 응원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마상창시합 첫날 퍼붓던 야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리벨드 부인의 말처럼 실력으로 불과 며칠 사이에 야유를 환호로 바꿔놓은 서지터였다.


“저 사람들이 네 몸 상태를 알면 이렇게 응원 못 할 텐데.”


카데스가 부정적인 말을 내뱉자 윈드테일의 마갑을 점검하며 서지터가 대답했다.


“어쩔 수 없잖아. 이미 일은 벌어졌고, 치료는 못 받으니 그냥 싸워야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저 자식한테 질 수는 없지.”


“그러리라 믿을게. 그리고 한스 화난 거 봤지? 확실하게 해명은 해야 할 거야.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이야.”


“하아아, 어제······.”


어제 노리스 영감과 대화를 나눈 후 잠들기 전까지 한참을 검은 로브의 사내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덕분에 새벽 늦게 잠이 든 서지터는 다친 팔 못지않게 몸도 아주 피곤한 상태였다.


경기할 동안만큼은 잊고 싶었지만 카데스가 다시 어제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어느 정도 준비를 마치며 윈드테일 위에 올라탄 서지터는 멍하니 어제 겪은 일에 대해 생각에 잠겼다.


‘대체 뭐 하는 놈이었을까. 예상대로 이스미르 후작 밑에 있는 마법사인 것만큼은 틀림없을 거야. 하지만 이 시점에 왜? 우리 계획을 알고 딜런 저 자식을 우승시키기 위해 찾아왔을까? 아니지. 그랬다면 어제 그냥 날 없애버렸겠지. 그냥 날 내버려 두고 가버렸다는 건 마상창시합하고는 무관하다는 뜻일 거야. 그럼 왜 왔을까? 할아버지랑 회포라도 풀려고 온 건 아닐 테고, 치매에 걸린 상태가 여전히 좋지 않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 아마 같이 지내는 동안 손자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듣지 못했겠지. 도노프리오 가문인 사람이 결승까지 올라갔으니 궁금했겠지. 내가 진짜 손자인지, 아닌지 확인하려고 온 걸 수도 있어. 아무리 똑똑해도 적인 내가 손자로 위장해서 우승으로 거래를 하려고 한다는 건 모를 거야. 혹시라도 내가······.’


- 툭툭.


정신이 팔린 사이 딜런의 시종이 그의 소개를 마치며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고, 카데스가 긴장한 눈빛으로 윈드테일 위에 있는 서지터의 다리를 치며 올려다보았다.


“왜?”


“너 소개할 차례야. 후우. 다녀올게.”


“그거 소개 꼭 해야 하냐?”


“결승전이니까 해야지. 파시비엔처럼 장황하게는 못해. 짧게 하고 들어올게.”


“어차피 진짜도 아닌데 대충해.”


이런 형식적인 것들조차도 서지터의 눈엔 마음에 들지 않았다. 파시비엔과는 달리 카데스라면 많은 관중 앞에 서서 말을 하는 게 누구보다 불편할 거라는 걸 알고 있던 서지터였기에 굳이 꼭 해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물론 카데스도 서지터의 생각처럼 잔뜩 긴장한 채로 경기장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어젯밤부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고, 온종일 생각해둔 멘트를 머릿속에 계속 되뇌던 카데스였다.


‘후우우, 버벅거리지 말고 목소리 떨지 말고 차분하게 배에 힘을 줘서 또박또박.’


중앙까지 걸어 나온 카데스가 주변을 훑어보았다. 중앙 관중석엔 팔라쥬르 국왕부터 말만 하면 누구나 다 알 법한 귀족들까지 자리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더군다나 결승전답게 만원을 넘어 관중석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차라리 전장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게 덜 떨리겠군.’


곳곳에서 웅성거리던 소리가 카데스의 등장으로 점차 고요해지자 숨을 크게 들이마신 카데스가 당당하게 소리쳤다.


“후우웁! 안녕하십니까! 긴 설명이 필요 없는 현세대 가장 위대한 기사를 소개하겠습니다!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해 이 자리에 선 도노프리오 가문의 13대손 체이스 도노프리오입니다!”


- 우와아아아아!


어제와는 다르게 짧고 간결했다. 오히려 짧지만 많은 의미를 담은 소개에 우레와 같은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대기석에선 노리스 영감이 카데스의 소개를 듣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흐흑! 보십시오. 할아버님, 아버님. 도노프리오 가문의 13대손이 당당하게 결승 무대에 섰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흐흑.”


역시나 오늘도 치매에 걸린 그는 서지터를 친손자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3, 4위 결정전을 마치고 방금 막 자리로 돌아온 트리스탄도 로스 단장과 함께 응원했다. 그는 모시프와의 3, 4위 결정전을 5 대 4로 이기고 돌아왔다. 결승에 오르지 못한 것이 여러모로 아쉽지만 3위를 차지해 자그마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무난하게 승리를 거둘 겁니다. 딜런이 아무리 애를 써도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니까요.”


“아쉽지 않나? 결승에서 꼭 붙고 싶어 했잖나.”


“괜찮습니다. 결승에 못 올라간 건 어젯밤에 다 보상받았습니다.”


“으응?”


트리스탄은 지난밤 서지터와의 만남을 아직 로스 단장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의 말을 옆자리에서 듣고 있던 카렌 역시 의아한 반응이었다.


“오라버니는 저보다도 체이스님을 더 만나고 싶어 했잖아요.”


“하하, 그랬지. 그랬는데 경기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뜻밖의 만남을 가졌어.”


“네? 어디서요?”


트리스탄은 카렌의 어깨를 툭 치고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내가 너에 대한 칭찬을 어마어마하게 했다고. 그리고 오늘 밤 열리는 연회에서 나한테 고마워해야 할 거야.”


“무슨 말이에요?”


“보면 알아.”


카렌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직 체이스, 즉 서지터가 다쳤다는 걸 모르고 있던 터라 서지터가 이길 거라는 확신에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하지만 할슈타인 공작의 주변에서 호위 임무를 맡은 네 사람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경기장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파시비엔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인상을 썼다.


“다치셨다는데 경기에 지장이 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한스님, 팔이 꽤 많이 부어올라 있었다고 하셨습니까?”


“응. 좀 심각해 보였는데······.”


“그럼 아무래도 뼈에 이상이 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여기서 보니까 오른팔을 움직이는 걸 보니 부러진 것 같진 않고 뼈에 금이 간 것 같습니다. 혹시 따로 찢어진 상처 같은 건 없지 말입니다?”


“붕대 감고 있어서 직접적으로 다친 부위는 못 봤지만, 피가 묻어있거나 그런 건 없었어.”


“그럼 어디 강하게 부딪혔거나 그랬을 거 같지 말입니다.”


파시비엔의 진단에 레일라 역시 짜증을 냈다.


“저건 꼭 중요한 순간에 사고를 쳐요. 하여간 쉽게 해결되는 걸 사람 애타게 하는데 뭐 있다니까? 지고 오기만 해. 아주 그냥 뼈를 내가 다 조각내버릴 테니까.”


“히잉. 레일라 무서워. 난 그래도 지터가 이길 거라고 믿어.”


“이기기야 하겠지. 그것도 사람 맘 졸이게 하면서 아주아주 어렵게 말이야.”


“어? 이제 곧 시작합니다. 체이스! 이겨라!”


할슈타인 공작의 호위 임무도 잊은 채 파시비엔이 열심히 응원하기 시작했다. 이제 곧 마상창시합 결승전이 치러지기 직전이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피드백과 충고, 오타 지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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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7화 커져가는 불씨 - 1 23.08.28 33 1 12쪽
162 6화 누군가의 의지 - 33 23.08.25 33 1 14쪽
161 6화 누군가의 의지 - 32 23.08.24 28 1 12쪽
160 6화 누군가의 의지 - 31 23.08.23 29 1 16쪽
159 6화 누군가의 의지 - 30 23.08.22 35 1 14쪽
158 6화 누군가의 의지 - 29 23.08.21 28 1 14쪽
157 6화 누군가의 의지 - 28 23.08.18 33 1 17쪽
156 6화 누군가의 의지 - 27 23.08.17 34 1 15쪽
155 6화 누군가의 의지 - 26 23.08.16 28 1 14쪽
154 6화 누군가의 의지 - 25 23.08.15 25 1 13쪽
» 6화 누군가의 의지 - 24 23.08.14 30 1 12쪽
152 6화 누군가의 의지 - 23 23.08.11 34 1 16쪽
151 6화 누군가의 의지 - 22 23.08.10 31 1 16쪽
150 6화 누군가의 의지 - 21 23.08.09 27 1 12쪽
149 6화 누군가의 의지 - 20 23.08.08 31 1 16쪽
148 6화 누군가의 의지 - 19 23.08.07 29 1 12쪽
147 6화 누군가의 의지 - 18 23.08.04 33 1 12쪽
146 6화 누군가의 의지 - 17 23.08.03 31 2 14쪽
145 6화 누군가의 의지 - 16 23.08.02 28 1 17쪽
144 6화 누군가의 의지 - 15 23.08.01 30 2 17쪽
143 6화 누군가의 의지 - 14 23.07.31 37 2 12쪽
142 6화 누군가의 의지 - 13 23.07.28 30 1 12쪽
141 6화 누군가의 의지 - 12 23.07.27 27 1 12쪽
140 6화 누군가의 의지 - 11 23.07.26 29 1 13쪽
139 6화 누군가의 의지 - 10 23.07.25 26 1 12쪽
138 6화 누군가의 의지 - 9 23.07.24 27 2 12쪽
137 6화 누군가의 의지 - 8 23.07.21 29 2 13쪽
136 6화 누군가의 의지 - 7 23.07.20 29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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