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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님의 서재입니다.

잊혀진 자의 이야기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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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작품등록일 :
2023.01.06 17:04
최근연재일 :
2024.01.05 08: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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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515,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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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0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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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화 누군가의 의지 - 18

DUMMY

준결승 경기 날이 밝아왔다. 16강까지 올라왔다 탈락한 기사들의 순위결정전 경기가 먼저 치러진 후 오후가 돼서 두 경기의 준결승 경기가 준비 중이었다. 준결승 첫 번째 경기인 체이스 도노프리오와 모시프 쿠테른 두 사람은 경기를 준비하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특히나 체이스, 즉 서지터는 카데스가 부재한 관계로 홀로 갑옷을 챙겨 입고 윈드 테일의 상태를 체크 했으며 경기에 사용할 랜스를 점검한 후 천막으로 돌아왔다.


“아, 피곤하다.”


전날 밤 에스나의 구타에 심신이 지쳐버린 서지터였다. 그런 일이 있는 줄 꿈에도 모르는 노리스 영감은 손자 대역의 서지터에게 기운은 북돋아 주었다.


“요 녀석아, 그러기에 일찍 잠을 자고 컨디션 관리를 했어야지. 기운 내! 결승이 코앞이야.”


“할아버지, 피곤한데 잔소리는 나중에 들으면 안 될까요?”


“잘 들어라. 오늘 상대할 녀석 경기를 내가 꼼꼼하게 살펴봤는데 보통 녀석이 아니야.”


“맨날 보통 실력이 아니래. 그 사람들 전부 나한테 1라운드에 처참하게 박살 난 건 기억하세요?”


“네가 관심을 안 가지니 내가 볼 수밖에 없지 않냐! 오늘 상대할 모시프란 녀석은 다른 건 몰라도 그가 타는 말만큼은 방심해선 안 돼. 네 말도 훌륭하긴 해도 그 녀석 말은 순간 가속이 엄청나고 달리는 폼이 너무나도 안정적이야. 체력도 엄청나지. 참가자들 말 중에서도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와아, 우리 윈드테일 자존심 상하겠네.”


“말도 뛰어나지만 모시프의 패기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아. 마상창시합은 기세야. 쫄지않고 겁 없이 달려드는 사람이 승리에 한 발 더 앞서 나가지. 비록 기술은 투박한 스타일이지만 그런 패기로 노련한 발리헤드도 꺾고 준결승까지 올라온 놈이야.”


“할아버지 솔직히 말해봐요. 치매 아니죠?”


- 따악!


“이놈이!”


노리스 영감은 지팡이로 서지터의 머리에 꿀밤을 놓았다.


“왜 때려 진짜! 헛소리 안 하고 제대로 말을 하니까 물어본 거지.”


정신이 언제 오락가락하는지 전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멀쩡히 말을 하다가도 갑자기 헛소리하는 터라 어느 장단에 맞춰 대화해야 할지 힘든 상대였다.


“이번만큼은 1라운드에 쉽게 끝나진 않을 거다. 8강 경기를 보니 1라운드에서 날카로운 발리헤드의 공격을 작정하고 피하더라. 자신의 공격을 포기하고 회심의 일격을 피해버리니 발리헤드의 계획이 꼬이고 초조해지면서 경기가 말려버리고 말았지. 항상 1라운드에 상대를 끝장낸 네 공격도 피할 가능성이 크다고.”


“오호! 지금 정보는 조금 도움이 되는데요?”


1라운드 시작부터 아예 상대의 공격을 피하기로 작정했다면 2라운드에 무리하게 공격을 시도하다 통째로 경기를 망칠 수도 있었다. 모시프는 이런 방법으로 8강 발리헤드와 상대했다. 5점을 따내기 전까지 계속해서 라운드를 이어가기만 한다면 지치지 않는 자신의 말을 이용해 충분히 승리를 선점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윈드테일도 어지간하면 그리 쉽게 지치지 않는 체력이니 문제 될 거 없고, 초반을 피해서 점수 안주고 후반에 상대가 지칠 때를 노린다? 특이한 스타일이네. 다른 사람한테는 통했는지는 몰라도 나한테는 안 될걸요?”


“네가 피하는 걸 무슨 수로 공격하겠다는 거야?”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어제 경기에서 어느 쪽으로 피했는지나 말씀해 주세요. 설마 몸을 뒤로 젖히지는 않았을 거고. 왼쪽 아니면 오른쪽인데 랜스를 들고 있는 오른쪽으로 피하긴 힘들긴 해도 왼쪽으로 피하면 거의 무방비가 될 건데.”


“설마 피하는 쪽으로 공격할 심산이냐? 그러다 모시프란 녀석이 네 랜스의 각을 보고 안 피한 채 너를 노린다면 그대로 끝이야.”


“그래서 어느 쪽으로 피했냐고요.”


“몰라.”


“네?”


“기억 안 난다고.”


“물어본 내가 바보지.”


“이놈이!”


노리스 영감은 다시 지팡이들 들어 때리려고 시늉을 하자 서지터는 잽싸게 피하며 말했다.


“그만 때려요. 아프다고.”


“내가 알 바냐?”


“서지터님, 제가 왔지 말입니다.”


둘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천막을 젖히고 파시비엔이 밝은 얼굴로 들어왔다.


“바쁠 텐데 네가 어쩐 일로 왔냐?”


“한스님이 가보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래도 카데스님이 없을 테니 혼자 힘드실 거라고 제가 대신 시종 역할을 하라고 했지 말입니다.”


“올 거면 진작 좀 오든가. 이미 준비 다 했거든?”


“그렇습니까?”


“그래, 인마! 그건 그렇고 그쪽은 좀 어때? 별다른 일은 없는 거야?”


서지터는 할슈타인 공작을 호위하는 임무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각기 다른 마법을 쓸 수 있는 세 사람이 뭉쳐있으니 적이 그를 노린다 해도 쉽사리 틈을 비집고 들어오긴 힘들어 보였다.


“딱히 별일은 없지 말입니다. 한스님이 워낙 꼼꼼하시니까 저택 쪽에도 여러 마법으로 완벽하게 대비해 놓기도 했고, 도시다 보니 정령의 수가 그리 많진 않아도 아리엘님이 주변 정령들에게 이상한 낌새가 있으면 알려달라고 부탁도 했습니다. 아! 그리고 이거. 받으시지 말입니다.”


파시비엔이 품에서 작은 가죽 주머니를 꺼내 내밀었다.


“뭔데?”


“이거 한스님이 만드신 겁니다. 일시적으로 얼굴 바꾸는 가루 말입니다. 내일 경기 전에 꼭 이걸 물에 풀어서 꼼꼼하게 세수를 먼저 해놓고 있으랍니다. 그럼 한스님이 잠깐 들러 주문을 걸어 얼굴을 바꿔주신다고 말입니다.”


“오호! 그래도 날짜 맞춰서 재료는 다 구한 모양이네.”


“흰민들레꽃 구한다고 저희가 얼마나 고생한 줄 아십니까?”


“내가 시켰냐? 나한테 따지지 말고 레일라한테 따지세요.”


“그나저나 경기 시작할 시간 거의 다 된 것 같지 말입니다. 나가보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래야지. 에휴우.”


서지터는 작은 투구를 집어 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결승까지 이 투구를 쓰고 시합에 나가야 할 듯 싶었다.


#

- 와아아아!! 체이스! 모시프! 체이스! 모시프!


관중석에서 경쟁하듯 체이스와 포시프를 연호했다. 앞서 경기를 펼쳤던 순위결정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두 사람 모두 마상창시합 첫 출전에 준결승까지 올랐고, 화려한 경기 운영으로 인기가 치솟는 중이다.


체이스는 압도적인 실력으로 모든 경기를 1라운드에 끝내버렸다면, 모시프는 수려한 외모와 매너로 여성 관중들에게 어필하는 와중에 직전 8강 발리헤드와 명승부를 펼쳤다. 손에 땀을 쥐게 한 긴장감 넘쳤던 경기는 5 대 4로 모시프의 승리로 돌아갔다. 아무리 노련한 발리헤드일지라도 체력적으로 힘이 빠져 마지막에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한편 전문 도박사들 사이에선 체이스가 첫 경기를 제외한 나머지 경기는 생각보다 쉬운 상대였다고 판단하여 의외로 저평가되고 있었다. 인기는 비록 한순간에 치솟았지만 냉정한 도박사들의 평가는 달랐다.


반면 모시프의 경우 영리한 경기 운영 덕분에 그의 승리를 점치는 도박사들이 꽤 많았다. 이번 대회 최고의 명승부라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발리헤드와의 경기 덕분이었다. 도박사들은 6 대 4로 미세하게 모시프의 승리를 점치고 있었다.


그런 상황을 전혀 모르는 서지터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경기장 한쪽 끝에서 갑옷의 헐거운 부분을 점검하고 있자 파시비엔이 입을 열었다.


“서지터님, 아니 체이스님.”


“왜?”


“준결승인데 긴장 안 되십니까?”


“별로?”


“사실 속으로는 심장이 마구 벌렁거리면서 창피해서 티 안 내시는 건 아니지 말입니다?”


“내가 너냐?”


- 철그럭.


“반갑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도노프리오 가문의 자제분과 준결승에서 마주하는군요.”


어느샌가 모시프가 반대편 서지터가 있는 쪽까지 걸어와 말을 걸어왔다. 그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자 서지터는 가볍게 악수하며 말했다.


“네, 반갑습니다. 인기가 대단하시네요. 그런데 가문 그거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가문 그까짓 거 신경 쓰지 말고 경기에만 집중하면 좋은 결과가 따라올 겁니다.”


상대를 존중하며 진심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과거에도 지금도 서지터에게 가문이란 이름은 무의미한 존재일 뿐이었으니 상대에게 자기 생각을 그대로 전달해 주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첫 경기부터 쭉 지켜봤습니다. 이런 실력자와 상대할 수 있어 심장이 뛰는군요. 지더라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기, 그런데······. 에이, 아니다.”


“네?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아무것도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서지터는 순간 1라운드에서 왼쪽으로 피할 거냐, 오른쪽으로 피할 거냐 물어보려다 입을 다물었다. 나름의 심리전으로 이용해 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복잡하게 생각하는 게 오히려 독이 될 것 같았다.


“하하! 그럼 전 이만 준비하러 돌아가 보겠습니다. 잠시 뒤에 틸트 베리어 중앙에서 뵙지요.”


“네.”


모시프가 등을 돌려 돌아가자 서지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틸트 베리어 바깥쪽인 오른쪽으로 몸을 숙여 피하면 공격은 절대 불가, 안쪽인 왼쪽으로 피하면 무방비하겠지만 어느 정도 공격은 가능. 어느 쪽이려나?’


“체이스님. 체이스님?”


“어?”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장갑 받으시지 말입니다.”


“야, 근데 파시비엔.”


“네, 말씀하시지 말입니다.”


“왼쪽, 오른쪽. 하나 골라봐.”


“에엥? 다짜고짜 둘 중 하나 고르라는 말씀이십니까? 이유라도 설명해주시면 안 됩니까?”


“됐다. 말을 말자. 너 동전 있지?”


“있습니다만······.”


“동전 튕겨서 앞이 나오면 왼쪽, 뒤가 나오면 오른쪽. 튕겨봐.”


서지터의 말에 의아한 파시비엔은 동전 주머니에서 동화 하나를 꺼내 하늘 높이 튕겼다.


- 티잉! 텁!


“펴봐.”


“앞면 나왔지 말입니다.”


“오케이, 왼쪽.”


여태 말에 오르지도 않고 이상한 짓을 하는 두 사람을 보며 관중석에 있는 그리폰 성기사단의 로스 단장이 어이없는 듯 웃었다.


“하하핫! 설마 동전을 던져서 결정하는 건가? 정말 재밌는 친구야.”


옆자리에서 잔뜩 긴장한 카렌이 물었다.


“단장님? 무엇이 그리 재밌으세요?”


“방금 체이스 저 친구 행동 말일세.”


“네?”


“아마 어제 상대인 모시프의 경기 결과를 알고 있겠지.”


“그거랑 동전 튕기기랑 상관이 있나요?”


“어제 경기 첫 라운드에서 모시프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보였지. 몸을 숙여 상대의 공격을 피했다네. 아마 오늘도 비슷하게 경기 운영을 할 거야.”


“정말요?”


“체이스는 매 경기 1라운드에 승부를 결정지었어. 그럼 이번에도 같은 전략을 쓸 거라 판단하고 상대의 멘탈을 흔들기 위해 1라운드는 최대한 피할 거야. 그리고 장기전으로 끌고 가려 하겠지. 어제 발리헤드와의 경기는 자신의 전략을 노출하는 걸 감수하더라도 오늘을 위한 예행 연습이었을 거야. 그런데 방금 동전 튕기기 전에 손짓하는 걸 보면 피하는 방향을 고르려고 한 것 같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리 중요한 걸 동전 튕기기로 결정하려 하다니, 나 원 참! 하하하!”


로스 단장의 말을 들은 셜레인 대주교는 혀를 끌끌 찼다.


“쯧쯔. 저런 생각 없는 놈이 카렌 너는 대체 어디가 좋다는 거냐?”


“할아버지······.”


로스 단장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제아무리 카렌이라도 대신 변명해줄 수가 없었다. 중요한 순간을 운에 맡기는 것만큼 무모한 짓도 없으니까 말이다. 그나마 그의 대모인 리벨드 부인이 카렌을 대신해 애써 옹호를 해주었다.


“호호, 오히려 생각이 많으면 일이 꼬이는 법이지요. 이럴 때일수록 간단하고 쉽게 가야 합니다.”


“하여간 저 화상은 행동 하나하나 다 마음에 안 들어!”


셜레인 대주교가 서지터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이들이 경기장을 내려다보는 와중에 서지터는 윈드테일에 올라타 경기 준비를 마쳤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피드백과 충고, 오타 지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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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7화 커져가는 불씨 - 2 23.08.29 30 1 15쪽
163 7화 커져가는 불씨 - 1 23.08.28 33 1 12쪽
162 6화 누군가의 의지 - 33 23.08.25 33 1 14쪽
161 6화 누군가의 의지 - 32 23.08.24 28 1 12쪽
160 6화 누군가의 의지 - 31 23.08.23 29 1 16쪽
159 6화 누군가의 의지 - 30 23.08.22 35 1 14쪽
158 6화 누군가의 의지 - 29 23.08.21 28 1 14쪽
157 6화 누군가의 의지 - 28 23.08.18 32 1 17쪽
156 6화 누군가의 의지 - 27 23.08.17 33 1 15쪽
155 6화 누군가의 의지 - 26 23.08.16 28 1 14쪽
154 6화 누군가의 의지 - 25 23.08.15 25 1 13쪽
153 6화 누군가의 의지 - 24 23.08.14 29 1 12쪽
152 6화 누군가의 의지 - 23 23.08.11 34 1 16쪽
151 6화 누군가의 의지 - 22 23.08.10 30 1 16쪽
150 6화 누군가의 의지 - 21 23.08.09 27 1 12쪽
149 6화 누군가의 의지 - 20 23.08.08 31 1 16쪽
148 6화 누군가의 의지 - 19 23.08.07 29 1 12쪽
» 6화 누군가의 의지 - 18 23.08.04 33 1 12쪽
146 6화 누군가의 의지 - 17 23.08.03 31 2 14쪽
145 6화 누군가의 의지 - 16 23.08.02 28 1 17쪽
144 6화 누군가의 의지 - 15 23.08.01 30 2 17쪽
143 6화 누군가의 의지 - 14 23.07.31 37 2 12쪽
142 6화 누군가의 의지 - 13 23.07.28 30 1 12쪽
141 6화 누군가의 의지 - 12 23.07.27 27 1 12쪽
140 6화 누군가의 의지 - 11 23.07.26 29 1 13쪽
139 6화 누군가의 의지 - 10 23.07.25 25 1 12쪽
138 6화 누군가의 의지 - 9 23.07.24 27 2 12쪽
137 6화 누군가의 의지 - 8 23.07.21 29 2 13쪽
136 6화 누군가의 의지 - 7 23.07.20 28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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