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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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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맨
작품등록일 :
2024.07.15 17:40
최근연재일 :
2024.08.13 22:00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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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532

작성
24.08.08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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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13화.

DUMMY

“할아버지.”

“왜 그러느냐.”


사람들을 따라 목책에서 물러나는 길.

여도필의 뒤를 따라 걷던 선후가 넌지시 물었다.


“괜찮을까요?”

“뭐가 말이니?”

“저 아저··· 저 감독관이 다른 감독관에게 말할 수도 있잖아요.”


목책을 열어달라는 부탁.

심지어 다른 누구도 아닌 감독관에게 한 그 부탁에 선후는 걱정이 되었다.

만약 부탁을 들은 감독관이 다른 감독관들에게 오늘 들은 이야기를 알린다면, 그대로 선후와 어른들이 위험해질 테니까.


“괜찮을 거다.”


하지만 막상 여도필은 별 걱정이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설령 우리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더라도, 저 감독관은 그걸 다른 감독관들에게 말하진 않을 거다.”

“어떻게 알아요?”

“그야 평생 해온 게 감독관 놈들 성격과 기분 파악하는 일이니까. 이젠 놈들 얼굴 모양새만 봐도 어떤 성격인지 대충 알 수 있지. ···허허, 농담이다. 표정 피려무나.”


슬쩍 돌아보며 말하던 여도필이 한껏 심각해진 선후의 표정에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이내 진지해진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만약 그런 이였다면 선후 네가 벌써 크게 다쳤을 거다. 벌써 며칠째 그 감독관이랑 싸우고 있지 않느냐.”


여도필의 말에 선후가 몸을 움찔했다.

동시에 선후의 머릿속에, 요 며칠간 있었던 일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


처음 선후가 목책에 달려들었던 날 이후, 선후는 전투가 일어날 때마다 똑같은 자리로 뛰어갔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항상 같은 감독관을 마주했다.

자신을 우습게 보는 듯이 억지로 화살을 다른 곳에 쏘아대던 감독관.

그 기억이 또렷했기에 선후는 그를 볼 때마다 눈이 돌아간 채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고, 선후가 그에게 가진 분노는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감독관들에 대한 분노가 줄어든 건 아니었다.

단지 기다란 창을 들고 자신을 상대하는, 저 감독관에 대한 분노가 줄어들었을 뿐.


“으윽!”


땅에 나동그라진 선후가 신음을 흘렸다.

기다란 창을 사용하는 감독관에게 선후는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그는 창을 마치 그의 몸 일부분이라도 되는 것처럼 손쉽게 다뤘다.

짧은 칼 하나 휘두르는 것도 미숙한 선후는 그에게 제대로 다가가기도 전에 얻어맞고 쓰러지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것도 맞는 것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는 게 아니라, 창질 한 번에 몸의 균형이 헝클어져 넘어졌다.


“이익!”


넘어져 있던 선후가 칼을 집어던졌다.

처음에야 몇 번 놀라던 감독관은 이젠 흔들림조차 없는 눈빛으로 창을 휘둘렀다.

챙, 하는 소리와 함께 선후가 던진 칼이 멀리 떨어졌다.


“헉, 허억···.”


선후가 거친 숨소리를 내며 드러누웠다.

이건 선후가 생각하기에 정말 위험한 행동이었다.

방금까지 자신에게 창을 휘두르던 감독관을 앞에 두고 누워버리다니.

하지만 며칠간 계속 그래왔던 것처럼, 선후에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창을 든 감독관이 더 공격하지 않고 한 발짝 물러나서였다.


“으윽.”


숨을 몇 번 더 들이마시고는 비척대며 일어선 선후가 맞은편에 선 감독관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눈앞의 감독관은 한치의 움직임도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그는 선후가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공격하지 않았다.

이런 행동들이, 선후에게 그가 공격할 뜻이 없다는 걸 확실히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허억, 헉···.”


허리춤의 칼 하나를 다시 손에 쥔 선후가 다시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지금은 그냥 배우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제대로 다가갈 수 있을지, 어떻게 칼을 휘둘러야 할지.

감독관의 공격을 피하는 게, 감독관과의 거리가 한 걸음씩 가까워지는 게,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어느새, 감독관에 대한 분노가 줄어들고, 식게 된 머리가 저 감독관은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선후는 이를 여도필에게 말했다.


“공격을 하지 않는다고?”

“네···.”


선후의 말을 들은 여도필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상하구나. 먼저 공격해 온 자한테 감독관이 그리 행동할 리 없는데···.”


고개를 갸웃하던 여도필이 불현듯 선후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선후야. 너무 위험하구나. 언제 감독관의 마음이 바뀔지 모르는데 계속 덤벼들다니.”

“그, 그건···.”


선후는 할 말이 없어 머리를 푹 숙였다.

하지만 여도필은 그리 말하면서도 딱히 선후를 탓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표정은 살짝 밝아졌다.


“으음. 어쩌면, 어쩌면···.”


그 말만 남기고 생각에 잠긴 여도필.

잠시 뒤 그가 선후에게 꺼낸 말은 선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내가 그 모습을 몰래 보아도 되겠느냐?”

“네?”

“확인하고 싶은 게 있구나.”


선후에게 부탁하는 여도필의 눈빛에는 약간의 밝음이 들어가 있었다.

그렇게 몇 번.


선후의 전투. 감독관의 모습을 저 멀리서 살피던 여도필은,


“그 감독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르신.”


선후를 데리고, 마광에게로 향했다.

여도필의 말을 들은 마광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감독관에게 도움을 구하겠다니요. 제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습니까?”


마광이 홀로 머무는 임시 움막에서, 여도필은 선후가 겪은 일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가 생각한 현재 상황을 풀어낼 방법도 말했다.


“그라면 우리를 도울 걸세. 목책을 열어줄 거야.”

“어르신. 설마 아직도 저희의 편을 들어줄 감독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아니. 더는 그러지 않아. 단지 그 감독관이 그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걸세.”


여도필의 말에 마광이 얼굴을 찌푸렸다. 마광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입을 열려 했다. 그러나 곧장 이어진 여도필의 이야기에 말없이 입을 다물었다.


“선후는 이미 몇 번이고 죽었어야 했어. 자네도 그걸 알기 때문에 망설이고 있지 않나.”


미간에 주름이 진 채로, 마광이 여도필과 선후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선후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선후의 뜻은 아니라는 걸 보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곧 선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광이 여도필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서였다.


“···사람을 몇 명 내드리겠습니다. 정말로 목책이 열려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면, 곧바로 제 쪽으로 사람을 보내 주세요.”

“고맙네.”

“위험해지면 바로 도망치세요. 선후, 너도 마찬가지다.”

“그러겠네.” “넵.”


여도필이 선후와 함께 감독관을 만나러 간 것은 바로 다음에 이어진 일이었다.


“도착했구나.”


기억을 되짚다 보니 어느새 움막에 도착했다.

선후는 움막 안에 들어가 자리에 누웠다.

이어 잠이 들 때까지, 한참을 뒤척거렸다.


***


자신을 찾아온 이들이 돌아가고, 감독관 권선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도와달라고? 감독관들을 다 죽이는 이들을?’


권선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때였다. 때마침 환호성이 들려왔다. 노예들이 또다시 몰려왔고, 쫓아내면서 내는 감독관들의 소리였다.

불현듯 권선이 깜짝 놀랐다. 생각에 잠겨, 노예들이 몰려온다는 종소리도 듣지 못했다는 걸 깨달아서였다.


다급히 목책 너머를 쳐다보았으나, 항상 오던 어린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권선은 고개를 내저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목책을 넘기가 어지간히 힘든 모양이군. 그러니 내게 이런 부탁을 했겠지. 이런 미친 부탁을.’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물병을 집어 들고 잔에 들이부은 뒤 이를 홱 들이키는데, 멀찍한 평상 하나에 자리 잡는 감독관 무리가 보였다.


이어서 그들이 신경질을 내는 것이, 곧이어 익숙한 얼굴의 노예 한 명이 허겁지겁 달려가는 것이, 그들이 채찍을 집어 들고 휘두르는 것이.


‘미치겠군.’


권선이 고개를 돌렸다. 한숨을 내쉬었다.

얻어맞고 있는 노예는 이전에 자신에게 무슨 일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느냐고 물었던 노예였다.

물병에 얹어진 손이 술병으로 옮겨졌다.

잔이 다시 채워지고, 휙 올라갔다 내려온 다음, 비명이 들리는 쪽으로 권선의 시선이 돌아갔다.


권선은 이를 보며 술잔을 계속 채워 올리다가, 한 구석을 청소하고 있던 노예에게 손짓했다.


“저기서 얻어맞고 쓰러져 있는 놈, 그리고 네가 보기에 다른 노예들이 잘 믿고 따르는 노예들. 그렇게 몇 명을 여기로 불러와라. 최대한 입 무겁고 진지한 녀석들로.”


벌게진 목과 얼굴 때문일까, 말을 걸자마자 몸을 움츠린 노예가 후다닥 뛰어갔다.

곧이어 말했던 노예들이 권선의 앞에 섰다.

노예들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권선의 눈치를 보았다.

권선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시선을 받은, 방금까지 다른 감독관에게 얻어맞다가, 권선에게 불려 온 사이 연고가 발려진 노예가 몸을 움찔했다.


“나한테 물었었지. 대체 무슨 싸움이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냐고.”


연고로 번들거리는 노예가 한 번 더 몸을 움찔이며 권선을 쳐다보았다.

권선은 그 노예를 보며, 아니 불러온 노예들 모두를 훑으며 말했다.


“여기 모인 감독관들은, 노예들을 풀어주는 이들과 싸우고 있다.”

“···예?” “네?” “그게 무슨···?”


노예들이 이해를 하지 못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권선이 그들에게 다시 말했다.


“감독관들을 쓰러뜨려 노예를 구해주는 이들이 이곳으로 몰려왔다.”

“그들이 이곳엔 왜···?”

“너희처럼, 작업장의 노예들을 감독관들에게서 풀어주기 위해서겠지.”


노예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순간 눈빛이 반짝였다. 하지만 이윽고 몸을 떨며 눈치를 보았다.

권선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마음을 정한 뒤였으니까.


“저 노예들은 내게 사람을 보내왔다. 자기들을 도와달라고.”


노예들이 놀란 눈으로 권선을 쳐다보았다.

피식, 권선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 보니 언제 오겠다고, 어떻게 신호를 주겠다고 제대로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군. ···다 미친 거야. 나도 그렇고.’


피식대던 권선이 다시 노예들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신호를 주겠다고 했다. 아마 이 자리에 있으면 누구든 눈치챌 만한 그런 신호겠지.”


권선이 창을 손에 들었다. 노예들이 겁먹은 표정을 짓는 것 같았는데, 상관없었다.


“목책을 열어줄지, 열어주지 말지, 너희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해라.”


그 말과 함께 권선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안에서 가만히 쉬어야겠어.”


권선은 그 말을 남기고는 자리를 떠났다.

덩그러니 남은 노예들이 동그래진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


“나아가자!”

“목책을 무너뜨리자!”


평소와 다름없이, 사람들이 목책을 향해 우르르 몰려갔다.

그리고 목책 너머의 감독관들 또한 평소처럼 그들을 맞이했다.


“징그러운 버러지들!”

“또 죽여주마 노예놈들아!”


하지만 목책의 어느 한구석은 평소와 많이 달랐다.

살금살금. 몸을 바짝 숙인 채 몰래 움직이고 있는 이들.

제일 앞에 있는 건 선후였고, 그 뒤에 마광이 붙여준 몇 명이 함께하고 있었다.

여도필은 없었다. 함께하는 게 방해일 것 같다는 그의 말에 다들 작게나마 고개를 끄덕여서였다.


“거의 다 왔어요.”


항상 선후가 찾아가던 자리.

감독관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심히 자리에 도착한 이들이 선후를 쳐다보았다.

시선을 받은 선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빼꼼, 고개를 든 선후가 침을 꼴깍 삼켰다.


‘목책에 돌을 던지거라. 너무 강하게 말고, 작은 소리만 날 정도로.’


함께 오진 못한 여도필이었지만, 그가 선후에게 맡긴 일이 있었다.

흐읍. 숨을 들이쉰 선후가 자그만 돌멩이 하나를 손에 쥐고는 목책을 향해 던졌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돌멩이가 목책을 두드렸다.

동시에, 다들 긴장한 표정으로 눈빛을 나눴다.

선후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여물지도 않은 목젖이 몇 번이고 오르락 내리락거렸다.


그리고,


벌컥. 목책이 열렸다.

모두들 눈을 휘둥그레 떴다.

뒤이어 누군가 얼굴을 내밀었다.

선후에게 익숙한 창을 쓰는 감독관의 모습은 아니었다.

대신 선후와 다른 사람들처럼, 아니 그보다 더 해진 낡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었다.


“드, 들어오세···.”

“문이 열렸어!”

“빨리 들어가자!”

“한 명은 저쪽으로 가! 사람들을 이쪽으로 다 불러!”

“조용히 해! 들키면 안 된다고!”


얼굴을 내민 이가 안쪽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순간, 연락을 위해 다시 돌아가는 한 명만 빼고, 선후를 비롯, 함께 왔던 이들이 우르르 목책 안으로 몰려 들어갔다.

선후도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


목책 안쪽으로 들어가니, 저 멀리, 목책이 뚫렸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하고 싸우는 중인 감독관들이 보였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댔지만, 옆 사람의 두근거리는 소리까지 귓가에 맴돌았지만, 모두들 침착하게 사람들이 모이기를 기다렸다.


조금씩, 조금씩, 전투에서 빠져나온, 혹은 바로 목책으로 온 사람들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모이고,


어느새 마광까지 목책 안으로 들어와 앞쪽 감독관 무리를 보며 눈을 크게 뜨고 나서는,


“다들 무기를 들어라.”


다함께 무기를 들어 올린 뒤,


“공격!”

“들어가! 쓸어버려!”

“목책 문 보일 때마다 다 열어!”


모두 같이 감독관들을 향해 몰려갔다.


“뭐야? 노예 놈들이 왜 저기서 나와!”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


감독관들이 당황해 웅성거리는 게 보였다.


“놈들이 안으로 들어왔을 뿐이다! 흔들리지 마라!”

“목책 밖이나 안이나 똑같다! 우리가 저놈들보다 더 강하다!”


그래도 금방 술렁이는 것을 다잡고 자세를 유지하는 감독관들.

하지만 이는 오래 가지 못했다.

사방에서 몰아닥치는 사람들에게, 감독관들은 끝내 그대로 쓸려나갔다.

그동안 단 한 명도 목책을 넘어가게 허락지 않았던 작업장.

이를 돌려받기라도 하는 것처럼, 수많은 이들을 안으로 들인 작업장은 그날 그대로 사람들의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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