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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맨
작품등록일 :
2024.07.15 17:40
최근연재일 :
2024.08.13 22:00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177
추천수 :
2
글자수 :
85,532

작성
24.07.16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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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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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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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화.

DUMMY

콰르릉!


바깥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소리.


심상치 않은 소리에 선후는 물론, 감독관까지 눈을 크게 뜨며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냐!“


감독관이 허겁지겁 손을 내저어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돌먼지를 밖으로 내보냈다.


희뿌옇던 자리가 점차 깨끗해지자, 감독관은 입구 근처에서 돌반죽을 젓고 있는 남자에게 소리쳤다.


”뭐해! 무슨 일인지 알아봐!“


감독관의 고함에 막대 휘젓는 것을 멈추고 입구로 걸어가는 남자.


안면에 대각선 흉터가 있는 그를 선후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선후는 분명 보았다. 그가 몰래 바깥에 나갔다 들어오는 것을.


그래서 느끼고 있었다. 방금 들린 소리는 그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는 자신이 이 일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듯 무뚝뚝한 얼굴로 바깥을 내다보고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움막 뒤편 언덕에 묶어둔 건설 재료들이 모두 밑으로 굴러떨어지고 있습니다.“

”뭐?“


당황한 표정을 지은 애꾸눈 감독관이 다급히 입구로 뛰어가 바깥을 내다보았다.

그러더니 새파래진 얼굴로 돌아와 남자에게 소리쳤다.


”이거 관리하는 놈 있었잖아! 그 새끼 어디 갔어!“

”어제부로 다른 작업으로 옮겨졌습니다.“


힐끗 선후를 쳐다보는 남자.


별다른 말이 없었는데도, 그의 행동은 그 사람 대신 여기 있는 꼬마 아이가 온 것 아니냐고 되묻는 듯 보였다.


”이런 빌어먹을!“


그렇게 소리친 감독관이 황급히 채찍을 손에 감아냈다. 그리곤 남자에게 손가락질하며 외쳤다.


”너, 이 애새끼 일 잘하는지 보고 있어!“


그는 그 말만 남기고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감독관이 떠난 자리.


선후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지시를 받은 남자를 쳐다보았다.


사선으로 새겨진 채찍 흉터가 얼굴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숙소에선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오던 남자.


무뚝뚝한 표정의 남자가 시선을 느꼈는지 선후를 돌아보았다.


”이, 이거···, 아저씨가 하신···.“


더듬더듬. 선후가 그리 묻자, 남자는 입술 위에 손가락을 올리며 조용히 하라는 동작을 해 보였다.


선후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곤 그걸로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 행동까지 해보였다.


그런 선후를 무신경한 눈빛으로 바라본 남자는 몸을 돌려 자리로 돌아가더니 다시 막대를 휘젓기 시작했다.


선후는 그런 그의 눈치를 보다가, 꾸벅 허리를 숙였다.


”가, 감사합니다.“


숙였던 허리를 펴며 일어나니, 남자가 조금 커진 눈으로 선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꿀꺽, 선후가 긴장한 얼굴로 침을 삼키는데, 남자가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니. 이건 네가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니다.“


그리 말한 그가 돌반죽으로 시선을 옮겼다. 남자는 다시 막대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원망해야 할 일이지.“

”···?“


워낙 작은 목소리라 그가 무어라 중얼거린 건지 선후는 듣지 못했다.

다만 그의 눈에 불꽃과도 같은 타오름이 일어났다는 것은 느꼈다.


섬뜩할 정도의 기세.


저도 모르게 움찔한 선후가 몸을 움츠렸지만, 이내 고개를 내젓고는 한 발자국 그를 향해 다가갔다.


궁금한 게 있어서였다.


”이,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남자는 언제나 못마땅한 얼굴로 선후와 여도필을 쳐다보는 이들 중 하나였다.


아니, 그러한 무리의 중심에 있는 대장 격의 인물이었다.


그래서인지 여도필은 선후를 그의 근처로 데려가는 일이 없었는데, 그런 것치곤 여도필과 그는 꽤 자주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그때에도 선후를 옆으로 데려가지 않아, 선후는 그의 이름을 알기는커녕 들은 적도 없었다.


선후의 질문에 남자가 눈썹을 한 번 으쓱이곤 대답했다.


”마광.“

”마광 아저씨···.“


그의 이름을 깊게 곱씹은 선후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선후는 생각했다. 마광 또한 마찬가지로 선후의 이름을 들은 적 없을 거라고.


”제 이름은···.“

”선후. 알고 있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선후가 눈을 끔벅였다. 어떻게 알고 계시지? 하는 생각이 얼굴에 버젓이 드러났다.


한편, 대답하면서도 꾸준히 돌 반죽을 젓고 있던 마광이 선후 뒤편의 반죽통을 가리켰다.


”돌반죽을 저어라. 애꾸 녀석이 돌아오면 트집을 잡아 채찍을 때릴 거다.“

”···그 자식은 어차피 절 때려요.“


애꾸눈 감독관은 선후를 가만 내버려 두는 자가 아니었다.


돌을 나를 때는 마주할 때마다 채찍을 휘둘렀고, 오늘처럼 아예 따로 불러 채찍을 갈겨대기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러니 어차피 맞을 채찍이라면, 작업을 조금이라도 방해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선후였다.


”그러니까 안 할래요.“

”작업을 제대로 해서 보내지 않으면 다음 작업을 맡은 사람이 채찍을 맞는다.“


그 말을 들은 선후가 몸을 움찔했다.

마광의 말이 맞았다.

여긴 그런 곳이었다.

남이 제대로 하지 않은 일도 채찍을 맞을 이유가 되는 곳.


마음 한 켠이 찌릿하고 불편해진 선후가 몸을 돌려 돌반죽이 담긴 통으로 다가가 막대기를 붙잡고 돌려댔다.


느릿한 회색 소용돌이를 그리며 휘적휘적 끈적하게 바뀌어 가는 돌반죽.


그러나 이를 만들어내는 선후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빌어먹을 새끼···!’


애꾸눈 감독관에게 맞은 상처가 아려왔다.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먼지 속에서 휘둘러진 가시 채찍이 왼팔 오른팔을 전부 할퀴어 놓은 것이다.


팔을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쓰라림에 선후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던 그때였다. 마광이 선후를 불렀다.


”그만 저어라.“


선후가 깜짝 놀라 고개 들자, 마광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선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피가 번지고 있다. 손 움직이는 걸 멈춰라.“

”아.“


선후가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았다.


채찍질로 인한 상처가 벌어져, 거기서 흘러내린 피가 팔을 타고 팔꿈치에 고여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까는 상처를 보지 못했다. 내 잘못이야. 연고를 가져다줄 테니 그걸 바르고 쉬거라.“

”괜, 괜찮아요.“


마광의 말에 선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 이유 없이 거절한 건 아니었다.


”제가 쉬면 아저씨가 채찍을 맞잖아요.“


선후는 애꾸눈의 감독관이 떠나기 전 한 말을 떠올렸다.


- 너, 이 애새끼 일 잘하는지 보고 있어!


그게 지켜지지 않았을 때 애꾸눈 감독관이 할 짓은 뻔했다.


채찍을 휘둘러, 안 그래도 흉터가 가득한 마광의 몸에 또다른 상처를 새겨넣을 것이다.


선후는 그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 민폐를 끼치는 건 여도필 한 명으로 족했다.


그러나,


마광은 선후의 말을 다소 다르게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무표정하던 마광의 표정이 어느새 선후가 익히 보던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네놈을 데리고 있는 어르신과는 다르다.“


그러더니 성큼성큼 선후를 향해 다가왔다.


”나는 안 맞고 넘기는 법을 잘 알고, 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지.“


그는 선후의 코앞까지 다가와, 선후가 휘젓고 있던 반죽통을 번쩍 들어 올렸다.


마광의 몸에서 흉터 가득한 근육이 벌떡 일어나고, 돌반죽이 들어있던 통은 그대로 멀어져 마광의 자리 옆에 놓였다.


마광은 막대 두 개를 붙잡아 한 번에 휘휘 저어 보이면서, 선후에게 명령하듯 말했다.


”그러니 쉬어라.“

”그래도···.“


선후가 쭈뼛거리자, 마광의 이마가 잔뜩 일그러졌다.

허나 그것도 잠시, 그의 표정이 다시 무표정하게 돌아왔다.


”정 안 되겠으면, 이거라도 날라라.“


마광이 몸을 돌리더니 구석진 곳에서 손잡이가 있는 통을 하나 꺼내왔다.

그다음 돌반죽을 그 안에다 부었다.


”위에서 세 번째 움막에 돌반죽을 가져다 주어라. 어차피 해야 하는 일, 이걸 네가 이걸 맡아서 해라.“


마광이 손잡이 달린 운반통을 밀어주고, 다가온 선후가 운반통을 들었다.


힘을 주어 통을 들어 올리니 양팔의 상처가 조금 따끔거렸는데, 그게 정말 상처 때문에 그런 것인지, 아니면 모른 척하는 얼굴로 대놓고 이를 보고 있는 마광의 시선 때문인지, 선후는 잘 몰랐다.


”무리하지는 마라. 가다 힘들면 내려놔. 내가 나중에 옮길 테니.“


밖으로 나가는 선후에게 넌지시 건네지는 말.

그것만큼은 선후가 거절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와···!“


움막 밖으로 나와보니, 언덕 아래로 향하는 경사진 길에 거대한 돌기둥들이 완전히 박살이 난 채 흩뿌려져 있었다.


경사진 길 가장 아래에는 감독관들이 잔뜩 모여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 있는 것은 애꾸눈의 감독관.


난처한 얼굴을 한 그를 잠시 구경하며 활짝 미소 지은 선후는, 혹여나 감독관들이 위를 올려다볼까 싶어 재빨리 자리에서 도망갔다.


***


몇 번이나 길을 오갔을까.


이게 마지막, 이라고 말하며 돌반죽을 채워준 마광은 운반통을 움막에 두고 숙소로 돌아가면 된다는 말만 남기고는 사라졌고,


언덕 아래 모여있던 감독관들은 이제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남은 건 빈 통을 들고 오르막길을 걸어가는 선후뿐.


‘으으···.’


선후는 팔이 빠질 것 같은 고통에 얼굴을 찡그렸다.


계속해서 돌반죽을 들고 오간 탓에 팔에는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돌반죽이 들어있는 것에 비하면 가볍기 그지 없는 빈 통마저 힘겹게 느껴질 정도.


결국 선후는 근처에서 잠시 쉬었다 가는 것을 택했다.


물론 주위에 감독관이 한 명이라도 보였더라면 절대 하지 않을 선택이었지만,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결정이었다.


때마침, 몇 걸음 옆에 움막이 하나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는 건 당연히 안 될 일.


움막 근처로 다가간 선후는 통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움막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그런데 그때, 움막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감독관을 새로 뽑는다고?“

”그렇다고 하더군.“

”왜? 감독관은 지금 충분하지 않나?“


움막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선후의 몸이 굳었다.


낯이 익은, 감독관들의 목소리.


선후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뜨려는데, 이어진 그들의 이야기가 선후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못 들었냐? 마령들 돌 부수는 거 구경하던 감독관. 그 주위에서 얼쩡거리다가 돌 깨진 파편 맞고 쓰러졌잖아.“

”아, 그 병신. 뭐야 그럼, 그거 다쳤다고 나가는 거야?“

”나간다기보단 쫓겨나는 걸세. 다들 알지 않나. 감독관은 몸 잘못 다치면 물러나야 하는 거.“


그 말을 듣는 순간, 선후의 몸이 우뚝 멈춰 섰다.


동시에 선후의 눈앞에 그려졌다.


애꾸눈 감독관.


그가 다친 몸을 이끌고 이곳을 떠나는 모습이.


그리고 그 몸으로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헤매는 모습이.


뒤이어 선후는 떠올렸다.


애꾸눈 감독관이 퍼부은 돌가루 포대.


그로 인해 움막이 회색 먼지로 가득 찼을 때,


마광, 분명 움막 밖을 나갔다 들어온 그가 날카롭게 반짝거리는 무언가를 어딘가 숨긴 것을.


선후는 곧장 통을 들고 돌가루를 휘젓던 움막으로 뛰어갔다.


떨어질 것 같던 팔. 텅 비어있음에도 끔찍하게 무겁던 통의 무게.


그딴 건 더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다급히 움막으로 돌아온 선후가 고개를 들이밀어 움막 안을 살폈다.


마광도, 애꾸눈 감독관도, 보이지 않았다.


선후는 손에 든 운반통을 냅다 집어던지고는, 허겁지겁 마광의 자리를 뒤졌다.


커다란 반죽용 통을 엎어보기도, 구석구석을 막대로 찔러보기도, 바닥에 쌓인 포대를 힘껏 밀어보기도.


곳곳을 뒤집은 끝에, 선후는 기어이 마광이 숨겨둔 칼을 손에 쥐었다.


계속해서 관리했는지, 날카롭게 번들거리는 칼날.


그 칼날 위에 비친 선후의 눈빛 또한 여지없이 날카롭게 빛났다.


선후가 칼을 꾹 쥐어 보였다.


손에도, 팔에도,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이에 선후가 이를 악물었다.


어차피 오늘은, 애꾸눈 감독관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그러니까···.


선후가 칼을 품에 숨겼다.


그리곤 차분히 숙소로 돌아갔다.


선후의 눈빛엔 어느샌가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숙소에서도, 잠자리에 들 때도, 다음날 일어났을 때도,


그리고,


다시 돌을 나르라는 명령을 받아, 평소처럼 밖으로 나갈 때도,


부릅뜬 선후의 눈빛은, 속에 품은 칼처럼 아주 날카롭게 번쩍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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