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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맨
작품등록일 :
2024.07.15 17:40
최근연재일 :
2024.08.13 22:00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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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5,532

작성
24.07.17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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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3화.

DUMMY

“···뭐야?”


돌 나르기를 맡은 감독관.


잃어버린 오른쪽 눈 위에 안대를 쓰고 있기에, 습관적으로 안대를 손으로 살짝 집었다 내리며 위치를 다잡는 습관을 지닌 그는, 돌을 이고 가는 자들을 쳐다보다 불현듯 눈살을 찌푸렸다.


어린아이. 어제 돌가루를 반죽으로 만드는 움막으로 데려갔다가 언덕에 묶어둔 돌기둥들이 갑자기 다 굴러떨어지는 바람에 크게 비난을 들은, 자신이 기둥 옆 돌가루 움막으로 향하게 한 녀석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녀석의 모습이 평소와 조금 달랐다. 녀석은 옷을 입고 있었다.


돌을 나르는 이들은 대부분 윗옷은 입지 않았다. 그건 저 꼬맹이 녀석도 마찬가지로, 그동안 단 한 번도 옷을 입고 돌을 나르는 모습을 보인 적 없었다.


애꾸눈 감독관이 얼굴을 확 찌푸렸다.


“···그래. 내가 어제 그 개판 뒤치다꺼리할 동안 넌 편했다 이거구나.”


그동안 왜 옷을 입지 않다가 오늘은 옷을 입었는가. 감독관이 생각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어제 자신이 사라진 동안 펑펑 쉬어서, 그 덕에 옷을 입고 돌을 나를 정도로 체력이 여유로우니까.


저건 어제 하루 종일 뺑뺑이 친 자신에게 보란 듯이 옷을 입은 게 틀림없었다.


그리 생각한 감독관이 곧장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옆을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대번에 노려보는 녀석.


이런 놈을 대하는 법은 간단하다.


애꾸눈 감독관이 곧장 채찍을 들어 휘둘렀다.


“어딜 노려보느냐!”


그런데,


녀석이 몸을 휙 돌리더니, 등에 이고 있던 커다란 돌로 채찍을 막았다.


예상치 못한 녀석의 행동에 애꾸눈 감독관이 눈가를 비틀어 올렸다.


“···어쭈?”


애꾸눈 감독관의 표정이 급격하게 일그러졌다.


명백하게 자신을 모독하는 행위, 녀석이 이걸 모를 리가 없다.


감독관의 얼굴에 분노가 순식간에 들어찼다.


“너, 이리로 와라.”


직접 손가락질을 해대자, 아이가 뚜벅뚜벅 감독관의 앞으로 걸어왔다.


“돌 내려.”

“···.”

“돌 내려!”


고함을 지를 때까지 못 들은 척 가만히 있다가, 소리를 지르니까 돌을 내려놓는 녀석.


녀석이 돌을 내려놓는 모습은 퍽 조심스러워 보여, 감독관의 입가에서 픽하는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돌을 믿고 뻗대던 녀석은 이제 없다.

그 생각에 감독관이 씨익 웃으며 소리쳤다.


“내가 어제 네놈 때문에 얼마나 골치 아팠는지 알아!”


이미 애꾸눈 감독관의 머릿속에서 기둥이 쏟아진 일은 아이의 탓으로 되어있었다.


애꾸눈 감독관이 채찍을 힘껏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런데 그 순간,


언제나 맞기만 하던 어린 놈이, 갑자기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달려들었다.


날카롭게 반짝이는 것.


그걸 눈에 담는 찰나 불현듯 옆구리가 화끈거렸다.


이어 입에서 절로 비명이 튀어나왔다.


“으아악!”


***


애꾸눈 감독관이 채찍을 들어 올리는 순간, 선후는 품에서 곧바로 칼을 꺼내 달려들었다.


그러나 오직 감독관을 칼로 찌르겠다는 감정만이 가득했던 선후는 알지 못했다.


어디를 찔러야 하는지, 어떻게 찔러야 하는지.


그래서 냅다 감독관의 옆구리로 달려든 뒤 눈에 보이는 대로 찌르고, 베어냈다.


이미 돌아간 눈과 용솟음치는 감정.


그 두 개가 섞여 만든 어설픈 찌르기와 베기를 도와준 건 날카로운 칼날이었다.


픽, 푸슉. 선후의 얼굴에, 몸에, 감독관의 피가 튀었다.


“으아악!”


애꾸눈 감독관의 비명. 뒤이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선후의 몸이 붕 떴다.


비명을 지른 애꾸눈 감독관이 다급히 선후를 걷어찬 것이다.


쿵, 쿵. 땅을 구르는 몸뚱이.


동시에 쥐고 있던 칼이 저 멀리 떨어졌다.


“이 개새끼가!”


다시금 채찍을 들어 올리며 후려치려는 감독관.


그러나 선후는 채찍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항상 맞아온 채찍. 버틸 수 있다.


중요한 건 채찍을 피하는 게 아니다.


떨어진 칼을 주워야 한다.


선후가 곧바로 일어서 칼을 향해 뛰어갔다.


옆구리를 부여잡고, 거기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있던 감독관이 화들짝 놀라 채찍을 휘저었다.


짜악!


휘둘린 채찍이 선후의 다리와 발목을 후려갈겼다.


선후의 몸이 그 힘과 충격,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비틀대다 넘어졌다.


등이었으면 버텼는데!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뜨며 그리 생각한 선후가 주먹으로 땅을 내려치면서 몸을 밀어 올렸다. 그리곤 절룩거리며 일어나 다시 뛰어갔다.


“이, 이 미친 새끼!”


경악한 애꾸눈 감독관이 다시금 채찍을 놀렸다.


감독관이라는 직위에 걸맞게, 그의 채찍술은 뛰어났다.


뻗어진 채찍이 순식간에 선후의 발 하나를 휘감았고, 힘껏 당기니 선후가 그 즉시 자리에서 와당탕 넘어졌다.


“아아악!”


선후가 고함을 질렀다. 아파서라기보단, 이겨내기 위해서. 채찍을 어떻게든 풀고 다시 칼을 잡기 위해서.


땅바닥에 엎어진 채로, 선후가 자신의 왼발에 묶인 채찍을 오른발로 퍽퍽 걷어찼다.


채찍 끝의 가시가 발에 파고들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춰선 안 됐다.


몸이,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으아악! 으아아악!”


선후가 내지르는 소리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여전히 옆구리를 부여잡은 감독관이 얼핏 휘청거렸다.


애꾸눈 감독관은 직감했다. 이 몸 상태론 녀석을 끝장낼 수 없다.


그가 주위를 돌아보았다.


몰려든 채, 당황한 기색으로 웅성거리는 노예 인간들.


자신의 눈치를 보는 녀석들.


감독관이 곧장 그들에게 명령했다.


“뭐해! 저 애새끼 죽여!”


움찔, 죽이라는 말에 놈들이 놀란다.


꼴에 손에 피를 묻히긴 싫은 거냐!


애꾸 감독관은 하나 남은 눈을 크게 일그러뜨리고는 말을 바꿨다.


“두들겨 패란 말이다!”


그 말에 가장 먼저 뛰어와 앞에 서는 이가 있었다.


감독관은 떠올렸다. 저 애새끼를 때릴 때면 항상 나타나 그 앞을 가로막는 늙은이.


일도 잘하고, 다른 감독관들과도 나름 사이가 좋아, 멋대로 채찍 휘두르기가 눈치 보이는 늙은이.


여도필.


“여도필···, 넌 빠져! 당장 나와! 나오라고 이 씨발 새끼야! 뒤지고 싶지 않으면 지금 당장···!”


점차 흐릿해지는 시야로 눈앞에 선 놈을 쳐다보는데, 무언가 달랐다.


여도필 그 늙은 놈이 저렇게 건장했나? 삐쩍 마른 몸이었는데? 저렇게 젊고 힘 있어 보였나? 힘 있는 거라곤 눈빛뿐이던 늙은 자식이?


“···마광!”


흐릿한 시선을 부여잡고 보니, 가장 먼저 앞에 선 것은 매번 애새끼를 가로막던 늙은 놈이 아니라 감독관의 명령을 잘 수행하기로 이름난 마광이란 놈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따라온 건 놈과 함께 몰려다니는 패거리들이었다.


애꾸눈 감독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야 마광은, 감독관의 명령을 거절한 적이 없는 놈이니까.


“마광! 저 애새끼를 죽여라!”


감독관의 외침에 마광이 몸을 돌렸다.


질질 끌려가는 채 땅바닥을 구르며, 발에 묶인 채찍을 풀려고 악을 내지르는 녀석.


마광이 천천히 아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 뒤를 그의 무리가 뒤따랐다.


감독관이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 순간, 마광이 뒤를 돌며 멈춰섰다. 이어, 그의 무리들도 따라 돌아섰다.


“···?”


그건 마치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둘러싼 것만 같아서, 감독관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뭐해?”


으아악, 아아악, 하는 소리가 그들 너머로 들려왔다.


“뭐해 이 새끼야! 죽이라고! 그 애새끼를 죽이라고!”


그때였다.

옆에서 허억허억하는 소리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고개를 돌리니 여도필, 아이를 언제나 감싸는 그 늙은 놈이 와 있었다.


헉헉대며 뛰어온 여도필이 당황한 눈으로 마광을 올려다보았다.


마광이 작게 손짓하자, 마광의 무리가 몸을 살짝씩 움직여 마광 옆에 사람 한 명이 설 자리를 만들었다.


여도필이 마광을 바라보고, 마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여도필이 들어가 섰다.


이내, 여도필 마저 감독관을 돌아보면서, 아이를 에워싼 이들의 뜻이 명확해졌다.


아이를 지킨다.


이를 바라보던 감독관이 분노에 차 소리 질렀다.


“이 개새끼들! 당장 나오지 못해!”


감독관이 채찍을 잡아당겼다. 여전히 어린 놈의 발목을 부여잡고 있는 채찍. 그런데 그가 이를 당기는 순간, 딸려가는 채찍을 마광이 중간에 밟아버렸다.

그 강한 힘에 감독관이 채찍을 놓쳤고, 마광이 그대로 발을 움직여 채찍을 그들쪽으로 끌고 갔다.


이에 애꾸눈 감독관이 한쪽밖에 없는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죽여버리겠다! 다 죽여버리겠어! 이 빌어먹을 새끼들!”


그는 옆구리를 부여잡은 채, 일말의 미동도 없이 서 있는 이들을 보며 으르렁댔다.


“위쪽에 연락을 보내주마! 단단히 각오해라, 이 버러지 같은 새끼들! 감독관의 명령을 듣지 않은 죄로! 전부 죽여주마!”


감독관은 비틀거리면서도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삿대질했다.


“너도, 너도, 너도, 너도! 여기 있는 네놈들 다! 다 죽여주마!”


그리 외친 감독관은 이윽고 새하얘진 얼굴로 옆구리를 부여잡은 채 어디론가 뛰어갔다.


그렇게 감독관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선후를 둘러싸고 있던 이들 중 한 명, 여도필이 다가와 선후의 왼발에 묶인 채찍을 풀어주었다.


그 사이, 마광은 뚜벅뚜벅 걸어가 저 멀리 떨어졌던 칼을 주워 들었다.


마광이 칼을 가만히 살펴보다, 이윽고 미간을 잔뜩 찡그리더니 선후를 휙 돌아보았다.


여도필의 도움을 받아 이제 막 채찍을 풀고 몸을 일으켜 앉은 선후가 마광의 시선을 마주하고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그건 마광의 칼.


그리고 오늘 일은, 마광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가져가 행한 일.


“죄, 죄송···.”

“오늘은 꼭 쉬어라.”


그 말만 남기고는, 마광이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

여도필, 마광과 함께 선후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다른 어른들도 마광의 뒤를 따라 떠났다.


자리에 남은 건 여도필. 그리고 다친 어린아이를 차마 떠나지 못한 마음 약한 아주머니와 여인들 정도였다.


“괜찮으냐?”


선후가 고개를 돌려 여도필을 바라보았다. 걱정 가득한 얼굴.


“네. 괜찮··· 으윽!”


선후는 괜찮다는 걸 보여주려 멋대로 발을 움직여 보였다가, 큰 고통에 얼굴을 찡그렸다.


이는 채찍에 달린 가시들이 선후의 발과 발목에 수없이 꽂혀있어서였다.


“발 움직이면 안 돼!”


그런 말이 들리기 무섭게, 떠나지 않고 있던 아주머니와 여인들, 누나들이 선후에게로 달려왔다.


그들은 어디선가 조그만 족집게를 가져와 하나씩 들더니 선후의 발바닥, 발, 발목에 가득 꽂힌 가시들을 하나씩 뽑아냈다.


뒤이어 상처에 연고가 발렸다.


연고를 바르자 가시가 뽑힌 곳에서 흐르던 피가 금세 멎었고, 통증도 한결 줄어들었다.


선후가 절뚝대며 일어서는데, 여도필이 다가와 이를 부축했다.


여도필은 선후를 자연스레 움막으로 데려갔다.


선후의 눈이 무겁게 끔벅였다.


피곤했다.


너무 많은 감정과 힘을 쏟아내서일지도, 아니면 어제오늘 피를 너무 많이 흘린 걸지도.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선후는 오늘만큼은 마광의 말대로 쉬기로 했다. 아니, 쉬고 싶었다.


여도필의 몸에 기대, 흘러내리듯 움막에 눕혀지는 선후.


긴장이 풀린 걸까, 바닥에 뉘어지는 순간 선후는 저도 모르게 풀썩 잠에 빠져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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