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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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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맨
작품등록일 :
2024.07.15 17:40
최근연재일 :
2024.08.13 22:00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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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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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5,532

작성
24.07.2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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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7화.

DUMMY

깡깡. 쩌적. 쿵! 으아악!

돌로 이루어진 넓은 땅 곳곳에서 망치가 정을 내려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인위적으로 만든 금을 따라 땅이나 다름없는 암석에 금이 가고, 이윽고 거대한 돌덩어리가 돌가루를 일으키며 떨어져 나간다.

비명 소리가 떠올라 드리운다.

돌의 아래에서, 돌의 위에서, 무게의 내리누름에, 혹은 누군가의 채찍질과 돌팔매질에.

비명 소리가 끝없이 떠올라 맴돈다.


채석 작업장.

과거에는 언덕이었다고 불리는 이 땅은 이제는 평지로 내려가다 못해 조금씩 구덩이로 변해가고 있었다.


“허억, 어억···.”

“빨리 빨리 움직여!”

“아아악!”


인간도, 마령도.

돌을 캐는 일을 맡은 노예들이 망치와 정을 손에 들고 열심히 돌을 내려쳤다.

그들의 뒤에 선 감독관이 당연하다는 듯 채찍을 휘둘렀다.

비명이 들려와도, 피가 뚝뚝 떨어져도.

무표정하게 채찍질하던 감독관이 힐끔 저 위를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이 채석장 곳곳에 세워진 아주 높다란 망루.


“하암.”


여러 망루 중 하나. 그 위에 올라와 있는 감독관의 표정은 사뭇 달랐다.

하품을 하면서도 눈빛은 빛이 났다.

감독관의 한 손에는 적당한 크기의 돌멩이가 쥐어져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돌팔매질을 위한 무릿매, 줄팔매를 들고 있었다.


“저놈이 좋겠네.”


하품이 미소로 변했다.

한 손에 쥐어져 있던 돌멩이가 무릿매 끝에 걸렸다.

이어 감독관의 머리 위에서 빙빙 돌아가기 시작한 무릿매가 이윽고 돌을 쏘아냈다.


“아아악!”


채석장 구덩이에서 이제 막 벗어나 위로 끌려오던 바윗덩어리.

가장 앞에서 힘차게 바위를 끌어올리던 노예 한 명이 돌을 맞고 그대로 엎어졌다.

바위가 아래로 떨어져 내려갔다.

주위의 노예들이 비명을 지르고,

근처의 감독관들은 채찍을 휘둘러 녀석들을 조용히 시켰다.

조용해진 노예들이 벌건 피를 뚝뚝 흘리며, 다시 아래에서 바윗덩어리를 밀어 올렸다.

망루의 감독관은 미소를 지었다.

미소에는 우월함, 만족스러움이 묻어났다.


“어디 보자.”


미소와 함께 고개를 돌린 망루의 감독관이 돌멩이 하나를 새로 손에 쥐고는 다시 아래를 두리번거렸다.

다음 목표를 찾기 위해서였다.


또 한 명이 감독관의 눈에 들어왔다.

보랏빛의 퉁퉁 불어 터진 모양의 덩치 큰 놈.

자신 같은 인간이 아닌, 마령.

무릿매가 돌멩이를 싣고 돌아갔다.

덩치가 있는 녀석이니 여러 번.

한 번 맞을 때마다 크게 비틀거리던 놈이 결국 자리에 엎어졌다.

그 앞에 서 있는, 놈과 같은 마령 출신의 감독관이 짜증을 내며 채찍을 휘두르니, 보라색 피부 위로 파란 피를 줄줄 흘리는 녀석이 몸을 벌벌 떨며 허겁지겁 일어났다.

망루 위 감독관의 입가에 또다시 미소가 피어났다.

기분은 살짝 보라색일지도, 파란색일지도, 혹은 아까 보았던 빨간색일지도.

시야 한구석에 번져가는 그 색채를 이어가고 싶어서, 감독관이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주위를 살피던 그때였다.


“음?”


감독관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돌아보던 그의 시야 끄트머리에 무언가 이상한 게 보였다.

채석장 안쪽이 아니었다.

채석장 바깥쪽. 노예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세워둔 높은 나무 울타리 벽. 그 너머.

저 멀리서 한 무리의 무언가가 길을 따라 달려오고 있었다.

감독관이 눈가를 찌푸렸다.


“노예?”


인간, 마령.

감독관이라고는 볼 수 없는 초라한 행색을 한 채 몰려오는 이들.

채석장에 보이는 노예들과 같은 모습.

얼핏 그들을 본 감독관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건 뭐지? 왜 노예들 한 무리가 바깥에 있지?

높은 나무 울타리를 넘을 수 있는 노예 놈들은 없을 테니, 여기서 도망친 놈들은 아닐 테고.

그럼 다른 작업장에서 여기로 오는 놈들인가? 대체 어떤 작업장이 노예 관리를 저렇게 하는 거지?


감독관의 눈썹 한쪽이 삐끗 기울었다.

손에 쥔 돌을 굴려보며 고개를 까딱대는 감독관에게, 점점 가까워지는 노예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싱긋. 감독관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다른 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바깥에서 노예 놈들이 뛰고 있다는 것.

그리고 뛰어다니는 놈들을 맞춰 쓰러뜨리는 건, 가만히 있는 놈을 맞추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즐겁다는 것.

그거면 충분하다.


무릿매가 또다시 돌멩이를 안고 빙글빙글 돌아갔다.

그러다가 휙.

달리던 놈 하나가 날아간 돌멩이를 맞고 쓰러졌다.

다른 노예 하나가 꼴에 돕겠다고 그리로 뛰어간다.

쓰러진 노예를 업고 엉거주춤 빠져나가는 놈에게서 감독관이 시선을 돌렸다.

별로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열심히 이리로 뛰어오는, 더 재미난 놈들이 주위에 가득하니까.


또 한 번. 휙.

달려오던 놈이 어깻죽지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동시에 감독관의 눈빛이 어느 때보다도 반짝였다.

재미있다.

작업장의 놈들은 이제 돌멩이를 피하려 들지도 않는데, 저렇게 뛰어다니는 놈들을 향해 돌을 던지니 너무나도 즐겁다.

감독관은 어느새 불거진 눈으로 정신없이 돌을 던져댔다.


하지만, 평소 없던 재미는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쯧.


어느새 노예 놈들 무리가 울타리 벽에 달라붙었다.

감독관의 얼굴에 아쉬움이 번졌다.

돌멩이를 맞출 각도가 나오지 않아서.

그러다가, 무언가를 떠올렸다.

방금 전, 다친 놈을 데리고 빠져나간 놈들.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테니, 그놈들이라도 찾아 맞춰야겠다.

그렇게 감독관이 저 멀리 시선을 옮기던 그때였다.


‘···어?’


고개를 돌리던 감독관은 보게 되었다.


저 뒤쪽에서 몰려오는 엄청난 수의 무리를.

기분 탓일까. 저 멀리에서 뛰어오는 놈들의 주위가 어째서인지 자꾸 반짝거린다.

휘둥그레진 눈에 놈들의 모습이 찬찬히 들어온다.

저 많은 놈들은 노예다.

저 빽빽한 놈들 주위에서 반짝거리는 것은 무기다.

놈들이 들고 있는 무기가, 무기의 날이 햇빛에 비쳐 반짝거리고 있다.


시선이 아래로 향한다.

노예 놈들이 나무 울타리를 밀고 있다.

어째서? 무엇 때문에?

생각이 답을 찾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이미 다른 작업장에서 불미스러운 일을 겪고 여기로 왔다.

그때와 같은 기분. 심상치 않은 일이 다가오는 중이란 걸 몸이 느꼈다.


감독관이 손에 쥐고 있던 돌을 내던지고는 황급히 망루에서 뛰어내렸다.

채석 작업장 한가운데. 모두를 불러 모으는 종을 향해 뛰어간 그가 정신없이 종을 울렸다.

땡땡땡 거리는 종소리가 채석장에 퍼져나가고.

사방에 있던 감독관들이 그 종소리에 고개를 갸웃하며,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돌을 캐던 노예들이 쉴 수 있다는 생각에 약간 밝아진 얼굴을 하며, 한데 모였다.

감독관이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습격이다! 다른 작업장 감독관 놈들이 여길 먹으려고 습격을 일으켰다! 다들 싸울 준비를 해라!”


맞지는 않았지만, 크게 틀리지도 않은, 그런 말을 망루에서 뛰어 내려온 감독관이 외쳐댔다.


잠시 뒤 그들 모두가 울타리로 향했다.

노예들은 망치와 정만 들고.

감독관들은 제대로 된 무기를 챙겨 든 채로.

몰려오는 이들을 기다렸다.


***


채석 작업장.

그곳을 향해 달려가면서, 선후는 어젯밤 마광이 말해주었던 계획을 떠올렸다.


- 채석 작업장은 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다.

- 들어가려면 울타리들을 부숴야 한다. 제일 먼저 달려가는 이들이 그 역할을 맡을 거다.


그 일을 할 사람을 뽑길래, 선후는 곧장 손을 들었다.

누구보다 앞에 서는 일.

그리고 누구보다 먼저 변화를 볼 수 있는 일.


앞쪽에서, 비록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느렸지만, 선후는 열심히 달렸다.

허리춤에 메어놓은, 품속에 숨겨놓은 칼 여러 개가 달랑거렸다.


선후는 물론, 앞서가는 아저씨들, 형들의 키보다도 훌쩍 큰 나무 울타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정체가 뭔지 알 수 없는 좁고 높은 나무 탑.

그 제일 위에는 사람 한 명이 보였다.

잘 보이지 않았으나, 단순히 저 위에서 내려보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감독관처럼 느껴진 그가, 무언가를 손에 쥐고 빙빙 돌려댔다.

그러다가,


“아악!”


앞에서 비명 소리가 났다.

달려가는 중에 누군가 쓰러졌다.

모두들 멈칫했으나 대응은 빨랐다.

연고가 담긴 통을 지고 달리던 아저씨가 곧장 그에게 달라붙어 연고를 발랐다.

이제 연고를 거리낌없이 쓸 수 있었으니까, 덕지덕지, 치덕치덕.


그 사이 선후는 쓰러진 사람의 옆을 바라보았다.

떨어져 구르는 것은 돌멩이.

고개가 저절로 저 높은 나무탑으로 향했다.

아주 높게 세워진 나무탑. 거기 있는 누군가가, 이번에도 자신의 머리 위로 길쭉한 줄 하나를 빙빙 돌리고 있었다.

이어서 휙, 돌아가던 줄이 순간 힘을 잃으니,


“아악!”


또 한 번의 비명이 들려왔다.

또다시, 쓰러지는 아저씨 옆으로 돌멩이가 굴렀다.

좀 더 작은 연고 통을 허리에 찬 형이 쓰러진 아저씨를 향해 달려갔다.

그 모습이, 이를 악문 선후의 옆으로 스쳐 갔다.

그랬다. 선후의 발걸음은 지금까지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선후만이 아니라 달려가는 모두가 그랬다.

멈춘다고 멈추는 게 아님을 알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해결하는지, 겪었으니까.

그러니 뛰어가는 이들은 이런 일로 더는 주춤거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빠르게 달렸다.


“나무탑에서 돌을 던진다!”

“울타리에 더 빠르게 다가가자!”

“벽 뒤에선 돌을 안 맞을 거야!”


들려온 어느 목소리가 맞았다.

울타리에 다가서니 돌멩이가 더는 사람들을 쓰러뜨리지 못했다.

울타리에 부딪혀서, 혹은 벽에 막혀서.

저들도 당황했는지 저 멀리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다만 아무도 그 소리를 신경 쓰지 않았다.

신경 쓸 건 하나.

뒤이어 올 모두가 들어갈 수 있게 울타리를 무너뜨리는 것.


선후가 높다란 나무 울타리 벽에 달라붙었다.

먼저 도착한 아저씨들, 형들이 힘차게 벽을 밀고 있었다.

하지만 좀 더 늦게 도착한 선후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어른들 여럿이 붙어도 꿈적 않는 나무 울타리 벽을 무너뜨리려면 무언가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는 걸.


선후가 나무 울타리를 살폈다.

나뭇가지끼리 엮여있고, 끈이 이를 묶고 있다.

곧바로, 선후가 칼을 꺼내 틈 사이로 쑤셔 넣었다.

그리곤 힘껏 칼을 놀려 끈을 잘랐다.

투둑. 툭. 끈이 끊어지고, 울타리가 눈에 띄게 흔들거린다.

이어 주변 사람들에게 손짓하니, 다들 선후처럼 울타리 안쪽에 날붙이들을 밀어 넣었다.


곳곳에서 줄이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울타리 벽이 하나둘 흔들거리고, 이를 본 사람들이 더더욱 벽에 달라붙었다. 더욱 크게, 눈에 띄게 흔들거리던 벽이 결국 무너져 내렸다.


“와아아!”

“무너졌다!”

“마광! 마광을 불러!”

“들어가자!”


누군가는 손을 흔들고, 누군가는 너머로 뛰어 들어간다.

선후는 앞으로 뛰쳐나가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또한 이제 선후는 가장 앞에서 달리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렇게, 선후는 그 누구보다도 먼저 마주하게 되었다.


같이 뛰어온 형들, 아저씨들, 그리고 선후 본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다만 좀 더 상처가 많고, 피를 흘리고 있으며, 더 꾀죄죄한 몰골을 하고 있는 어른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 것을.


그 뒤에 있는, 감독관의 옷차림을 한 이들이 그들에게 채찍을 휘두르며 명령하는 것을.


“적들이다! 공격해!”


짜악, 짜악. 아아악.

채찍 소리, 비명 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는 그 외침을 듣는 순간, 선후의 눈에, 그리고 함께 온 사람들의 눈에 불길이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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