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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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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맨
작품등록일 :
2024.07.15 17:40
최근연재일 :
2024.08.13 22:00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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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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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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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2화.

DUMMY

“노예 놈들, 질리지도 않고 오는군.”


작업장 안에 마련된 자리.

옹기종기 모여 앉아, 목을 축이고 있던 감독관들 중 한 명이 그리 말했다.

노예 무리가 이 작업장을 공격한 지 벌써 며칠째.

노예들이 꾸준히, 그리고 많은 수로 목책을 향해 달려드는 것에 비해, 단 한 번도 목책을 넘어온 노예는 없었다.


감독관들이 그만큼 철저하게 노예들의 공격을 막아낸 것도 있었지만,

애초에 무기를 다루는 실력이나 수십 명이 함께 싸우는 것에 있어서 수준 차이가 많이 났다.


어렸을 때부터 싸움에 재능있는 이들을 뽑아 군인 훈련을 받아왔던 감독관들.

그들에게 노예들이 보여주는 머릿수만 믿고 몰려오는 공격은, 감독관이 잔뜩 모여있는 이곳에서는 아무 의미 없는 공격이었던 것이다.


“어느 한쪽이 다 죽기 전까지 그만두지 않을 모양이지.”

“무슨 걱정인가? 어차피 노예 놈들이 다 죽게 될 텐데. 목책 하나 못 무너뜨리는 놈들이 뭐가 무섭다고.”

“좀이 쑤시니 그래. 나가질 못하게 하니까 말이야.”


툴툴댄 감독관 하나가 잔을 휙 들어 올렸다.

그 안에 담겨있던 술을 단번에 들이킨 그가 탁 소리와 함께 잔을 내려놓으며 짜증을 냈다.


“그놈들이 한 만큼 해줘야 하는데. 모두 쓸어버려야 해.”

“하하, 진정하게. 놈들이 아직 숫자는 많지 않나. 자네도, 나도, 그리고 같이 술을 마시는 이쪽도. 여기로 오면서 대충 보았을 거 아닌가. 숫자를 가볍게 여기고 남은 이들이 어떻게 쓸려나갔는지.”

“되도 않는 수로 저 많은 놈들을 막겠다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지.”

“···쯧.”


함께 술을 마시는 이들의 말에 술잔을 내려놓았던 감독관이 혀를 찼다.

그러더니,


“이봐. 너 이리로 와라.”


대뜸 어느 한 곳을 향해 손짓을 했다.

손짓이 향한 방향은 근처에서 일을 하던 노예가 있었다.

노예가 화들짝 놀라 허겁지겁 달려오자, 그가 주섬주섬 바닥에 두었던 채찍을 주워 들며 말했다.


“술 더 가져와.”


그의 말에, 노예가 몸을 움찔했다.

이어 조심스레 몸을 숙이며 입을 열었다.


“저기, 그게··· 저쪽에서 움직임이 보인다고, 곧 몰려올 거라고 술을 더 내주지 말라고 하셨··· 습니다···.”

“···새끼 이거···.”


휘릭, 채찍이 움직였다. 노예의 몸에 채찍이 닿으며 짜악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아악!”


노예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그 위로 채찍질이 몇 번 더 이어졌다.

짜증을 내듯 비틀려 몸을 움켜쥐었다가, 화를 내는 것처럼 내려쳤다.


“죄, 죄송합니···! 으아악! 아악!”


옆에 있는 감독관들은 별일 아니란 듯이 자신들의 앞에 있는 잔을 마저 비워 홀짝였다.

그들이 비운 잔을 내리자, 채찍을 휘둘러대던 감독관이 후우 숨을 내쉬었다.

앞서 짜증을 낼 때보다 한결 편해진 얼굴로, 그가 다른 감독관들에게 말했다.


“곧 몰려온다니, 이만 일어나지.”

“그러자고. 종치고 가면 또 뭐라고 할테니까.”

“간 김에 이번엔 채찍이나 써봐야겠군.”


자리에 엎어져 끙끙대는 노예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으며, 그들은 자리를 떠났다.


한편,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떠난 자리.

거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홀로 목을 축이고 있던 사내, 권선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또한 마찬가지로 감독관이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는 다른 감독관들이 몰려오기 전부터 이곳 작업장을 맡은 감독관 중 한 명이었다는 점.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쓰러져있는 노예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면서 주위를 돌아보았다.

작업장 곳곳에서, 노예들이 맞는 모습이 보였다.


이곳 작업장에 있던 노예들의 수는 똑같은데 감독관들이 더 늘어나서일까.

노예들이 맞는 일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나이가 어리든, 많든, 혹은 적당하든.

비슷하게 들려오는 비명에 얼굴을 찡그린 권선이 쓰러진 몸을 일으키려 드는 노예에게 다가갔다.


“가만히 있어라.”


그는 허리춤에 매달고 다니는 한 손 크기의 연고통을 열었다.

다친 노예의 상처에 이를 다 바르고 나니, 연고통이 텅 비어버렸다.


“감, 감사합니···.”


치료를 받은 노예가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벌떡 일어서, 권선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권선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안 해도 된다.”


노예를 돌려보낸 권선이 한숨을 내쉬었다.

권선은 애초에 노예들에게 채찍을 거의 휘두르지 않았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말을 잘 듣는 이들이니까.


아니, 오히려 권선은 의아했다.


그 또한, 그리고 다른 감독관들 또한 마찬가지로 노예로 태어났다.

단지 체격이나 힘이 남들보다 좀 더 있어 훈련받을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거기서도 무기에 약간의 재능이 더 있어서 감독관이 될 수 있었던 것뿐이었다.


그것을 모두 까먹은 것처럼, 마치 대단한 무언가라도 된 것처럼 딱히 다를 바 없는 이들에게 채찍이나 무기를 저렇게 휘두를 수 있다는 게 도리어 신기했다.


“저기, 권선님.”


권선의 이런 태도 덕인지, 다른 감독관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도, 심지어 짧게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도 무서워하는 노예들이 권선에게는 종종 말을 걸어왔다.

물론 태도는 극도로 조심스러웠지만.


“무슨 일이냐.”


멀리서 눈치를 보던 노예 한 명이 다가와 말을 걸길래, 권선이 그를 돌아보았다.


“바깥에, 대체 무슨 일로 싸움이 있는 겁니까?”


그 질문에 권선은 잠시 생각이 잠겼다.

바깥에 있는 이들에 대한 소문은 진작에 들은 적이 있었다.

감독관들을 공격하는 노예 무리.

노예들이 감독관들을 공격하고는 작업장을 차지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소문인 줄 알았는데, 무엇 때문인지 이곳 작업장으로 감독관들이 하나둘 도망쳐오더니, 이제는 여느 부대 수준으로 감독관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노예 무리가 작업장으로 몰려가 점령한다는 게 사실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감독관들을 다 죽인다는 것도.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권선은 제대로 대답하지 않았다.


애초에 노예들이 모를 거라 생각지도 않았다. 이리로 온 감독관들이 한둘도 아니고, 흘러나온 이야기를 조금씩은 다 들었을 터였다.


그러나 감독관인 그가, 감독관들을 다 죽여버린다는 이들의 이야기를 입에 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노예에게 그리 대답한 권선은 옆에 둔 기다란 창을 집어 들었다.

종이 울렸다. 쉬는 시간이 끝났다는 의미.

권선은 그가 맡은 자리로 향했다.


높게 세워져 있는 목책.

며칠째 공격이 반복되고 있었으나, 다행히 그가 맡은 구역으로는 공격이 거의 오지 않았다.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는 곳은 입구 쪽.

그곳에는 감독관들과 쳐들어온 노예 무리가 엄청나게 몰려들어 전투를 벌였다.

다행인 건 이쪽이 우세한 모양.

다른 감독관들이 크게 다친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반대로 노예 무리는 물러가기만을 매번 반복했으니 말이다.


여하튼, 권선이 맡은 쪽은 들어오는 길도 없었고, 딱히 눈에 띄는 곳도 아니어서인지, 공격하는 쪽도, 방어하는 쪽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을 맡아 막는 이도 권선 한 명이었다.

입구 쪽에 비하면 말 그대로 여유롭다고 할 수 있는 곳.

아니, 그래야 했던 곳이었다.


‘또 왔군.’


하지만 예상외로 권선은 여유롭지 못했다.

이는 첫날부터 이곳을 계속 공격해 오는 노예가 있어서였다.

정확히는 아이였다. 그것도 어린아이.


“이 자식!”


목책으로 달려드는 아이는 엄청난 분노를 드러내고 있었다.

단순히 화만 내는 게 아니라,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짧은 칼을 들고 휘둘러 댔다.


첫날, 아이가 달려오길래 당황한 것도 잠시, 아이를 쫓아내려 위협을 위한 화살을 몇 발 쏘았다.

한데 그게 오히려 녀석을 자극했는지 화살을 쏘던 말던 무시하고 목책까지 달라붙었다.

그래도 그날은 한 번 걷어차서라도 내쫓을 수 있었는데, 다음날부턴 그게 통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움찔하는 기색이라도 보였던 화살이나 돌멩이에 반응조차 하지 않고,

부릅뜬 눈에 고함을 질러대며 짧은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

심지어 손에 든 짧은 칼보다 몇 배는 더 긴, 기다란 창을 쓰는 자신을 향해서.


‘무엇이 저 아이를 저렇게 만드는 건지···.’


어림도 없는 거리 차이. 권선은 창을 휘둘러 어린아이의 칼을 쳐내며 생각했다.

사실 알고 있었다.

이미 작업장에서 본 것처럼, 감독관에게 안 좋은 일을 많이 당했겠지.

그러니 그에 대한 분노가 이만큼 큰 것일 터였다.

권선은 한숨을 쉬며 창을 휘둘렀다.

창날이 아이의 칼을 휙 밀어내고, 뒤이어 움직인 창대가 아이의 등을 때렸다.


“아악!”


악을 쓰는 아이의 실력은 그리 좋지 않았다.

심지어 들고 있는 무기도 짧은 칼이어서, 기다란 창을 쓰는 권선은 그저 놀아주는 것처럼 상대할 뿐이었다.

아니, 어쩌면 상대해주며 실력을 길러주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실제로 아이가 창을 피하는 움직임은 조금씩이나마 좋아지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가만히 서 있는 것보단 낫겠지.’


창날이 아이에게 닿을까 이를 잡아당기며, 그래도 단순히 목책의 경계만 맡고 있는 것보단 아이의 상대라도 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동시에 생각하던 권선은,

문득 저 멀리 격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이들을 눈에 담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은 가만히 있는 것이 더 좋았다.

저들처럼 저렇게 거침없이 무기를 휘두르지 못할 것 같았다.

이토록 섣불리 휘두르지 못하는 창을, 저기서 어떻게 휘두른단 말인가.

그런 점이 대번에 드러나 이쪽으로 쫓겨난 것이기도 하니까.


그렇게 몇 번이고 아이를 상대하는 걸 반복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날이었다.


“음?”


평소처럼 목책 바깥으로 나오니, 아이 혼자가 아니었다. 한 명이 더 있었다.


노인. 삐쩍 마른 노인이 아이의 뒤에서 나타났다.


권선은 그를 향해 창을 겨눴다.

어린아이가 아무리 자신의 상대가 안 된다고 할지언정, 상대가 두 명으로 늘어난 건 이야기가 달랐다.

권선이 긴장하던 때였다.

천천히 걸어온 노인이 의외의 말을 했다.


“오늘은 싸울 생각이 없네.”

“뭐?”


권선은 당황했다.

첫째는 싸울 생각이 없다는 말에.

또 하나는, 나이가 어떻든 항상 감독관에게 존댓말을 쓰는 노예가, 그에게 아무렇지 않게 반말을 해서.

권선이 멍하니 노인을 쳐다보는데, 노인이 입을 열었다.


“선후··· 자네와 매번 싸우는 이 아이에게서 들었네. 선후를 향해 창을 휘두르지 않고 멈춘다고 하더군.”


어린아이의 어깨에 손을 올린 노인을 보며, 권선이 창을 살짝 세웠다.

그 사이, 노인이 권선의 눈을 보며 물었다.


“우리가 어떤 일로 온 이들인지 알고 있나?”

“···감독관들을 죽이는 이들 아닌가?”

“틀린 말은 아닐세. 하지만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게 있네.”


노인의 대답에 권선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곧 이어진 대답엔 눈이 커졌다.


“우린 노예들을 해방하는 이들일세.”


권선의 몸이 멈칫했다.


“우린 감독관들에게 언제나 채찍을 맞네. 또, 심심풀이의 폭력 대상이기도 하지. 어떨 때는 실컷 얻어맞은 뒤, 연고 하나 제대로 받지 못해 죽는 일도 흔하다네.”


고개가, 턱이, 권선이 무어라 생각하기도 전에 저절로 끄덕거리던 찰나였다.

노인이 권선에게 말을 건넸다.

그에게 있어 아주 충격적인 말을.


“도와주게.”

“···뭐?”


권선이 움찔대며 뒤로 물러났다.


“신호를 보내겠네. 그러면 여기, 이곳 목책의 문을 열어주게.”

“제정신인가?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하지?”


권선이 노인을 향해 반사적으로 쏘아붙였다. 마치 무언가에 푹 찔려 꿈틀거리는 사람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감독관이다.”

“알고 있네.”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말을 이었다.


“하지만 자네의 행동은 내가 본 감독관들과 많이 달라.”


노인이 권선에게 물었다. 씁쓸한 목소리로.


“분풀이 채찍질에··· 아이가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


권선은 대답하지 못했다.

굳이 아이라고 묻지 않았어도, 그는 대답하지 못했을 것 같았다.

노인이 권선을 보며 낮게 말했다.


“자네의 그런 행동 하나면 충분해.”


노인의 말에 권선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물러나라는 외침이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오늘도 목책 하나 제대로 넘지 못하고, 다친 이들만 잔뜩 남긴 채 도망가는 노예들의 모습이 보였다.


“한 번 생각해주게.”


그 말을 남긴 노인이 어린아이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홀로 남게 된 자리.

권선은 그 자리에 서서, 그러다 다시 목책 안으로 돌아와서도, 한동안 생각에 잠겨 목책 주변을 서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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