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안녕하세요

노예 인간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이스트맨
작품등록일 :
2024.07.15 17:40
최근연재일 :
2024.08.13 22:00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182
추천수 :
2
글자수 :
85,532

작성
24.07.20 15:30
조회
12
추천
0
글자
13쪽

6화.

DUMMY

“저, 저게 뭐야!”

“이런 미친!”


작업장, 작업터. 노예로서 평생 일해온 모든 공간으로, 무기고의 이들이 쏟아졌다.


그들이 품은 열기가 순식간에 사방으로 번졌다.


돌을 옮기던 길.

돌을 부수던 자리.

약초를 찧는 움막.

반죽을 다져 만든 벽돌을 말리던 마당.

벽돌을 쌓아 올리는 건축물까지.


모든 곳에 사람들이 쏟아져 내렸다.


무기고에 있지 않았던, 바깥에 있던 감독관들이 이를 보고 놀라 다급히 채찍을 휘둘러댔다.


“이 새끼들이 왜 이래! 미쳤어!”


며칠 전이었다면, 아니 당장 어제만 하더라도 모두가 벌벌 떨었을 채찍질.

하지만 이제 그 누구도 그들의 채찍질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감독관들이 휘두르는 채찍은 그저 이 거대한 흐름 앞에 놓인 단순한 저항에 불과했으니까.

몰려 내려온 이들에게 그대로 휩쓸려 나갈 뿐이었으니까.


거대한 흐름이 감독관들을 잡아먹었다.

아무도 이걸 막지 못했다. 막을 수 없었다.

그 모습을, 그 광경을, 선후가 내려다보았다.

선후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긴장해서가 아니라 흥분해서였다.


저 멀리, 돌에 망치질을 해대는 마령들이 보였다.

그들의 등에 쉼 없이 채찍질을 가하던 마령 감독관은, 자신에게 몰려드는 이들을 보고 화들짝 놀라 허겁지겁 채찍의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몇 번 휘둘러보기도 전에 이내 사람들에게 휩쓸려 쓰러졌다.


감독관들만이 쓰러지는 게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피땀 흘려가며 쌓아 올렸던 건축물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이를 부수기 시작했다.

이내 와르르.

오래도록 쌓아왔던 미르를 위한 건축물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건 꼭 모두에게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당신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것은 사실 이리 쉽게 무너지는 것에 불과했다고.

선후의 눈에, 선후의 마음에, 그렇게 새겨졌다.


해가 서서히 저물었다.

그런다고 해서 모두가 가진 열기가 식을 리가 없었지만, 어두워져 가는 하늘, 엄밀히는 그리하여 느껴지는 시간의 흐름이 모두의 열기를 한 곳으로 불러 모았다.


“이 자식들! 이렇게 음식을 많이 가지고 있었으면서 우리한테는!”


음식 저장고가 열렸다. 아니 뜯겼다.

그 어떤 노예도 감히 욕심낼 수 없었던 음식이 모든 사람의 손에 가득 쥐어졌다.

평소에 쥐어보지 못할 만큼 잔뜩. 본 적도 없을 만큼 많이.

배부르게 배를 채우는 것이 처음이었다.

심지어 받아온 음식 접시 하나 다 비우지 못하고 드러눕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한편, 배불러 누운 사람들 옆에는,


“연고··· 조금만 떠··· 살짝만 발라도 나는 괜찮아···.”

“어허! 연고가 넘치는데 뭐하러 찔끔 발라! 한 손 가득 떠다 바를 거니까 얌전히나 있어! 어휴, 미쳤지, 미쳤어! 목에 칼 들이밀었는데 그거를! 좀만 늦었어도 자기 죽었어! 감독관 놈들이 연고를 가득 쌓아놔서 망정이지 정말!”


오늘의 일로 다친 이들이 앉아있었다.

그들의 친구가, 혹은 본인이, 다친 상처에 연고를 발랐다.

감독관의 눈치를 보며 몰래 훔쳐 온 연고를,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써야 한다는 생각에 겁을 내며 조금씩 바르는 게 아니었다.

양손 가득. 필요 없을 만큼 잔뜩. 얼마나 양껏 퍼올렸는지 손을 들다 말고 휘청거릴 만큼 원 없이, 연고를 몸에 치덕치덕 발랐다.

심지어 다치지도 않았는데 기분을 내기 위해 연고를 바르는 이들까지.

다친 이들의 상처가 순식간에 사라진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자리에 행복함이 흘러넘쳤다.

어제까지의 불행이 거짓이었던 것처럼, 누군가가 노래를 불렀고 모두가 이를 따라 불렀다.


선후가 다른 이들과 함께 한참 노래를 부르던 때였다.

더더욱 어두워지는 밤하늘 아래 누군가가 모닥불을 피웠다.

사람들의 시선이 화르륵 타오르는 모닥불로 향할 때, 그리로 걸어 나오는 사람이 있었다.

마광이었다.

이어서 여도필도, 이외 몇몇의 이들도 함께 모두가 바라보는 앞에 섰다.

그들을 본 사람들이 노래를 멈추고 환호했다.

환호를 들은 마광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다들 만족하나?”


마광의 말에 누워있던 어느 누군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연이어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어찌 만족하지 않을 수 있겠나! 우리를 괴롭히던 감독관들에게 전부 벌을 내렸어! 둘러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던 이 작업장을 모두 차지했고, 한 번도 배불러 본 적 없던 식사를 배가 터질 것처럼 먹었네! 거기에 그동안 들킬까 무서워 제대로 발라본 적 없던 연고에 팔을 담그기까지 했는데, 어떻게, 어떻게 만족하지 않을 수 있겠나!”


그의 외침에 사람들이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선후도 그랬다. 만족스러웠다. 뿌듯했다. 벅차고 행복했다.


그런데,


“나는 만족하지 못했다.”


마광은, 마광만은 고개를 저었다.


“···만족하지 못했다니?”


일어섰던 이가 당황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동시에 사람들이 작게 웅성거렸다.

마광이 사람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러다 말했다.


“노예는, 우리뿐이던가?”


웅성거리던 소리가 순간 멈췄다.


“세상의 노예는, 이렇게 우리만 존재하는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대답이었다. 모두가 답을 알고 있다는 대답. 선후 옆의 아저씨도, 그 옆의 아주머니도, 형도, 누나도, 그리고 선후마저도. 다들 답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소리 없는 대답.

그러나 그럼에도 마광은 확실히 하려는지,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여기, 이 작업장 밖을 나가본 사람이 있나?”


마광이 말했지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이번에 선후는 깜짝 놀랐다.

어른들도 자신과 다를 바 없었다니.

이건 어른들끼리도 놀라운 일이었는지, 다들 다시금 웅성거리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시선이 이윽고 한 곳으로 모였다.

모여있는 이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이. 여도필을 향해서였다.

하지만 여도필조차 고개를 저으며, 웅성거림이 더욱 커졌다.

그것은 당혹스러움이었고, 분노였다.

다만 어디로 향해야 할지 길을 잃은, 그러한 감정.

이를 마광이 이어받아 입을 열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여기서 평생을 자랐고, 한 번도 이곳 바깥을 나가본 적이 없다.”


마광이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그와 다르지 않았다. 어린 선후도, 가장 나이가 많은 여도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마광이 고개를 돌려 옆에 함께 서있던 이 한 명을 쳐다보았다.


“마령들을 불러오게.”


잠시 뒤, 마령들이 불려 왔다.

그들의 모습은 이전과 달랐다. 인간보다 훌쩍 커다란 덩치를 가진 그들은 더는 손발에 사슬을 차지 않은 채, 그게 어색하다는 듯 손목을 매만지며 천천히 걸어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우리가 감독관들을 모두 쓰러뜨렸다. 직접 보지 않았나?”


마령들이 웅성거리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우, 우리 모두 죽을 거야. 미르들이 이걸 알게 되면 우리 모두를 벌레처럼···.”


겁에 질려 웅얼거리는 어느 마령의 말을 마광이 단번에 끊었다.


“물어볼 게 있어서 불렀다.”


마령들이 몸을 움찔하며 겁먹은 시선으로 마광을 바라보았다.


“자네들은 작업장 밖에서 끌려왔다고 알고 있다. 맞나?”

“그, 그렇소.”


마광의 질문에 마령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묻겠다. 바깥은 어떻지?”

“바깥이 어떻다는 게 대체···.”

“노예는, 이곳만이 존재하나?”


마광의 말에 제일 앞에 있던 마령이 덩치만큼이나 커다란 눈을 끔벅였다.

그러고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소.”


대답한 마령이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세상의 모든··· 작업장, 마을, 도시, 어디 하나 가릴 것 없이, 감독관이 아닌 이들, 미르가 아닌 이들, 세상의 모든 인간, 그리고 마령은··· 미르들의 노예요.”

“확실한가?”

“그렇소.”


마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광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가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다들 들었는가! 세상엔 여전히 노예들이 많다! 인간이란, 마령이란, 어디에 있든 모두가 미르의 노예다!”


마광이 모두에게 물었다.


“만족하는가? 이 자그만 편안함으로?”


지적했다.


“뿌듯한가? 고작 이 작은 작업장 하나로?”


외쳤다.


“멈출 것인가! 그저 이 내민 것도 아닌 비루한 한 걸음으로!”


모두가 답했다.


“아니!”

“절대, 절대로!”

“우린 멈추지 않을 것이다!”


부르짖는 사람들을 향해, 마광이 소리쳤다.


“나는 세상의 모든 인간을! 모든 노예를! 미르에게서 해방하고 싶다!”


열기. 가운데 붙여놓은 커다란 모닥불 때문일지, 아니면 모여 앉은 사람들의 몸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열광 덕분일지, 선후는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더불어 마광의 모습이 너무나도 멋있어 보였다.

하여 다른 이들과 함께 마광의 이름을 소리 높여 불렀다.


“마광!” “마광!” “마광!”


사람들의 환호를 받던 마광이 옆에 있던 마령들을 돌아보았다.


“자네들은 어떻지?”

“그건···.”


마령들이 어쩔 줄 몰라 하는 채로 마광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 감정이 들어차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들이 울었다. 그들이 격하게 소리쳤다.


“어머니를 보고 싶소! 아버지를, 딸을, 아들을, 한 번이라도 다시 보고 싶소!”

“사로잡힌 가족들을, 친구들을 풀어주고 싶습니다!”

“아직 거기에 있을런지, 죽지는 않았을지, 이젠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친구들을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마광이 그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보아라! 모두가 함께한다! 이곳의 모두가!”

“마광!” “마광!” “마광!” “마광!”


모두가 소리 질렀다. 인간, 마령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모두가 환호했다. 선후도 목이 터져라 소리 질렀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불현듯 손을 들었다.

여도필이었다.


이번에도 반대하는 걸까. 어젯밤 움막 앞에서의 회의가 떠오른 선후가 몸을 움찔했다.

하지만 여도필에게서 이어진 말은 선후의 예상과 달랐다.


“다음 계획이 있는 건가?”


순식간에 좌중을 고요하게 만드는 여도필의 물음.

그리고 숨이 멈춘 것만 같은 분위기를 사로잡는, 마광의 끄덕임.

마광이 천천히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아까 말했듯, 나도, 우리도, 여기 있는 마령 말고는 바깥을 나가본 자가 없다.”


“하지만!”


“나는 밖에서 온 이들을 본 적이 있다. 아니, 아마 이곳에서 일하는 우리 모두가 한 번씩은 보았을 것이다.”


마광의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다들 섣불리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선후도 고개를 갸웃하는데, 마광이 말했다.


“채찍을 맞으며 우리가 나르던 돌. 가루를 내고, 그걸 반죽으로 섞고, 벽돌로 만들고, 옮겨서 쌓아 올렸던 돌벽돌. 그 재료였던 돌!”


“그건 우리가 있는 작업장에서 나온 게 아니다.”


마광의 말에 모두들 눈을 크게 떴다.

잊고 있던 걸 깨달았다는 듯이, 아주 크게.


“저곳.”


마광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마광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선후도 따라 고개를 돌렸으나, 사람들에 가려서, 혹은 어두워진 저녁이어서, 또는 아직은 어린 선후에게 보이지 않을 너무 머나먼 곳이어서, 무엇을 가리키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저곳에서 오는 길을 따라, 돌을 끌고 오는 이들이 있다. 다른 곳에서 같이 온 감독관들에게 채찍을 맞으며 그들은 돌을 끌고 온다.”


마광의 말에 사람들이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마광이 말한 이들을 다들 알아차린 것처럼 보였다.

마광의 말이 이어졌다.


“그 감독관들이 하는 대화를 엿들은 적이 있다. 여기는 돌을 가져와야 하는 곳과 가까워서 좋다고. 다른 곳으로 빠질 필요 없이 길 하나만 따라가면 되어 편하다고.”


“그리고 들었다. 돌은 시야가 탁 트인 아주 넓은 땅에서 캐고 있으며, 계속해서 돌을 캔 결과 지금은 땅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고. 마치 넓은 구덩이를 만들어 내는 것 같다고.”


“채찍질을 할 때마다 노예들이 돌을 캐는 모습이, 그러면서 구덩이가 매일매일 조금씩 넓어지고 깊어지는 모습이, 너무나도 뿌듯하다. 그래서 우리는 밤낮없이 노예들에게 일을 시킨다. 그것이 우리에게 성취감을 주기에.”


마광의 말이 이어질수록, 앉아있는 사람들의 몸에서 열기가 끓어올랐다.

선후도 그랬다. 심장에 불이 붙는 느낌이 들었다.

그 열기를 오롯이 맞받고 있는 이. 마광이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는, 그들을 도울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더이상 돌을 캘 필요가 없음을 알려줄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자유를 줄 것이다!”


마광이 창을 든 손을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우리가! 모든 노예를 해방시킬 것이다!”

“우와아아아!”

“으아아아아!”

“마광!” “마광!” “마광!” “마광!”


사람들과 같이 선후는 열광했다.

어두운 밤.

이를 밝히는 커다란 모닥불 그 주위에서.

어제까지만해도 노예였던 이들은 이제 다른 이들의 자유까지도 부르짖으며 고함질렀다.




이어 며칠 뒤, 작업터에서 이어진 길을 따라, 선후를 비롯해 무기를 든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길과 이어진 채석 작업장을 습격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노예 인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 15화 24.08.13 4 0 15쪽
14 14화. 24.08.09 6 0 12쪽
13 13화. 24.08.08 7 0 14쪽
12 12화. 24.07.30 8 0 13쪽
11 11화 24.07.29 8 0 11쪽
10 10화 24.07.25 10 0 12쪽
9 9화. 24.07.23 12 0 11쪽
8 8화. 24.07.22 12 0 11쪽
7 7화. 24.07.21 10 0 12쪽
» 6화. 24.07.20 13 0 13쪽
5 5화. 24.07.19 14 0 14쪽
4 4화. 24.07.18 14 0 12쪽
3 3화. 24.07.17 15 0 11쪽
2 2화. 24.07.16 19 1 12쪽
1 1화. 24.07.15 31 1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