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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맨
작품등록일 :
2024.07.15 17:40
최근연재일 :
2024.08.13 22:00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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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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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5,532

작성
24.07.18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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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화.

DUMMY

선후는 꿈을 꿨다.


한가운데에 놓인 자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익숙한 장면이었다.


언제였을까, 아마 선후가 제일 처음 이곳 작업터에 왔을 때가 아닐까 싶다.


선후를 가운데에 두고 사람들이 둘로 나뉘어 말다툼을 벌였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들리지 않았다.


물에 머리를 담근 듯, 먹먹한 소리만이 귀에 가득했다.


다만 보이는 것은 자신을 두고 격하게 언성을 높이는 이들.


그리고 그중 어느 한쪽에서 노인 한 명이 뚜벅뚜벅 다가오는 모습.


여도필. 그가 선후에게 몸을 기울이며 미소와 함께 손을 내밀었다.


몽롱한 채로, 이전에도 그랬듯이, 선후는 여도필의 손을 잡기 위해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런데 갑자기, 여도필의 손이 선후의 손을 통과해 위로 훅 올라왔다.


그리곤 눈을 덮었다.


“잘 자거라.”


역설적으로, 그 목소리를 들은 선후가 몸을 한 번 움찔하고는 어슴푸레 잠에서 깨어났다.


“으음···!”


천천히 눈을 뜨는 선후.


그런 선후의 눈에, 이제 막 손을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여도필의 모습이 보였다.


“할아···.”


선후가 습관적으로 여도필을 부르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문득 선후는 느낀 것이다.


이미 잠들어있던 선후의 눈에 굳이 손을 올리고 잘 자라는 말을 중얼거릴 이유가 없다는 것을.


자리를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여도필은 분명 선후가 자고 있었음을, 또한 방금 일어났음을 모를 리 없다는 것을.


움막 밖으로 나가는 여도필. 이를 바라보던 선후가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주위를 둘러보는데,


‘···!’


움막엔 아무도 없었다.


코를 골며 잠을 자고, 뒤척이며 웅얼대고, 멍하니 천장이나 구석을 바라보던, 그런 어른들이 단 한 명도 움막에 남아있지 않았다.


선후가 천천히 움막의 유일한 출입구로 걸어갔다.


움막을 나갈지, 아니면 바깥을 잠시 살펴볼지, 잠시 고민한 선후가 눈 한쪽만 조심스레 기울여 바깥을 살펴보았다.

그리곤 깜짝 놀랐다.


바깥에는 어른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연고를 주던 아주머니, 움막 바닥에 드러누워 잠만 자던 아저씨, 가만히 천장만 올려다보는 형, 오늘 선후를 둘러싸 주었던 어른들, 가시를 뽑아주던 누나들, 거기에 마광과 여도필까지.


움막의 모든 이들이 바깥에 모여있었다.


불 하나를 가운데 피어두고 나누는 그들의 이야기가 움막 사이로 스며들어 선후의 귓가까지 내려앉았다.


“선후는 어떻습니까?”

“잠들었다.”


걸어 나오는 여도필을 본 마광의 질문.

그리고 천천히 걸어가 마광의 맞은편에 앉는 여도필의 대답.

선후가 눈을 크게 뜨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마광이 여도필에게 물었다.


“생각은 바뀌셨습니까?”


마광의 말을 들은 여도필이 가만히 앉아있다가 입을 열었다.


“···조금.”


마광은 얼굴을 찡그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무거운 정적.


선후는 왠지 모르게 둥글게 둘러앉은 이들이 두 개의 편으로 갈라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쪽은 마광과 마광 패거리, 다른 어른들.

반대쪽은 여도필과 여도필을 따르는 이들.


서로 아무 말도 없이 눈치를 보고 있는 그 자리에서, 어느 순간 마광이 벌떡 일어섰다.


모여 앉은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마광에게로 향했다.


마광이 입을 열었다.


“다들 오전에 일어난 일은 보았나?”


마광의 말에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더 많았다. 이를 눈치챘는지, 마광이 설명했다.


“움막의 어린아이가 애꾸눈 새끼한테 칼을 휘둘렀다. 애꾸 녀석은 아이를 죽이라고 명령했고, 우리는 그걸 거부하고 아이를 지켰지.”


약간의 웅성거림. 모인 이들이 심각해진 표정으로 속닥거렸다.

마광의 말이 계속됐다.


“그 결과, 애꾸 녀석은 우리 모두를 죽이겠다고 선언했다. 위에 연락을 보내, 우리를 반드시 죽일 거라고.”


마광이 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그러면서 주위를 돌아보았다.


“다들 알고 있겠지. 그놈은 감독관에 오르기 위해 자기 눈 한쪽까지 바친 놈이다. 오늘 우린 그런 녀석의 자존심을 짓밟았다. 때문에 나는 녀석이 한 협박이 그저 헛된 협박으로 끝날 거라 생각지 않는다.”


꿀꺽. 목젖이 크게 한 번 오르내리고, 굳은 표정을 한 마광이 말을 꺼냈다.


“그래서 나는, 그 전에 거사를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사, 라는 말에 사람들이 다시금 웅성거렸다.

다만 선후처럼 거사라는 게 무엇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이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녀석이 연락하기 전에 행동해야 한다. 그게 내 의견이다.”

“반대하마.”


움막 안에서 상황을 보고 있던 선후가 눈을 크게 떴다.

마광의 말에 곧장 반대를 표한 것은 다름 아닌 여도필이었다.

여도필은 눈을 꾹 한 번 감았다 뜨고는 입을 열었다.


“위험하다. 감독관들을 공격하는 건 돌이킬 수 없는 일이야. 잘못하면 피해가 순식간에 불어난다. 공격은 움막의 우리만 행하지만, 잘못의 대가는 우리만이 아닌 이곳 작업터의 모든 이들이 받을 거다.”


여도필이 굳은 표정으로 그리 말하고는 마광을 올려다보았다.


“우리는 변변찮은 무기 하나 없다. 그러나 저들은 무기고가 따로 있어. 그것도 우리같은 이들이 반항할 때를 대비한 곳이지. 그들이 마음먹고 버티면 쉽지 않아.”

“그곳은 저희의 첫 목표입니다.”


마광의 대답. 그러나 여도필이 고개를 저었다.


“감독관들 또한 거기가 첫 목표야. 만약 일이 잘못된다면, 그땐 그 어느 것도 돌이킬 수 없어.”


여도필의 그런 대답과 함께, 여도필 뒤편에 앉아있는 몇몇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광이 그런 여도필에게 물었다.


“그럼 어떡하는 게 좋겠습니까.”

“···참아야지. 어차피 감독관 한 명의 문제. 다른 감독관들의 정상적인 반응만 유지할 수 있다면 이번 일은 크게 신경 쓸 필요 없어.”


여도필은 그리 대답했다.

그러나, 마광은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듯 반박했다.


“어르신, 놈은 제 손으로 자기 눈을 뽑아 바친 놈입니다. 놈이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어요.”

“하지만 녀석 또한 이곳 작업터의 규칙에 얽매인 평범한 감독관 중 한 명이기도 하다. 놈은 몰라도 위쪽의 반응은 알 수 있어.”

“···.”


둘 사이에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모여있는 이들 사이의 대화 또한 없다는 걸 의미했다.


그렇게 잠시 뒤, 마광이 여도필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르신. 아직도 이 일을, 조용히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


아무런 대답이 없는 여도필. 이에 마광이 여도필을 향해 성큼 한 걸음 다가섰다.


”규칙, 규칙이요? 그럼 저희가 얽매인 규칙은 어떡하실 겁니까?“

”···.“

”감독관을 공격한 자, 처형한다. 그 규칙은 어떻게 하실 거냔 말입니다.“

”···.“


마광의 물음에 여도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숙였다.


또 한 번 성큼 앞으로 걸어오는 마광.


그때, 여도필의 뒤에 서 있던 남자 한 명이 맞서 걸어 나오며 마광에게 말했다.


”마광. 어르신께 예의를 갖춰라.“


그러나 마광은 들리지 않는다는 듯 계속 말을 이어갔다.


”녀석이 규칙을 모를까요? 눈까지 바쳐 규칙을 이용한 놈이 정말 알지 못할까요? 우리 모두를 죽이겠다고 단단히 선언하고 갔는데, 규칙 하나 찾아보지 않을까요?“

”···.“

”어쩌시겠습니까? 선후를 죽이려 하는데, 이번에도 선후 대신 앞에 나서실 겁니까? 대신 맞으시던 것처럼, 대신 죽으시렵니까? 그러고 나면요? 그러고 나면 선후가, 어르신처럼 그저 말없이 고개 숙이는 걸 받아들이기라도 할 것 같습니까?“

”···.“

“마광! 선후를 들먹이지 마라!”

“어르신!”


마광은 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여도필을 향해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보십시오! 아이가 칼을 휘둘렀습니다!”


쨍그랑. 마광이 허리춤에서 내던진 것이 바닥을 굴렀다. 감독관의 피가 굳어있는, 마광의 칼이었다.


“제가 당신의 말을 존중할 동안! 수십 번을 갈고, 닦고, 수백 번을 꺼냈다 숨기기만 하던 칼을! 기껏 사용한 거라곤 기둥 묶은 밧줄이나 끊는데 사용했던 그 칼을!”


“선후는 단 한 번 쥐고는 곧장 감독관을 찔렀단 말입니다!”


휙, 마광의 손이 움막을 가리켰다. 안에 있던 선후가 깜짝 놀랐다.


“언제까지, 언제까지 참으실 겁니까! 언제까지 참아야 한다고 말하며 돌아다니실 겁니까!”

“···.”

“채찍을 맞는 것이, 저들의 말에 벌벌 떠는 것이, 언제까지 당연해야 합니까! 어린아이조차 그것이 싫어 칼을 드는데, 어른이 된 우리가 어찌!”


그리 소리를 높인 마광이, 형형한 눈빛으로 벌떡 몸을 세우더니, 모여앉은 이들을 전부 둘러보며 외쳤다.


“그 작은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마광!”


여도필의 옆에 있던 남자가 다급히 소리쳤다.


“우리는 과격한 방법으로 행동하는 것을 걱정하는 거다! 뭐가 되었든 간에, 그 행동이 우리에게 들이닥칠 여파는 알 수 없어! 감독관은 미르의 명령을 받아 우리를 다스리는 자들이야! 우리가 그들에게 반기를 들고, 그들과 싸우고, 그들을 죽이겠다고 마음먹는 것은 곧 지배자인 미르를 향해 반기를 드는 거란 말이다!”


이번엔 그가 사람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지금까지 잘 해왔지 않나! 조금만 더 노력하면 돼! 감독관의 태도는 우리가 어릴 때보단 훨씬 나아졌어! 조금씩, 조금씩, 감독관이 우리를 대하는 분위기가 달라져 온 걸 다들 알지 않나! 그렇게 변하다 보면, 결국 그들이 우리에게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자리 잡을···.”

“···아니.”


딱 한 마디. 그러나 그 한마디에 모든 목소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모두가 그 한마디를 꺼낸 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여도필, 삐쩍 마른 늙은 남자가 손을 들어 올린 채였다.

그 손은 스윽 기울어져, 마광을 가리켰다.


“저 녀석 말이 맞다.”

“어, 어르신···!”


여도필의 옆에 서서 열심히 외쳐대던 남자가 당황한 표정으로 여도필을 바라보았다.

여도필의 무거운 목소리가 그 자리에 이어졌다.


“이젠···, 돌이킬 수 없어.”


그리고 대번에, 여도필 뒤편의 여러 이들이 곧바로 달려와 소리쳤다.


“하지만 어르신! 기회는 아직 있습니다!”

“이번 일은 그저 사고에 불과합니다!”

“선후는 어립니다! 아직 세상물정을 잘 몰라서 그런 겁니다! 저희가 이점을 충분히 설명하면 분명···!”


하지만,


“아니.”


여도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린 이미 감독관을 칼로 찔렀다. 그건 변하지 않아.”


여도필의 말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그 분위기를 맞춘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다 연기였던 건지. 마광이 어느새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받았다.


“거사를 준비한다.”


공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다들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기둥이 떨어졌던 언덕. 그 가장 높은 곳에서 똑같은 신호를 보내겠다.”


마광이 한 명, 한 명, 자리에 앉아있는 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첫 목표는 무기고. 거기서 무기를 얻은 뒤···.”


그 순간, 선후는 느꼈다.


지금 나가지 않으면, 저 계획에 자신은 포함되지 않을 거라고.


애꾸눈 감독관에게 복수할 기회가 완전히 사라질 거라고.


이에 선후가 곧장 움막 밖으로 걸어 나갔다.


동시에, 그 자리의 모두가 고개를 돌려 선후를 바라보았다.


선후는 그 시선을 받으면서, 사람들 사이 빈자리로 걸어가 털썩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그리곤 고개를 들어, 자신을 당황스레 내려다보는 마광을 보며 물었다.


“그 다음은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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