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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맨
작품등록일 :
2024.07.15 17:40
최근연재일 :
2024.08.13 22:00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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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5,532

작성
24.07.23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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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9화.

DUMMY

“달려들자!”

“쓰러뜨려!”


그토록 머뭇거리고 주춤대며 대치했던 것이 우습게도, 감독관들을 향해 사람들이 달려들었다.


무기를 든 이들, 맨손인 이들. 던졌던 망치와 정을 다시 주워 든 이들.


처음엔 선후를 비롯해 무기를 든 이들이 감독관들을 상대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망치나 정을 든 이들이 많아졌다.


어느 순간 마광이 작게 손짓을 보냈다.

이에 선후처럼 무기를 든 이들이 옆으로 이동해 자리를 만들어냈다.

말할 것도 없이 망치와 정을 든 이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감독관 이 개자식들!”

“빌어먹을 놈들!”


그들의 고함에, 휘두르는 손에 한이 서려 있었다.


“이놈들이! 어딜, 어딜! 크윽! 억! 으아악!”

“노예 놈들이 감히! 죽어라! 죽으라고! 아아악!”


감독관들도 악을 썼다.

그들은 미친듯이 무기를 휘둘렀다.

채찍, 창, 도끼, 검···. 그들이 든 것, 챙겨온 것을 모두 사용했다.

단지 사방에서 들어오는 공격을 전부 막을 수 없었을 뿐.


“아아악!”

“으아아악!”


양쪽에서 번갈아 비명이 들렸다. 쓰러지는 소리도 들려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천천히, 균형은 무너져갔다.

감독관들이 점차 쓸려나가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우와아아아!”


이윽고 하나둘 함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다 한순간에 환호성이 사방을 뒤덮었다.

선후가 있던 쪽도, 저 멀리 잘 보이지 않는 다른 쪽에서도,


“감독관을 쓰러뜨렸다!”

“감독관이 쓰러졌다!”


똑같은 외침. 똑같은 감정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선후의 건너편에, 피 묻은 조그만 망치를 손에 든 어느 삐쩍 마른 아저씨가 핏대를 세우며 환호하고 있었다.

선후의 마음속에 절로 벅참이 솟아났다.

동시에 몸이 꿈틀거렸다. 무언가 하고 싶었다. 저들의 환호에 걸맞게 뭐라도 외치고 싶었다. 몸이 덜덜 떨렸다.


그때, 제일 앞에서 감독관과 싸웠던 사람. 마광이 그의 창을 높이 번쩍 들어 올렸다.

홀린 것처럼, 선후의 손이 절로 따라 올라갔다.

선후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주위 모든 이들이 주먹 쥔 손을 높게 치켜올렸다.

태양이 내리쬐고 있어서인지 마광에게서 빛이 나는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가 마광의 이름을 외쳤다.


“마광! 마광! 마광!”


살짝 다르게 들은 걸까,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른 단어가 들려왔다.


“해방! 해방! 해방!”


한 명, 두 명. 목소리가 점점 겹쳐 커졌다.

선후는 두 부르짖음 모두 따라 했다.

채석장에는 한동안, 쩌렁쩌렁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


“선후야 너무 많이 주면 안 된다. 남은 사람들이 다 못 먹을 수 있으니까.”

“넵. 석호 아저씨.”


채석 작업장을 가득 채우던 함성이 점차 사그라들고 나서, 선후는 간단한 일 하나를 맡게 되었다.

그건 다름 아닌 음식을 나눠주는 일.

저번처럼 식량 움막이나 연고가 보관된 움막 등을 열었기에 필요한 일이었다.


채석장의 사람들은 다들 줄을 서는 것에 익숙한지 조용하고 깔끔하게 순서를 지켰다.

하여 선후의 일에 어려움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뿌듯했다.

왜냐면 선후를 마주하는 사람마다 한 마디씩 선후를 칭찬해서였다.


“이 아이가 감독관에게 돌을 던진 아이야.”

“너였구나! 엄청 멋있었다!”

“헤헤, 감사합니다.”


처음엔 고개를 숙이며 쑥스러워하던 선후는,


“돌을 던지는 걸 봤다. 대단하더구나.”

“네가 용기있게 행동해서 우리도 움직일 수 있었어. 고맙다.”


사람들의 칭찬을 들을수록 몸이 부풀어 올라, 어느새 어깨와 가슴을 힘껏 들어 올린 모양새로 대답했다.


“당연한 거였어요!”


어른들을 향해 그리 외치는 선후의 목소리에는 자랑스러움이 가득 실려있었다.

앞으로 똑같은 일이 몇 번이고 벌어지더라도, 지금처럼 용기를 내겠다고 되새기는 것은 덤이었다.


그렇게 한참 사람들에게 식사를 나눠주고 있자니, 줄을 선 사람들에게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선후가 고개를 들자, 마광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소!”

“우리도 함께 하고 싶습니다!”

“마광! 마광! 마광!”


식사를 받으려 줄을 선 이들, 식사를 이미 받아 자리에 앉아있던 이들, 서로 얼싸안은 마령들과 서로에게 위로받거나 위로하는 마령들 등. 수많은 이들이 마광을 향해 환호하고 있었다.


비록 마광이 들은 함성이었지만, 선후의 입가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옆을 힐끔 돌아보니, 다른 아저씨들, 형들도 한껏 올라간 어깨로 식사를 나눠주고 있었다.


“어르신. 자리를 옮기시죠.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그사이, 마광이 깍듯한 태도로 여도필에게 다가갔다.

마광에게 환호하던 이들이 놀란 눈으로 여도필을 쳐다보았다.

여도필 또한 당황한 기색으로 마광을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지.”


여도필은 마광의 안내를 받아 일어섰다.


“저기, 얘야.”


자리를 옮기는 두 사람을 바라보던 선후가 앞에서 들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바로 앞에서 어른 한 사람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앗, 죄송합니다!”


빠르게 머리를 숙인 선후가 식사를 건넸다.


“맛있게 드세··· 어?”


선후가 식사를 건네다 말고 몸을 움찔했다.

앞에 서있는 아저씨. 그는 꽤 아픈 내색을 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의 등과 옆구리에는 이제 막 굳은 듯한 피딱지들이 군데군데 붙어 있었다.

또한 가슴과 배 쪽에는 무기에 베인 듯한 날카로운 상처에서 아직도 피가 배어나오는 중이었다.

이를 본 선후가 곧장 옆의 연고 움막을 가리켰다.


“옆에 움막에서 상처 치료할 수 있어요. 연고 발라줘요.”


하지만 앞에 있는 아저씨는 씩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나보다 더 크게 다친 사람들이 써야지. 이 정도면 괜찮아. 괜히 연고 낭비할 필요 없어.”


선후는 그 모습이 문득 며칠 전 작업장 사람들과 겹쳐 보여서 얼굴을 찌푸렸다.


“연고 많으니까 괜찮아요. 감독관들이 안 쓰고 잔뜩 모아놨어요.”

“그래?”

“네. 가벼운 상처도 다 치료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꼭 가세요.”


고개를 갸웃하며 돌아서는 아저씨를 보며 선후가 주먹을 꾹 쥐었다.

저런 생각들은 꼭 사라져야 한다고, 그리고 아직 그러기엔 많은 것들이 부족하다고 느끼면서.


***


해가 지고, 밤이 되었다.

맡은 일을 모두 끝낸 선후는 작업장을 조금 돌아다니다가, 함께 온 어른들이 모여있는 모닥불 쪽으로 향했다.

마광과 여도필을 비롯해 익숙한 얼굴의 어른들이 앉아있는 곳.

그리로 다가간 선후에게 여도필이 자연스레 옆자리를 내주었다.

선후가 앉자, 여도필이 물었다.


“다치진 않았느냐?”

“네! 하나도요!”


대답하는 선후의 목소리는 잔뜩 신나있었다.

선후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곧장 자랑했다.


“··· 그래서 제가 감독관에게 돌을 던졌어요!”


다만 여도필의 반응은 선후가 기대한 것과는 많이 달랐다.


“너무 위험한 행동을 했구나.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선후야.”


여도필의 눈에는 걱정하는 빛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를 듣는 선후는 별다른 대답 없이 입을 삐쭉 내밀었다.


“알겠니?”

“···.”


여전히 선후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가 모닥불을 향해 다가왔다.

채석 작업장 사람들이 모여있는 쪽에서 온 사람.

기웃거리는 그를 본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서니, 그가 조심스레 가까이 다가왔다.


“마광 님. 계십니까?”


그의 물음에 모두의 시선이 마광에게로 향했다.

모닥불 옆에서 불을 쬐며 앉아있던 마광이 일어서자, 그가 곧장 허리를 숙였다.


“저는 정여운이라고 합니다. 저희 작업장의 사람들을 감독관에게서 벗어나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정여운이라고 이름을 밝힌 그는 마광의 손짓을 보고서 다시 몸을 세웠다.


“다름이 아니라, 다른 작업장, 다른 지역의 사람들도 해방하려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정여운의 질문에 마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정여운의 표정이 밝아졌다.


“실례가 아니라면 혹시 다음은 어디로 향하실 생각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그의 질문에 마광이 팔짱을 꼈다.

주변 다른 이들의 시선도 집중된 잠깐의 시간.

마광의 대답은 짧았다.


“고민 중이다.”


불확실한 대답.

모닥불에 모인 이들. 여도필과 선후까지 포함해 다들 표정이 한층 진지해졌다.

그런데, 오히려 질문한 정여운의 얼굴에는 기쁨이 웃돌았다.


“그렇다면 혹시나 도움이 될까 싶어,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엇이지?”

“예. 우선, 저는 이 채석 작업장에서 돌을 나르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광을 비롯, 주위의 이들이 모두 고개를 갸웃했다.

채석 작업장의 사람들이 모두 돌을 캐서 날랐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그게 굳이 꺼내야 할 만큼 특별한 일인가 싶어 다들 고개를 갸웃대던 그때였다.


“저는 작업장 안쪽이 아니라 다른 작업장을 향해 나르는 역할이었습니다.”


이어진 그의 말에 자리의 모두가 눈을 크게 떴다.

마광이 놀란 목소리로 질문했다.


“다른 작업장? 작업장 밖을 나가보았다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럴 때마다 보게 되었습니다. 돌을 옮겨야 할 때마다 감독관들이 무언가를 계속 찾아보고 살핀다는 것을.”


정여운이 그렇게 말하더니 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선후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돌돌 말린, 천보다도 더 얇은 무언가.

그는 이를 크게 펼쳐보였다.


“감독관들이 지도라고 부르던 그림입니다. 여기에는 다른 작업장까지의 거리, 가는 길 등등 많은 것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마광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어 근처로 모여든 어른들도 웅성거렸다.

선후도 까치발을 하고 이를 살폈다.

지도라는 것을 본 선후는 깜짝 놀랐다.

그림에는 작업장 같은 장소가 여럿 그려져 있었으며, 서로 이어진 길, 가는 도중에 자리한 산이나 언덕같은 것들 등 그림을 처음 보는 선후도 알 수 있게끔 쉽게 표현되어 있었다.


“여기.”


정여운이 지도의 구석진 곳 한군데를 짚었다. 거기에는 검은색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여기가 지금 저희가 있는 채석 작업장입니다.”

“이렇게 이어진 것들은 길이겠군.”

“맞습니다. 그리고 이어져 도착하는 곳들은···.”

“작업장.”

“예.”


선후가 다시금 그림을 살폈다.

설명을 듣고 나니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보였다.

채석 작업장과 이어져 있는 여러 개의 길들. 그 끝의 여러 작업장들.

그리고 작업장 너머, 뭔가 작업장보다도 훨씬 크게 그려져 있는 작업장과는 조금 다른 그림 몇 개와, 그보다도 훨씬 커다란, 가장 커다란 형태의 또다른 그림까지.


“제일 가까운 곳이 우리가 온 곳이다. 그리고···.”


마광의 목소리가 들려, 선후가 문득 마광을 돌아보았다.

그랬다가, 저도 모르게 헉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선후는 보게 되었다.

그림을 바라보는 마광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도 번뜩이는 것을.

또한 느꼈다.

그 번뜩거림이, 모두를 이끌게 될 거라는 것을.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끼며 선후가 지도를 쳐다보았다.

어째서인지, 가까이에 있는 마광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멀게 들려왔다.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곳은···.”


타닥타닥. 모닥불 타는 소리는 크게 들렸다.


“길이 이어진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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