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안녕하세요

노예 인간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이스트맨
작품등록일 :
2024.07.15 17:40
최근연재일 :
2024.08.13 22:00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176
추천수 :
2
글자수 :
85,532

작성
24.07.22 18:40
조회
11
추천
0
글자
11쪽

8화.

DUMMY

“적들이다! 공격해!”


감독관들의 채찍질과 명령에, 늘어선 이들이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후를 비롯한 이들이 다가오는 이들을 당황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채석 작업장으로 달려온 것. 나무 울타리 벽을 부수고 들어온 것. 무기를 들고 온 것.

그 모든 것은 오로지 감독관들과 싸우기 위한 것이었지, 자신들과 같은 저들을 해치기 위한 게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감독관들에 의해 내몰려 다가오는 채석 작업장 노예들의 눈빛에도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

손에 쥐어진 것은 언제나 돌을 향해 휘둘렀을 뿐인 도구.

자그만 망치와 정.

누군가를 향해 휘두른 적도, 휘두를 생각도 해본 적 없는 그것을 든 채 사람을 공격하라는 명령은, 그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두 집단 간의 거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어젯밤 마광에게서 지시를 받던 어느 아저씨의 곤혹스러운 외침과 함께, 선후 쪽의 사람들이 다가오는 이들을 향해 무기를 겨눴다.

누군가는 창이요 누군가는 도끼, 누군가는 칼.

수많은 무기가 날을 빛내며 눕는 모습에 저쪽의 걸음이 느려졌다.


주춤주춤. 조금씩 가까워지면서도 양쪽 모두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는, 망설임으로 점철된 시간.

그때였다.


짜악!


“아악!”

“멈추지 말고 나아가! 가까워지면 망치든 정이든 휘둘러서 공격해!”


채찍이 휘저어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들렸다.

건너편에서. 감독관들이 채찍을 휘두르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앞으로 가!”


감독관의 명령에 채석 작업장의 이들이 겁을 집어먹은 채 한 걸음씩 다가왔다.

아니, 반복적인 비명, 반복적인 채찍 소리와 함께 앞으로 조금씩 밀려왔다.

밀려오는 이들의 눈에, 반대편 이들이 들고 있는 무기들이 맺혔다.

점점 가까워지는 무기들.

노예인 그들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달달 떨며 짧은 망치와 정을 들어 올렸다.

겁에 질린 걸 티 내지 않으려 하지만, 들어 올린 손이, 상대를 쳐다보는 눈빛이, 덜덜 떨리는 게,

선후와 같은 반대편 사람들의 눈에도 여실히 보였다.


“감독관 저 개자식들!”

“저런 빌어먹을 놈들!”


곳곳에서 노성이 튀어나왔다.

선후도 그랬다.

들고 있던 칼이 화를 참지 못하고 흔들렸다.

모두의 눈에 분노가 가득 찼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지?”

“저들에게 무기를 휘둘러야 하는 건가?”

“하지만 저들은 우리와 같은 노예잖아!”


선후네 사람들도 무기를 겨누기만 할 뿐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감독관들을 향한 눈빛은 분명 서슬 퍼렜지만, 감독관들에게 내몰리는 이들에게 안쓰러운 눈빛을 보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채석 작업장의 사람들.

칼을 내밀고 있던 선후가 얼굴을 찡그렸다.

저들에게 칼을 찌르는 건, 바로 옆에 있는 아저씨와 형에게 칼을 찌르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마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라 느껴서.

왜냐면 오히려 무기를 뒤로 물리는 사람들까지 있었으니까.


모두가 머뭇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 걸까, 노예들을 앞세워놓고 뒤에서 채찍이나 휘둘러대던 감독관 한 명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이 노예 새끼들! 이쪽도 저쪽도, 다 채찍질이 필요하겠구나!”


비웃음 실린 감독관의 목소리가 선후의 귓가에서 왱왱 울려왔다.


“우리 놈들이야 겁이 많아서 그렇다고 쳐도! 무기까지 든 놈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다니! 이 겁쟁이 놈들!”


선후의 눈이 부릅 떠졌다. 칼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주위의 무기들이 꿈틀거렸다. 으득거리는 어른들의 소리가 들렸다.


“하긴 그래. 네놈들을 끌고 온 건 감독관일테니 싸우고 싶지 않겠지. 그런 겁쟁이들만이 언제나 노예로 남게 되니까!”


소리친 감독관이 보란 듯이 채찍질을 했다.

후웅, 아악.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모두의 시선이 갔다.

그의 앞에 있는 사람들, 그의 옆에 있는 다른 감독관들보다 키가 훌쩍 큰 감독관이 선후가 있는 쪽으로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너희들을 이끌고 온 감독관은 누구냐! 누가 감히 이런 짓을 벌였느냐!”


쩌렁쩌렁하게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리의 기세를 잡아먹었다.


“나와라! 감히 우리의 작업장을 탐하다니! 어떤 감독관이 이런 추한 짓을 행했느냐! 고작 노예 따위에게 무기나 쥐여주는 방법으로 우리를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느냐!”


모두가 눈동자를 굴렸다. 저편은 어느 괴악한 감독관이 나올까 봐 두려워서,

이쪽은 감독관이란 건 없는데,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다만 한 가지. 커다란 목소리가 가진 힘은 컸다. 기세, 분위기가 완전히 채석장 감독관들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내가 이들의 대장이다.”


그래. 사람들을 헤치며, 선후의 옆을 지나, 가장 앞으로 나오는 그가 나타나기 전까진.


“마광 아저씨!”


감독관과는 전혀 다른, 선후와 비슷한 남루한 옷차림을 한 그가.

모두가 인정하는, 노예였던 이들을 이끄는 마광이 모두의 앞에 섰다.


***


기세가 뒤바뀌었다.

마광이 있는 쪽에선 환호가 일어났다.

선후도 그중 한 명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마광의 이름을 불렀다.


“마광! 마광! 마광!”


한편 저쪽에선 의아함을 실은 술렁임이 퍼져갔다.

그 술렁임은 감독관들에게까지 닿아, 그들이 얼굴을 찡그리는 것으로 되돌아왔다.


“너는 뭐냐?”

“내가 이들을 이끄는 자다.”

“네놈이?”


감독관들의 눈빛이 마광을 훑었다.


“어줍잖게 노예 놀이를 하고 있는 거냐?”

“아니.”


마광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다만 설명은 하지 않고, 두려운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채석 작업장의 노예들을 쳐다보았다.


“모두 들어라!”


마광이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너희들과 같은 노예다! 아니, 노예였다!”


마광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채석 작업장 노예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뒤쪽의 감독관들의 표정은 희한하게 일그러졌다. 그들이 중얼댔다.


“쓸데없이 왜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거지?”

“인간이든, 마령이든, 원래 다들 미르 님의 노예에 불과한 것. 우리 또한 원래 노예였으나 의지와 재능을 인정받아···.”


하지만 찌푸린 채 떠들던 감독관들의 표정은 이어진 마광의 말에 딱딱히 굳어버렸다.


“여기에 찾아온 우린, 우리의 작업장에 있던 감독관들을 전부 죽였다.”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앞에서부터 저 뒤까지.

노예들부터 감독관까지.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죽였다고? 감독관을?”

“노예들이? 노예가?”


한 마디의 바람이 지나간 것처럼, 저편이 술렁거렸다.


마광이 그의 손에 쥔 창을 높게 들어올렸다.

술렁임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자유를 얻어냈다! 우리의 작업장에 감독관이란 이제 없다! 채찍질도, 강제로 해야 하는 일도 더는 없다! 우리는, 이제 저들의 노예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만족하지 않았다! 왜냐면 어젯적 우리와 같은 이들이 세상에 넘쳐나기에! 지금의 자네들과 같은 이들이 세상엔 너무나도 많기에!”


“이제 자네들의 차례다! 우리를 만난 이상 자네들도 노예가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겠다! 보여다오! 그대들이 노예에서 벗어나고 싶어함을! 채찍질에서 벗어나고 싶어함을! 자유로워지고 싶어함을!”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마광의 말을 듣는 이들은 모두 깨달았다.

망치와 정을 손에 든, 이곳에서 노예라 불리는 이들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힐끔.

뒤쪽의 감독관들을 향해 고개가 돌아갈 때쯤에,


“속지 마라! 이 멍청한 놈들, 저 말을 믿는 거냐! 우리를 공격하면 미르 님이 처벌을 내린다! 까먹은 거냐!”

“다들 이게 무슨 짓이야! 당장 고개 돌리지 못해!”

“우리가 가만히 있을 것 같으냐! 모두 죽고 싶은 거야!”


돌아보았던 노예들의 표정에 대번에 두려움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고개를 차마 돌리지 못했다.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고개를 내젓는 이들도, 불붙은 시선으로 감독관을 노려보는 이들도, 고함에 화들짝 놀라 앞을 돌아보았다가 이내 다시 감독관을 돌아보는 이들도.

끝내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이놈들이 정신 못 차리고!”


수많은 시선이 꽂히는 게 견디기 어려웠을까.

감독관 하나가 채찍을 높게 들어 그의 앞에 있는 이들에게 휘둘렀다.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허겁지겁, 겁에 질린 그들이 황급히 몸을 돌렸다.

그러고 나선 파르르 떨었다.


“앞을 보아라! 감히 우리를 쳐다보지 말아라! 저놈들을 보고! 저놈들을 죽일 생각을 하란 말이···!”


그때였다.


“아악!”


분노해 외쳐대던 감독관의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건너편에서 누군가가 감독관을 향해 돌멩이를 던져서,

그게 그대로 감독관의 쇄골에 맞아서, 그가 비명을 지른 것이다.


“어떤 새끼가!”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감독관이 돌이 날아온 방향을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을 받은 채석장의 노예들이 화들짝 놀라 옆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방금 막 돌멩이를 던진, 그러고도 또 돌멩이 하나를 주워들어 손에 쥔, 채석장이 아닌 바깥에서 온 어린아이 한 명은 그의 시선에 당당히 맞섰다.

선후였다.


“아이?”

“어린아이가···!”


주춤거리며 물러났던 채석장 사람들의 시선이 선후에게 꽂혔다.

그들의 눈에, 선후가 가득 품은 분노가 보였다.

이어서 선후가 다시금 손을 들어, 쥐고 있던 돌멩이를 감독관에게 또다시 던지는 것도.


“이놈!”


격한 고함과 달리, 이번에는 감독관이 돌멩이를 피했다.

돌멩이가 감독관을 지나쳐 저 멀리 사라졌다.

한데 그건 마치 말하는 것 같았다.

감독관이 피한다고.

감독관도, 피한다고.


선후를 바라보던 채석장의 노예들, 아니 사람들이 멍한 표정이 되어 씩씩거리며 자세를 되돌리는 감독관을 쳐다보았다.

이어서, 누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동시에 고개를 떨궈, 그들의 손을 살폈다.


그들의 손에는 쥐어져 있었다.

그동안 돌을 향해 내려쳐 왔던 작은 망치가, 내려침을 받아내던 조그만 정이.

채석장에서 일하는 노예라는 상징이.


그들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감독관들을 바라보았다.

눈앞에 스쳐 갔다. 방금도, 어제도, 젊을 적에도, 어릴 적에도. 언제나 자신들을 향해 채찍을 휘두르던 감독관의 모습이.

자연스레 손이 올라갔다.

이를 눈치챈 감독관 하나가 황급히 채찍을 휘둘렀다.


“이놈들, 뭐하는 거냐! 정신 안 차려!”


하지만 채찍이 휘둘러져도, 그들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파르르 떨지언정, 그들의 움직임은 계속 이어졌다.

그들의 손이, 쥐고 있던 것을 감독관에게 던졌다.

처음엔 약하게. 뒤이어 점점 강하게.


“아악!”

“이놈! 이놈들이!”


망치가, 정이, 감독관들에게 쏟아졌다.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은 감독관들이 분노하며 채찍을 휘둘렀다.

그러다가 화를 참지 못하고 무기를 꺼내 휘저었다.


비명이 들렸다. 망치와 정을 던져 빈손이 된, 더이상 내밀 게 아무것도 없어진 이들이 비명과 함께 자리에 스러졌다. 기겁하고 놀라 도망쳤다.


그 모든 난리를 한 번에 덮은 건 마광의 외침이었다.


“무기가 없는 이들은 물러나라! 무기가 있는 이들은 나아가라! 노예들을 해방하자!”

“으아아아아!”

“와아아아아!”


기다리고 있던 선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리고 설령 손에 쥔 건 없을지언정 의지만큼은 누구보다 강한 자들이, 모두 저편의 감독관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노예 인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 15화 24.08.13 4 0 15쪽
14 14화. 24.08.09 5 0 12쪽
13 13화. 24.08.08 7 0 14쪽
12 12화. 24.07.30 8 0 13쪽
11 11화 24.07.29 8 0 11쪽
10 10화 24.07.25 10 0 12쪽
9 9화. 24.07.23 11 0 11쪽
» 8화. 24.07.22 12 0 11쪽
7 7화. 24.07.21 9 0 12쪽
6 6화. 24.07.20 12 0 13쪽
5 5화. 24.07.19 14 0 14쪽
4 4화. 24.07.18 13 0 12쪽
3 3화. 24.07.17 15 0 11쪽
2 2화. 24.07.16 18 1 12쪽
1 1화. 24.07.15 31 1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