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바루나시여!
35화.
수련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자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 통역 마법 반지를 만들었다. 활성화시킨 반지를 끼고는 근처까지 이동했지만 그 자는 좀처럼 눈을 뜨지 않았다. 수련에 심취한 상태같았다.
방해를 해서는 않된다는 생각에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 바닥에 앉아 불선도량심법을 운공했다. 수련하던 자가 깨어 났는지 접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심법을 끝내고 눈을 뜨자 큰바위 사이를 성큼성큼 걸어 오고 있었다.
"자네는 티벳승인가?"
"아닙니다. 가사만 걸쳤을뿐 승려는 아닙니다. 그런데 올해가 몇년도인지요?"
"시간은 잊었다네. 사두(Sadhu)에게 시간은 무의미하지. 자넨 사두가 아닌가?"
"사두? 사두가 뭔지요?"
처음 듣는 말이다. 그보다 지금이 몇년도인지 가장 먼저 알고 싶었다. 저 자가 티벳승이냐고 물었다. 그렇다면 이곳은 지구가 틀림없을것이다. 이곳에 도착해 스마트 폰을 켜 보았지만 밧데리가 방전되어 스마트 폰은 쓸모가 없었다.
"사두는 정신적 수행을 하며 고행하는 자를 가르키는 말이라네. 그럼 자네는 관광객인가?"
"관광객이라면 관광객이지요. 그럼 어디로 내려가면 되는지요?"
"저쪽으로 내려가면 길이 나올걸세. 길을 따라 내려 가다 보면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될걸세. 그들을 따라 가게."
"감사합니다."
친절한 사람이었다. 내려 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에 서둘러 길을 나섰다. 바위 지대를 지나 큰돌이 많은 곳을 지나자 길이 나타났다. 사람들이 많이 걸어 다닌 길인지 단단히 굳어 있었다. 돌들이 곳곳에 삐죽 튀어 나와 있어 앞을 잘 보며 내려 가야 했다. 잰걸음으로 내려 갔다. 얼마후 길옆에 앉아 쉬고 있는 중년인 두명을 발견했다.
"말 좀 묻겠습니다. 올해가 몇년도인지요?"
"2018년 1월 8일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자신이 중간계로 이동했을때가 2017년 9월 7일이었다. 중간계에서 5년가까이 지냈음에도 불과 4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다. 중간계와 지구의 시간 흐름이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하지만 지구에서 1년후에 중간계로 이동한다면 중간계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른다. 지구의 4개월이 중간계의 5년이라고 추측은 되지만 직접 가서 확인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다.
"티벳승이십니까?"
"아닙니다."
"그럼 사두십니까?"
승복을 입고 있는 탓으로 위쪽에서 만난 그 자처럼 이들도 착각하고 있었다. 수행하는 자를 사두라고 한다면 스스로 사두라도 지칭해도 될것같았다.
"그렇습니다."
"오오! 외국인 사두는 처음입니다. 저희들에게 축복을 내려 주실수 있겠습니까?"
"축복요? 음, 잠시만요."
이들과 눈을 마주쳐 삼지안을 열었다. 지구로 무사히 돌아온 기념으로 과거와 미래를 읽고 조금 도움되는 말을 귀뜸해 줄 생각이다.
'응? 저건 뭐지?'
두명 모두 이마에 빛을 볼수 있었다. 상대방의 과거와 미래를 읽을때 지금까지 저런 현상은 한번도 없었다. 한명은 조금 밝은 빛이었고 다른 한명은 그보다 밝지 않았다. 두명 모두 같은 마을에 사는 농부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지 짐작조차 할수 없었다. 중간계를 다녀온 탓일지도 모른다.
- 샐리아나, 왜 저런게 보이는거지?
- 호호호, 마스터는 골드 크로우의 능력을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는것 같네요. 저 빛은 영혼이랍니다. 골드 크로우는 영혼을 관장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전에 말했잖아요. 밝은 빛은 선한 일을 많이 한 자이고 악에 물들면 점점 검게 변하는거죠.
- 그, 그렇군. 고마워.
샐리아나가 골드 크로우에 대해 말해 준것을 잊고 있었다. 농부인 이들은 마을을 대표해 갠지스강 원류인 바기리티 강이 시작되는 원류로 올라와 마을에 비를 내려 주도록 기원하고 돌아 가는 길이다.
이마에 조금 밝은 빛을 발하고 있는 자는 순수한 마음의 소유자다. 욕심이 거의 없는 자로 주어진 삶에 만족하고 있지만 한가지 바라는 것은 비를 내려 달라는것 뿐이다. 다른 중년인은 자신의 밭에 물을 대기위해 저녁 8시에 우물물을 퍼 올려 마을 사람들 순번대로 자신의 밭에 물을 대는데 욕심을 부려 수로쪽 고랑인 자신의 밭쪽을 무너 뜨려 조금이라도 물이 들어 오게끔 꼼수를 부리고 있었다.
이들 마을에는 물 부족이 심각하다. 전기 펌프로 깊은 우물 물을 퍼올리고 있지만 전력 부족으로 인해 밤8시부터 12시까지만 전기 공급이 되는 탓으로 우물 펌프로 물을 퍼 올리는데 시간이 부족했다. 300가구가 이주일에 한번씩 자신의 밭에 물을 댈수만 있어 건기(乾期)인 이 시기에는 만성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우물물은 너무 깊은 탓으로 인력으로 끌어 올리는건 무리다.
"당신은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영혼이 썩어 들어 가고 있군요. 자신의 밭에 물을 대기 위해 고랑에 손을 보았죠. 그런 일을 계속 한다면 당신 영혼은 구제받지 못할겁니다."
"허억! 그, 그걸 어떻게...구, 구루(Guru)십니까?"
"구루가 뭡니까?"
"구루는 깨달은 자를 말하는 겁니다."
"음, 구루는 아닙니다. 아직 그 정도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했으니까요."
이곳에는 고행하는 자들을 사두라고 한다. 사두가 고행으로 깨달음을 얻으면 구루라고 칭송되는것 같았다. 깨달은 자들은 어떤 자들인지 구루들을 만나 보고 싶었다.
"말이 다른 곳으로 새어 나갔군요. 지금이라도 당신은 늦지 않았습니다. 정직한 삶을 살아야 영혼은 구제받을수 있다는걸 명심하십시요. 그리고 당신은 지금처럼 살면 됩니다. 그러면 당신 영혼은 구제받게 될겁니다."
"아, 감사합니다. 구루시여!"
"구루가 아니라니까요."
"아닙니다. 저희들에게는 구루십니다."
제멋대로 구루라고 칭하고 있었다. 이러다가 혹시 발목이라도 잡히는게 아는지 걱정되었다. 저들의 마을로 돌아가 스마트 폰을 충전하고 싶었지만 구루라고 소문을 낸다면 마을 사람들 모두가 축복을 내려 달라고 할것이다. 그런 일이 발생하더라도 지금은 폰 충전이 급하다. 어머님이 얼마나 걱정하고 계실지 빨리 연락을 드려야 한다.
"그만 내려 갈까요?"
"모, 모시겠습니다. 어디로 가시는지요? 저희 마을에 들러지 않겠습니까?"
"음, 부탁 드리겠습니다."
마치 귀빈을 모시듯 이 중년인 둘이 조심스럽게 안내를 했다. 구루라는 존재가 그렇게 큰 존재인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이곳은 인도 북부다. 자신이 중간계에서 이동해 온곳은 히말라야 산맥이었다. 이들의 마을까지는 삼일이나 걸어 겨우 도착했다. 강을 따라 내려가면서 강과 전혀 다른 곳으로 이동해 갔다. 강가에 살면 물 부족에 시달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야영을 할땐 이들이 극진하게 대접했다. 식사라고 대접한게 난(naan)이라는 빵이 고작이었지만 지구로 이동해 처음으로 입에 대는 지구의 음식이었다. 잠을 잘때엔 자신들이 깔고 덮는 모포를 양보했지만 사양했다.
두사람이 같이 덮고 자면 된다고 했지만 온도 조절 아티팩트 반지를 끼고 있어 전혀 춥지도 않았다. 둘이 잘때 탄수는 심법을 운공하며 밤을 지새웠다. 이른 아침이 되어 일어난 둘은 앉아 있는 자신을 보고 놀라고 있었다.
새벽같이 출발해 삼일이나 걸려 겨우 도착한 마을은 분지였다. 양쪽 산에 가로 막힌 곳으로 듬성듬성 자리하는 산덩이쪽의 집들과 아래쪽에 빼곡히 들어차 있는 집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을로 들어 서자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두사람을 맞이해 주는게 아니라 이방인인 자신을 보러 몰려 온것이다. 둘이 구루를 모시고 왔다고 소리치자 마을 사람들 모두가 놀란듯 신기해 하는 표정들이었다.
"촌장인 루치 판데입니다."
"장탄수라고 합니다. 참고로 한국인입니다."
"외국분 구루는 처음이군요."
촌장은 믿기지 않아 하는 표정이었다. 마을 사람들도 모두 의심스러운 눈치였다. 그러자 자신을 데리고 온 두 중년인이 당황하며 구루가 틀림없다고 했다.
"난 구루가 아닙니다. 저 분들이 제멋대로 구루라고 부른것이죠. 촌장님은 영혼이 많이 검군요. 작은 권력에 취해 자신의 본분을 잊고 있는 것이죠. 지금 상태라면 영혼은 지옥으로 떨어질겁니다. 소중한 물도 자신의 밭에 가장 많이 대고 있는 중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
모두의 시선이 촌장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촌장은 숨기고 있던것이 들킨것처럼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촌장외에 다른 사람들과 눈을 마주쳐 기억을 읽었다. 대부분 순박한 사람들이다. 주어진 삶에 만족하며 신에게 감사하며 열심히 농사를 짓는 이들이었지만 모두가 물 부족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신은 임신을 한 상태입니다. 7월달에 아들을 낳을겁니다."
이마에 붉은 점을 찍고 있는 여인 한명을 가르켜 미래를 말해 주었다. 마을 사람 모두가 그 중년 여인을 보자 중년 여인은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마을에서는 내일 아침 일찍 떠나겠습니다. 안내하시죠."
"아, 알겠습니다. 이쪽입니다."
밝은 빛을 띠는 영혼을 가진 중년인이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다. 바데라는 중년인 식구는 모두 9명이었다. 동생 가족들도 함께 산다며 일일히 소개를 했다. 바데가 모두에게 축복을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축복은 어떻게 내려 주는지는 모른다. 그렇다고 먼미래 일을 말해 줄순 없었다.
모두 무릎을 꿇고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가만히 있을수는 없어 한명 한명의 이마에 손가락으로 살짝 대고는 마나를 조금씩 불어 넣어 주었다. 그것만으로 정신적으로 충만감을 느낄것이다.
"모두 일어 나세요."
"아! 감사합니다. 구루시여."
뭔가를 느꼈는지 모두가 놀라워했다. 특히 감수성이 민감한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래진채였다.
"몸이 아픈 사람은 있습니까?"
"어머님이 무릎이 많이 아프십니다."
"그렇습니까? 다리를 펴고 누우세요."
주름이 자글자글한 바데의 어머니를 눕게 한후 양무릎위에 살짝 손을 올려 놓고 힐링 이미지를 시전해 치료해 주었다.
"일어나 보세요. 이젠 무릎이 아프지 않을겁니다."
"아! 무, 무릎이 시원해진것 같아요."
이미 느끼고 있는지 천천히 일어난 바데 어머니는 몇걸음을 걸어 보고는 바로 무릎을 꿇고는 고마워했다. 무릎이 아프지 않다는걸 안것이다.
"일어 나세요. 이번엔 바데씨 밭으로 가 보죠."
"아, 안내하겠습니다."
바데 가족들 모두가 졸래졸래 따라 왔다. 탄수도 이들에게 굳이 따라 오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다. 집밖으로 나가자 마을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는 축복을 내려 달라고 했다. 난감했다. 이들에게 일일이 마나를 불어 넣어 줄순 없었다.
"음, 당신들에게 축복은 뭐죠?"
"비가 내리는 것입니다."
바데가 대신 말해 주었다. 모두에게 일어 나라고 하며 밭으로 가자고 했다. 비를 원한다면 내려 주면 된다. 밭에는 밀을 뿌려 놓은 상태라고 했다. 어떤 밭은 채소들이 자라고 있었으며 고구마도 자라고 있었다. 전날 물을 댄 밭과 그렇지 않는 밭은 흙부터 달랐다.
"이곳은 겨울철에 눈이 많이 옵니까?"
"많이 내립니다."
"그럼 저수지를 파 놓으면 물 부족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게 아닙니까?"
"저수지를 만들려면 눈이 오기전에 해야 합니다. 농사일 때문에 저수지를 팔수 없습니다."
마을 사람 모두가 매달려야 저수지를 팔수 있을 것이다. 비를 한번 내려 준다고 해도 일시적일 뿐이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선 저수지를 만들어야 한다. 지구에서도 물 부족을 해결해 주어야 하는 운명인것 같았다.
"운다인! 비를 뿌려줘."
양손을 하늘로 쭉 뻗어 일부러 대륙 공용어로 크게 외쳤다. 마음속으로 운다인에게 지시해도 되었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러자 맑은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허어억! 비, 비다!!"
"와아! 비다."
"무, 물의 신 바루나의 현신이다!!"
"오오! 바루나시여! 감사합니다. 저희 마을에 축복을 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가 외쳤는지 모르지만 바루나라고 외치며 무릎을 꿇자 모두가 무릎을 꿇었다. 갑자기 바루나라는 물의 신으로 둔갑해 버린 탄수는 어리둥절했지만 신기한 일이 벌어지면 인간들은 신의 행동으로 착각한다. 마을의 농경지에 한동안 비를 뿌려 주었다.
"모두 일어나세요. 그리고 전 바루나가 아닙니다.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바데의 집으로 돌아 가면서도 마을 사람들의 눈들이 부담스러웠다. 괜히 비를 뿌려 준것 같았다. 바데 집에서는 침대위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지만 사양했다. 바닥에 털썩 주저 앉자 모두가 안절부절했다.
이들 눈에는 자신이 물의 신이라는 바루나로 인식되고 있었다. 저녁 8시가 되자 스마트 폰 충전을 부탁했다. 전기가 들어 온것이다. 스마트 폰을 처음 보는지 신기해 하는 아이들이었지만 말을 걸지 않았다. 어른들이 조심하자 덩달아 아이들까지 눈치를 보고 있었다.
- 작가의말
내일 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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