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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변신한 짐승이 당신 옆사람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12.26 13:10
최근연재일 :
2024.06.13 11:35
연재수 :
100 회
조회수 :
2,681
추천수 :
307
글자수 :
597,391

작성
24.02.1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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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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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싸울 거야! 그런데 누구랑?

DUMMY

나는 계획적인 살인 사건을 인지했다.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신고라도 해야 된다. 형사라면 당연히 사건을 해결하려고 시도해야 한다. 그건 너무나 당연하다. 할 수 없거나 하기 싫다면 최소한 경찰은 그만둬야 한다.

그래서, 그러므로, 나는 고민하지 않았다.


고해곤 박사 살인범을 체포하겠다는 결심까지는 간단했다.

그런데 이 사건은 다른 살인 사건과 다른 골치 아픈 점들이 꽤 있었다. 그 골칫거리들의 답을 찾는 것은 간단치 않았다.


일단 살인 용의자는 노보형과 노보형이 데려온 부하 두 놈이다. 빡대는 단순 가담자이고 공범으로서 벌을 조금 받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거다.

저 세 놈을 잡는 게 형사로서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늑대파 자체를 궤멸시키고 늑대파에 섞여 있는 악당 중간자들을 찾아내는 것도 필요하다. 거기까지는 기철이 형도 흔쾌히 동의했다.

그런데···


“뭐라고 해야 하지? 왜 염작가는 돈을 뜯겼고 왜 고박사를 죽이려고 했는지 이유를 밝혀야 될 거 아냐.”


기철이 형의 질문에 나는 대답을 못했다. 멍청하게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것들은 골치 아픈 문제였다.

어떤 동기가 있었길래 그런 짓을 했는가? 중간자의 존재를 은폐하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걸 밝히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은 노보형의 살인 동기를 이해 못 할 거다.


싸이코패스의 묻지마 살인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정황이다.

그렇다고 동기를 미스터리로 남겨둔다? 안 될 말이다. 중간자의 존재를 세상에 공개하면서 수사한다? 단순한 해답이지만 내 입장에서는 무지무지하게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빡대의 진술만으로 살인 범죄를 입증할 수 있을까?

‘짐승 반 인간들을 괴롭혀온 늑대인간이 자기들 정체를 아는 동물 박사를 죽였다’라는 팩트를 빼 버리고?

기철이 형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역시 만만찮게 어려운 일이니까.


활용할 만한 증거는 있을까? 뽁뽁이 비닐 부스러기가 나온들 증거 능력이 있을까?

그것도 회의적이다. 빡대를 빼고 살인에 가담한 세 놈이 입을 다물어버린다면··· 죽을 때까지 술을 먹였다는 희한한 살인 사건을 입증해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고박사 사건이 아니라 박대규 사건 쪽부터 파고드는 건 어떨까? 사이드를 돌파해서 결국 골대 앞으로 침투하는 작전은?


“형님, 노보형이 빡대를 죽이려고 했던 건 정황상 입증이 되지 않을까요?”

기철이 형은 신중하게 생각한 다음 대답했다.

“술을 먹이고 유서 필이 쫌 나는 글을 쓰게 했다. 그리고 놓고 간 가방에 번개탄이 있었다. 가방 말고는 다 빡대의 일방적 주장이 될 수 있어.”


음··· 그건 그랬다. 워낙에 박대규라는 인간의 말은 믿음이 안 갔다. 기철이 형과 나도 전후 맥락을 알고 현장을 봤기 때문에 지금 그 인간 말을 믿는 거였다.


“종이에 쓴 건 지 손으로 적은 거고 술도 억지로 먹였다는 증거도 없어. 누군가 번개탄이 든 가방을 두고 갔다, 그 인간이랑 치고받고 싸웠는데 그 인간이 유리창을 깨고 뛰어내렸다. 그거뿐이잖아?”

“그렇죠.”

“다른 사람들은 오히려 빡대가 그 인간을 패고 집어던졌다고 판단하지 않을까?”

“하지만 아니잖아요. 우리가 봤잖아요.”

“그럼··· 늑대인간이 빡대 집어던진 다음에 뛰어내렸다고 얘기해도 돼?”


설의법 같은 게 아니었다. 기철이 형은 진짜로 나한테 질문을 하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내 마누라가 여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확실한 결정을 못 하고 있는 거였다.


“아니, 빡대를 패던 놈이 뛰어내렸다까지는 확실하잖아요.”


나는 기철이 형 질문의 핵심을 피해서 다른 주장을 해봤다. 하지만 영양가가 없었다. 기철이 형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입증 곤란. 노보형 쪽에서는 같이 술 먹다가 싸운 거다. 번개탄은 빡대가 사온 거다. 그렇게 우길 수도 있어.”

에휴··· 반박할 수가 없군.

“지금으로서는 빡대가 고박사를 차에 태운 것만 증거가 있어. 나머지 부분은 법원이나 검찰이 인정할 만큼 입증해내기가 힘들어.”


맞는 얘기다. 우리는 살인범을 알지만 우리가 안다고 범죄자로 결정되는 건 아니다. 죄수로 감옥에 처박히게 하기가 만만찮은 상황이다.


“저놈들 때려잡고 싶지?”

“예.”

“나도 마찬가지야. 일단 거기까지는.”


기철이 형은 손을 내밀었다. 우리는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나나 형이나 평소에 안 하던 행동이었다. 어쩌면 기철이 형은 미랑 같은 중간자들까지도 못 믿을 수 있다. 중간자들을 인간 원주민들에 대한 위협 세력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실제로 묘화한테 죽기 직전까지 처맞기도 했으니까.


아마 그래서 손을 내밀었을 거다. ‘거기까지는’ 같은 생각의 동지라는 걸 확인하는 악수.

조금 더 나간다면··· 언젠가 다른 입장 때문에 갈라설 수도 있다는 의미였을까? 아니면 입장은 다르지만 진심을 믿고 존중한다는 의미였을까?


하여간 얼른 상황을 타개할 길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딪쳐 봐야지. 그게 홈즈도 코난도 아닌 내 스타일이니까. 당장은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지만 가다 보면 뭐라도 보이겠지···



곧바로 집으로 향하지 않고 가는 길에 염소준 선생 집에 들렀다. 그리고 노보형과 박대규에 대해서 설명해 줬다.

마음 약한 염소 선생님은 겁을 먹은 티가 팍 났다.


“노보형이 중간자라는 건 혹시 눈치 채셨었나요?”

염선생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혹시 중간자가 아닐까 상상한 적은 있지만 그렇게 판단할 만한 걸 보진 못했거든요.”


염선생은 늑대인간 얘기를 듣고 더 위축되는 것 같았다. 공연히 얘기를 해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놈도 정체를 들켰으니까 함부로 행동하지 않을 겁니다. 특히 염선생님께 접근하면 자기도 위험해질 수 있는 걸 알 거예요.”

“늑대라면 겁이 나죠. 염소 입장에서는.”

그럴 거다. 양치기 개 같은 걸 키워도 보호받지 못할 테니까.

“염소는 힘이 세지 않으니까요···”


고딩 때 문학 시간에 읽어야 했던 소설 ‘염소는 힘이 세다’가 기억 났다. 음··· 역시 작가다운 반응이군.



집에 돌아와서 미랑과 얘기하면서 염소준 작가도 소재로 삼았다.

책을 많이 찍어내야 완전한 인간이 된다면 염작가는 과연 무슨 책을 써야 할까? 마술 천자문, 왜 시리즈 같은 어린이 책이 괜찮을 거라고 미랑이 말했다.


“독서는 입시 공부의 기초 작업이란 생각 때문에 열 살 전까지만 부모들이 열심히 책을 읽히니까요.”


하지만 어린이책이 아무리 잘 팔린대도 자식도 안 키워본 중늙은이 남자 작가가 그런 걸 잘 쓸 것 같지 않았다. 그럼 뭐가 있지? 베스트셀러란 건 도대체 어떤 거지?


“전화번호부.”

미랑이 농담삼아 대답했다. 이제 당신도 아재 개그를 넘어 조상님 개그로 발전해가는구려···


기억이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 우리집에도 누렇고 무지 두꺼운 책이 있었다. 그것도 몇 해 전에 나온 전화번호부. 종이가 필요할 때 찢어서 활용하던 물건. 집집마다 매년 한 권씩 들여놓던 책이니 베스트셀러가 맞긴 맞을 거다.


“작가가 아니라 인쇄소를 해야 되지 않을까요? 완전한 인간이 되려면 흑염소 고아 먹으려던 작가보다 책을 두 배 찍어내거라. 그게 이뤄야 할 숙업이니까. 꼭 글을 써야된다는 건 아니잖아?”

오오! 미랑은 내 생각을 매우 기특해 했다.


“지주성 씨 훌륭해. 아주 칭찬해. 마음씨 가상해!”

말투는 어색하지만 미랑의 올라간 입꼬리와 밝은 안광이 진심임을 알려줬다.

“종대 때도 그러더니, 요새 지형사님 중간자들 인간사회 적응에 관심이 많아지셨어요.”


아내의 존중을 받는 남편이 되자 으쓱 어깨가 올라갔다.

사실 좀 유아틱하게도 나는 누가 띄워주면 즉시 들뜨는 캐릭터다. 그래서, 붕 떠올라서 결심한 거라고 해도 반박은 않겠다. 어쨌거나 결심한 건 사실이다.


“난 싸울 거예요.”

나를 보는 미랑의 눈이 조금 더 동그래졌다.

“중간자들을 괴롭히고 인간사회까지 혼란스럽게 만드는 놈들. 때려잡을 겁니다.”


늑대파를 때려잡는 건 무조건 해야 할 일이다. 깡패이고 살인자일 뿐만 아니라 중간자들의 적이다.

그리고 놈들 사이에도 중간자가 있다. 자신의 야수성을 순화시키지 않고 악에 이용하는 놈들. 동정할 필요 없는 놈들이다. 나는 선량한 중간자를 돕는 쪽을 선택했다. 마누라가 날 때부터 인간이든 여우든 그게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했다.


중간자들이 인간 사회에 섞여 들어오는 것도 문제될 게 아니다. 적응하려는 이들에게 편견을 가지면 안 된다. 하지만 늑대파 같은 놈들은 솎아내야 된다. 그게 인간 사회 입장에서 봐도 좋은 일이다.

이렇게 나는 아내에게 소신을 밝혔다.


“인생이 어떻게 될지는 몰라요. 하지만 이 단계에서 내 목표는 정했어요. 중간자들을 이용하고 괴롭히는 악당들을 박살낸다!”


말을 마친 나는 어깨에 힘을 주고 턱을 살짝 올린 다음 그윽하게 미랑을 바라봤다.

‘어때? 대단하지? 용감한 결심이지?’라고 비언어적으로 물어본 거였다.


“겁나지 않아요? 위험할 텐데···”


나라고 겁이 안 나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안 겁나니까, 나중의 위기 때 느낄 불안을 미리 땡겨서 말할 필욘 없었다.

“그냥 가는 거예요. 그래야 덜 불안해요. 고민하면 끝이 없으니까!”


미랑은 용감한 남편의 인생 목표에 감동했다.

TV 애니메이션에 코를 박고 있는 옥,희한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려주고는 신속하게 술상을 봐왔다. 순대를 볶아 왔고, 소고기를 구워왔다. 본인이 좋아하는 간, 허파, 생고기는 없었다. 기특한 오리지널 인간 남편을 위한 익힌 고기 안주와 함께 소주, 맥주, 막걸리 3종 세트를 내 왔다.


그리고 감동에 알코올이 더해져 알딸딸해진 여우 마누라는 중간자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늑대파의 정체 플러스 담당형사 지주성의 용감한 결의!

그 결과 중간자 단톡방이 심하게 활성화되어 밤새 폰이 까똑까똑 울려댔지만··· 옥,희는 기차길옆 오막살이의 아기처럼 잠만 잘 잤고··· 그들의 부모는 또 나름 바쁜 창조 전단계 활동에 힘을 쏟았고···



그 밤에 중간자 단톡방의 직접적 영향을 받은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지주성 경사와 같이 고박사 살인범과 늑대파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뛰어든 백기철 경위. 애견 땡구를 끌고 한밤중 동네 산책을 나간 노총각은 근린공원 담벼락 옆에서 예상 못한 일과 마주쳤다.


목줄에 묶여 끌려가던 땡구가 갑자기 보행을 거부하고 정지했다.

이 어찌 된 항명인가? 평소 산책을 즐기던 놈의 이상행동에 기분이 상한 백형사는 불독을 향해 협박을 시작했는데··· 왈왈왈! 격렬하게 짖는 땡구의 보이스는 주인에 대한 반발이 아닌 것 같았다.


왜 이러지?

개주인은 당황하고 근처 집들 여기저기서 창문 여닫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깥이 시끄러워서 닫히는 창문들과, 언놈이 시끄럽게 구나 보려고 열리는 창문들.

땡구는 평소 잘 짖지 않던 개임에도 심각한 소음공해를 일으킬 정도로 최선을 다해 샤우팅을 하고 있었다.


“땡구! 셧업! 얌마 너 목 터져!”


땡구는 짖으면서 답답하다는 듯 기철이 형을 올려다봤다. 그래도 기철이형이 눈치를 못 채자 바짓가랭이를 물었다.

땡구가 힘껏 물고 잡아당긴 바람에 기철이 형의 몸이 조금 돌아갔다. 그리고 몸과 함께 시선의 각도도 바뀌었다.


허걱···

기철이 형은 기도가 막힐 것처럼 급하게 숨을 들이쉬었다.

땡구가 보게 한 것 때문이었다. 기철이 형 눈에 들어온 건 근린공원의 담장이었다. 어둠 속에서, 담장 위에, 여인이 앉아 있었다.


황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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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두 가지 대답 24.04.10 1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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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축소된 말의 귀 +2 24.04.05 13 3 12쪽
61 밴이 찾아왔다. +1 24.04.03 15 3 12쪽
60 아내가 있는 방 +3 24.04.01 14 3 12쪽
59 아이 없는 숨바꼭질 +2 24.03.29 18 3 12쪽
58 베타 테스트 +4 24.03.27 16 3 12쪽
57 두 개의 그린Green +2 24.03.26 13 4 13쪽
56 아빠의 눈물 +2 24.03.22 19 4 14쪽
55 멀더와 스컬리 +2 24.03.20 13 3 13쪽
54 사슴 소녀의 그림자 24.03.20 12 3 12쪽
53 가녀린 목소리 +2 24.03.19 12 3 13쪽
52 몬순 monsoon 바뀌는 풍향 +2 24.03.15 17 3 13쪽
51 밝은 밤, 어두운 밤 24.03.14 15 3 12쪽
50 사랑과 재채기, 그리고 +2 24.03.12 20 3 15쪽
49 텅 빈 집, 꽉 찬 집 24.03.12 14 3 14쪽
48 무지개 뜬 날 +2 24.03.07 13 3 13쪽
47 내 꿈 꾸지? 24.03.07 14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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