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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변신한 짐승이 당신 옆사람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12.26 13:10
최근연재일 :
2024.06.13 11:35
연재수 :
100 회
조회수 :
2,684
추천수 :
307
글자수 :
597,391

작성
24.03.20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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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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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멀더와 스컬리

DUMMY

잔가지가 많은 나무들이 담장을 이룬 사잇길, 두 사람이 엇갈리면 어깨가 닿을 법한 좁은 통로로 미랑이 들어섰다.

“오래 기다렸어요?”


벤치에서 엉거주춤 일어난 사슴소녀는 한숨처럼 가벼운 탄식을 뱉었다.

‘아···’ 그녀는 한눈에 미랑을 알아봤지만 어떻게 대할지 태도를 정하지 못한 것 같았다. 두려움인지 놀라움인지, 찡그린 것인지 미소인지 알기 어려운 표정. 애매모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 아니오.”


긴장이 큰 탓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미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가여운 중간자 후배의 긴장을 풀어주고 편안한 대화를 시작해 보려는 의도였다. 그렇게 천천히 사슴소녀에게 다가갈 때··· 미랑은 들었다. 목소리!


‘미랑!’

자기를 부르는 음성.

‘미랑!’


주성의 목소리였다.

외부에서 귀로 들어온 게 아니었다. 연못에 돌을 던지면 동심원을 그리며 파문이 퍼져나가듯이, 미랑의 몸 가운데에서 선명한 신호가 진동했다.

물리적으로 딴 공간에 있지만 여전히 주성과 연결된 어떤 끈이 당겨진 것을 미랑은 느꼈다. 지금 두 사람이 함께 느껴야 할 것이 있음을 알리는 조명탄이 번쩍인 거다.

그런데 그들 사이에서 오고 간 예감의 원인이 뭔지는 몰랐다.


‘왜지?’

감춰진 것을 확인하고 싶어진 미랑. 뒤를 돌아봤다.


“앗!”

쌩! 날아오는 물체를 피해 미랑은 몸을 젖혔다. 단검이었다.

그리고 칼을 던진 악한의 얼굴이 보였다.


노보형.

사람들이 오가는 조깅 코스에서 나무숲 사이 통로로 빠르게 진입하는 놈은 아직 인간의 모습이었다. 번뜩이는 오렌지색 눈동자만이 늑대인간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단검 투척에 실패한 놈은 목 뒤, 헐렁한 점퍼 속으로 손을 넣어 두 자루의 칼을 뽑았다. 날의 길이가 50센티는 넘어 보이는 날카로운 칼들!

단검을 피하느라 휘청했던 미랑이 중심을 되찾는 것과 동시에 휙휙 원을 그리며 칼날들이 육박해 왔다.


‘놈은 변신할 생각이 없다! 내가 변신할 틈도 주지 않으려 한다!’

빠른 뒷걸음으로 물러서는 미랑. 노보형은 홧김에 식칼을 휘두르는 주폭 아저씨가 아니었다.

스피드와 파워를 갖추고 막기 어려운 곳을 향해 쉴 틈없이 쌍칼을 휘두르며 전진하고 있었다.


‘목표가 분명하다. 날 죽이려는 거다!’

도망칠 출구 쪽은 노보형이 막고 있었다. 계속 뒤로 밀리다가는 나무가 만든 벽에 등을 지게 된다.

미랑은 옆으로 몸을 날렸다. 변신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현역 체조선수 못지 않은 민첩성을 가진 그녀였다. 그렇지만,


촥!

칼잡이 노보형도 빨랐다. 옆으로 기울어지는 미랑을 쫓아온 칼날은 미랑의 어깨 아래 왼팔을 찢었다.

바람막이 점퍼와 함께 살갗이 갈라지면서 피가 솟았다. 아픔을 느낄 틈 같은 건 없었다. 적과의 거리를 벌리려고 몸을 굴린 미랑. 튕기듯 몸을 일으켰지만 노보형은 또 앞에 와 있었다.


‘피할 수만은 없어!’

미랑은 놈의 명치를 향해 발을 뻗었다. 태권도 선수의 앞차기 못지않게 빨랐다!

그러나, 노보형이 밀어내듯 휘두른 칼날이 미랑의 허벅지를 그었다.


“악!”

칼에 찢긴 다리로 착지하자 몸이 흔들렸다.

쫓아오는 칼날을 피하려고 물러선 미랑, 뒤로 넘어지듯이 어깨와 머리가 나무 줄기에 부딪쳤다.

이제 도망칠 구석이 없었다. 퇴로는 노보형이 막고 있었다. 사슴 소녀는 언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무들이 담장처럼 늘어선 곳이라 지나는 행인도 보이지 않았다.


노보형은 슥슥 칼을 갈 듯이 두 자루의 칼을 교차시키면서 다가왔다.

오렌지색 늑대의 눈동자는 미랑의 목을 노려보고 있었다. 번쩍 빛을 반사하는 칼날 때문에 미랑은 눈이 부셨다.

‘소리를 지르면? 들을 사람이 있을까?’ 아닐 것 같았다.


“마지막이야.”

긴 이빨을 드러내며 노보형이 말했다. 그리고 미랑의 목을 향해 칼을 들어 보였다.

“여우 따위가 덤빌 꿈을 꾸면 안 되지. 조용히 찌그러져서 인간 흉내나 내던가.”


'저 칼들이 목으로 들어오면 끝이다.'

갑자기 미랑 뇌리에 옥,희 얼굴이 떠올랐다. 갈증처럼 가슴과 목이 타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고 노보형이 칼 든 손을 살짝 젖힌 순간!


움찔, 놈의 몸이 떨렸다. 미랑은 오렌지 색 동공이 확대되는 것을 봤다.

한 번 더 꿈틀, 노보형이 흔들렸다. 놈의 뒤에 누군가가 있었다! 기회다!

미랑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피 흐르는 다리로 돌려차기를 날렸다. 턱을 강타당한 노보형이 눈자위가 허옇게뒤집혔다.


쿵! 정신을 잃은 노보형이 쓰러진 뒤로 한 쌍의 남녀가 보였다.

점잖은 재킷을 입고 무전기 이어폰을 낀, 40대쯤으로 보이는 남녀. 그들의 손에 든 테이저 건의 전선이 노보형의 등에 닿아 있었다.


“경찰···이세요?”

미랑의 물음에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이어폰 무전기로 급하게 지시를 내렸다.

“지금 빨리 진입해. 응급 처치 준비하고.”


그제서야 조깅을 하고 라이딩을 하던 시민들이 나무 숲 안을 들여다 봤다.

피를 흘리는 여자, 정신을 잃고 쓰러진 남자, 테이저 건을 든 남녀.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구경거리였다.


“경찰입니다. 물러서세요.”

구경꾼들 뒤로 검정색 밴이 달려와 급정거했다.

천장이 높은 독일산 밴은 외국 첩보영화의 소품처럼 보였다. 안에서 기관단총을 든 스와트 SWAT 팀이라도 내릴 것처럼.


“차 안에 응급 의료 키트가 있어요. 앰뷸런스 기다리는 것보다 나을 겁니다.”


여자가 미랑을 부축했다. 남자는 노보형의 등 뒤로 두 팔을 돌려 수갑을 채웠다.

밴에서 총을 들지 않은 건장한 청년 둘이 내려서 노보형을 차에 실었다. 테이저 건을 쐈던 남자는 싸이클을 타던 시민이 휴대폰을 꺼내자 촬영을 못 하게 막았다.


미랑과 노보형, 그리고 차에서 내렸던 이들이 다시 탑승하자 밴은 바로 출발했다.

운전석과 차단된 뒷좌석에서 미랑은 응급 처치를 받았다. 미랑이 지혈을 하고 붕대를 감을 때 노보형은 포승으로 결박당한 다음 입에 재갈이 물리고 보지 못하도록 머리에 검은 자루까지 씌워졌다.


“꿈틀거리는 기미라도 보이면 곧바로 테이저 건을 먹여.”

노보형을 결박한 청년은 지시를 받자마자 테이저건을 자루를 뒤집어 쓴 노보형 머리에 갖다 댔다.


“걱정 마세요. 이제 늑대인간 놈들의 위협은 없습니다.”

테이저 건을 쐈던 여자가 말했다.

‘백형사와 김반장 말고도 중간자를 아는 경찰이 더 있었나?’ 미랑은 의외의 상황에 놀랐다.


“이 차는 일단 병원 먼저 갈 겁니다. 가셔서 안심하고 치료받으시면 됩니다. 우리가 아는 병원이니까 의사가 묻고 따지고 하는 일도 없을 겁니다.”


범죄 피해자를 치료하는 의사는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한다. 하지만 늑대인간에게 피해를 당한 여우의 경우는 경찰에 신고하는 게 곤란하다.

중간자의 형편을 이들은 잘 알고 있었다.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미랑이 궁금해할 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정확히 말하면 사슴소녀를 만나러 달려올 때부터 여러 번 진동했었는데 이제야 미랑이 느낀 거였다.


“저··· 전화 좀 받을게요.”

“그러세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지형사님도 걱정이 많으셨을 거예요.”


‘지형사?’ 이 사람들 대체 어디까지 아는 거지?

하지만 계속 궁금해할 수는 없었다. 초조한 주성만큼이나 다급하게 몸을 떠는 휴대폰을 미랑은 꺼내 들었다.


* * * * * * * * * * * * * * * * * * *


사방이 빽빽한 나무들로 둘러싸인 숲속의 공터.

수갑을 뒤로 돌려차고 입에 재갈을 문 노보형이 꿈틀꿈틀 몸을 뒤틀었다. 그러자 누군가의 총을 쥔 손이 노보형을 겨누었다.


경악하는 노보형의 눈이 오렌지색으로 변했다. 그리고 주둥이가 튀어나오면 늑대인간으로 변신하려는 순간.

탕, 탕! 두 발의 총탄이 노보형의 이마를 뚫었다. 즉사. 그리고 인간의 옷 속에서 인간 형상을 한 육체가 늑대의 모습으로 변하고 있었다.


화면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청년들이 노보형이 입었던 옷을 벗겨버리자 회색 늑대의 사체가 드러났다. 청년들은 늑대 사체를 나무 박스에 담았다.

남자가 태블릿의 영상을 정지시켰다.


“소각한 장면까지 볼 필요는 없겠죠? 늑대인간 노보형 놈을 되살렸을 거라는 의심은 안 하실 테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친절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굳이 이놈을 기소해서 진실을 밝힌 다음에 동물원이든 교도소든 집어 넣기를 원하시는 건 아니죠?”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여자가 미소를 지었다.



안세호 전 여친이 일하는 카페에서 나온 다음 차를 몰고 집에 거의 다 왔을 때에야 미랑이 전화를 받았다.

한강 시민공원 근처에서 차를 타고 이동중이라고 했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전화도 안 받았냐는 내 초조한 질문에 미랑은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왜 전화 했던 거냐고 물었다.

내가 느낀 위협과 예감이지만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냥··· 걱정이 돼서 걸었지. 우리가 걱정할 일이 좀 많잖아요.”


미랑은 이제는 걱정 안 해도 된다고 대꾸했다.

“노보형 잡았어. 지금 경찰분들이랑 같은 차 타고 가는 중이에요.”


가슴이 한 번 더 철렁 내려앉았다.

그 불안한 예감이 진짜였구나. 그렇지만 남다른 능력 또는 미랑과의 남다른 연결 때문에 기뻐할 수는 없었다. 강력한 초능력자가 되면 뭐 하나? 식구들이 안전한 게 훨 낫지.


노보형이란 놈을 잡았다는 건 엄청난 위험을 무릅썼다는 얘기였다. 어린애 손목 비틀 듯이 쉽게 잡을 수 있는 놈이 아니니까. 폭력배에 살인자, 결정적으로 늑대인간인 놈이었다.


“괜찮은 거예요? 다친 데는 없고?”

미랑의 대답은 곧바로 나오지 않았다. 아이쿠, 남편이 명색이 형산데··· 집안을 위협하는 범죄자 놈을 몸 상해 가면서 아내가 해결했다니··· 겁나 미안해지고 있었다.


“왜 말이 없어? 어떻게 된 거냐니까?”

미랑은 큰 부상이 아니라면서 옆에 있는 사람한테 가고 있는 병원을 물었다. 그 답을 전해들은 나는 죄송하지만 과속과 신호 위반을 저지르며 이리로 달려왔던 거다.



미랑은 1인실에 누워 있었다.

정부기관에서 피해자에게 제공하는 서비스 차원을 넘어선 배려였다. 칼을 맞은 상처를 가볍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다행히 처치는 잘 이루어졌고, 후유증도 적을 거라는 게 의사의 판단이었다.

조금 안도한 다음 나는 병실을 나와서 미랑을 이리 데려온 남녀를 만났다.


형사처럼 보이지 않는데 형사라고 자처하는 남녀. 차분한 재킷 차림에 조용조용한 말투. 누구하고 다투지 못할 것 같은 인상.

두 사람 모두 경찰 공무원이라기보다는 책더미에 파묻혀 사는 학자 같았다. 그런데··· 어디서 본 것 같은 인상인데? 누구더라? 어디서 만났었더라?


“삼각산 경찰서 강력팀 지주성 경사시죠?”

어? 어떻게 알았지? 끄덕끄덕.

“저희는 시경 미제사건 처리반에서 초과학적 사건을 전담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을 소개하는 남자는 한손에 장부 같은 걸 들고 있었다. 옛날 금전출납부를 닮은 검은 마분지 겉장의 장부로 보였었는데··· 왜 저런 걸 들었지?

다시 보니 장부를 닮은 커버를 씌운 태블릿이었다. 그리고 그 검은 색 태블릿에는 하얀 십자가 또는 더하기(+) 표시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것도 각도를 돌려서 다시 보니까 가위표 또는 알파벳 엑스(X) 표시였다.


장부를 닮은 태블릿의 엑스자를 알아본 순간, 나는 이 남녀에 대한 기시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언제였던가··· 그리 오래지 않은, 아직도 생생한 과거에 외계인과 판타지와 미스터리의 세계로 시청자들을 잡아 끌었던 미드. ‘미드’라는 말을 잘 안 쓰던 시절에 대단한 관심을 받았던 드라마. 이후로 정치, 사회적 사건에 많은 이가 갖다 붙였던 유명한 제목.


‘엑스 파일’

그 판타지의 주인공 멀더와 스컬리를 닮은 남녀가 내 앞에서 웃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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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한 짐승이 당신 옆사람이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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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사냥 중계방송 24.04.24 1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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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왕따는 선량한가? 24.04.18 10 1 12쪽
69 빈 책상들 24.04.18 12 2 12쪽
68 슴과 소를 지우면 +2 24.04.17 16 2 14쪽
67 다가오는 용의자 24.04.16 15 2 12쪽
66 특이한 부부싸움 24.04.12 13 2 13쪽
65 당신이 왜 그자와 +2 24.04.11 13 2 13쪽
64 두 가지 대답 24.04.10 12 2 12쪽
63 개를 데리고 걷는 여자 24.04.05 10 2 13쪽
62 축소된 말의 귀 +2 24.04.05 13 3 12쪽
61 밴이 찾아왔다. +1 24.04.03 15 3 12쪽
60 아내가 있는 방 +3 24.04.01 15 3 12쪽
59 아이 없는 숨바꼭질 +2 24.03.29 18 3 12쪽
58 베타 테스트 +4 24.03.27 16 3 12쪽
57 두 개의 그린Green +2 24.03.26 13 4 13쪽
56 아빠의 눈물 +2 24.03.22 19 4 14쪽
» 멀더와 스컬리 +2 24.03.20 14 3 13쪽
54 사슴 소녀의 그림자 24.03.20 12 3 12쪽
53 가녀린 목소리 +2 24.03.19 12 3 13쪽
52 몬순 monsoon 바뀌는 풍향 +2 24.03.15 17 3 13쪽
51 밝은 밤, 어두운 밤 24.03.14 15 3 12쪽
50 사랑과 재채기, 그리고 +2 24.03.12 20 3 15쪽
49 텅 빈 집, 꽉 찬 집 24.03.12 14 3 14쪽
48 무지개 뜬 날 +2 24.03.07 13 3 13쪽
47 내 꿈 꾸지? 24.03.07 14 3 12쪽
46 다시 생각해 +4 24.03.05 21 3 13쪽
45 후폭풍 24.03.04 13 3 12쪽
44 작은 뿔의 종결 24.02.29 16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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