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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변신한 짐승이 당신 옆사람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12.26 13:10
최근연재일 :
2024.06.13 11:35
연재수 :
100 회
조회수 :
2,705
추천수 :
307
글자수 :
597,391

작성
24.04.0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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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밴이 찾아왔다.

DUMMY

“아, 예··· 올해 결혼했습니다.”

내 대답에서 좀 떨떠름한 티가 났을 거다. 그래도 황대호는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속마음이야 알 수 없지만 진심으로 반가워하는 모양새였다.


“구미랑 씨 같은 분이 저희 입장에서는 정말 고맙거든요. 육아에 직장생활도 하시면서 환경 운동까지 도와주시니까요. 정식 가입은 안 하셨지만 정회원보다 훨씬 도움이 되는 분이세요.”

“그 사람이 부지런하죠. 도와줄 일 있으면 외면 잘 못 하고요.”


황대호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미랑과 부부라는 걸 알기 전보다 동작이 훨씬 커져 있었다. 일부러 오바하는 거라고 보기에는 쾌활한 모습이 꽤 자연스러웠다.


“지형사님도 이해심이 많으시네요. 아내분이 활동하는 단체에 회원 가입까지 해 주시는 남편이 흔치 않거든요.”

“제가 산골 출신이라서요. 겉보기랑 다르게···”


나도 황대호를 향해 씨익 미소를 보였다. 나 자신의 순발력 있는 대응에 살짝 뿌듯해 하면서··· 이처럼 위트 있는 대꾸라면 절대 가입 동기를 의심받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저도 산골에서 자랐어요. 구미랑 씨 보면서 저랑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남편분도 공통점이 있으시네요.”

미랑하고 비슷하다고? 중간자라는 게 똑같다고 슬쩍 암시를 주는 건가?


“어떤 게··· 비슷하다고 생각하셨어요?”

“야생 동물 보호에 관심이 큰 것도 그렇고···”

동물 보호라고? 진짜 미랑이 야생 동물 출신이란 걸 알고 있나?


“배우자가 이렇게 이해심이 많으신 것도 비슷하고요.”

황대호는 기특하다는 듯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집안의 이해가 없으면 환경 운동 같은 걸 하기가 어렵거든요. 이해하고 응원해 주신 것만 해도 도움이 되는데, 가입까지 해주시니까 진짜 고맙죠. 기도원 늑대 사건도 해결한 형사님이신데.”


나를 보면서 사람 좋게 웃고 있는 황대호가 어쩌면 기도원 사건의 진실을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를 떠보고 있는 걸 수도 있어.’

그렇다면 털털한 웃음으로 사람을 반기는 이 아저씨는 무서운 사람일 거다. 쉬운 수사란 건 흔치 않지만··· 그린 플리즈 잠입 수사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미랑은 연호 씨와 같이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동산에 갔다 왔다. 하루 종일 놀고도 지치지 않는 옥,희를 씻기고 결국 옥,희 사이에서 쓰러져 잠이 들었다.

나는 그린 플리즈에 관한 걸 묻고 싶었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옥,희의 엄청난 활동량을 버텨낼 정도로 미랑의 체력이 회복되고 표정도 많이 밝아진 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일요일에는 강력 2팀 지원을 나가야 했다.

빨간 날도 일손이 부족하면 달려나가는 게 형사니까 그러려니 하고 잠복 근무를 했다. 그나마 낮 시간에 도와주는 거라서 저녁 먹기 전에 귀가할 수 있었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같이 할 때 미랑이 그린 플리즈 가입 소감을 물었다.

“어땠어요? 사회단체 회원이 된 느낌이?”

“낫Not 배드Bad.”


나쁘지 않다는 정도의 답이 적당할 것 같았다. 즐거운 회상이나 감탄의 표정을 지어내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전에 있던 건물이 더 좋았는데 새로 이전한 데는 좀 낡고 좁아졌어요. 임대료를 맞춰야 되니까.”

“괜찮던데. 깔끔하게 꾸며놓고, 직원들도 친절하고···”

“적극적인 봉사자들이 많으니까 분위기가 좋지.”


미랑은 어느 정도 적극적인 봉사자일까? 그린 플리즈의 겉모습뿐 아니라 숨은 정체까지 알고 있는 걸까?

단도직입적으로 물을 수는 없었다. 나는 목적을 숨기고 잠입 수사를 시작한 거였고, 미랑은 심신에 충격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슬쩍 떠보기는 했다.


“녹지 팀장인가? 황대호 씨가 안내해 줬는데··· 미랑 씨 잘 아는 것 같던데요?”

“황 팀장님? 좋은 분이에요.”

좋은 분이라? 황대호라는 중간자와 미랑이 어디까지 공감하고 있는 건지 걱정이 됐다.


“그 사람 혹시 중간자 아니에요?”

모른 척하고 던진 내 질문에 미랑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 보였어요? 난 그런 느낌 안 받았는데···”


잘 모르겠다는 미랑의 표정은 꾸며낸 것 같지 않았다. 에효··· 뭔 팔자가 이리 기구한가? 마누라를 의심해야 된다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 주의 공식 업무가 시작되는 월요일.

출근하자마자 수사과장의 호출을 받았다. 내가 뭘 잘못한 게 있나 살짝 쫄았는데 과장님은 예상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


“지주성. 우리끼리는 잘 몰랐는데 의외로 유명한가 봐?”

“예? 무슨 말씀이세요?”

“시경 차출이야. 공문도 오고 서장님한테 전화도 왔다네.”

시경? 그럼 멀더와 스컬리가 드디어 날 스카웃한 건가?


“시경 어느 부서에서 저를 부른 거죠?”

“미제 사건 추적팀이라던데. 그쪽에 아는 사람 있어?”

있지만 없는 척해야 된다. 순간적인 판단으로 고개를 저었다.


“밀렵꾼 잡고 서울 발령받더니 일년도 안 돼서 시경에 픽업까지 되고. 대단해. 능력자야.”

“하하하. 눈치채셨군요! 제가 좀 그렇긴 하죠!”

나의 호탕한 웃음에 과장님은 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헐··· 웬 자뻑이래냐?”

“과장님. 상급기관 요청이라고 무조건 수락하신 건 아니겠죠?”


이왕 재수없게 보인 거, 자뻑 모드를 강화하기로 했다.

그래야 시경의 엑스 장부팀 멀더와 스컬리를 모르는 척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재빠른 판단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뭔 소리야?”

“시경에 아무리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더라도 우리 서의 핵심 인재를 한 순간도 내줄 수는 없습니다. 이런 게 진정 리더의 폼 아니겠습니까?”

“식전 댓바람부터 장난하나? 이 새끼가!”


과장님은 길고 단단하고 모서리가 뾰족한 명패를 쳐들었다.

찌릿! 내 미간에 피습 예감 신호가 느껴졌다. ‘던지거나 찍을 수 있어!’ 수많은 흉악범들과 흉악하게 싸워 이겼던 고참 형사의 폭력성이 분출되기 직전이었다.


“죄송합니다! 겸손하기까지 하면 너무 멋있어 보일까 봐 거만한 척했습니다!”

나는 살짝 긴장했지만 나름의 유머로 적절하게 꼬리를 내렸다. 과장님은 신속하게 명패를 원위치시켰다.


“저번 기도원 사건 때문에 유명해졌나 보다. 너랑 기철이랑 같이 보내래. 한 달쯤 데리고 일한다고.”


기철이 형도 같이 불렀다고?

역시 엑스 장부 팀은 뛰어난 정보력에 일처리도 꼼꼼했다. 그들은 기철이 형이 중간자들의 정체를 안다는 걸 파악하고 있고, 고양이 출신 묘화랑 사귀는 것까지 알 수도 있다.


“그런데 무슨 사건으로 차출되는 거죠?”

“실종 사건이랜다. 자연 공간에서 사라진 사람들 관련이래.”



“나가 봐. 눈에 띄는 차가 있을 거야.”

우리 서 주차장에 천장이 높은 독일산 검은 밴이 주차돼 있었다.

노보형에게 습격당한 미랑을 태우고 갔던 차였다. 아슬아슬하게 지각을 면한 탓에 주차할 때는 내 눈에 안 보였었다. 수사과장님 면담을 마치고 나는 튀어 보이는 까만 차 안으로 들어갔다.


밴 안에는 기철이 형이 먼저 와 있었다.

멀더, 스컬리와 이야기를 나눈 기철이 형은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수사 경험이 풍부한 형이지만 이런 특별한 임무에 차출될 수는 없었을 테니까.


“어서 와요. 지형사.”

“간략하게나마 백형사한테 브리핑은 했습니다.”

“애니맨 센서도 지급했고요.”

“황묘화 씨 만나면 자연스럽게 테스트가 될 겁니다.”


멀더와 스컬리는 역시 번갈아 가면서, 기철이 형과의 소통 상태를 요약 전달해 줬다. 나름 효율적인 방식 같았다.


“그러면 제가 그린 플리즈 다녀온 걸 보고해도 되겠네요?”

“오케이. 백형사도 같이 들으면 됩니다.”


나는 그린 플리즈에 가입하고 건물 안을 돌아다니면서 중간자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나돌래 프로젝트 연구실을 발견한 것까지 소상하게 밝혔다.

멀더와 스컬리는 내 무용담에 감탄하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당연하지. 단기간에 이리도 혁혁한 업적을 내는 형사가 어디 흔하겠는가!


“대단해요!”

“우리는 중간자들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걸 연구한다는 것까지만 알았어요.”

“잠입 하루만에 연구실에 들어가고, 돌아가는 기본 원리까지 파악하다니!”

“우리가 정말 사람을 잘 골랐네요.”


험험··· 가는 곳마다 순식간에 성과를 내 버리니···

아무리 겸손하게 표정 관리를 하려 애써도 쉽지 않았다. 나 스스로도 신속한 결과물에 내심 감탄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실험실 뒤 숨겨진 연구실에서 찍어온 동영상을 세 사람에게 보여줬다.

미랑이 찍힌 모니터 바탕화면 사진까지 감춤 없이 다 공개했다. 멀더와 스컬리의 칭찬에 업Up돼서 보여준 건 아니었다. 잠시 고민하기는 했었지만, 숨기지 않기로 미리 결심한 일이었다.


이왕 수사에 뛰어들기로 마음 먹었으면 알아낸 정보는 다 공개하고 서로 협조하는 게 맞다고 본 거였다. 진실이 모두 밝혀지면 미랑에 대한 의구심 같은 건 없을 거라는 믿음도 있기 때문이었다.


“구미랑 씨가 야생동물로 돌아가는 프로젝트를 알고 있는 건 확실하네요.”

스컬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씁쓸하게.

“어디까지 알고 계시고 어느 선까지 연루되셨는지는 차차 밝혀지겠지요.”

멀더의 말에도 역시 끄덕끄덕.


“순수하게 중간자들을 도우려는 의도일 겁니다.”

“저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혹시 불순한 놈들한테 속아서 결과적으로 악행에 기여할 수도 있습니다만···”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지형사의 공로가 참작이 될 테니까요.”


기분이 좋아야 하는 건지 나빠야 하는 건지 헷갈렸다.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해야 되는 건지··· 아니면 미랑이 어리석은 일을 할 리가 없으니 걱정 말라고 큰 소리를 쳐야 되는 건지···


“백형사도 마찬가지인데요.”

스컬리가 조심스럽게 우리 둘을 훑어본 다음에 말을 이었다.


“현명한 형사들이니 익히 알겠지만, 이 팀에서의 임무는 함구해 주세요. 배우자나 애인에게도 절대 밝히면 안 됩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비밀 업무니까.”

기철이 형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선량한 중간자들이라면 결국 우리가 하는 일을 이해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멀더와 스컬리는 기철이 형의 믿음에 만족스러워 했다.

“당분간만 보안에 신경 쓰면 될 거예요. 오래 감추고 있을 필요 없을 겁니다.”

“조금만 지나면 동반자 분들께 우리가 한 일들을 공개해도 될 겁니다.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이니까요. 형사들뿐 아니라 동반자들도 뿌듯해 할 업적일 거예요.”


기철이 형은 멀더와 스컬리의 장담 또한 믿는 것 같았다. 나도 세 사람을 따라서 한껏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들만큼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작가의말

개인적인 일에 게으름이 겹쳐서 업로드가 많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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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당신이 왜 그자와 +2 24.04.11 13 2 13쪽
64 두 가지 대답 24.04.10 12 2 12쪽
63 개를 데리고 걷는 여자 24.04.05 10 2 13쪽
62 축소된 말의 귀 +2 24.04.05 13 3 12쪽
» 밴이 찾아왔다. +1 24.04.03 16 3 12쪽
60 아내가 있는 방 +3 24.04.01 16 3 12쪽
59 아이 없는 숨바꼭질 +2 24.03.29 19 3 12쪽
58 베타 테스트 +4 24.03.27 16 3 12쪽
57 두 개의 그린Green +2 24.03.26 13 4 13쪽
56 아빠의 눈물 +2 24.03.22 20 4 14쪽
55 멀더와 스컬리 +2 24.03.20 14 3 13쪽
54 사슴 소녀의 그림자 24.03.20 12 3 12쪽
53 가녀린 목소리 +2 24.03.19 12 3 13쪽
52 몬순 monsoon 바뀌는 풍향 +2 24.03.15 17 3 13쪽
51 밝은 밤, 어두운 밤 24.03.14 16 3 12쪽
50 사랑과 재채기, 그리고 +2 24.03.12 20 3 15쪽
49 텅 빈 집, 꽉 찬 집 24.03.12 14 3 14쪽
48 무지개 뜬 날 +2 24.03.07 14 3 13쪽
47 내 꿈 꾸지? 24.03.07 14 3 12쪽
46 다시 생각해 +4 24.03.05 22 3 13쪽
45 후폭풍 24.03.04 13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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