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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변신한 짐승이 당신 옆사람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12.26 13:10
최근연재일 :
2024.06.13 11:35
연재수 :
1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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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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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97,391

작성
24.04.05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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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축소된 말의 귀

DUMMY

“두 사람의 첫 임무도 그린 플리즈와 관련이 있습니다.”

내 예상과 다르지 않은 말을 하고서 멀더는 X자가 그려진 태블릿을 내밀었다. 기철이 형과 나는 태블릿 화면을 주시했다.


“이 사람은 지형사가 얘기한 그린 플리즈 녹지 보존팀장 황대호, 그 옆 사람은 실종된 사업가 박진모입니다.”


덩치 큰 남자가 상대적으로 왜소한 남자의 멱살을 잡고 있는 사진이었다. 큰 쪽이 내가 만났던 황대호였다.

그린벨트 개발을 반대한 환경단체 간부가 사업자의 멱살을 잡고 있다··· 그리고 사업자는 실종됐다. 멀더와 스컬리가 전달하려는 사진의 의미는 명확했다.


“박진모 씨가 실종된 지 2주가 됐습니다. 담당 경찰서에서 조사는 하고 있지만 아직 범죄 혐의점이 드러난 게 없어서 적극적인 수사 단계는 아닙니다.”

“충청 지역에서 그린벨트 개발권을 따낸 직후에 실종됐기 때문에 우리는 개발 관련 범죄로 보고 있습니다.”

“실종자의 사망 가능성도 높게 보고 있고요.”


멀더와 스컬리의 간략한 설명 다음에 기철이 형이 질문했다.


“우리··· 엑스 장부팀에서 이 사건을 맡는다는 건 중간자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보는 거군요?”

“일단 그린 플리즈 녹지보존 팀장 황대호가 중간자고요. 방금 지형사가 보고한 것처럼요. 박진모와 황대호는 알고 지내던 사인데 이번 개발 건으로 갈등이 있었어요.”


멀더는 태블릿으로 다른 사진을 보여줬다.

다른 장소에서 다른 옷을 입고 있는 황대호와 박진모. 황대호는 박진모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뭔가 따지고 있었다.


첫 번째 멱살 사진도 그렇고 두 사람이 갈등 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는 사진들이었다.

눈을 부릅뜨고 고함치듯 입을 벌리면서 삿대질을 하는 황대호. 마주 서 있는 박진모는 덩치는 작지만 기가 약해 보이지는 않았다. 입을 굳게 다물고 황대호를 똑바로 보고 선 자세는 당당했다.


‘황대호가 뭔가 협박을 하고 그걸 박진모가 거부하자 없애버린 건가?’

머릿속에 궁금증이 일 때 멀더가 동영상을 보여줬다. 조금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촬영된 블랙박스 영상이었다.


황대호와 박진모가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멀더가 볼륨을 최대치로 올렸지만 정확하게 알아듣기는 힘들었다. 두 사람은 행인들을 의식하면서 목소리를 낮춰서 얘기한 데다 거리의 소음까지 섞인 탓이었다.


'내버려 둬··· 그러다 큰일 나··· 쥐도 새도 모르게··· 그게 니 혼자 생각이야, 아니면··· 오바하지 말고··· 됐어··'·

나는 이런 식으로 띄엄띄엄 알아 들었다.

영상 속에서 황대호는 자리를 뜨려는 박진모의 팔을 잡았고, 박진모는 뿌리치고 가버렸다. 멀어지는 박진모를 바라보면서 불쾌한 표정을 짓는 황대호의 모습에서 영상은 끝났다.


“따로 얘기 안 해도 알겠지만 일단 황대호를 용의선상에 놓고 먼저 조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컬리의 말에 기철이 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황대호를 조사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명료하지가 않았다.


‘정말로 박진모의 실종, 어쩌면 사망에 그린 플리즈가 관련된 걸까? 황대호가 박진모를 해치는 편에 진짜로 가담한 걸까? 황대호가 잘 안다고 떠들었던 구미랑, 내 아내는 이런 일들을 얼마나 아는 걸까?’



멀더와 스컬리는 일단 기철이 형과 나에게 수사 전반의 계획을 맡긴다고 했다.

‘입수된 정보를 제공하고 요구사항이 있으면 지원하겠다. 두 사람의 경험과 지혜를 믿으니까 자율적으로 진행하되, 변동사항은 수시로 보고해라.’ 정도가 멀더와 스컬리의 워딩이었다.


멀더와 스컬리가 담당 경찰서에 협조 요청을 하고, 기철이 형이 그쪽 수사관들에게 정보와 자료를 받아오기로 했다. 나는 먼저 실종자의 가족을 만나 보기로 했다.


“피해자 가족이랑 얘기하는 건 니가 잘 하잖아.”

라고 기철이 형이 살짝 자기 편한 대로 같은 주장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잘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하기 싫어하는 거면서···


박진모의 주소와 가족 연락처 등 기본적인 정보는 멀더와 스컬리가 갖고 있었다.

일단 아내 김윤희 씨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김윤희 씨 대신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삐 소리 이후···’


집 전화는 따로 없었고, 중학생이라는 아들한테 걸 수는 없고, 김윤희 씨가 집 근처에서 운영한다는 카페 번호가 있었다. 당연히 그쪽으로 통화 시도. 그러나 스무 번 전화벨이 울려도 받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짜증나거나 실망할 일은 아니었다.

만나기 힘든 사람, 안 만나주려는 사람 찾아가서 만나는 게 형사 일이니까. 곧장 집으로 찾아가서 벨을 눌렀다. 현관 앞에서 오 분쯤 딩동딩동 반복했지만 역시 무반응.

택배 상자가 현관 앞에 놓여 있고, 경비실 앞 우편함에 우편물들이 꽂혀 있는 게 좀 찜찜했다. 왠지 잠깐 집을 비운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엔 카페로 향했다.

카페 ‘반달’. 조폭과 일반인의 중간자가 아니라 보름달과 초승달의 중간이자,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곰의 일종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귀여운 반달곰이 커피를 마시는 그림이 간판과 유리창에 그려진 작은 카페.


그러나 주인은 없었다. 문도 잠겨 있었고.

주변 상인들 말로는 어제부터 문을 열지 않았다고 했다. 사장이 참 좋은 사람인데 신랑이 실종돼서 요새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는 얘기도 했다.


‘실종자 부인의 친정이나 가까운 지인의 연락처를 찾아볼까? 중학생 아들한테 연락을 해볼까?’

잠시 고민을 해 봤다. 연락을 시도한 첫날인데 좀 의욕 과잉 같았다. 실종자 부인의 심정이야 말이 아니겠지만, 긴급하게 수배할 일까지는 아니었다.

관할 경찰서에 가 있는 기철이 형한테 문자를 보내서 부인이 갈 만한 곳 연락처를 알아 봐 달라고 했다.


그리고··· 점심 먹으러 집에 갈 수는 없는 일이니, 다음 일정을 생각했다.

날씨가 너무 좋은 날, 서울 하늘답지 않게 새파랗게 맑은 날이었다. 초여름에 접어들었지만 봄날같이 기온도 높지 않은 날. 산골 출신답게 도시를 벗어나고 싶은 날.


그러다 보니 박진모 씨가 개발 사업을 하려 했던 지역. 실종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휴대폰 통화를 하고 CCTV에 찍혔던 곳.

충북 청주와 속리산 사이의 산동네가 떠올랐다. 현장에 가 보는 건 수사관으로서 꼭 해야 될 일이니까.


오케이! 나는 곧바로 반달 카페 앞에 세워둔 차의 시동을 걸었다. 오늘의 일과는 박진모 씨가 실종됐던 지역을 돌아보는 거다!



고박사 시신을 찾으려고 미랑과 같이 백운산에 다녀온 이후로 처음 서울 밖으로 달려가는 거였다.

오랜만에 차를 몰고 시외로 나오니 머리와 가슴 속이 시원하게 뚫리는 기분이었다. 바람이 들어오게 창문을 좀 열고 볼륨을 높여서 빠른 음악을 틀고, 밟았다!


다행히 국도에도 고속도로에도 차가 많지 않았다. 과속 단속 카메라에 걸리지 않을 만큼만, 제한 속도라는 건 참고사항이라 생각하면서 스피드를 즐겼다. 중간중간 구간 단속이 있어서 성깔을 억눌러야 했지만···


그렇게 달리면서 미랑과 결혼한 후 겪었던 일들을 떠올려 봤다.

미랑의 정체를 의심하며 불안해 하다가 미랑과 묘화의 싸움을 목격하고 경악했던 일. 미랑이 집을 나간 다음에 갈팡질팡 결정 못 하고 고민하던 일. 모든 걸 받아들이고 미랑과 친구들을 돕기로 결심했던 일. 병원에서 빡대 애인이 죽고, 기도원에서 늑대인간들과 혈투를 벌였던 일.

마지막으로, 그린 플리즈 비밀 연구실에서 미랑의 사진을 발견했던 것까지···


많은 시간을 긴장과 혼란 속에 보냈었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프로젝트에 참가한 중간자들과 함께 사진을 찍은 미랑의 진심은 아직도 몰랐다. 그래도 서울을 빠져 나와서 시원한 풍경 속을 달리니까 스트레스가 좀 덜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사건의 현장에 가까워질수록 도파민이 증가하고 있었다. 긴장감과 집중력이 개운하게 잡념을 덜어냈다. 형사의 본능이 조금씩 달아오른다고나 할까?

‘그래! 산책이든 수색이든, 가 보는 거야!’


출발한 지 두 시간이 안 돼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박진모 씨의 건설사가 개발할 예정이던 그린벨트 해제지역은 특이한 지형이었다.


하나의 경계를 사이에 두고 인접한 두 지역의 모습이 완전히 딴판인 지역이 있다.

고개 하나를 넘으면, 굴다리나 터널을 지나면 방금 전까지의 환경과 확 달라지는 곳들. 추억을 소환하는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올 법한 변두리 구시가지에서 지하도를 건너가면 초고층 빌딩이 즐비한 신도시와 마주친다든가···

반대로 화려한 야경 속을 달리다가 터널 하나를 지나면 사방이 깜깜한 산골로 들어서는 경우도 있다.


이 지역도 그랬다.

농촌 마을에 접해 있는 4차선 도로 옆에 나지막한 언덕이 놓여 있었다. 차량 두 대가 동시에 지나가기에도 좁은 도로로 언덕을 통과하면 인가가 전혀 보이지 않는 분지 지형의 초원이 나왔다. 그리고 그 뒤를 병풍처럼 산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멋있는데··· 그런데 아깝다···’

이삼백 미터 거리에 마을이 있고 도로가 지나가는데도 이곳은 인간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순수한 자연 공간이었다.

내가 산 하나쯤 구매할 능력이 있는 재벌이라면 이 땅을 사고 싶을 것 같았다. 동시에 이런 곳이 개발된다고 생각하니까 아까웠던 거다.


그나마 원래 박진모 씨 계획대로 생태공원 조성과 함께 최대한 자연 환경을 살리는 쪽으로 개발이 된다면 덜 아깝겠지만··· 이제 그 계획은 물거품이었다.


언덕을 넘어 그린 벨트 지역으로 들어온 다음에는 일분도 못 가서 차가 들어갈 수 있는 도로도 끊어졌다.

나는 차에서 내려서 좁은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라진 박진모 씨도 나랑 같은 곳에 차를 세워두고 걸어서 산으로 들어갔을 거다. 이 지역에서 그가 세워둔 차량이 발견됐고, 언덕 진입로 1킬로미터 전에서 신호대기 중에 CCTV에 운전대를 잡은 박진모 씨가 찍혔다고 했다.


무슨 일로 혼자 여기 왔다가 왜 사라진 걸까? 멀더와 스컬리의 추정대로 공격을 받은 거라면 범인은 진짜 황대호나 그 하수인일까?

사건을 생각하면서 10분쯤 산길을 걸어 고개를 하나 넘었다. 키 큰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지나서 바위가 많은 중턱으로 내려서자 계곡 너머 솟은 봉우리들이 뚜렷이 보였다.


‘아··· 이것 때문이었나?’

나는 입이 딱 벌어진 채 멈춰서 눈앞의 봉우리들을 봤다.

그린 플리즈 비밀 연구실에서 본 사진과 너무 닮아있기 때문이었다. 말의 귀 모양의 두 개의 바위 봉우리가 우뚝 솟은 산. 인간의 몸을 원하는 중간자들이 평행우주의 어떤 곳과 연결되면서 변신하는 곳.

전북의 마이산을 축소해 놓은 것처럼 빼닮은 두 개의 봉우리가 내 앞에 솟아 있었다.


나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과 마주친 거다.

박진모 씨 실종 사건이 그린 플리즈 또는 중간자들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작가의말

업로드 늦게 해서 사과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엄청 늦어 버렸네요. 

굳이 핑계를 대자면 요새 사무실 이사를 하고 잡다한 일들이 좀 많이 생겨서 집중을 잘 못했습니다. 

정신 차려 보겠습니다. 

아, 그리고... 다음 주 수요일이 총선 빨간 날인데요. 수요일 빼고 월, 화, 목 3회 업로드할 예정인데, 또 늦어질까 겁이 나네요. 업로드 요일은 계획대로 안 되더라도 일단 3회 업로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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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슴과 소를 지우면 +2 24.04.17 18 2 14쪽
67 다가오는 용의자 24.04.16 18 2 12쪽
66 특이한 부부싸움 24.04.12 16 2 13쪽
65 당신이 왜 그자와 +2 24.04.11 15 2 13쪽
64 두 가지 대답 24.04.10 14 2 12쪽
63 개를 데리고 걷는 여자 24.04.05 14 2 13쪽
» 축소된 말의 귀 +2 24.04.05 17 3 12쪽
61 밴이 찾아왔다. +1 24.04.03 18 3 12쪽
60 아내가 있는 방 +3 24.04.01 18 3 12쪽
59 아이 없는 숨바꼭질 +2 24.03.29 21 3 12쪽
58 베타 테스트 +4 24.03.27 19 3 12쪽
57 두 개의 그린Green +2 24.03.26 16 4 13쪽
56 아빠의 눈물 +2 24.03.22 22 4 14쪽
55 멀더와 스컬리 +2 24.03.20 18 3 13쪽
54 사슴 소녀의 그림자 24.03.20 15 3 12쪽
53 가녀린 목소리 +2 24.03.19 15 3 13쪽
52 몬순 monsoon 바뀌는 풍향 +2 24.03.15 22 3 13쪽
51 밝은 밤, 어두운 밤 24.03.14 19 3 12쪽
50 사랑과 재채기, 그리고 +2 24.03.12 24 3 15쪽
49 텅 빈 집, 꽉 찬 집 24.03.12 17 3 14쪽
48 무지개 뜬 날 +2 24.03.07 18 3 13쪽
47 내 꿈 꾸지? 24.03.07 17 3 12쪽
46 다시 생각해 +4 24.03.05 26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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