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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변신한 짐승이 당신 옆사람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12.26 13:10
최근연재일 :
2024.06.13 11:35
연재수 :
100 회
조회수 :
2,688
추천수 :
307
글자수 :
597,391

작성
24.03.0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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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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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다시 생각해

DUMMY

“선생님 재옥이랑 재희가 유괴범 잡았대요!”

“아니야. 옥,희 엄마가 유괴범 체포한 거야.”

“옥,희가 나쁜 아저씨들 자동차 뿌셔버렸대요!”


장안의 화제가 된 기도원 사건···

납치된 사람을 구하고 악당들을 한 놈만 빼고 박살내 버렸지만, 사건에 개입했던 사람들에게는 불쾌한 잔상이 남아 있었다. 딱 두 명만 제외하고.


자신감, 에너지, 명랑함에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쌍둥이 유치원생 옥,희가 그 둘이었다.

유괴범들의 차에서 탈출한 직후에 옥,희는 곧바로 달려온 엄마 미랑을 보자마자 한 가닥 남아 있던 불안감마저 지워버렸었다. 그리고 엄마의 동료 체조 코치와 함께 집에 돌아가서 시끄럽고 정신없는 일상의 놀이생활을 이어갔다.

오히려 걱정에 싸였던 건 코치였다.


“얘들아, 엄마 걱정은 안 해도 돼. 금방 집에 올 거야.”

“우리 걱정 안 했는데요!”

“에디랑 루피랑 싸워서 언제 화해하나 생각했어요.”

참고로, 에디와 루피는 뽀로로라는 펭귄의 친구로 매우 귀여운 여우와 비버다.

“옴마가 유괴범들 쫓아갔으니까 잡아올 거예요.”

“아냐. 나쁜 사람 잡는 건 아빠씨가 하는 거야.”


이토록 자신만만하던 옥,희가 ‘엄마한테 전화가 안 오네? 우리가 걸어볼까?’ 매우 미미하게 걱정하는 눈치를 보이던 순간에 미랑이 전화를 걸었었다. 김반장이 들어와서 상황을 정리한 다음, 앰뷸런스에 타기 직전이었다.


“옴마, 유괴범들 혼내줬어?”

“당근이지. 아주 많이 혼내줬지. 아빠씨랑 경찰 아저씨들도 와서 우리가 완전히 이겼어.”


이랬으니 정신적 외상이니 불안감이니 하는 것들이 얼씬거릴 수가 있나.

그리하여 다음날 유치원에 등원한 옥,희는 신이 나서 전날의 모험 썰을 풀었다.

새로운 경험, 모험과 성공담은 관심을 끄는 법. 옥,희의 친구들은 용감한 쌍둥이의 체험담에 열광했고 유치원 선생님들은 얼떨결에 두 제자의 범죄 극복 사례 발표를 허락해 버렸다.


“얘들아, 초코렛 사준다는 어른 따라가면 돼요?”

“안 돼요!”

“강아지 보여준다고 가자고 하면 같이 간다요?”

“아니, 아니! 안 가요!”

“맞아요! 잘 했어요!”


유치원 교사들은 두 아이의 능숙한 강의 진행에 감탄하고 있었다.

‘청중이 이미 아는 친숙한 지식에서 출발해서 호응을 얻어내고 동기를 부여하고 있구나!’ 그리고 이 능수능란한 강사 듀오는 새로운 지식을 전해주기 시작했다.


“그런데요. 안 하는 게 또 있다요!”

“키 크고 힘센 아저씨가 비행기 태우고 뛰어가면 신날까요?”

“아니요! 안 신나요! 재미있으면 안 돼요!”


아이들은 금세 익숙해진 패턴에 따라서 예상 가능한 대답을 외쳐댔다.

노련한 두 강사는 이런 반응마저 예상했던 걸까? 재옥이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고, 재희는 미간을 찌푸린 채 집게 손가락을 흔들었다. 차인표 아저씨처럼.

어린이 청중은 두 강사의 행동에 순간 당황했고, 유치원 교사들은 관심을 끌어가는 놀라운 스킬에 관심과 호기심 앤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아니에요. 틀렸어요.”

“비행기 태워주고 뛰어가면 재미있다요. 엄청 신난다요.”

“그런데 좋아하면 안 돼요.”

“유괴니까!”


와우! 아이들은 뜻밖의 깨달음을 얻었다는 표정으로 입이 딱 벌어졌다.

그리고 교사들은 리오넬 메시의 드리블 돌파를 연상시키는 두 유치원생의 현란한 진행 능력에 자괴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유괴범은 나쁜 사람들이니까 놀려줘야 돼요.”

“그래서 우리가 막 떠들었어요. 빨리 우리 옴마한테 전화해요.”

“전화해서 무섭게 얘기해야 돼요. 왜 전화 안 해요?”


교사들은 뭔가 이야기가 잘못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강의를 중단시키지는 못 했다. 이미 예측을 뛰어넘는 두 아이의 전개 실력을 경험했으므로.


“그러면 유괴범 아저씨들이 우물쭈물할 거예요. 우리 엄마는 힘쎄고 무서우니까.”

“그때 교통사고가 나게 해야 돼요. 어떻게 하는지 알아요?”

“몰라요! 말해 봐요!”

청중의 격렬한 호응에 어울리는 극한의 샤우팅!

“꺄아아아악!”


아이들,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께 미안한 이야기지만 달밤에 동네 개 한 마리가 짖으면 개떼가 따라 짖듯이··· 유리창 긁는 소리보다 듣기 괴롭고 돌고래보다 고음인 애들의 괴성 지르기는 순식간에 전염된다.

왜 그러는지는 모르는데 절대 앞엣놈에게 지지 않겠다는 듯 줄줄이 더 큰 소리들을 질러댄다.


“그렇게 소리 지르는 거다요. 그러면 유괴범이 혼나요! 꺄아아아악!”


모든 원생들이 질러대는 귀청을 찢는 고함이 유치원을 뒤흔들었다.

교사들은 당혹감과 동시에 깊은 후회를 느꼈다. 어떻게 수습을 해야 되나, 어떻게 유괴 방지 교육을 재구성해야 하나. 참으로 난감한 고민거리였다.

뭐 직업 생활은 다 힘든 거니까···


* * * * * * * * * * * * * * * * * * *


영정 사진 속의 박대규는 점잖게 미소 짓고 있었다. 내가 아는 그의 모습과 달랐다.

수북했던 콧수염과 턱수염 없이 말끔했고, 보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던 불량스런 표정도 없었다. 당연히 내가 아는 박대규의 모습이 전부일 리는 없었다. 그의 부모나 친구들에게는 다르게 기억되는 면모가 분명 있었을 거다.


박대규 옆에 놓인 또 하나의 영정 사진이 놓여 있었다.

병실에서 애인을 지키려다가 살해된 여자, 대규 애인이었다. 그녀 역시 사진 속에서 차분하게 웃고 있었다.


둘은 서로의 부모에게 인사를 한 사이였고, 가족과 친구들도 둘의 관계를 잘 알았다. 그래서 두 사람이 같은 범죄 조직에 의해 비명횡사하자 같은 곳에 빈소를 차린 거였다.

거창하게 영혼결혼식 같은 걸 하는 건 아니지만 같은 날 발인하고 같은 날 화장해서 한 납골당에 나란히 봉안하기로 했다. 망자들의 가는 길이 외롭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하자는 취지였다.


나는 반장님과 같이 장례식장에 왔다.

부상 치료 때문에 어차피 병원에 와야 했던 기철이 형은 먼저 문상을 하고 접객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셋 말고도 기도원에서 함께 싸웠던 미랑과 친구들도 모두 박대규를 조문하기로 했다. 다들 대규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감정을 품고 있었다. 대규가 없었으면 늑대인간들을 이기지 못했을 테니까.


물론 그 자리에 있던 이들 중 누구 한 명이라도 빠졌다면 놈들에게 맞서기 힘든 것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대규는 납치된 천연호 씨와 모르는 사이였고 중간자도 아니었다. 대규에게는 죽은 애인의 복수를 하겠다는 동기가 있었지만, 중간자 친구들 입장에서는 무척 고마운 오리지널 인간이었다.

나로서도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대규의 오토바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제 시간에 기도원에 도착하지도 못 했을 테니까.


반장님은 대규와 대규 애인 가족들에게 두 망자를 용감한 시민으로 추천하겠다며 위로했다. 죽은 다음에 표창을 받으면 뭐 하겠냐 생각할 수도 있지만 유족들은 고마워 했다.

목숨을 걸었던 용기의 가치를 인정받았으니 두 사람의 영혼도 이 사실을 알면 기뻐할 것 같았다.



반장님과 나는 접객실로 와서 먼저 기다리고 있던 기철이 형과 마주 앉았다.

기철이 형은 육개장을 안주로 의사가 마시지 말라고 한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대규와 그 애인을 만나서 얘기했던 게 바로 조금 전 같을 테니 술 생각이 날 수밖에 없을 거다.


“형님. 감찰 조사 받은 건 어떻게 됐어요?”

“걱정할 거 없다. 예상 대로야.”


경찰한테 먼저 총을 난사한 놈들과 총격전을 벌인 거였으니 발포의 정당성을 문제삼을 수는 없었을 거다. 목격자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순찰 경관 네 명이 총알받이가 되기 직전이었으니까.


나는 반장님한테 소주를 따라드리고 내 앞의 잔에도 채웠다. 반장님이 한 번에 잔을 비우고는 물었다.


“제수 씨랑 친구들도 문상 오기로 했지?”

“네. 오늘 서에 같이 들어가서 조사받고 여기도 같이 올 거예요.”

“그 중간자 친구들··· 황묘화 씨는 고양이 출신 중간자, 염소준 씨 염소 출신, 마종대 씨 말 출신 맞지?”

역시 안목이 뛰어났다. 반장님은 확실히 중간자 분야에 일가견이 있었다.

“맞습니다. 정확하시네요.”


내 대답 다음에 기철이 형의 질문이 이어졌다.

“형님. 경찰서 공식 라인 말고 중간자들 관리하는 선이 따로 있는 거 맞죠? 거기 형님이 전부터 연결돼 왔고.”


반장님은 두 번째 소주잔을 또 원샷으로 넘겼다. 평소보다 빠른 스피드였다.


“발설하면 안 되는 얘기다. 해도 되지?”

“하셔야죠. 저희는 부담 안 느낍니다.”

“발설 걱정 마십쇼. 반장님.”

“너희 둘 지켜보면서 좀 미안하기도 했다. 나만 숨어서 몰래 감시하는 것도 같고···”


한숨처럼 심호흡을 하는 반장님께 또 한 잔 소주를 채워드렸다.


“됐네. 미안하셨으니까. 이제 비밀도 나눠 가집시다. 뭐 좋은 거라고 혼자 짊어지셔.”


기철이 형의 말에 반장님은 풋, 가벼운 웃음을 뱉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너희는 이해하기가 좀 수월할 거다. 중간자들을 미리 알았고 접해 왔으니까··· 그 친구들한테는 어찌 보면 처음에 변신하는 것보다 어려운 게 인간 등록이다. 미국처럼 큰 나라도 아니고 주민등록 번호가 전국민한테 꼼꼼하게 매겨진 나라니까.”


그건 맞는 말이었다. 아마 그런 것 때문에 경찰에서도 중간자를 아는 사람이 나왔겠지.


“요즘엔 불법 입국한 동포, 탈북자, 망명자 등을 가장해서 주민등록을 하려는 경우들이 있다. 미성년 인간으로 변신한 중간자들 경우는 출생신고가 안 된 고아라는 식으로 많이들 주민등록을 했지. 실종자 신분을 부여받기도 했고.”

“실종자 신분을 부여받으려면 누군가 몰래 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잖아요.”

“내가 정보를 받는 사람 중에 제일 윗선이 옛날에 내무부, 지금은 행정안전부지. 거기서 주민등록 책임자를 하던 양반이었다.”


그렇다면 정부 고위직 중에도 중간자들을 아는 사람이 예전부터 존재했다는 얘기!

그들이 암암리에 중간자들을 감시하고 관리했다는 거였다.


“중간자들 중에 늑대파는 주의해서 감시해야 될 대상이었다. 언젠가는 소탕해야 될 놈들이었고. 그래서 우리 서의 윗선들한테도 늑대파에 대해서 자주 보고를 했었지.”

“그럼 서장님도 늑대파가 중간자 깡패란 걸 아시고···”

“아냐. 그냥 밑에서 주목해야 될 놈들이라고, 근방에서 제일 위험한 조직이라고 자꾸 보고가 올라가니까 관심을 가지신 거다.”

“형님. 처음에 경찰 되신 것도 처음에 경찰 되신 것도 중간자 가족이기 때문이셨어요?”


기철이 형이 물었다. 내가 묻고 싶은 걸 대신 해주는 것 같아서 나는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닐 거다.”

‘아니다’가 아니고 ‘아닐 거다’라?


“나야 순수한 경찰 공무원 시험 응시생이었지만 뽑아주는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는지 모르니까.”

너구리 가족 출신이란 걸 눈치 챈 경찰 간부가 있었단 얘긴가?

“그럼 그 시절 경찰 시험 관리하는 윗선에도 중간자를 아는 이가 있었다는 거예요?”

“그건 안 알아봐서 잘 모른다. 굳이 알아볼 생각을 하질 않았지.”

“그럼 형님한테는 언제부터 그 윗선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반장님은 대답 대신 집게 손가락을 입술에 댔다. 그 얘긴 그만 하라는 신호였다.

문상객 여러 사람이 한산했던 접객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우리는 들어오는 사람들을 신경 쓰면서 하던 얘기를 멈췄다.

다른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 문상객들 뒤로 우리가 아는 사람이 보였다. 몸에 딱 붙는 검은 색 투피스를 입은 여자, 황묘화였다.


‘왜 다른 친구들이랑 같이 안 오고 혼자 왔지?’ 이상하게 여기는 내 시선을 똑바로 마주하면서 묘화가 우리 자리로 다가왔다.


“퉁.”

엥? 뭔 소리? 반장님이 기철이 형을 향해서 딱 한 음절의 말을 뱉었다.

나와 기철이 형은 의아해서 반장님을 보다가 시선을 다시 묘화에게 돌렸다.


아아, 묘화 얘기였구나.

나는 반장님의 의도를 직감하고 기철이 형을 봤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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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당신이 왜 그자와 +2 24.04.11 13 2 13쪽
64 두 가지 대답 24.04.10 12 2 12쪽
63 개를 데리고 걷는 여자 24.04.05 10 2 13쪽
62 축소된 말의 귀 +2 24.04.05 13 3 12쪽
61 밴이 찾아왔다. +1 24.04.03 15 3 12쪽
60 아내가 있는 방 +3 24.04.01 15 3 12쪽
59 아이 없는 숨바꼭질 +2 24.03.29 18 3 12쪽
58 베타 테스트 +4 24.03.27 16 3 12쪽
57 두 개의 그린Green +2 24.03.26 13 4 13쪽
56 아빠의 눈물 +2 24.03.22 19 4 14쪽
55 멀더와 스컬리 +2 24.03.20 14 3 13쪽
54 사슴 소녀의 그림자 24.03.20 12 3 12쪽
53 가녀린 목소리 +2 24.03.19 12 3 13쪽
52 몬순 monsoon 바뀌는 풍향 +2 24.03.15 17 3 13쪽
51 밝은 밤, 어두운 밤 24.03.14 15 3 12쪽
50 사랑과 재채기, 그리고 +2 24.03.12 20 3 15쪽
49 텅 빈 집, 꽉 찬 집 24.03.12 14 3 14쪽
48 무지개 뜬 날 +2 24.03.07 13 3 13쪽
47 내 꿈 꾸지? 24.03.07 14 3 12쪽
» 다시 생각해 +4 24.03.05 22 3 13쪽
45 후폭풍 24.03.04 13 3 12쪽
44 작은 뿔의 종결 24.02.29 17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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