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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변신한 짐승이 당신 옆사람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12.26 13:10
최근연재일 :
2024.06.13 11:35
연재수 :
100 회
조회수 :
2,670
추천수 :
307
글자수 :
597,391

작성
24.03.19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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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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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3쪽

가녀린 목소리

DUMMY

기철이 형은 얼굴만 보고, 반장님은 만나지도 못한 채 오전 내내 서류 정리만 했다. 늑대파 꼬붕들 취조를 하느라 조사실에서 오전을 보낸 기철이 형도 지쳐서 사무실로 돌아왔다.


형이 들어올 때 시계를 보니까 1시가 넘어 있었다. 밀린 보고서를 쓰느라 밥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기철이 형을 보니까 점심 생각이 났다.

밥 먹으면서 긴히 할 얘기도 있었으니까.


“밥 먹었어요?”

“아직··· 아, 뻑적지근하다···”


하품을 하면서 기지개를 켜는 백형사는 매우 피곤한 몰골이었다. 어제 술자리가 길게 이어지지 않았었는데도 그랬다.

미랑과 나야 괴 사진문자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잤지만 기철이 형은 별로 힘들 일이 없었을 것 같은데··· 술 마시기 벌칙이 걸렸을 때 여성 흑기사의 조력까지 받았으니까.


“어제 많이 안 마셨잖아요?”

“그러게. 늙나 보다.”

상당히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뭔가 수상해 보였다. 어쨌든···

“점심 안 먹었죠?”

“아침도.”


나는 나가서 식사를 하자고 기철이 형을 잡아 끌었다. 그러자 기철이 형은 강력 2팀의 또래 형사한테 전화를 걸었다.


“취조 끝내는 거 봤다. 옆 조사실에 있었거든. 나와. 주성이가 점심 산대.”

“아니 사는 사람한테 묻지도 않고 친구 부르는 게 어딨어요?”

“쪼잔하기는··· 내가 갚을게. 얘네가 지금 노보형이 찾는 담당이잖아. 좀 멕이면서 살살 캐보자구.”


2팀의 남경걸 경위는 기철이 형과 동기이다 보니 나하고도 친한 편이었다.

근데 이 양반이 체구는 별로 안 큰데 워낙 대식가에다 풀을 싫어하는 육식 인간이어서··· 잠깐 고민이 됐지만 소고기를 먹이기로 결심했다.

강력 사건 수사 때는 같은 서 직원이라도 담당 팀 아니면 정보 공유를 잘 안 하기 때문이다. 물어 보는 쪽이 아쉬운 거니 좋은 걸 먹여야지.


“남선배님. 한국산 카우로 제가 모시겠습니다.”

“한우?”

“뭐 그렇게 봐도 되죠. 한···국산 육···우니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선배는 설렁탕에 육회나 한 접시 사라며 간소한 식사계획을 밝혔다. 2팀장님이랑 같이 노보형이 전에 동거했던 여자를 만나러 가야 돼서 시간이 많지 않다고 했다.


셋이서 밥을 먹으면서 대화의 소재는 노보형이었다.

남선배는 굳이 노보형 관련 정보를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다르게 말하면 아는 게 우리보다 별로 많지 않았다는 거다. 딱히 숨길 게 없으니 부담 없이 밥 얻어먹으며 떠들었던 거지.


기철이 형이 취조한 늑대파 아랫것들도 아는 게 별로 없었다고 했다.

“걔네들은 노보형 숙소밖에 모르더라고. 주민등록상 거주지랑 일치. 거의 물어 본 보람이 없었지.”


그나마 조금이라도 건진 거라면 노보형과 작년까지 1년 정도 동거한 여자를 안 거였다.

남선배가 오늘 만나러 가기로 했다는 30대 위스키 바 사장. 아마 소유주는 아니고 얼굴 마담 같은 역할일 거다. 전문 경영인인가?


“고기 사 드리는 김에 30년산 위스키도 따라 드리고 싶은데, 운전하셔야 되니까 제가 참겠습니다.”

“지네 사수 닮아서 구라만 늘었네. 자꾸 그러면 진짜 팀장님한테 운전하라 그러고 나 술 먹는다.”


남선배가 시간이 없어서 식사 자리를 오래 끌지는 못했다.

기철이 형과 둘이 경찰서 흡연구역으로 갈 때 내가 휴대폰을 보여줬다. 미랑과 나한테 전송된 기도원 사진 두 컷을.


“뭐야? 이거 어떤 놈이 보낸 거야?”

“몰라요. 지능범죄팀 박경위한테 물어보니까 실소유자 못 찾는 대포폰이래요. 발신 자체도 많지 않고 장소도 각각이라서 발신 장소 뒤지는 것도 의미 없대요.”

“노보형이 제일 확률이 높지?”

기철이 형의 추측도 나와 같았다.


“그렇죠. 확인은 안 됐지만.”

“어떻게 할 거야?”

“일단 반장님 보여드리고 말씀 들어보려고요.”


기철이 형도 그게 좋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나는 알고 싶은 게 또 있었다. 물론 기도원 사진처럼 심각한 의문은 아니었지만.


“근데··· 묘화 씨랑은 뭐예요?”

“뭐? 뭐가 뭐냐는 거야? 그 질문은 뭐야?”

‘뭐’가 반복되는 라임이 어색하게 들렸다. 뭔가 찔리는 걸 감추고 싶은 느낌이랄까?


“어제 이놈의 사진 받고 혹시 다른 사람들한테도 왔나 톡 보냈는데 묘화 씨랑 형님은 읽지도 않으셨대.”

“묘화 씨도···?”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분명히 같이 있었을 것 같은데··· 하기야, 같이 있는 사람도 폰을 확인하는지 아닌지 모를 수도 있지.


“묘화 씨도 새벽에 아래층 보니까 안 들어온 거 같던데··· 불은 계속 꺼져 있고.”

“그거야 들어와서 불 끄고 있었을 수도 있지.”

요 대답도 좀 이상하게 들렸다.


‘왠지 형이 묘화 변명해주는 것 같네요.’

그렇게 살짝 의아해 하던 순간에 한때 기철이 형과 혼성 듀엣을 했던 박경위님이 지나갔다.


“어이 빽, SNS 스타야, 축하해!”

박경위는 놀리면서 웃었고 기철이 형은 매우 뻘쭘한 표정이 됐다. 나는 궁금했고.

“무슨 얘긴데요?”

“몰랐어? 백기철 씨가 어떤 섹시하게 생긴 여자하고 인공 암벽 꼭대기까지 올라갔던데. 한밤중에.”

“어젯밤에요?”

“야, 무슨 그런 얘기를 직장에서···”


기철이 형은 정색을 하면서 손사래를 쳤다.


“직장에서 문제 안 된 것만 해도 다행이지. 경찰 공무원이 심야에 공공장소에서 기행을 벌이시면 어떡하나? 그것도 총각이 젊은 여성이랑 같이.”

“그만합시다.”


어라, 이 아저씨. 매우 어색한 존댓말까지?


“누구야? 미인이던데. 젊어 보이고. 땡구 애비 그렇게 안 봤는데 능력있네.”

나는 분명히 묘화 얘기일 거라 짐작하고 대신 대답을 했다.

“젊은 여자 있어요. 조금 전까지 백형사님이 아무 관계 없다고 부인하던 여성이.”

“야, 얼른 낱낱이 불어. 지금은 나 같은 온라인 전문가만 알지만 경찰서 전체에 알려지는 건 시간 문제야.”


지능범죄팀 수사관의 취조에 대답을 못하던 백형사.

때마침 휴대폰이 울리자 재빨리 뽑아들었다. 권총 뽑는 속도를 자랑하는 서부의 총잡이처럼. 전화 온 걸 반기는 눈치를 감추지 못 하면서.


“여보세요··· 어, 밥 먹었지 뭐. 들어갈 거야. 지금··· 어? 뭐라고? 반장님이?”

통화하던 기철이 형 표정이 돌변했다. 깜짝 놀라는 얼굴로.


“왜 그래? 괜히 뼁끼 쓰는 거 같은데. 관심 돌리려고.”

박경위는 기철이 형이 연기하는 걸로 의심했다. 하지만 연기가 아니었다.


“반장님이 금방 나왔다가 병가 내고 가셨다는데. 수사과장한테.”

“갑자기 왜 그러시지? 어젯밤까진 하나도 안 아파 보이셨잖아요?”

“글쎄···”


몸이 안 아픈 건 맞았다.

그러나 마음이 아팠고 골치가 아픈 상황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 * * * * * * * * * * * * * * * * * *


국장님 집을 나올 때까지만 해도 김반장은 경찰을 그만둔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중간자들과 관련된 일에서만 빠지면 되지 않을까?’ 자기도 모르는 윗선에서 국장님 라인을 지워 버리려고 한다면 해당 분야에서만 조용히 지워지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김반장으로서는 경찰이란 업을 버리기가 쉽지 않았다.

다른 직업을 가져 본 적이 없었고, 경찰로 오래 근무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왔으며, 애착과 자부심을 갖고 있었으니까.


지형사와 백형사에게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고 얼버무리고 이제 중간자 관련해서 자기를 찾지 말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다른 경찰서로 전보 신청을 하고 업무도 강력범죄 수사가 아니라 조금 더 단순한 쪽을 맡으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국장님의 뉘앙스는 이직을 권유하는 것 같았지만 되도록 김반장은 버티고 싶었다.


그런데··· 국장님 집을 나서자마자 휴대폰이 울렸다.

‘형’

발신자를 알리는 표시는 한 글자였다. 원주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공장을 경영하는 친형이었다.


“어, 웬일이에요? 내 연락도 못 드렸네.”

“답답해서 걸었다.”

“왜요? 어머니 편찮으셔?”

“아니. 공기가 영 이상하네. 퍽퍽해. 숨이 좀 막히네.”


김반장은 심상찮다고 느꼈다. 평소의 형과 달랐다.

“여보세요. 형, 형···”


어렴풋이 라이터 켜는 것 같은 소리만 들리더니, 담배 반 대쯤 탈 시간이 지나서야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하게 관공서에서 형네 공장을 표적으로 괴롭히는 것 같다는 얘기였다. 세무조사가 들어와서 곤욕을 치렀고, 불법 체류자 고용 문제에까지 엮였다는 거였다.

체류 기간이 다 된 외국인 근로자가 몸이 아프다고 출근을 안 했는데, 서류상으로 형네 공장 소속이라고 문제를 삼았다고 했다.


“야, 주말에 사무실에서 동창들이랑 포커치는 것까지 도박으로 몰렸어. 진짜 얼마 안 되거든. 너도 알잖아. 소주 사고 택시값 빼면 오만원도 못 따.”


소소한 일들까지 관공서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어떤 놈이 찔렀는지 답답해 죽겠다는 하소연이었다.


김반장의 형 역시 아버지가 너구리 출신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김반장이 비밀리에 중간자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것도 알고 있는 소수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김반장이 주성과 백형사, 그리고 미랑의 친구들에게 밝히기 전까지 달랑 세 명이었다. 친형, 국장님, 김반장처럼 국장님에게 지시받던 다른 형사 한 명.

김반장의 아내도 중간자 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걸 몰랐다. 아예 중간자 이세란 것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혹시 너 쪽에서 쓰리 쿠션이 들어오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더라.”

김반장은 대답을 못했다. 형도 그런 쪽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니가 개인적으로 뭘 잘못할 리는 없고. 중간자들 때문에 문제 생긴 게 아닌가···? 저번 기도원 뉴스 때 늑대 사체 얘기도 그렇고···”


김반장은 뭐라 뾰족한 답을 못 해주고 전화를 끊었다.

명색이 경찰 공무원인데 가족에게 도움은 못 될망정 피해를 주는 상황이었다. 씁쓸하고 속이 탈 수밖에 없는 김반장. 국장님이 했던 얘기가 자꾸 뇌리를 맴돌았다.


“중간자들을 지켜보는 일은 줄타기처럼 위태롭거든. 그 친구들을 덮어주다 보면 사건 처리에 모순이 생길 수밖에 없으니까. 의심 많은 자들이 그걸 캐면 골치 아픈 일들이 많이 생기지.”


중간자를 관리하는 형사는 약점이 많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그렇다고 중간자들의 정체를 까발리는 건 김반장의 의리와 양심상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아무래도···’

형과 통화를 곱씹던 김반장은 생각을 조금 바꿨다. 경찰직을 꼭 유지하겠다는 의지는 약해지고 있었다.


‘일단 며칠 휴가를 내고서··· 추이를 지켜보자. 정 어려워지면··· 내가 딴 길을 찾아야지.’


늘 일손이 모자라고 사건이 넘쳐나는 경찰서였지만 다행히 김반장의 병가는 받아들여졌다.

그동안 애쓴 덕이라고, 주변에서 알아주니 다행이라고··· 김반장은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김반장이 병가를 내고 경찰서를 떠날 즈음이었다.

집에 있던 미랑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 이름 대신 번호가 떴다. 전부터 알던 번호가 아니었다. 하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번호, 지난 밤부터 잊을 수 없게 각인된 번호였다.


두근두근, 세차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진정하려고 길게 호흡을 하면서 미랑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1초, 2초, 3초, 통화 시간은 흐르는데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여보세요?”

7초, 8초, 9초··· 기다려야 하나, 화를 내고 다그칠까? 고민하는 순간,


“저기요··· 죄송한데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였고, 앳된 음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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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당신이 왜 그자와 +2 24.04.11 13 2 13쪽
64 두 가지 대답 24.04.10 12 2 12쪽
63 개를 데리고 걷는 여자 24.04.05 10 2 13쪽
62 축소된 말의 귀 +2 24.04.05 13 3 12쪽
61 밴이 찾아왔다. +1 24.04.03 15 3 12쪽
60 아내가 있는 방 +3 24.04.01 14 3 12쪽
59 아이 없는 숨바꼭질 +2 24.03.29 18 3 12쪽
58 베타 테스트 +4 24.03.27 16 3 12쪽
57 두 개의 그린Green +2 24.03.26 13 4 13쪽
56 아빠의 눈물 +2 24.03.22 19 4 14쪽
55 멀더와 스컬리 +2 24.03.20 13 3 13쪽
54 사슴 소녀의 그림자 24.03.20 12 3 12쪽
» 가녀린 목소리 +2 24.03.19 12 3 13쪽
52 몬순 monsoon 바뀌는 풍향 +2 24.03.15 17 3 13쪽
51 밝은 밤, 어두운 밤 24.03.14 15 3 12쪽
50 사랑과 재채기, 그리고 +2 24.03.12 20 3 15쪽
49 텅 빈 집, 꽉 찬 집 24.03.12 14 3 14쪽
48 무지개 뜬 날 +2 24.03.07 13 3 13쪽
47 내 꿈 꾸지? 24.03.07 13 3 12쪽
46 다시 생각해 +4 24.03.05 21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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