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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변신한 짐승이 당신 옆사람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12.26 13:10
최근연재일 :
2024.06.13 11:35
연재수 :
100 회
조회수 :
2,680
추천수 :
307
글자수 :
597,391

작성
24.03.04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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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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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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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후폭풍

DUMMY

지원 나온 경관들과 119 구급대원들은 현장을 보고 기겁을 했다.

흰색, 검은색, 갈색 커다란 늑대 세 마리의 사체, 야수의 이빨에 갈가리 뜯기고 찢겨 피웅덩이 위에 누운 박대규의 시신.

그리고 늑대들과 싸운 걸로 추정되는 네 명의 시민. 왜소하고 초라한 50대 아저씨 염소준, 말상이지만 잘 생긴 서른 살 남자 마종대, 미녀 듀오 구미랑과 황묘화. 중상은 아니지만 그들은 모두 부상을 입었고 지친 모습이었다.


늑대들과 싸웠고, 늑대가 사람을 죽이는 걸 목격했으니 당연히 심신에 큰 충격을 받았을 거라고 나중에 들어온 이들은 짐작했다.

자기들이 생각한 상황과 엄청나게 다른 일들이 벌어졌었다는 건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자기들과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도 당연히 몰랐다.


나와 기철이 형, 그리고 연호 씨까지 합친 일곱 사람(김반장님만 빠진 사건 관련자 전체)은 반장님이 말한 사건 개요를 머릿속으로 되뇌고 있었다.

늑대인간들과 목숨을 걸고 싸웠다는 말이 무심코 새나오면 안 되니까. 총을 두 발이나 맞고 칼에 깊이 찔리기까지 한 늑대인간이 죽지 않고 도망쳤다고, 무서운 놈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솔직한 두려움을 내보이면 안 되니까.


“구급대원 말고는 일단 건물 밖으로 나가요. 저기 쓰러진 사람··· 심정지일 텐데, 이송하세요. 조심해서 딴 건 아무것도 건들지 마시고.”


반장님은 침착하게 현장을 지휘했다.

아직 감식반이 오지 않았으니까 현장을 비워주고 보존하는 게 필요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 그의 생명이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빡대를 앰뷸런스에 실어 보내야 했다.


“여기 계셨던 분들은 두 형사까지 포함해서 모두 병원부터 가셔야 돼요. 일일구, 구급차 한 대예요?”

“더 오고 있습니다. 오분 내로 도착할 겁니다.”


불행 중 다행인 게 생명이 위태로운 사람은 없었다.

원래 한쪽 팔에 반깁스를 하고 있었던 기철이 형이 제일 통증이 심한 편이었다. 딱딱한 바닥에 내동댕이쳐졌으니 충격이 적지 않았을 거다.


기철이 형은 몸에만 충격을 입은 게 아니었다.

묘화한테 습격당했을 때 중간자의 무서움을 느껴보긴 했지만 아무래도 나보다는 중간자들에게 덜 익숙한 사람이었다. 늑대 인간 넷의 야수성을 목격하며 맞서 싸우는 건 편안하게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이 아닐 거다.

오래도록 거친 숨을 쉬는 기철이 형을 보니 아마 오늘밤엔 잠들기 어려울 것 같았다. 당분간은 종종 악몽에 시달릴 거다.


초식동물 출신인 종대와 염선생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표정이었다.

특히 감회가 남다른 염선생의 얼굴에는 여러 감정이 교차하고 있었다. 앰뷸런스를 같이 타고 가면서 내가 물었다.


“괜찮으세요?”

“네···”


대답하고서 염선생은 휘유 작은 한숨 같은 걸 내뿜었다. 후회라기보다는 불안을 덜어내는 안도의 표현 같았다.


“그래도 뿌듯하시죠?”

염선생은 대답이 없었다. 대신 촉촉한 두 눈이 반짝 빛나고 있었다.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려고 인간 세상에 들어왔던 작은 뿔의 초식동물. 인간 세상에서도 맹수들의 협박에 시달리며 두려움에 떨었던 무명작가.

그러나 그는 오늘의 히어로였다. 악당 늑대인간 두목의 숨통을 끊은 결정타를 날린 용감한 존재! 두려움을 이겨낸 의지와 과감함이 그 동안 쌓여온 상처를 많이 덜어냈을 거다.


나는 다시 염소준 씨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꿈꾸는 것 같은 눈빛, 그는 뭔가를 회상하고 있었다. 그 마음을 읽을 수는 없었으나 분명히 괜찮은 장면이었을 거다. 인간이 염소를 고아먹는 줄 몰랐던 어린시절··· 아니면 조금 전 용감무쌍한 점프와 뿔박기로 악당을 물리쳤던 장면을 떠올렸으리라.



그런데 묘화와 종대와 염소준 씨가 어떻게 기도원에 나타났을까?

천연호 납치 사건을 알고 급박한 중에도 중간자 친구들에게 연락해줄 수 있었던 사람. 한 명밖에 없었다. 중간자 2세, 아버지가 너구리 출신 중간자였던 형사.

김반장님이었다.


경찰로서 남몰래 정보를 수집하면서 중간자들을 보호하고 관리해온 사람.

반장님은 옥,희 유괴 미수에 이어 연호 씨가 납치되는 사태가 벌어지자 늑대파의 도발인 걸 직감했다.

그리고 경찰들이 늑대파의 정체를 목격하기 전에 일을 해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경찰들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사건을 종결지으려면 기철이 형과 나만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해 묘화에게 연락한 거다.


그런 식으로 전부터 암암리에 우리 부부와 중간자들을 지켜봐 온 반장님은 병원 로비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치료를 마치고 나온 나와 기철이 형을 기다리고 있는 거였다.

그런데 이 양반 정작 우리가 나와서 다가와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텔레비전에 시선 고정이었다.


“반장님!”

“형님!”


불러봐도 대답 없는 시청자는 손가락으로 텔레비전을 가리켰다.

‘늑대 살인사건’ ‘기도원의 참극!’ ‘끔찍한 산중의 유혈극!’ 화면에는 철망 펜스가 쳐진 산비탈길과 얼핏 봐도 음산한 기도원 풍경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사람을 납치한 범죄자들이 늑대를 풀어서 피해자를 도우려는 이들을 공격하고, 엽총으로 경찰관을 사살하려 했다는 뉴스가 여러 채널을 뒤덮고 있었다.

시청자들을 자극할 만한 잔혹하고 기괴한 사건이니 언론이 개미떼처럼 달려들어서 물어뜯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납치 피해자를 구하려던 시민 한 명이 늑대에게 물려서 숨졌고, 엽총으로 경찰관들을 공격하던 두 납치범은 총상을 입고 병원에 옮겨졌으나 조금 전 사망했습니다.”


오잉? 납치범 놈들이 죽은 건 처음 듣는 얘기였다.

기철이 형과 나는 반장님 눈치를 봤다. 끄덕끄덕.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표정이었다.


“총··· 형님이 쏘신 거예요?”

“어. 조사 받으러 들어가 봐야돼.”

“별 일 없을 겁니다. 상황이 확실하잖아요. 저놈들이 먼저 경찰 죽이겠다고 총질을 했잖아요.”

“그래. 걱정은 안 한다. 죽어도 할 말 없는 놈들인 것도 맞다···”


그러면서도 반장님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범죄자지만 사람을 쏴서 죽게 만들었으니 마음이 편할 리는 없었다.

기철이 형과 나는 씁쓸하게 눈을 마주쳤다. 반장님이 입을 다물고 있는 동안 형과 나도 말없이 옆에 앉아서 뉴스를 주시했다.


“옛날에 그런 말이 있었지.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되고 사람이 개를 물어야 뉴스가 된다.”

“요샌 그렇지도 않아요. 개가 사람을 물어도 뉴스에 나오잖아요.”

기철이 형의 대꾸에 반장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늑대가 사람을 물어 죽였으니 난리가 날 수밖에 없지. 당연하게.”


그러면서 반장님은 텔레비전을 가리켰다.

뉴스에서는 동물 전문가라는 사람이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늑대가 대도시 주변에 나타날 수 있었던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은 차분했지만 답변하는 전문가는 분노해 있었다. 야생동물을 불법으로 유통 매매하는 범죄자들이 결국 이런 엄청난 범죄의 원인이 됐다면서 흥분했다.


“이자들은 밀렵꾼들과 연결돼서 자연 환경에서 살아야 할 야생동물들을 왜곡된 인공 환경으로 납치해 오는 겁니다. 그리고 인간의 흉악한 목적에 맞게 야생동물의 본성을 일그러뜨리는 겁니다.”


안 그래도 자극적인 소재가 넘쳐나는 뉴스였다.

맹수를 밀렵하고 밀수입해서 범죄에 이용되도록 키우는 악당, 밀매업자가 있다. 이놈들이 우리 사회를 무시무시한 살육의 현장으로 만들 수 있다.

듣기에는 흥미 있는 이야기였지만 사실은 사건의 원인이나 사건의 진상을 가리는 얘기였다. 애초에 놈들이 빡대를 죽이려 했던 이유, 형사의 아이를 유괴하기까지 한 범죄자들의 숨은 목적 같은 것은 관심에서 멀어졌다.


‘흉악한 인간들이 맹수를 범죄용으로 키워서 살인에 이용한다.’는 사실이 뉴스의 핵심이 됐다.

그리고 ‘맹수를 밀매하고 살상용으로 훈련시키는 놈들을 잡아서 처벌해야 한다.’가 지상목표가 됐다.

묘한 뉴스에 의하면. 수상한 의도로 흥분한 전문가에 의하면···


기철이 형은 뉴스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소에 형보다 센스가 뒤처지는 나였지만 이번에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상한 쪽으로 몰아가고 있어···’ 결국 의문을 풀어준 건 반장님이었다.


“우리 팀이 맡게 될 거다.”

“예?”


뭘 맡게 된다는 거지?

기철이 형과 나는 모두 물음표를 얼굴에 달고 반장님을 주목했다.


“이제 우리는 야생동물 불법 밀매 수사를 하게 될 거야. 강력 2팀은 박대규 애인 죽인 행동대원과 노보형을 찾는 임무를 맡겠지.”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반장님도 잘 아시잖아요. 저런 일에 강력반이 매달리는 건 낭비 아닙니까?”


나의 순수한 질문을 반장님은 부인하지 않았다. 니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 혹시 저 동물 전문가란 사람···”

기철이 형은 의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텔레비전과 반장님을 번갈아 봤다.

“내가 아는 사람이다. 꽤 잘 아는 편이지.”


그렇다면 일부러? 수사의 방향과 대중의 관심을 몰아간다? 가능한 일인가?


“가짜 수사와 진짜 수사가 있다. 우리는 표면적으로는 늑대가 어디에서 수입됐고 누가 늑대를 인간을 공격하도록 만들었는지 찾는 일을 한다.”

“그런 놈은 없잖아요.”

“있을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내가 늑대를 수입하고 훈련시켰다고 자수하는 놈이 나올 수도 있지.”


뭐라고라?

이 너구리 같은 아저씨가··· 진짜 보통 너구리가 아니었나 보다. 그냥 자기가 아는 동물 출신 중간자들을 암암리에 돕는 정도가 아닌 것 같았다.


“짐승이었다가 인간이 된 자들의 정체를 둘러싸고 암투가 벌어졌다. 그래서 동물학 박사가 살해됐고, 증인이 될 수 있는 깡패 부하까지 죽이려다가 결국 난리가 벌어졌다. 기도원에서 깡패 부하 박대규를 해친 건 야생 늑대가 아니라 늑대인간이었다.

이런 수사 결과를 발표할 수는 없잖아.”


그건 그랬다. 끄덕끄덕.


“그래서 우리는 겉으로는 늑대 밀매범을 잡는 수사를 할 거다. 열심히 가짜 수사를 하는 거야. 그러면서 늑대파 돈줄이자 숨은 실세 이승랑에 대해서 파보는 거야. 그놈이 늑대인간 두목이잖아.”

“맞습니다. 하얀 늑대.”

“그놈 정보를 캐다 보면 중간자들 이용해먹는 범죄 조직 실체를 알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노보형도 2팀보다 우리가 먼저 찾을 수도 있지.”

“그게 중요할 것 같은데요.”


나도 기철이 형도 노보형을 먼저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가능성은 적지만 노보형이 강력 2팀에 붙잡혀서 중간자들에 대해서 떠벌리면 일이 어떤 식으로 번져나갈지 예상이 어려웠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할까 얘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반장님이 갑자기 일어났다. 금방 들어온 문자를 확인하면서 곧바로 움직이고 있었다.


“난 가봐야 할 데가 있다.”

“사무실 가셔서 감찰 애들 봐야 되는 거 아니에요?”

“어디 한 군데만 들렀다가··· 나머지는 내일 얘기하자.”


더 말을 붙일 수 없게 반장님은 매몰차게 돌아섰다. 그리고는 뛰는 것 같은 속도로 병원을 빠져나갔다.

기철이 형과 나는 마주봤다. 우리는 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엄청나게 커질 눈덩이를 산정에서 굴려버린 기분이었다.

고구마 줄기처럼 이어진 수많은 벌집을 확 잡아 끄집어낸 것만 같은 불안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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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사냥 중계방송 24.04.24 10 1 12쪽
71 사냥개들 24.04.23 8 1 12쪽
70 왕따는 선량한가? 24.04.18 1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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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당신이 왜 그자와 +2 24.04.11 13 2 13쪽
64 두 가지 대답 24.04.10 12 2 12쪽
63 개를 데리고 걷는 여자 24.04.05 10 2 13쪽
62 축소된 말의 귀 +2 24.04.05 13 3 12쪽
61 밴이 찾아왔다. +1 24.04.03 15 3 12쪽
60 아내가 있는 방 +3 24.04.01 14 3 12쪽
59 아이 없는 숨바꼭질 +2 24.03.29 18 3 12쪽
58 베타 테스트 +4 24.03.27 16 3 12쪽
57 두 개의 그린Green +2 24.03.26 13 4 13쪽
56 아빠의 눈물 +2 24.03.22 19 4 14쪽
55 멀더와 스컬리 +2 24.03.20 13 3 13쪽
54 사슴 소녀의 그림자 24.03.20 12 3 12쪽
53 가녀린 목소리 +2 24.03.19 12 3 13쪽
52 몬순 monsoon 바뀌는 풍향 +2 24.03.15 17 3 13쪽
51 밝은 밤, 어두운 밤 24.03.14 15 3 12쪽
50 사랑과 재채기, 그리고 +2 24.03.12 20 3 15쪽
49 텅 빈 집, 꽉 찬 집 24.03.12 14 3 14쪽
48 무지개 뜬 날 +2 24.03.07 13 3 13쪽
47 내 꿈 꾸지? 24.03.07 14 3 12쪽
46 다시 생각해 +4 24.03.05 21 3 13쪽
» 후폭풍 24.03.04 13 3 12쪽
44 작은 뿔의 종결 24.02.29 16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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