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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inante 님의 서재

강철의 독재자 IN 스팀펑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Rocinante
작품등록일 :
2023.11.04 18:34
최근연재일 :
2024.04.19 07: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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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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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스철케이드

DUMMY

요새 내의 시신 수습을 며칠 동안 지속되었다. 인력은 부족했지만 죽고 다친 사람은 많았다. 마구간의 말들이 날뛰어 부서졌고, 곳곳에 핏자국에는 파리들이 들끓었다. 벌써 알을 깐 구더기가 시체 살을 파먹고 있었다.


부상자들이 요새 청소까지 나서니 회복이 더뎠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모두가 쉬고 싶었지만 일정 부분을 희생하지 않고는 요새를 청소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포로로 잡힌 체스단을 부려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직 이들을 신뢰하기 어려웠다.


카슨이 말을 타고 마을로 돌아가 마을 사람들을 요새로 데려왔다. 많은 희생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무척이나 고무되어 있었다. 지인의 죽음보다 지긋지긋한 체스단에서 해방감이 더욱 큰 모양이었다.


요새의 시신들이 치워지고 핏자국을 닦아내는 게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가자, 사람들은 축제를 벌일 준비로 바빴다. 죽음은 삶의 변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스철케이드는 나무를 잘라만든 새로 만든 십자가 옆에 걸터앉아 있었다. 묘비옆에는 총이 절반쯤 묻혀 있었다. 두 눈앞에 울타리로 둘러쳐서 동물이 훼손하는 걸 막았다. 며칠을 더 공사해야 완벽하게 야생 동물들의 접근을 막을 수 있었다. 멀리서 독수리 울음소리가 들리고 저 멀리에 늑대가 지그시 스철케이드를 바라보다가 다시 등을 돌려 산등성이 너머로 사라지는 게 보였다.


공동묘지에는 새로 판 무덤이 많았다. 체스단 뿐만 아니라 아군도 사상자가 많았다. 한쪽에선 무덤을 파다가 흙을 쌓아 두고 되돌아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 묘비는 나뭇조각일 수도 있었고 큰 돌일 수도 있었다. 어설프게 새긴 이름과 페인트가 남아 있었다. 사람들이 죽은이를 기리는 방법이 저마다 달라서였다.

스철케이드는 마을에서 얻어온 위스키병을 병째로 입에 대고 벌컥벌컥 마셨다. 그렇지 않으면 슬픔이 몸을 지배할 것 같았다.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여기 있을 줄 알았어.” 들로가 랭커스터와 함께 무덤으로 올라왔다.

“레빌리스는 환자들 때문에 못왔어. 이번 전투에 중상을 당한 사람도 꽤 많아서 말이야.”

“그래 바쁘겠지. 레빌리스는 사람을 치료할 때, 가장 레빌리스 다우니 그대로 둬도 될 거야.”


“그렇겠지. 랭커스터가 꽃을 두고 싶다고 해서 데리고 왔어.” 스철케이드는 흘끔 랭커스터를 보았다. 랭커스터는 들판에서 생화를 꺾어 두 손에 가지런히 들고 있었다. 이졸브의 무덤에 꽃을 놓을 심산인 듯했다.


“유감스럽네요.” 랭커스터가 어색한하고 슬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현언할 수 없는 묘한 표정이었다.


“전투하게 되면 인간의 힘으론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지. 난 수많은 전쟁을 해 보았지만 희생이 없을 수는 없었어. 그렇다고 하더라도 친구의 죽음이 익숙해진 건 아니야.”


스철케이드는 또다시 목이 타올라 위스키를 마셨다. 이졸브의 무덤은 체스단 요새를 관찰했던 언덕 위에 만들었다. 볕이 잘 들고 답답하지 않는 땅이었다.

다른 이들의 무덤도 근처에 있었다. 요새 중심부에 임시 울타리를 설치하고 로데오를 준비하는 마을 사람들이 보였다. 성난 말이 몸부림치며 마구간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평생 익숙해지지 않을 거야.” 들로가 들로답지 않는 말을 하길래 스철케이드는 미간 살짝 움직였다.


“그렇겠지. 너도 한 모금 할래?” 스철케이드는 들로에게 위스키병을 넘겨 주었다.


“좋지.” 들로가 병을 받아드는 사이에 랭커스터는 묘비에 조화를 두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중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기쁜가 봐. 저모습을 보니 체스단이 얼마나 많이 괴롭혔는 지 알 거 같아. 사람들은 희생을 잊고 축제 준비로 한창이야.” 들로가 한 모금을 하고 다시 넘겨 주었다. 입술에 묻은 술을 손등으로 쓱 닦았다.


“그 사내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

“하얀 별로 데리고 가야지. 자기 말대로 기계공이면 쓸모가 있을 거야.”


“원래는 체스단인데 살아남기 위해 거짓말 한 거면?” 들로가 의심스러운지 물었다. 스철케이드는깊은 한숨을 쉬었다.


“죽여야 할까?”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글쎄. 지금은 그럴 기분이 들지 않아. 아무런 생각도 하기 싫어. 하얀 별 공장에 가면서 생각해 보자.” 스철케이드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누군가 죽일 기분이 들지 않았다.


“내가 괜한 소리를 했네.” 들로가 슬픈 미소를 지었다. 랭커스터는 분위기가 심각해지자 어쩔 줄 모르고 머뭇거렸다.


“랭커스터 너도 와서 앉아라. 술 한잔할래?” 음악 반주와 웃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아.. 네.” 랭커스터는 위스키를 한 모금 하고 다시 넘겨 주었다. 그리고 독약을 마신 것처럼 인상을 찌푸렸다.


“어떻게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모르겠네요. 저는 먼저 내려갈게요. 그럼 감사했습니다.” 랭커스터는 앉은 자리가 불편한지 인사하고 내려갔다. 그새 취기가 도는지 비틀거리며 언덕을 내려갔다.


“이졸브의 장례식을 제대로 못 해 준 게 미안하군. 총은 그대로 둘거야?” 들로가 무덤을 찬찬히 둘러보다 물었다.


“응, 여기서 저 총을 쓸 사람은 이졸브 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이졸브도 그걸 원할 거야. 친구같이 전쟁터를 누빈 총이잖아?”

요새는 기름 등불들이 달리며 차근차근 밝아져 왔다. 스철케이드의 말에 들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스철케이드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보았다. 하늘에는 별이 무수히 떠 있었다. 별똥별하나가 밤하늘을 스치며 떨어져 내렸다. 스철케이드는 말없이 위스키만 벌컥벌컥 마실 뿐이었다.


스철케이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졸브의 묘비를 방문했다. 술병을 들고 아래를 내려보면 며칠 동안 축제가 계속되었다. 사내들은 아침까지 술에 진탕 취하며 로데오 경기에서 멋들어진 기수들의 이름을 말했다.


말타는 청년들은 흥을 돋구려고 기세 좋게 황소를 타고 버티거나 길들이지 않은 야생마를 타기도 했다. 스프링처럼 튕겨 나갈 것처럼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걸 보면서 관중들이 두 손에 땀을 쥐며 환호했다. 간혹 몇 명은 말등에서 튀어 나가 관객석으로 떨어져 팔이나 다리가 부러졌다.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는 모습에도 관객들은 박수를 치며 웃었다. 부상자는 들 것에 실려 나갔다.


반면에, 뛰어난 카우보이에게는 상금도 쥐여주었다. 관중 사이사이에는 코를 빨간공으로 분장한 광대가 우스꽝스럽게 움직였다. 광대는 기수가 말에서 떨어졌을 때 뿔이나 발굽에 맞지 않도록 말과 소의 주위를 돌리는 역할도 하였다.


“이제 떠날 채비를 마쳤어. 슬슬 일어나서 말에 탈 준비하자 스철케이드.”

“알았어.” 스철케이드는 요새 2층 막사에서 발소리가 들리는 거 느끼며 눈을 떴다. 아직 숙취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눈을 뜨자 천장이 빙글빙글 돌았고 며칠이나 굶은 것처럼 허기가 졌다. 머리맡을 더듬거리자 빈 술병이 바닥에 쓰러졌다.


“환자들은 어떻게 하고?” 스철케이드가 누운 채로 물었다. 레빌리스가 피 묻은 가운을 벗어 쓰레기통에 벗어던지고 몸이 뻐근한지 기지개를 켰다.

“긴급처치는 했으니까 나머지는 하늘에 맡겨야지. 마을 사람들에게 기초적인 간호하는 방법들을 알려주었어. 우리가 언제까지고 요새에 머무를 수도 없고 말이야. 몸은 좀 어때? 요새 통 잠을 잘 못잤잖아?”

“몇시간은 잔 것 같아. 이동하면서 눈을 붙이지. 들로는?” 스철케이드는 하품했다.

“비숍을 감시하고 있어.”

“때리지 않게 들로를 다독여 줘. 내 생각에 비숍이 조금만 신경을 거슬리게 해도 주먹이 먼저 나갈 거야.” 스철케이드는 발을 굴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을 주민들이 짐마차에 물건을 넣어 주었어. 우리가 누울 공간이 부족할 정도로 말이야. 하얀 별 공장에 도착할 때까지 먹을 것과 마실 물은 한동안은 걱정 안 해도 될 거 같아. 말린 육포와 빗물통을 실어 주었거든. 그리고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하면 마을로 찾아오래.” 레빌리스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에 얼굴에 미소를 머금었다.


스철케이드는 정들 마을을 떠나려니 아쉬움이 드는 것 같았다.


“나는 이졸브의 무덤에 들렸다가 다리 쪽으로 갈게. 여태 자리를 뜰 수가 없어서 말이야. 가기 전에 한번 들려야지.” 레빌리스는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스철케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빌리스가 나가고 스철케이드가 막사 밖으로 나섰다. 요새 북쪽의 다리 옆에 들로와 비숍이 서 있었다.



“감사합니다. 스철케이드. 척이 안부를 전해 달래요.” 랭커스터와 카슨이 스철케이드를 안으며 작별 인사를 했다.

“그래 다리 한쪽을 못 쓰게 되었지만 척에게도 잘 살라고 전해 줘.”

사람들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 스철케이드 일행을 환송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철케이드는 마을 사람에게 다가가 한 명이 악수를 하거나 안았다. 같이 전투를 끝낸 오래된 전우처럼 느껴졌다. 술에 너무 취한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들로! 비숍을 너무 경계하지 않아도 돼.”

“그래도 이놈은 체스단이었으니까 일정 부분은 이졸브 죽음에 책임이 있어.”

“알아. 그치만 내가 잘 감시할 거니까. 너무 막대하지는 마.”

스철케이드는 들로에게 거짓말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들로가 통 말을 듣지 않을 것 같았다. 들로는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하고 비숍에게 짐마차 위로 올라가라고 손짓했다.

레빌리스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짐마차에 걸어왔다. 슬퍼해야 될지 모를 복잡한 표정을 보였다. 스철케이드는 레빌리스의 얼굴에서 짙은 슬픔을 느꼈다.


처음 마부석에 오른 건 레빌리스였다. 레빌리스는 마차를 모는 게 슬픔을 잊는 데 도움이 될거로 생각했다. 광활한 평야를 보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 기회였다. 스철케이드는 알았다고 하고 들로 옆에 앉았다.

“경고하는 데 잠자코 따라오는 게 좋아. 너따위와 맞바꾸려고 이졸브를 죽인 게 아니니까. 지금이라도 죽여 버리고 싶은 기분이야.”

“알았어요.” 비숍은 들로의 협박에 스철케이드에게 도와달라는 얼굴이었다. 비숍은 비좁은 마차틈에서 들로와 조금이라도 멀어질 생각으로 자리를 움직여 짐에 달라붙었다.


“들로. 잠이 부족해서 못해서 말이야 눈을 좀 붙일게. 그동안 별일 없을 거지?” 들로는 스철케이드의 피곤한 얼굴을 보고 표정을 풀었다.

“숙취가 심하지? 걱정하지 말고 한숨 자. 여정이 길잖아?”

"네가 비숍을 때릴까봐 걱정이 되서 못자겠다."

"걱정하지 말래도." 들로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스철케이드는 늘어지게 하품하며 레빌리스가 채찍을 후려치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짐마차가 삐걱거리며 좌우로 흔들리는 거 느꼈다. 마을에서는 잘 가라는 외침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푸른 하늘이 보였다.

주기적으로 들리는 말발굽 소리와 좌우로 흔들리는 짐마차가 마치 아이를 재우는 요람처럼 포근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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