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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inante 님의 서재

강철의 독재자 IN 스팀펑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Rocinante
작품등록일 :
2023.11.04 18:34
최근연재일 :
2024.04.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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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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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파스키은

DUMMY

파스키은은 디젤차에서 내려 사샤와 약속한 장소로 걸어갔다. 멀리서 사샤가 등을 돌리고 쪼그려 앉아서 뭔가를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사샤는 정복만 입다가 모처럼 편한 복장이었다.


연노랑색 블라우스에 무릎보다 한 뼘 높은 세일러 치마를 입고 있었다. 윤기 나는 은발은 벛꽃머리핀으로 단정하게 정리하고 블라우스와 색깔을 맞춘 베레모를 비껴 썻다. 한 손에는 작은 손가방 들고 있었다. 사샤가 고개를 돌렸다.


햇볕을 받아 따스하게 빛나는 얼굴에 미소가 피었다. 파스키은은 사샤가 이렇게 예뻤던가 라는 생가이 들었다. 사샤는 한 손에는 네 잎 클로버를 들고 자랑하듯 파스키은에 보여 주었다.


“늦었어! 파스키은. 이것 봐봐 기다리는 동안에 네 잎 클로버를 찾았어. 신기하지?”

“어.. 안경 쓰지 않았어?”

“모처럼 기분을 내고 싶어서. 렌즈 꼈어.” 파스키은은 매번 안경을 쓴 사샤를 보다가 벗은 모습을 보니 어색했다. 사샤가 더 어려 보이고 생기발랄해졌다. 마치 다른 사람과 만난 느낌이라 거리감이 느껴졌지만 한편으로는 설레였다.


“무슨 생각하고 있어?”

“아니야. 옛날 생각 좀 했어 이길로 등교했잖아?”

“그치? 우리 자주 이길로 다녔잖아.”

“맞아.” 파스키은은 감회가 새로웠다. 본가의 동쪽의 시장과 맞닿아 있는 학사관이 모여 있는 여기는 3층 정도로 낮게 건축 되었다. 지하에도 같은 높이로 파내려가 마천루의 학생이 다니는 데에 부족함이 없었고 유사시에 방공호를 겸하고 있었다.


마천루의 아이들은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등학교를 의무교육 10년을 마치고 능력에 따라서 직업전문학교와 대학교로 나뉘었다.


포격을 받을 위험이 있으면 교사의 지도에 따라 아래에서 전투가 끝나길 기다렸다. 작은 성채처럼 보였다. 문은 디젤차 4대가 동시에 출입할 수 있도록 컸고 경비원이 길거리 부랑자나 범죄자의 출입을 막았다. 파스키은은 중앙 정원의 분수를 담벼락 너머로 보았다.


“기억나? 우리 등교하다가 가끔은 샛길로 샜잖아.”

“네가 공부하기 싫다고 놀러 가자고 날 꼬득였잖아.”

“너도 재미있어 했잖아.” 파스키은은 자기탓하지 말라는 투였다.

“나라고 공부하는 게 재미있었는 지 아니? 몇 번 너 따라 샛길로 새다가 엄마한테 걸려서 얼마나 혼났는 줄 알아?” 사샤가 웃었다.


“우리 엄만 안 혼내던데. 어머니가 엄하셔. 하긴 딸이라서 더 혼냈을 수도? 말 나온 김에 얘기하는데 어머니는 잘 계셔?”

“우리 엄마? 잘 계시지. 몇 년 전부터 학계에 발표할 논문을 준비하는 것 같더라고. 교수와 엄마 역할을 하고 계시느라 눈코 뜰세 없이 바쁘시지. 그래서 요즘은 저녁을 스스로 챙겨 먹거나 사 먹어야 하지만 말이야. 어쩌겠어? ”


“건강하시지? 다음에 한번 뵈러 가야겠다.”

“그래 언제 한번 놀러 와. 사실은 엄마가 너 따라서 수도에 가보라고 했는데.”

“수도? 지금은 별로 추천하고 싶진 않지만. 관광지만 떼어놓고 생각해 보면 괜찮아. 마천루의 건축과는 완전히 다르고 사람들의 의복과 남쪽 지방의 날씨, 특색있는 작은 도시들도 많았거든.”


“그래? 나도 가고 싶었긴 한데 마천루를 떠난다는 게 무서워서 말이야. 낯설잖아. 난 낯선거 싫어. 외로운 기분이 들거든. 길도 모르는데 길 잃어버리면 어떻게 해.”

“나중에 수도에 가게 되면 내가 안내해 줄게.”


“그래. 가게 되면 부탁할게.” 파스키은은 검은 쇠창살로 구분해 둔 학사관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좁은 계단에 들어섰다. 예전에는 계단 아래쪽에 작은 구멍이 나 있어서 이쪽으로 몰래 밖으로 빠져나가곤 했다. 학교 수위가 발견하고 막아 버렸지만 몇 주 정도 지나면 어딘가에 또 다른 구멍이 생겨 학생들이 몰래 통로로 이용하곤 했다.



“지금, 이시간이면 하교할 시간인데 생각보다 학생들이 안 보이네.” 파스키은인 교복을 입은 몇 명만 무리를 지어길을 걷는 걸 보더니 의외인 듯 물었다.


“전쟁 중이잖아. 방공호로 통하는 길로 등하교 하게끔 지침이 내려왔어. 말 안 듣는 문제아들 빼고는 지하길로 학교를 다니고 있어.”


“하긴. 언제철혈의 포격이 시작될지 모르니” 파스키은과 사샤는 계단을 내려나와 양옆으로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심어져 있는 길로 방향을 바꿨다. 이 길은 곧장 상업지구로 이어져 있었고 산업지구와 채광장으로도 나 있는 길이었다.


물론 지금은 산업지구로 갈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상업지구의 4~5층에 이르는 지붕은 돔형식과 고딕 형식이 균형감 있게 배치되어 있었다. 물건을 나르는 사람들과 쇼핑하는 사람들이 경쾌하게 걸어갔고 산업지구보다 밝고 깨끗한 인상을 주었다.


“어디로 갈 거야? 계속 걸을 건 아니겠지?”

“난 수족관에 갈 생각이었는데 옛날 기억도 새록새록 나지 않을까해서 말이야. 마침 목도 마르고, 넌 어때?”

“그럴까? 가서 우리가 어렸을 때 시켰던 음료를 마셔보는 거야. 이거 재미있겠다.” 사샤가 얼굴을 가리는 옆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지금도 파려나?” 파스키은은 사샤를 마주 보며 뒤로 걸었다. 눈감아도 왕래할 수 있는 익숙한 길이었다.


“뒤로 걸으면 다친대도.”

“뒤로 걸으면 다친대도.” 사샤가 뭐라고 잔소리 할지 알고, 파스키은이 동시에 대답했다. 사샤가 웃음을 참는 게 보였다. 파스키은도 왠지 모르게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파스키은은 어렸을 때부터 사샤와 알고 지낸 사이었다. 크래프터가와 발리에르 가는 과거부터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가문이었다.


마천루를 옛 조상들이 협력하여 설립하였고 이를 계기로 더욱 밀접한 관계가 되었다. 그래서 전쟁시기를 빼놓고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사샤와 등교길을 같이 다니었다. 가끔은 사샤의 집에서 식사도 하기도 했고 사샤가 본가에 놀러오기도 했다.


어머니와 레오폴드의 성격은 쾌활하고 유복했다. 그사이에서 자란 사샤는 친절하고 상냥했다.


이야기하는 것보다 들어 주길 더 좋아했고, 조용하게 선물을 챙겨 주는 성격이었다. 아직 사회 때가 덜묻어 사람을 잘 믿는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파스키은은 그런 순수함이 좋았다.



파스키은은 학교 정문까지 디젤차를 이용해 등교할 수 있었지만, 중간에 내려 도시를 구경하며 등교하는 걸 더 좋아했다. 절벽 사이에 오밀조밀하게 형성된 도시는 쾌활하고 여러 재미있는 사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공장가들에게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상업지구의 골목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면 물건을 조금 더 싸게 살 수 있는 서민용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길거리는 갖은 천으로 햇빛과 비를 막았고, 푸른색과 노란색 기와로 가건물을 세우고 물건들을 쌓아 놓고 팔았다. 호기심많은 학생들은 학사구역으로 가기 전에 꼭 들릴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그 나이 때 즐길 수 있는 배덕감이 주는 희열감도 느낄 수 있었다.


“수도에서 재밌는 일 없었어?”

“있었지. 지금 기억나는 건. 사냥간 거?”

“사냥? 잔인하게 동물 사냥을 했단 말이야?”

“아니. 수도에서 기술자들이 기계 동물이란 걸 개발했어. 실제 동물모양으로 움직이고 눈이나 팔에 보석을 박아 넣었어. 난 총을 들고 사냥꾼처럼 동물 흔적을 쫓아서 동물을 사냥하고 다녔지. 동물마다 특징이 있었는데 지금 말하기엔 너무 길고 난 표범의 어금니를 쫓아다녔어. 그게 레드 다이아몬드로 되어 있데.”

“레드 다이아몬드는 정말 희귀한 건데. 그래서 표범을 찾았어?”

“찾긴 했는데, 다른 사람이 채어갔지. 바로 코앞이었는데.”

“아쉽겠네.”

“맞아. 사냥도 재미있긴 했지만 너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건 동물들이야. 그 움직임을 봐야 하는 건데. 증기가 뿜고, 냉각수가 흐르고 동력 장치가 움직이는 방식을 봐야 되는 건데. 여자들이 좋아할지 모르겠다. 완전 신기했거든” 파스키은은 입술을 매만지다가 이어서 말했다.


“나중에 마천루에서 축제 할 때 가져올 수 있는지 물어봐야겠다.”

“말로만 들어서는 상상이 안 되긴 하는데 네 얼굴보니 얼마나 재밌는 지는 알 거 같아.”

파스키은은 옛 길을 지나치며 회상에 젖었다. 길고양이들이 빵을 훔쳐 달아나기도 했고, 정육점 주인은 간혹 팔고 남은 훈제 소시지를 손에 쥐어 주기도 했다. 비어 있는 가게 옆에 나 있는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갔다.


“공방장이의 수족관” 이라 쓰이는 간판이 보였다. 문을 열자 위에 달린 작은 종이 울렸다.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 갖은 물품들이 쌓여 있는 탁자 너머로 사샤와 파스키은을 바라보았다.



“어서 오세요. 무엇을 드릴까요?”

“뭘 마실래 파스키은? 난 탄산이 가득한 레몬에이드를 마실거야.”

“난 당연히 닉시콜라지.”

“레몬에이드와 닉시콜라를 앉으신 곳으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천천히 즐겨 주세요.” 파스키은은 예전보다 잡다한 물품이 많아진 공방을 둘러보며 중앙의 수족관을 지나쳐 아래가 내려다보이는 창가 옆으로 자리를 잡았다.


사냐는 수족관의 물고리를 바라보았다. 파스키은이 어렸을 때는 수족관을 들릴 때마다 작은 물고기가 더 생겨나 기계물고기가 새끼를 낳는 줄 알았다. 나중에서야 공방할아버지가 작은 물고기들을 추가로 더 넣는걸 알았다. 물고기는 꼬리를 흔들며 천천히 물속을 유영했다.


“여기는 더 신기한 게 많아졌어.” 사샤가 치마를 정리하며 파스키은 맞은편에 앉았다. 공방장이의 수족관 운치 있게 디저트와 탄산이 섞여 있는 에이드 마실수 있는 곳이었다. 학생들도 많았지만 젊은 남녀들도 많았다. 소근거리는 작은 소음들이 고즈넉한 장소로 만들었다.


움직이는 곰 인형들,투명한 유리배 속의 기계부품이 움직이는 거미들과 여명호를 본따 만든 미니어처들, 황동으로 만든 고양이, 램프가 달린 바이올린 파스키은은 천천히 천장부터 공방을 둘러보았다.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파스키은은 병따개가 따진 닉시콜라를 집어 들었다. 콜라병 안쪽에 닉시 콜라라는 형광빛 글자가 빛에 비췄다. 빨대를 꽂아 넣고 한 모금 마셨다. 사샤는 에이드로 목을 축였다.


“아 시원하다. 살것 같아.” 사샤가 기분이 좋은 듯 웃었다. 햇빛이 들이치자 사샤의 머리카락이 베이지색으로 빛났다.


“역시 가끔은 쉬러 나오는 게 기분전환에 도움이 되는 거 같아. 그렇지 않니? 사람은 아무리 바뻐도 쉬어 줘야 돼. 난 최근 몇달 동안 지하에 갖혀 있느라 죄수가 된 기분이었거든. 그런데 어떻게 하겠어. 전략회의실은 절벽 속에 있어서 바꿀 수가 없는걸.”


“그래? 나는 아직은 그런 기분은 안 들었는데, 오히려 개활지를 지나오면서 죽을 고비를 넘기다 보니 더 안락하다고 느꼈나 봐. 본가이기도하고 말이야. 그래도 이렇게 나들이를 나온 건 잘한 거 같아. 요근래 우울한 일밖에 없었거든. 쥐처럼 자꾸 움츠러들기만 한 일들 뿐이었지.”


“너무 걱정하지 마 잘될 거야. 난 마천루 사람들의 힘을 믿어. 그리고 내가 잘되게 만들거니까.” 사샤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 잘되어야지.” 파스키은도 단정하고 모범생 티가 나는 학생이었으나 사샤에 비하면 한낱 개구쟁이에 지나지 않았다. 여자아이가 더 어른스럽다고 하여도 사샤는 동년배에 비해 눈에 띄게 진중했다.


파스키은은 콜라를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예전에 이곳은 고철 더미에 악취가 나는 쓰레기 장이었다. 광맥가에서 중간지점에 물류지대 필요성을 느끼고 몇년 만에 그 많은 쓰레기를 소각 및 분류하여 재활용하였다. 새삼 인간의 힘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하. 모레부터는 또 일상으로 돌아가야 되겠지?” 파스키은은 이 평온한 분위기를 만끽하고 싶었다. 햇볕은 봄날처럼 따뜻했고 바람은 선선했다.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했다. 황금 같은 시간이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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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67. 파스키은 23.12.28 15 0 11쪽
» 66. 파스키은 23.12.27 9 0 12쪽
65 65. 유니스 23.12.27 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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