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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천일검(通天一劍)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블루치퍼
작품등록일 :
2022.01.17 23:15
최근연재일 :
2022.03.13 21:41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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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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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글자수 :
226,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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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24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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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비현결(秘玄訣)

DUMMY

백리평의 많은 책 중 원영이 손에 놓지 않고 보는 것 은 비현결(秘玄訣)이라는 선도 심법이었다.


그가 백리평에게 가장 먼저 배운 것으로 원래 구결을 암송하고 백리평의 해석을 들으며 외웠었는데 이렇게 책으로 남아 있었는지는 그도 몰랐던 것이다.


'이렇게 책이 있었으면 진작에 넘겨줄 것이지.'


모르는 한자가 많아 외우고 깨치기 힘들었던 것을 생각하니 괜히 백리평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그 순간 그는 이상한 것을 포착했다.


비현결의 표지와 안쪽의 구결이 쓰여진 종이의 질과 색이 달랐다. 책의 안쪽은 분명 두껍고 누렇게 변색된 종이인데 반해 표지는 마치 새것 같았다.


결정적으로 표지의 비현결이라는 세자는 구결을 적은 것과 필체가 달랐다.


'영감이 표지갈이를 한 것인가?'


그는 의문을 가졌으나 곧 사라졌다. 머리 속에선 자연스럽게 백리평이 처음 비현결을 가르칠 때가 떠올랐다.



“선도의 첫걸음은 호흡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사는 생명이 호흡을 이용하여 천지간의 기운을 몸 안에 쌓으니, 그것으로 천지인의 삼재(三才)가 안팎으로 조화를 이루게 된다. 이 선가의 호흡법을 단전호흡이라 하고 무가에서 쓰는 내공심법도 선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숨은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저절로 쉬고 있는 것인데, 그렇다면 누구나 선도를 시작했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그렇지 않다. 사람이 행하는 일에는 지각한 것과 지각하지 않은 것이 있다. 숨은 네 말처럼 지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쉬어지는 것이지. 우리가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는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집착을 숨은 의식(藏識)이라 하고 이것은 혼에 새겨져 있다. 이로 인해 우리가 지각하지 않는 중에도 절로 무언가를 행하기도 하고 마음속에 상(想)이 떠오르기도 하지. 그 장식이 하는 일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호흡이니 선도를 닦는 이는 호흡 하고 있음을 지각함으로써 숨은 의식과 깨어 있는 의식을 하나되게 하는 것이다.”


‘장식이란 건 결국 심리학의 무의식이나 잠재의식을 의미한다.’


그는 21세기의 상식으로 백리평의 가르침을 이해한 다음 되물었다.


“그렇다면 왜 의식과 장식을 하나되게 하는 것입니까?”


“무아무상(無我無像)의 상태로 들어가 진아를 관조하기 위함이다.”


“세상에 나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어찌 참된 내가 있어 그것을 관조한단 말입니까? 또한 그것을 관조하는 것은 내가 아니란 말입니까?”


“나라고 할 것이 없으나 모든 것이 나이며, 우주 삼라만상과 분리 된 나가 없고 참된 나가 곧 우주임을 알게 된다. 이것은 말로 하긴 어려우나 경험 할 수 있는 것이고 이해 할 수 없으나 확연히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이 삼천대도 중 선인이 깨쳐야 할 첫 번째 도이니라.”


원영은 그 후 오랫동안 조석으로 비현결을 운용하여 무상무아의 상태에 드는 것이 익숙해졌다. 다만 그것으로 무슨 이득이 있는 지는 몰랐다. 그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 세상이라 할 수 있는 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나라는 것이 존재한다 느낌만 있는 상태. 그 오묘하고 기묘한 상태가 좋아 비현결에 푹 빠져 들었다.


하지만 오늘 비현결을 펴보니 그것으로 얻을 수 있는 신통(神通)과 이점들이 적지 않았다.


이미 단전에 내공이 쌓이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비현결을 대성하면 백리 밖의 새를 보고 새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또한 하늘을 날수도 있었고 손을 쓰지 않고도 멀리 있는 꽃을 꺾을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 하나하나가 모두 혹할 만한 것이었고 원영 은 자연스레 관심이 생겼다.


‘스승님은 어찌 이런 신통들을 가르쳐 주지 않았을까? 하늘을 날 수 있다고 했으면 더 열심해 연공 했을 텐데.’


그는 이런 생각을 하다 문득 의심이 생겼다.


‘스승님도 사실 하늘을 날지는 못한다. 그저 누구보다 빠르게 달리고 높이 뛸 수 있는 것이지. 사람을 혹하게 하려고 과장되게 적어 놓은 것일까? 생각건대 신통을 달리 가르쳐주지 않은 것은 신통이 거짓이거나 신통에만 관심을 두는 것을 막으려 한 것이겠지.’


그는 집중해서 비현결을 읽기 시작했다. 신통들에 과장이 있다고 해도 익혀두면 분명 강시묘를 찾을 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섯 번을 읽자 대부분을 기억했고 기억나지 않는 부분을 두 번 더 읽자 책 전체를 다 욀 수 있게 되었다.


‘책에 의하면 나의 성취는 3성에 불과하고 신통들은 쉬운 것도 5성은 되어야 할 수 있으니 일단 비현결의 성취를 올리는 것에 집중하자.’


그는 신통을 배울 욕심에 더욱 정진하여 비현결을 운공했고 틈틈이 약초 채취도 했다. 약초를 위해 산을 오르내리며 경공술도 나날이 발전해 갔다.


또한 채취한 약초로 단약도 조제했는데 백리평에게 배운 것이었다. 그는 백리평에게 의술의 전반을 배웠지만 강시의 얼굴로 환자를 볼 순 없었다. 때문에 백리평은 그에게 단약제조를 맡겼었다.


환자를 진찰하고 시침하는 것은 비교적 경험이 중요했으나 단약제조는 경험 보단 약방을 아는 것과 약초를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송으로 건너오며 틈틈히 먹었던 과실과 버섯이 대부분 독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오싹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지난 2년 동안 백리평 대신 단약을 조제했던 그는 숙련된 단약사라고 할 수 있었다. 널어놓은 약초를 바라보던 그는 문득 단약조제를 가르쳐주던 백리평의 모습이 떠올랐다.



“단(丹)이 무엇인지 아느냐?”


“아랫배에 있는 단전을 말씀하십니까?”


백리평은 피식하고 웃었다.


“그 단전은 왜 단전이라고 하겠느냐?”


원영은 단이 붉다는 뜻인 줄은 알았으나 아랫배나 기가 모이는 것과 붉다는 뜻을 연결할 수 없었다.


“왜 단전이라고 부릅니까?”


“너는 아침마다 떠오르는 해를 보며 좌선을 하는데 해가 무슨 색이더냐?”


“그럼 단전의 단은 해를 뜻하는 것이군요.”


“그렇다. 해(日)는 천하 만물을 기르는 근원적인 힘을 가지고 있지. 몸 속의 단전은 천지간의 기운이 모여들고 또 우리 몸 팔만사천세맥 구석구석으로 기운을 보내기도 한다. 생기의 원천이라 할 수 있지. 그런 까닭으로 단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왜 전(田)이 붙은 것입니까? 단호(湖)나 단해(海)는 안 되는 것입니까?”


“하하하하하. 밭이라 생각하면 밭이고 호수라 생각하면 호수지. 바다라고 해도 안 될 것이 없다. 그저 옛사람이 익숙한 것을 쓴 것일 뿐.”


“그렇다면 단전에 모이는 기(氣)는 무엇이고 어떤 모양입니까?”


“기는 쌀알보다 작디 작은 알갱이가 끊임없이 진동하고 있는 것이다. 봄바람처럼 살랑거리고 강물처럼 유유히 흐르며 바다처럼 출렁거린다. 어디든 존재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음과 양, 허와 실, 우연과 필연이 교차할 때 모습을 드러내어 힘(力)을 유발한다.


‘스무고개 같은 설명이군. 기는 파동이 아니라 작은 입자란 말인가?’


그는 잠시 20세기 양자역학이 빛에 대해 던졌던 의문이 생각났으나 접어두었다. 백리평이 다시 새로운 질문을 던져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단약은 왜 단약이라 부르는지 알겠느냐?”


“몸 속의 단전처럼 큰 힘을 지니고 있어 단약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그래. 그리하여 모든 약이 단약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오직 천지간의 기운을 응축하여 가득 담고 있는 것만 단약이라고 부를 수 있고 외단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외단은 결코 뱃속에 내단을 만드는 것만 못하다. 오직 몸 속에 기운을 쌓는데 도움을 줄 뿐, 선도의 본질과는 관계가 없다. 때문에 선인은 외단에 의존하는 것을 마땅히 경계해야만 하나, 몸 속 기운이 약하면 초기의 성장이 더디니 오늘 내게 단약제법을 전수하니 안팎으로 연단하여 용맹정진하거라.”


“예, 스승님.”


“세상에 남아있는 단약제법은 많다고 할 수 없지만 그 중에서도 유익한 것과 해로운 것을 가려낼 줄 알아야 한다. 상고시대의 전승은 오랜 세월 검증되어왔으니 대부분 믿을 만한 것이다. 하지만 후에 어리석은 자들이 단의 이치를 모르고 우매함과 욕심으로 만든 것도 있으니 결단코 조심하여야 한다. 그것들은 약효가 모자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람을 해치기도 하니 말이다. 주로 어리석은 도인들이 단(丹)의 뜻을 붉다는 것으로 오인하여 단약에 주사(朱沙, 오늘날의 황화수은)를 섞은 것들인데 이는 크게 해로우니 결코 먹어서는 안 될 것들이다···.”


원영은 불로초를 찾던 진시황이 진인들에게 속아 수은으로 만든 약을 먹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고 자연스럽게 그 연유를 알 수 있었다.


백리평은 좋은 스승아래서 다양한 분야를 배운데다 강호에서의 오랜 경험을 쌓았기에 매우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었고 원영은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단약제조에 빠져 들었다.






‘스승님이 없으니 확실히 아는 것 위주로 만들어야겠다.’




그는 백리평이 없는 동안 밤낮으로 연공하고 약초를 채취하여 단약을 만들어 먹는 것을 반복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으나 백리평이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천하가 넓다 하나 영감의 경공이면 강호를 종횡으로 오가도 이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는 절벽에서 협곡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백리평의 문하에 들고 백리평이 처음으로 이 깎아지른 절벽을 오르내리는 것을 보았을 때는 소스라치게 놀라 자신과 세상을 의심하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은 자신도 힘들지 않게 절벽을 뛰어 오르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정말 꿈만 같은 세월이구나. 전역을 앞두고 팬데믹으로 많은 나라가 패망하고 나 역시 좀비가 되었다. 그리곤 알 수 없는 경로로 과거를 거슬러 와 배를 숨어 타고 중국까지 오다니···.. 거기다 내가 배운 것들은 다 무엇인가? 천년 전 선도에 의술과 무술이라니···..’


“하아”


“끼르르룩”


원영이 절벽을 바라보며 탄식을 내뱉자 멀리 나는 새 한 마리가 화답하듯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문득 한 가지 걱정이 그의 뇌리를 스쳐갔다.


‘북송의 시기이니 전란이 멀지 않았다···. 언젠가 금나라가 쳐들어 오면 이 곳이 전장으로 바뀐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터. 계속 기다릴 수 만은 없다.’


원영은 백리평에게 도성이 개봉이라는 걸 들었기에 북송대인 것을 알았다.


하지만 북송이 얼마나 가고 언제 금이 요를 멸하고 개봉으로 내려오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조급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자 어느새 참기 힘든 지경에 다달았다.


백리평은 사천의 강시묘를 찾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기에 원영은 반드시 그를 찾아야 했다.


협곡을 내려다 보던 원영은 마음을 굳히고 떠날 채비를 했다. 검은 야행복을 입고 검은 두건까지 덮어 써 얼굴까지 가린 뒤 삿갓을 썼다.


그는 고개를 들어 밤 하늘 처량한 초승달을 바라보다 협곡 사이의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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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신선(神仙)을 찾아서 22.03.13 141 2 12쪽
41 백리평의 처방 22.03.07 104 3 12쪽
40 천산설표(天山雪豹) 모용우 22.03.05 146 1 12쪽
39 흉계 22.03.02 122 2 13쪽
38 결전 22.02.27 127 1 11쪽
37 하늘이 선택한 자 22.02.27 122 3 12쪽
36 남해검선 22.02.27 136 2 12쪽
35 진퇴양난 22.02.27 137 2 11쪽
34 흑검단의 흉계 22.02.21 171 3 12쪽
33 제단을 접수하다. 22.02.20 150 3 11쪽
32 상고대신의 비밀 22.02.13 162 2 12쪽
31 칠정운천도 22.02.03 187 4 11쪽
30 상고시대의 제단 22.02.01 176 4 13쪽
29 자부선인의 유적 22.01.31 173 4 13쪽
28 흑검단주와 상무련주 22.01.31 162 4 12쪽
27 장생오계(長生五戒) 22.01.31 165 4 13쪽
26 자부선인(紫府仙人) 22.01.30 193 4 13쪽
25 첫 살인(殺人) 22.01.30 171 4 13쪽
24 징악(懲惡) 22.01.30 167 5 13쪽
23 거도방 22.01.29 164 2 12쪽
22 허장성세(虛張聲勢) 22.01.29 173 4 12쪽
21 싸움 22.01.29 165 4 11쪽
20 한가장의 비사(悲事) 22.01.29 172 5 11쪽
19 홍운선자(虹雲仙子) 22.01.29 183 5 11쪽
18 도적(盜賊)과 협객(俠客) 22.01.25 193 5 13쪽
» 비현결(秘玄訣) 22.01.24 206 3 11쪽
16 원영 22.01.23 209 3 13쪽
15 천강음혈강시(天剛飮血僵屍) 22.01.23 223 5 13쪽
14 주화입마(走火入魔) 22.01.23 216 3 12쪽
13 후회 22.01.19 228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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