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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룡(旦龍) 님의 서재입니다.

기연 첫날에 무림이 멸망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단룡(旦龍)
작품등록일 :
2023.09.23 06:39
최근연재일 :
2023.11.13 19:20
연재수 :
5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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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0
추천수 :
455
글자수 :
263,236

작성
23.10.01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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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개판이네(2).

DUMMY

사갈파의 안찰사 곽자우.

그는 결코 약하지 않다.


호북을 나누어 먹고 있는 세 거파중 하나의 일원으로 들어가 높은 직책을 따놓은 것만 해도 그랬다.


무당파 제자 둘이 곽자우에게 고개를 숙인 것은 단순히 그가 사갈파의 요직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실력이, 등 뒤에 매달고 있는 귀두도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당장이라도 애송이 둘 정도는 맨손으로도 찜 쪄먹을 수 있는 실력이 뒷받침 되었기에 이런 그림이 나온 것이다.


그런 곽자우가 보기에 난입한 청년은 아무것도 아닌 범인이었다.


고수에게서 느껴지는 혁혁한 기운이 청년에게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하지만 곽자우가 지금까지 살아남고 사갈파의 요직까지 오른 것은 실력 덕분만은 아니었다. 눈치를 살필 줄 알았기 때문이다.


눈치에는 위아래가 없다.


본단으로 돌아가면 높은 분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문제를 일으킬 법한 부하는 사정없이 목을 쳤다.

또 공을 세울 떼도 놓치지 않았다.

방금처럼 말이다.


사갈파의 이름은 이미 무당보다 앞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호북인들의 머릿속에 남존무당의 이름이 가지는 인상은 적지 않았다.


그런 무당이 직접 사갈파의 앞에 고개를 숙였다는 소문이 퍼지면, 무당이 확실하게 쇠락했다는 사실과 함께 호북의 서북부가 정말로 사갈파의 손아귀에 있다는 사실이 더욱 공공연해질 것이었다.


사소하지만 사갈파의 이름을 올리는 데 공로를 세우게 되는 것이다.


곽자우는 처음 무당파가 대우현에 찾아왔다는 말을 들었을 시점부터 이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머리 돌아가는 속도가 빠르고 대처가 기민한 자였다.

곽자우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뭣도 없어보이긴 하지만.’


태도를 보아하니 심상치 않았다.


세상이 마도천하가 된 이후 심산유곡에서 은거기인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어디 한둘이던가?

그런 은거기인 중 하나가 후계를 키우고 있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었다.


모든 생각을 정리한 곽자우는 조심스럽게 청년의 옆으로 다가가 물었다.


“실례지만 소형제, 어디에서 오셨는가?”

“동굴에서 왔는데요.”


역시나.


곽자우의 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부러 웃으면서 청년을 대했다.


“하하, 먼 길을 왔겠구려. 고생이 많으셨겠소.”

“정말이라니까요. 내 참. 여기까지 오는 길에 발견한 민가들은 전부 텅텅 비어서 몇 번이나 헛걸음을 했는지 몰라요.”

“그러셨소?”

“네. 그래서 어서 빨리 음식을 좀 먹고 싶네요. 제가 요리는 할 줄도 모르는데 몇 년동안 대충 구워먹기만 했거든요.”

“그것참 고역이었겠군.”


곽자우가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객잔의 주인장을 향해 손을 들었다.


“이 소형제에게 식사를 가져다 주시게.”

“알겠습니다. 안찰사 어른.”


주인장은 고개를 숙이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곧 맛있는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괜찮으시겠어요? 전 지금 돈이 없는데.”

“먼 길을 온 객인데 돈이 없다고 내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이번에는 내가 대접할 테니 부담 가지지 말고 먹게.”


홍광은 생각했다.


역시 사람은 고수가 되고 봐야 한다.


거지 시절에는 쉰밥도 못 얻어먹어서 밥 먹듯이 굶었는데, 얼굴도 처음 보는 아저씨가 밥을 사준단다.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별 말씀을.”


훈훈한 대화가 한 차례 오가고,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홍광이 물었다.


“그쪽이 안찰사에요?”


곽자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황궁은 망한 걸로 알고 있는데?”

“하하, 물론 황궁의 안찰사는 아니네. 하지만 내가 지금 속한 조직이 호북 일대를 관리하고 있기에 그럴 듯한 직책을 받은 것이지.”

“아아.”

“그럼 이번에는 이쪽이 묻고 싶네만.”


곽자우가 자리에 마주앉으며 물었다.


“방금 개판이라고 한 것 같은데, 그건 무슨 뜻이었나 소형제?”


만약 자신의 감이 맞다면, 곽자우는 실력으로 청년을 이길 자신은 없었다.

그러나 지략이라면 달랐다.


은근하게 자신의 뒷배가 호북 일대를 관리할 정도로 거대하다는 것을 언급하고 상대의 무례를 지적한다.


명분도 있고 실체도 있다.

그러니 사과까지는 아니더라도 체면 정도는 지킬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사파의 일이라는 게, 체면이 떨어지면 전부 끝장이니까. 두려움을 받지 않는 사파는 날이 없는 검만큼이나 쓸모가 없는 법이다.


그런데 홍광은 전혀 곽자우의 생각처럼 움직여주지 않았다.


“아, 그건 진짜 개판 같아서 그랬어요.”

“응?”

“제가 동굴에서 좀 오래 있다가 나왔거든요. 그때만 해도 무당이 구파일방이라고 알아주는 문파였는데, 지금은 웬 사파 나부랭이한테 고개를 숙이잖아요. 심지어 그 사파는 자기가 안찰사라고 그러고.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거죠.”

“······.”

“그래요 뭐. 강호는 약육강식이니까. 그런데 객잔 주인까지 무당파 제자를 무시하더라고요. 호북 사람이면 무당한테 받은 게 적지 않을 탠데. 그래서 개판이구나 했죠.”


홍광의 말에 주방에서 요리하던 객잔주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허겸과 공진 사형제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어렸다.


그리고 동시에 곽자우의 얼굴에 노기가 피어올랐다.


“소형제, 내 소형제를 생각하여 음식도 제공하고 호의를 베풀었으나. 소형제는 지금 사갈파를 모욕한 거요?”

“제가요?”

“아니라고 발뺌할 셈이오?”

“당연하죠. 사파를 사파라고 불렀을 뿐인데. 그래도 거슬렸으면 죄송해요. 제가 속마음을 읽는 노인네랑 좀 오래 지냈거든요. 그러다보니 솔직하게 말하는 나쁜 버릇이 생겨서요.”

“······백 번 양보해서 사갈파가 사파의 형태를 띄고 있다고 쳐도, 방금 소형제는 본파의 이름 앞에 나부랭이라는 말을 붙였잖소. 그건 명백한 모욕이오.”


그러자 홍광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아저씨한테 그런 건데 그게 어떻게 그쪽 세력 전체에 대한 모욕이에요. 아저씨에 대한 모욕이지. 아니면 아저씨가 사갈파 대장이에요? 그럼 별로 안 무서운데.”


곽자우의 눈썹이 움찔했다.


당장이라도 그가 귀두도를 뽑아들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맹랑한 발언이었다. 실제로 주변 자리에서 식사중이던 이들은 모두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곽자우는 섣불리 출수할 수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마지막 말 때문이다.


‘별로 안 무섭다니.’


확실하게 자신보다 윗선의 고수라고 자신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발언이었다.


예상치 못한 패기에 곽자우가 어쩔 줄 몰라하는 동안 객잔주가 눈치껏 대화가 비는 틈을 타서 음식을 대령했다.


“오오!”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음식 본 홍광의 눈이 돌아갔다.

동굴에서는 생선이나 고기는 구할 수 있어도 조미료만은 구할 수 없었다.


맵고, 달고, 짠 맛이 결여된 음식을 무려 칠 년 동안이나 먹다가 양념이 팍팍 첨가된 음식들을 보니 이것이 고기가 아니라 돌멩이라도 맛있을 것 같았다.


홍광이 걸신들린 것처럼 상판 위의 것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거의 접시까지 먹어버릴 기세였다.

혀가 즐겁다.

양념들이 혀 위에서 한타방 춤사위를 벌인다.


“맛있는가?”

“네. 엄청요.”


곽자우의 말뜻은 ‘이 험악한 분위기에 음식이 넘어가냐’는 물음이었지만 홍광은 눈도 깜빡하지 않고 대답했다.


입안에 한아름 욱여넣은 음식을 꿀꺽 삼킨 홍광이 미처 못한 말을 이어갔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 사부님이 제일 강조해서 가르친 것중 하나가 나대지 말라는 거였거든요. 아저씨도 저도 피차 피곤할 일 만들지 말자고요. 간섭 안 할테니까 하던 거 마저 하세요.”

“어?”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머리를 팽팽 굴리던 곽자우가 자기도 모르게 되물었다.


그러나 곧 납득했다.

자신에게 나쁠 게 없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음. 그러지. 소형제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곽자우는 떨떠름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러모로 석연찮은 부분은 있었지만 어쨌든 저 청년이 먼저 손을 대지 않겠다고 말한 형태였다.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켰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거라도 챙겼으니 정체모를 고수와 괜한 분란 만들지 말고 재빨리 발을 빼는 것이 옳았다.


심지어 저 고수를 만들어낸 스승까지 뒷배에 있다고 가정하면, 명확하게 대립해야 하는 이유라도 있지 않은 한 사갈파 사사장이 와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또 이상하게 꼬이기 전에 빨리 끝내자.’


성질대로라면 무당파의 두 사형제를 좀 더 가지고 놀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좋은 꼴 못볼 것 같았다.


“크흠. 그런 고로, 무당의 소형제들은 이만 물러가시오. 이것이 무례를 저지른 불청객에 대한 이 곽 모의 마지막 예우요.”


그 말에 반쯤 넋이 나가 상황을 바라보고 있던 공진과 허겸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공진이 허겸의 옆구리를 살짝 찔렀다.


“가시죠 대사형.”


이번에는 허겸도 군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령 자신들이 곽자우의 가랑이를 긴다 해도 그는 돈이나 의원을 지원해주지 않을 놈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더는 가능성이 없다.


이제 사갈파의 영역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다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호북 남부로 향하자니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막내가 죽어버린다.


빠져나갈 길 없는 사면초가였다.

남은 방법은 본산으로 귀환해서 막내의 죽음을 곁에서 지키는 수밖에 없었다.


이제껏 흔들린 적 없던 허겸의 표정이 처음으로 구겨졌다.


“대사형.”

“알고 있다.”


그대로 객잔을 빠져나가려던 허겸이 잠깐 멈춰서서 홍광을 바라봤다.


“······본래 제 입으로 했어야 할 말을 이름도 모르는 소협의 입을 빌렸습니다. 기회가 생긴다면 이 빚은 반드시 갚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허겸이 포권지례했다.


그러고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개와 같은 모습으로 등을 돌렸다.

그 뒷모습을 보던 홍광이 입을 열어 그들을 멈춰세웠다.


“잠깐만요.”

“예?”

“듣자하니 사제가 독초를 먹은 것 같던데 맞나요?”

“그, 그렇습니다만.”


허겸의 눈동자가 커졌다.

곽자우의 눈썹이 움찔했다.

좌중이 술렁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홍광이 처음부터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즉, 곽자우의 기감을 피해 숨어서 들었거나 아니면 멀리서도 말소리가 들릴 만큼 감청력이 말도 안 되게 좋다는 건데, 어느쪽이든 상상 그 이상의 고수라는 의미였다.


추측이 현실로 화하는 순간이었다.


이어서 홍광이 먹던 음식을 꿀꺽 삼키고 씩 웃으며 말했다.


“사실은 제가 칠 년 전까지만 해도 개방도였거든요.”

“개, 개방 말씀이십니까?”


놀라운 말은 아니었다.


마도천하가 도래하기 전에는 구주 곳곳에 퍼져 있는 개방도의 숫자가 무려 십만이었으니. 황실의 병력 숫자와 맞먹는 수준이었다.

그러니 살아남은 개방도가 어디 있다고 해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지만······.


“아!”


허겸이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이 탄식했다.


개방 거지들은 동냥밥이 부족한 날에 마냥 굶지는 않는다. 나무껍질이나 근처의 풀을 뜯어 먹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개방 자체에서도 거지들이 혹여 독초를 먹고 죽는 일이 없도록 독초의 종류와 해독법을 만들어 분타마다 배포했다. 무림에 관심이 있는 자라면 누구나 아는 상식이었다.


사결개만 되어도 희소한 독초, 해독초에 대한 정보를 손바닥 들여다 보듯 꿰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했다.


게다가 이만한 실력의 개방도라면?


“소, 소혐!”

“가요 가. 그렇잖아도 구파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했거든요. 잠깐 이것만 마저 먹고······”


홍광은 접시 위의 음식들을 마저 흡수하기 시작했다.

곧 배가 거북이 등딱지마냥 볼록해진 홍광이 곽자우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자~알 먹고 갑니다. 헤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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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이젠 거지한테 빌어먹네(2). +1 23.10.10 373 12 12쪽
18 이젠 거지한테 빌어먹네(1). +3 23.10.09 410 8 12쪽
17 누구냐, 너(3). +1 23.10.08 417 10 12쪽
16 누구냐, 너(2). +1 23.10.07 410 11 12쪽
15 누구냐, 너(1). +1 23.10.06 436 10 11쪽
14 화무십일홍이라더니(3). +1 23.10.05 435 10 12쪽
13 화무십일홍이라더니(2). +2 23.10.04 449 11 12쪽
12 화무십일홍이라더니(1). +1 23.10.03 506 14 12쪽
11 개판이네(3). +1 23.10.02 506 15 11쪽
» 개판이네(2). +2 23.10.01 537 15 12쪽
9 개판이네(1). +1 23.09.30 598 15 12쪽
8 그릇이 큰 거지가 밥도 많이 얻어먹는다(4). +3 23.09.29 576 18 12쪽
7 그릇이 큰 거지가 밥도 많이 얻어먹는다(3). +2 23.09.28 610 17 12쪽
6 그릇이 큰 거지가 밥도 많이 얻어먹는다(2). +2 23.09.27 672 15 12쪽
5 그릇이 큰 거지가 밥도 많이 얻어먹는다(1). +3 23.09.26 732 14 12쪽
4 기연과 마도천하(3). +2 23.09.25 764 16 11쪽
3 기연과 마도천하(2). +2 23.09.24 875 18 12쪽
2 기연과 마도천하(1). +3 23.09.23 1,141 24 12쪽
1 낭인들(0). +3 23.09.23 1,523 26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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