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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편한인생

시한부 화화공자의 기묘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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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편한인생
작품등록일 :
2024.05.26 09:33
최근연재일 :
2024.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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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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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글자
19쪽

29. 대가代價(2)

DUMMY

제갈염은 다탁을 거칠게 내려쳤다.

눈썹을 잔뜩 찌푸린 채로 제갈소소에게 물었다.

“그 아이가 사마司馬가의 여식이라는 게 사실이더냐!”

제갈소소는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세가에 전서를 보내 확인한 사실입니다. 사마가주의 후처 소생의 이름이 사마소혜라 합니다.”

“허허, 이런 우연이 있나. 그리 찾던 사마가주의 아이가 소주의 기원에 있었다니.”

눈을 빛내는 제갈염에게 제갈소소가 말했다.

“삼공자가 의식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래? 잘됐군. 깨어나자마자 좋은 소식을 전하게 되었으니.”

“소혜 그 아이를 세가로 들이신다는······.”

“관과의 문제도 해결되었으니 약조를 지켜야겠지.”

뻔뻔스러운 제갈염의 말에 제갈소소조차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을 굳힌 제갈소소가 고개를 저었다.

“장로님, 그건 아니 될 말씀이세요. 그리되면 두 번이나 말을 바꾼 셈이 되니 삼공자가 우리 세가를 어찌 보겠어요.”

제갈염이 차가운 눈으로 제갈소소로 노려봤다.

“입조심하거라. 내가 무슨 말을 바꿨다는 것이냐. 순리대로 일을 풀어가겠다는 것뿐이다.”

“그것이 어떻게 순리인가요. 장로께서 그리 말씀하신다고 삼공자나 독고세가에서 받아들이겠습니까? 제가 본 삼공자는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거예요.”

“닥치거라! 세가를 대표해서 내린 결정이다.”

제갈염의 호통에 움찔하긴 했지만, 제갈소소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건 우리 세가의 결정이 아닙니다. 장로님의 독단이지요.”

“우리에게 먼저 청을 넣은 것은 독고세가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이제 세가로 입적이 가능해진 만큼 사마가의 아이를 데려가면 그만이야.”

제갈소소는 냉랭한 얼굴로 제갈염을 바라봤다.

“정녕 세가를 웃음거리로 만드실 셈이세요?”

인상을 구긴 제갈염이 으르렁거렸다.

“소소! 네가 삼공자 놈과 어울리더니 감히 내 명을 어기고 독고세가의 편에 서겠다는 것이냐!”

“장로님, 아무리 뭐라 하셔도 이건 아닙니다. 세가에 있는 그대로 사실을 알리고 가주님의 결정을 구하도록 하겠어요.”

“어림없는 소리! 사마가의 여식이 갖는 의미를 네가 모르는 것이냐!”

고분고분하던 제갈소소가 뜻을 굽히지 않는 모습을 보이자, 제갈염이 눈을 부릅떴다.

“이 시각 이후로 네 거처 밖으로의 출입을 금할 테니 그리 알거라. 이는 장로로서의 명이니 어길 시 가법에 따라 처단할 것이다.”

“장로님!”

“시끄럽다!”

제갈염은 옷자락을 거칠게 쳐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실을 빠져나가던 제갈염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행여라도 허튼소리를 지껄였다가는 가법 이전에 내 직접 널 엄히 다스릴 것이다. 공연한 짓을 했다가 내 손속을 야속하다 탓하지 말거라.”

제갈염이 빠져나갔음에도 제갈소소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하기 어려웠다.

소매에 감춰져 있는 제갈소소의 손은 온 힘을 다해 움켜쥐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아니, 이대로는 안 돼.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 전에 세가에 알려야 해.’

결심을 다진 제갈소소는 다실을 나섰다.



*



훌쩍 하루가 지났다.

당소백이 찾아왔었으나 의외로 별말 없이 맥만 짚어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양하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려는 당소백에게 독분이 담긴 주머니를 돌려줬다.

이유야 어쨌든 내 의중을 파악해 일을 처리해 준 것에 대한 감사도 전했다.

당소백도 꼬치꼬치 따져봐야 피차 피곤해질 뿐이라는 걸 아는 모양이었다.

당소백은 피식 웃으며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날 바라보는 당소백의 눈빛은 달라져 있었다.

철부지 어린애 보듯 하던 모습은 사라졌다.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하고 싶은 말을 삼키기도 했다.


덕삼이에게 이런저런 얘길 듣고 두 번이나 깜짝 놀랐다.

이틀이나 잠들어 있었다는 사실에 한 번, 독고명이 날 구하러 왔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다행히 나머지는 내 예상과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

안찰사 놈은 죽었고, 나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는 얘기는 없다고 한다.

하긴 절도사가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을 거다.

아름다운 퇴장이 가장 안 어울리는 곳이 정치판이다.

그 바닥 생리는 둘 중 하나다.

잊히거나 지워지거나.

덕삼이가 주워섬긴 저간의 사정으로 봐서 대체로 바람직한 마무리다.

한 가지만 빼고.

찝찝했던 게 나로 인해 누명 아닌 누명을 쓴 호조영이란 놈인데, 절도사가 목을 날려버렸다고 한다.

자세한 사정이야 알 길이 없다.

일을 난장판으로 만드려면 살아 있는 편이 낫다.

당장은 눈엣가시가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목을 날린 절도사가 다른 꿍꿍이가 있다면 피곤해 질 수 있다.

이런 건 일이 터지고 나서 걱정해도 충분하니 묻어두면 되고······.

고개를 돌려 웅크리고 있는 비휴를 바라봤다.

그나저나 먹깨비 이 자식은 언제까지 자려고 하는 걸까?

어느 순간 내 옆에 나타난 녀석은 잠만 쿨쿨 자고 있다.

제법 덩치가 커져 이제는 근 손바닥 반만 하다.

반지르르하던 털이 푸석이는 걸 보면 나 때문에 고생깨나 한 모양이다.

몸을 말고 자는 녀석의 등을 슬그머니 손가락으로 쓸어줬다.

꿈틀거리며 졸린 눈을 뜬다.

빌어먹을.

흑요석처럼 까맣던 눈동자에 또 빨간 점이 생겼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저번보다는 덜 심각해 보인다는 점이었다.

두어 번 눈을 끔뻑인 먹깨비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이 자식 때문에라도 몸을 함부로 굴리는 건 삼가야겠다.

모산파 막경이란 노파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이 녀석하고 나는 운과 명을 함께 한다고 했던 말이.

한마디로 운명공동체란 소리다.

뒤집어 말하면 내가 잘못되는 경우뿐만 아니라 이 녀석에게 문제가 생겨도 내가 절단난다는 말이 된다.

잠깐만.

그럼 이놈이 성장하면 나도 성장하는 거 아냐?

잠시 잠깐 내 몸을 살폈다.

빌어먹게도 그건 아닌 모양이다.

처음 이 몸뚱이에 깨어났을 때보다 더 엉망이다.

명도 짧고, 몸뚱이도 엉망이고, 화화공자라는 멸칭을 달고 사는 것도 모자라 이리저리 짐짝 취급을 당하는 꼴이라니······, 참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신세 한탄을 집어치우고 앞으로의 일을 고민할 때 유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자님, 잠시 안으로 들겠습니다.”

“그래, 들어와.”

조심스러운 몸가짐으로 들어온 유하가 예를 올렸다.

“제갈세가의 소소 아가씨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대번에 인상이 구겨졌다.

왜 왔지? 또 헛소리를 지껄이러 왔나?

입맛을 다시며 유하에게 물었다.

“너, 몸이 안 좋으면 쉬도록 하고, 그렇게 예를 차릴 필요도 없어. 편하게 해, 편하게.”

“신분의 고하가 엄연한 데 제가 어찌······.”

“내가 불편해서 그래. 내가.”

열 댓살 먹은 여자애가 사극에 나오는 중전마마 톤으로 말하니 뭔가 불편한 옷을 입은 느낌이다.

소주를 떠나기 전에 유하 문제도 정리를 해주자.

난처해하는 유하를 보며 말했다.

“유하야, 손님은 드시라 전하고, 넌 나중에 나하고 따로 얘기 좀 하자.”

“알겠습니다, 공자님.”

유하가 물러나고 잠시 뒤에 제갈소소가 안으로 들어왔다.

“몸은 좀 어떠세요?”

“제갈 장로님 덕분에 아주 좋습니다.”

슬쩍 비꼬아 봤다.

발끈 할 줄 알았던 것과는 다르게 제갈소소는 입술을 깨물며 미안한 내색을 비췄다.

심지어 귀에 건 귀고리까지 빼고 제대로 예를 취하며 사과한다.

“세가를 대신해 독고세가의 삼공자께 양해를 청합니다.”

어째 느낌이 싸하다.

우선 무엇에 대한 것인지가 없는 데다, 양해라는 단어가 묘하게 걸린다.

굳은 얼굴로 물었다.

“쉽게 대답할 문제가 아닌 거 같은데, 내가 과민한 걸까요?”

“그게······.”

역시 뭐가 더 있다.

“잠시 기다려 주세요. 단순히 병문안을 오신 게 아닌 걸로 보이니 제대로 얘길 나누도록 하죠.”

유하를 불러 제갈소소를 다실로 안내하라고 일렀다.

입술을 씹으며 물러나는 제갈소소를 눈에 담고 옷을 갖춰 입었다.

꼬락서니가 제갈염이 또 무슨 염병을 하는 모양이다.



*



제갈소소는 눈도 마주치지 못하며 상황을 설명했다.

말문을 여는 데도 시간이 걸렸지만 갈수록 작아지는 목소리가 종래에는 들릴락 말락 하기까지 했다.

절로 나오는 한숨을 내쉬었다.

말을 마친 제갈소소도 덩달아 한숨을 내쉰다.

“소저 말대로라면, 제갈 장로께서 생각하시는 순리라는 게 소혜를 데려가는 것이란 얘기군요.”

“소혜나 삼공자가 원하지 않는다면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세가에 전서로 연통을 넣었으니 곧 세가에서 답이 올 것입니다.”

웃기지도 않는 상황에 기가 찼다.

어이가 없는 건 둘째 치고 도대체 제갈염이란 인간 자체에 대한 혐오를 떨쳐낼 수가 없었다.

난 싸늘한 눈으로 제갈소소에게 물었다.

“중요한 걸 빠뜨린 것 같은데, 말할 생각이 없으신가요?”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가장 중요한 ‘이유’가 빠졌습니다. 왜 소혜를 데려가려 하는지에 대한 이유요.”

흠칫 놀라는 제갈소소에게 못 박았다.

“적당히 감싸거나 두루뭉술하게 얘기할 생각이라면 입도 뻥긋 마세요. 이미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난 상태니까.”

떨리는 숨을 내쉰 제갈소소가 입을 열었다.

“소혜가 사마가주의 영애이기 때문이에요.”

“그게 무슨 소리죠?”

“우리 세가와 사마세가의 관계를 아시나요?”

관계? 당연히 모르지.

언뜻 떠오른 건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아낸다(死孔明能 走生仲達)’ 정도가 전부다.

솔직하게 고개를 저었다.

“모릅니다.”

“사마가와 우리 세가, 이 두 가문은 추구하는 방향은 같았지만 걷는 길은 달랐죠.”

정색하며 제갈소소를 바라봤다.

“내가 소저께 물은 건 사정이 아니라 이유일 텐데요.”

“하남성에는 아직도 사마세가를 따르는 세력이 꽤 돼요. 특히나 낙양에서의 사마세가의 입지는······.”

“소혜를 데려다 그들을 포섭할 명분으로 삼으시겠다?”

“꼭 그런 뜻만은 아니에요.”

진짜 오만 정이 다 떨어지네.

이건 제갈소소에게 화를 낼 일이 아니라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어째 영 께름칙하다.

제갈염이 무리하는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아무리 철면피라도 위신과 체면이 숭덩 깎여 나가는 짓을 서슴없이 할 리가 없다.

그것도 같은 세가 사람인 제갈 소소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말을 바꾸는 이유로는 너무 빈약하다.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 제갈소소에게 물었다.

“소저께 묻겠습니다. 대책도 없이 제갈 장로님의 의중을 제게 밝히신 건 아닌 거 같은데, 내가 뭘 어떻게 하길 바라는 겁니까?”

“세가에서 연통이 오면 장로님을 설득할 수 있을 테니 그때까지만 장로님을 만나지 말아주세요. 소혜도 못 만나게 해주시고요.”

제갈소소는 결연하기까지 한 표정을 짓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나름 큰 결심을 하고 제갈염에게 반기를 든 것 같다.

어? 뭐가 좀 이상한데?

“만에 하나 제갈 가주께서 제갈 장로님을 지지하신다면 어쩌시겠습니까?”

제갈소소는 정색했다.

“가주께서는 절대 그럴 분이 아니세요.”

“그 말에 목숨을 걸 수 있습니까?”

흠칫한 제갈소소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네.”

절로 나오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내 얼굴에 못마땅한 시선이 꽂힌다.

“삼공자, 혹시 내 말을 못 믿겠다는 건가요?”

“아뇨. 믿어서 문젭니다.”

눈살을 찌푸린 제갈소소가 입매를 비틀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죠?”

“제갈 가주의 의중을 과연 제갈 장로께서 소저만큼도 모를까요?”

순간 제갈 소소의 낯빛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그, 그건······.”

“다른 걸 다 떠나서 제갈 장로께서 이렇게 억지에 가까운 일을 고집하신 적이 또 있었습니까?”

“엄한 분이긴 했지만, 이 정도는······.”

제 얼굴에 침 뱉는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제갈소소는 얼른 입을 닫았다.

역시 뭐가 있다.

그것도 제갈염이 체면이나 위신 따위를 걷어찰 만큼의 중요한 이유가.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부터 제갈 장로님과 나눈 대화를 토씨 하나 빠뜨리지 말고 내게 얘기해 봐요. 목숨을 걸 정도로 확신한다는 제갈 가주님께서 소저 생각과 다른 결정을 하실 수도 있으니까.”

“네?”

눈살을 확 구기고 똑바로 노려보며 재촉했다.

“설마 목숨을 걸겠다는 거, 농담이었습니까?”

몰아붙이는 기세에 눌렸는지 제갈소소는 떠듬떠듬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처음에 소혜의 이름을 듣고 세가에 알려 확인한 것부터 말씀 드렸어요, 그리고······.”

사마가주의 딸이라는 게 무슨 연유로 제갈염의 마음을······.

이어지는 제갈소소의 이야기를 듣다 문득 떠올랐다.

아! 맞아!

제갈염은 새벽같이 쳐들어왔을 때 이런 말을 했었지.

사마가의 간자 하나가 진축을 파괴하려다 실패해 진축이 망가졌다고.

“소저, 제갈세가의 비고를 방비하는 진에 문제가 생긴 것에 제갈 장로님의 책임이 있습니까?”

젠장, 정답이네.

휘둥그레진 제갈소소 눈만 봐도 이 빌어먹을 영감탱이는 진이 잘못된 데에 큰 책임이 있다.

산술 문제를 가지고 장난질 치며 심안인지 노안인지를 가진 사람을 찾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싸질러 놓은 똥 치우는 심정으로 웃기지도 않는 짓을 하고 다니는 거였다.

“제갈 장로께서 이런 말을 하더군요. 십여 년 전에 사마세가의 간자 때문에 제갈세가 비고祕庫가 잘못됐다고. 혹시 그 일에 대해 아십니까?”

제갈소소는 당황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 일은······.”

뭐지? 왜 이렇게까지 당황하지?

이미 제갈염에게 들었다고 털어놓고 묻는 건데 반응이 과해도 너무 과하다.

유심히 제갈소소의 얼굴을 들여다봤는데, 단순히 당황만 하는 게 아니다.

입술까지 깨물며 시선을 피한다.

이거, 이거 자주 보던 익숙한 표정이다.

보통 가까운 누군가의 명백한 잘못을 덮을 때 보이던 죄책감이 담긴 표정이다.

“제갈 장로 말고 누가 또 관련이 있군요, 그것도 소저와 아주 가까운 누군가와.”

제갈소소는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질겁했다.

누굴까? 제갈소소 오빠? 아니면 아빠? 설마 엄마는 아니겠지?

눈살을 찌푸리는 날 보며 제갈소소는 부랴부랴 표정을 수습했다.

하지만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내가 아니다.

“세가 내부 사정이라 말하기 곤란하다면 소저 스스로 연관성을 떠올려 보세요. 비고의 절진, 제갈염 장로, 소저가 숨기는 누군가, 사마가의 간자와 사마소혜.”

한껏 인상을 구긴 제갈소소는 분주하게 머리를 굴리는 듯했다.

생각하는 걸 돕기 위해 키워드를 더 던졌다.

“세부적인 것에 집착하면 안 됩니다. 딱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판단하세요. 관계와 필요성.”

제갈소소는 눈까지 감고 궁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답을 찾지는 못하는 걸로 보였다.

“아니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는 걸 뒤집어서 생각해 봐요. 예를 들어 진축이 망가진 게 아니라거나 간자가 아니었다거나······.”

“아······!”

눈을 번쩍 뜬 제갈소소는 꼭 움켜쥔 손을 부들거렸다.

뭔가 찾은 거 같은데 입을 열지는 모르겠다.

설마 간자가 아닌가?

입술까지 질끈 깨문 제갈소소는 떨리는 숨을 내뱉었다.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제길, 답답해서 기절하시겠네.

돌아가는 꼴을 보니 확실히 뭐가 있긴 한데, 듣기는 틀린 것 같다.

안 되겠다.

일단 제갈염이 움직이지 못하게 시간을 벌어두자.

제갈소소가 말하지 못하는 일이라면 제갈염의 입으로 들으면 된다.

나는 숨을 고르고 제갈소소를 똑바로 바라봤다.

“소저, 소저는 아직도 제갈 장로께서 단순히 사마세가의 이권 때문에 소혜를 입적시키려 하신다고 아직도 확신합니까?”

제갈소소는 눈을 질끈 감았다.

“여전히 목숨을 걸고 확신할 수 있나요? 제갈가주께서 소저의······.”

“그만! 제발 부탁이니까 그만 해요!”

아차!

끝까지 밀어붙이던 옛날 버릇이 나왔다.

어쨌든 당장 필요한 건 알았다.

제갈염은 더러운 꿍꿍이가 확실히 있다.

제갈소소의 도움이 필요해 마음을 추스르길 기다렸다.


크게 숨을 고른 제갈소소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감정을 싹 뺀 목소리로 부탁했다.

“제갈 소저가 날 좀 도와주세요.”

“······.”

“말하기 어려운 세가 내 사정을 말해 달라는 게 아닙니다. 시간을 조금만 벌어줘요.”

“시간이요?”

“그전에, 비고에 문제가 생겼을 당시에 두 세가의 관계는 어땠습니까? 좋지 않았을 거 같긴 한데.”

“거의 전면전 직전까지 갔었어요. 그건 갑자기 왜요?”

“제갈 장로께 가서 말하세요. 소저가 잘못 알았다고. 소혜가 사마소혜는 맞으나 사마세가의 먼 방계라고요.”

제갈소소는 고개를 저었다

“믿지 않으실 거예요. 제가 거짓말을 한다고 역정이나 내시겠죠.”

“이 얘길 하세요. 소혜가 아무리 어려도 가주의 직계면 두 세가의 관계를 모를 리가 없는데 왜 독고세가가 아닌 철천지원수라고도 할 수 있는 제갈세가를 선택했는지가 미심쩍어 알아봤다고.”

제갈소소는 뜨끔한 얼굴로 날 바라봤다.

“아, 그러고 보니······.”

“확실하게 마음을 흔들고 싶으면 이 말을 덧붙이는 것도 괜찮아요. 아무래도 소혜가 다른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고.

“다른 목적이요? 그게 뭔데요?”

“그야 나도 모르죠.”

당연히 모른다.

없는 목적을 내가 어떻게 알아.

속이 시커먼 놈은 애매한 떡밥만 던져도 충분하다는 얘기를 할 수 없어 대충 던진 말이다.

음흉하고 의심이 많은 인간의 특징이 있다.

쓸데없이 훌륭한 상상의 나래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딴에는 주도면밀하게 일을 꾸민다고 생각하겠지만 의외로 그 음험함 때문에 결정적인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날 한번 믿고 서둘러요. 태상 가주라도 만나서 소혜를 입적하겠다고 말하게 된다면 그땐 돌이킬 수 없으니까요.”

속이 시끄러울 것 같아, 마음의 짐을 좀 덜어줬다.

“이건 결코 소저나 제갈세가에게 불리한 일이 아닙니다. 만약 제갈 가주께서 소저 뜻대로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것대로 좋은 일이고, 만에 하나 제갈 장로님을 지지한다면 내 말이 맞는 셈이니까요.”

그제야 제갈소소는 답답한 숨을 토해 놓고 움직일 채비를 했따.

능구렁이 같은 제갈염이 제갈소소의 말을 듣고 ‘아하, 그렇구나’ 할 리는 절대 없다.

제갈소소는 말 그대로 적당히 시간만 끌어주면 된다.

허둥지둥 발을 옮기려는 제갈소소를 보는 순간 마음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그냥 이대로 제갈소소를 이용하는 게 옳은 일일까?

“소저, 잠깐만요.”

제갈소소는 조급함이 여실히 드러난 얼굴로 말했다.

“할 말 있으면 빨리하세요. 공자 말대로라면 한시라도 빨리······.”

“소혜가 제갈세가로 갔다면 소저는 어쩔 생각이었습니까?”

“네?”

“말 그대로입니다. 거래의 일환으로 받아들일 생각이었나요?”

제갈소소는 어깨를 들썩였다.

“여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소혜를 동생으로······.”

진심임을 알지만 재차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물었다.

“진심입니까?”

제갈소소는 냉랭한 얼굴로 날 차갑게 바라봤다.

“삼공자!”

결심했다. 제갈소소를 한 번 믿어보기로.

“소저가 이대로 제갈 장로를 만나면 곤경에 처하게 될 겁니다. 그러니 제 말을 듣고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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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42. 괴의(怪醫) +3 24.07.01 639 45 15쪽
41 41. 습격(襲擊)(2) +5 24.06.30 832 50 13쪽
40 40. 습격(襲擊)(1) +2 24.06.29 924 50 15쪽
39 39. 비익연리(比翼連理) +6 24.06.28 975 63 14쪽
38 38. 벽라춘(碧羅春) +4 24.06.27 1,064 59 16쪽
37 37. 세가의 칠현금(七絃琴)(2) +9 24.06.26 1,132 70 14쪽
36 36. 세가의 칠현금(七絃琴)(1) +3 24.06.25 1,216 57 16쪽
35 35. 대가代價(8) +6 24.06.24 1,272 59 13쪽
34 34. 대가代價(7) +6 24.06.23 1,276 61 13쪽
33 33. 대가代價(6) +8 24.06.22 1,305 68 13쪽
32 32. 대가代價(5) +3 24.06.21 1,344 59 14쪽
31 31. 대가代價(4) +5 24.06.20 1,423 65 14쪽
30 30. 대가代價(3) +2 24.06.19 1,440 67 17쪽
» 29. 대가代價(2) +2 24.06.18 1,414 65 19쪽
28 28. 대가代價(1) +3 24.06.17 1,470 64 15쪽
27 27. 무릇 사냥이라 함은(5) +2 24.06.16 1,458 64 16쪽
26 26. 무릇 사냥이라 함은(4) +3 24.06.15 1,465 61 17쪽
25 25. 무릇 사냥이라 함은(3) +3 24.06.14 1,492 66 13쪽
24 24. 무릇 사냥이라 함은(2) +2 24.06.13 1,478 60 14쪽
23 23. 무릇 사냥이라 함은(1) +4 24.06.12 1,555 62 14쪽
22 22. 작당作黨(2) +2 24.06.11 1,532 60 14쪽
21 21. 작당作黨(1) +2 24.06.10 1,619 69 17쪽
20 20. 검지(劍池)의 담로검((湛盧劍) +1 24.06.09 1,770 75 18쪽
19 19. 혼밥의 단초(端初) +2 24.06.08 1,726 76 14쪽
18 18. 신투(神偸) 비휴(豼貅) +3 24.06.07 1,777 84 13쪽
17 17. 무릇 내기라 함은(2) +2 24.06.06 1,765 73 14쪽
16 16. 무릇 내기라 함은(1) +2 24.06.05 1,797 71 15쪽
15 15. 천록(天禄)과 벽사(僻邪) +1 24.06.04 1,788 78 12쪽
14 14. 초월시공적사념(超越時空的思念) +5 24.06.03 1,814 85 16쪽
13 13. 현천접무(玄天蝶舞) +5 24.06.02 1,925 81 18쪽
12 12. 비휴(貔貅) +1 24.06.01 2,008 69 16쪽
11 11. 현천구검(玄天九劍) +3 24.05.31 2,076 79 15쪽
10 10. 세가의 가법(家法) +2 24.05.30 2,123 73 14쪽
9 9. 절단신공(切斷神功)(2) +7 24.05.29 2,137 84 14쪽
8 8. 절단신공(切斷神功)(1) +1 24.05.29 2,238 80 15쪽
7 7. 화벽주(和璧珠) +2 24.05.28 2,362 83 15쪽
6 6.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혼담(婚談) +3 24.05.28 2,475 86 14쪽
5 5. 그만해! +3 24.05.27 2,581 88 14쪽
4 4. 세가(世家)의 빈객(賓客)들 +3 24.05.27 2,566 95 12쪽
3 3. 기원(妓院)의 화화공자(花花公子) +5 24.05.26 2,717 95 13쪽
2 2.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2) +5 24.05.26 2,866 105 13쪽
1 1.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1) +8 24.05.26 3,651 9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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