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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편한인생

시한부 화화공자의 기묘한 여행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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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편한인생
작품등록일 :
2024.05.26 09:33
최근연재일 :
2024.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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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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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14. 초월시공적사념(超越時空的思念)

DUMMY

해는 서산西山을 거의 다 넘고 있었다.

주변에 물이 많은 소주의 특성상 낮에는 습해 5월임에도 초여름 날씨에 가까웠지만, 해가 저물어 가니 청량감을 넘어 쌀쌀한 기운이 감돌았다.

명월과 소혜가 잠시 숨을 돌릴 틈을 주고, 넋 놓고 있는 덕삼이를 불렀다.

“너, 속이 빈 대나무를 네 팔 길이만큼 잘라 와. 마른 팥 두 주먹도 가져오고. 반드시 바싹 마른 팥이어야 해. 알았지?”

덕삼이가 입을 열 기회를 주지 않고, 손으로 밖을 가리켰다.

“어서!”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덕삼이는 그대로 내 달렸다.

시비를 불러 명월과 소혜에게 가벼운 식사를 준비해 줄 걸 명했다.

그 후 잠깐 연회에 얼굴을 비추기 위해 대연회장으로 향했다.

대연회장에서의 좌석 배치와 무대를 어떻게 운용해야 할지 확인도 할 겸에서였다.

디렉팅의 힘을 보여주려면 사소한 것도 놓쳐서는 안 된다.


연회는 한창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줄지어 늘어선 식탁들에는 산해진미가 가득해, 모두가 먹고 마시며 떠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대연회장에 슬그머니 들어간 걸 가장 먼저 눈치챈 건 다름 아닌 제갈소소였다.

“삼공자님은 참석이 늦으셨네요.”

“연회의 대미를 장식할 연주를 준비하느라요.”

나는 마침 잘 됐다는 심정으로 제갈소소에게 목갑을 내밀었다.

“죄송합니다. 소저. 제가 부주의하게 관리하는 바람에 목갑이 상하고 말았습니다.”

목갑의 뚜껑을 열어 보이자, 제갈소소의 눈은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아, 아니···, 어떻게···.”

“급하게 이동하다가 연못에 떨어뜨렸는데 내용물이 물속으로 빠져 버렸지 뭡니까. 귀한 선물인데 숨길 수 없어 이실직고하는 것이니 너그러운 이해 부탁드립니다.”

나는 정중하게 포권지례를 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도 제갈소소의 눈은 목갑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그 틈에 얼른 소매에서 준비한 붓을 꺼내 제갈소소에게 내밀었다.

“이건 약소하지만 답례로 드립니다. 다시 한번 일이 이렇게 된 걸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얼떨떨해하며 목갑과 붓을 번갈아 보는 제갈소소를 뒤로 하고 대연회장을 훑어봤다.

다들 왁자지껄하며 시끄러운 가운데 중앙에 마련된 무대에서는 아리따운 무희들의 검무가 한창이다.

슬픈 건 아무도 그걸 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고개를 젓다가 모용세가 놈하고 눈이 마주쳤다.

이름이 모용결이라는 놈이다.

내 공수를 못 본 척하며 고개를 돌리며 숙덕거린다.

저, 저 싸가지 없는 놈.

끼리끼리 논다더니 족제비 놈하고 두더지 같이 생긴 놈들이랑 남궁세연 근처에 앉아 시끄럽게 떠들고 있다.

느닷없이 족제비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삼공자, 이리 와서 같이 한 잔 하는게 어떻겠소? 그 금 타는 것도 들었는데, 은자는 아니라도 술 한 잔은 따라드려야 셈이 될 것 같은데······.”

하하, 요 족제비 같은 놈이 사람 속을 살살 긁네.

이러다 술 한잔 더 따라주고 또 금 타라고 하려고?

“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잠시 뒤에 제가 금을 타야 해서요. 지금 술을 입에 대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기루에서 술과 기녀를 끼고 지내는 호걸이시라던데······, 술 한 잔이 간에 기별이라도 가겠소? 자자, 그러지 말고 갑시다. 귀주에서 가져왔다는 모태주茅台酒가 향이 아주 일품이니.”

족제비는 비아냥이 가득한 낯짝으로 날 잡아 끌었다.

재차 사양하는데 모용결이 벌떡 일어나 다가왔다.

“삼공자. 이리 오시오. 내 삼공자가 탔던 금에 대해 묻고 싶은 게 있으니.”

이 자식 주변 사람들이 다 듣게 제법 큰소리를 떠든다.

그러자 남궁세연도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바라봤다.

망할 새끼.

노린 게 이거였구나.

남궁세연이 아까 내가 탄 곡에 관심을 보인 걸 기억하고 날 미끼로 쓰려는 속셈이다.

더 이목을 끄는 건 문제가 될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따라 움직였다.

모용결이 거창한 몸짓으로 날 반강제로 자리에 앉히자, 족제비가 잔부터 들이민다.

모르긴 몰라도 모용결, 이 빌어먹을 자식은 내공까지 운용해 날 억누르는 것 같다.

살짝 얹은 손이 천근만근인 걸 보면.

분명히 금을 타아 한다고 말했는데······, 날 엿 먹이시겠다?

이것들을 어떻게 골탕 먹일까 머릴 굴리는데 무당의 청수와 눈이 딱 마주쳤다.

악공들의 연주에 혀를 차던 청수가 절레절레 고개를 젓다 날 본 것이다.

내가 난처한 표정으로 술잔을 든 채로 주저하자, 청수가 벌떡 일어나 휘적거리며 다가온다.

혼신을 다해 당신의 예비 제자가 조리돌림당하고 있다는 걸 표현했는데, 다행히 눈치 챈 모양이다.

청수를 발견한 모두는 일동 얼음이 됐다.

청수는 무서운 얼굴로 내가 들고 있는 술잔을 빼앗았다.

“뭣들 하는 짓이냐. 몸도 성치 않은 애를 데리고.”

낮게 깔린 음성으로 따져 묻듯 쏘아보자 다들 눈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별일 아닙니다. 사부님. 그저 조반 때 제 연주를 치하하기 위해 술을 권한 것입니다.”

일부러 사부라고 불렀다.

이미 오전에 자기 제자가 될 거라고 얘기도 해 놓은 터다.

그러니 이 꼬락서니가 더 열받겠지.

“청하는 예의상 한 잔만 받고 가서 합주를 준비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말씀드리려던 터이긴 한데······.”

순간 고민했다.

모용결 시리즈들을 엿 먹일까, 공연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틀까를.

좋아, 저놈들 빚은 따로 하나 더 달아두고 일단은 공연에 집중하자.

안 그래도 어그로가 필요했는데 청수가 날 돕는 이 타이밍을 놓칠 수는 없다.

청수의 얼굴이 달아오르며 모용결 등을 째려볼 때, 얼른 한마디 던졌다.

“곡조를 완성했습니다.”

“뭐어? 곡조를 완성해?”

청수가 소리친 탓에 대연회장의 사람들이 모두 우리를 바라봤다.

짤막짤막하게 들려줘 감질나게 했던 곡을 완성했다는 소리는 청수를 흥분시키고도 남았다.

청수가 얼굴을 붉히며 나를 잡아끌었다.

나는 청수의 손에 이끌려 가면서도 모용결과 족제비에게 슬쩍 미소 지어 보였다.

안도하는 놈들을 보고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좀만 기다려, 조만간 속곳까지 벗겨줄 테니까.

청수가 내 손목을 잡고 이끈 것은 독고명, 즉 태상가주가 앉아 있는 대연회장의 가장 안쪽이었다.

“태상 가주님. 가주님의 셋째 손주가 명곡을 완성했다지 뭡니까. 내 안 그래도 그 곡을 듣지 못해 귀가 짓무르고 있었습니다. 연회도 한창 무르익었는데 한번 들어보심이 어떠신지요.”

말투는 정중했지만, 흥분을 다 감추지는 못했다.

그런 청수의 말을 독고명은 무시하지 못하는 눈치다.

둘러앉은 면면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역시 어제 봤던 인물들이 대다수다.

은근히 구파일방에서 와주길 바라는 것 같았는데, 무당의 청수와 개방의 거지 노인네가 전부인 모양이다.

눈에 띈 건 백색 장삼을 입은 노파 하나였다.

온통 하얀 백발에 눈이 멀었는지 동공이 있어야 할 자리가 하얗다.


할아버지인 독고명은 날 그리 탐탁해하지 않는 눈치다.

무가의 세손이 무공을 익힐 수 없다는 것도 마땅찮은데 기원에 머무른다니 성에나 차겠는가.

나는 공손하게 예를 올리고 입을 열었다.

“하찮은 재주이오나 태상 가주님께 잠시나마 흥취를 드리기 위해 준비했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대답이 떨어지길 기다렸는데, 목소리는 쉬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 하도록 하여라.”

마지못해 허락하는 목소리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좌중에서는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고개를 들어 다시 읍을 한 후 돌아 나설 때는, 사람들의 표정은 극명하게 나뉘었다.

오전에 소연회장에서 들었던 후지기수들의 표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궁세연을 비롯한 여자애들은 기대에 찬 얼굴이었지만, 모용결 일당들은 똥 씹은 표정들이다.

상관없다.

여기 오기 전 현대에서도 이런 일들은 흔했으니까.

오히려 이래야 의욕이 샘 솟지.

여유를 가지고 좌중을 훑어봤다.


서서히 소연회장에서 공연을 봤던 후기지수들을 중심으로 문사와 반인반요의 사랑 이야기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청수를 통해 이목을 끈 이유가 이거다.

감수성이 촉촉한 여자애들의 입에서 나오는 여과되지 않은 표현이 기대감을 부추기는 데는 최고거든.

누군가의 감흥이 담긴 이야기가 갖는 설득력은 무슨 지랄을 해도 이길 수 없다.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이 일으키는 감흥은 최고의 기대감으로 작동해서다.

노래에 얽힌 사연을 내 입으로 떠드는 수고를 덜었을 뿐만 아니라 분위기가 슬슬 달아오르고 있다.

몇몇은 얼마나 대단하길래 호들갑일까라는 표정이었지만 상당수는 눈까지 빛내고 있다.

느낌이 좋다.



*



악공들이 물러난 자리에 얇은 발을 드리웠다.

나와 명월의 모습이 소혜에게 몰리는 시선을 빼앗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덕삼이가 모아온 등롱을 태상가주를 비롯한 무림 명숙들이 자리한 위쪽에 잔뜩 걸었다.

줄로 엮어 세가의 무사들이 신속하게 등을 단 터라 그 모습조차 장관이었다.

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밝아진 내부는 술렁임이 더 커졌다.

소혜와 명월을 준비시키는 동안 연회장은 내가 했던 연주를 주제로 떠들었는지, 안타까운 표정으로 귓속말을 나누고 있었다.

남자들은 애써 안 듣는 척하면서 귀를 기울이는 것 같고.

역시 예상대로다.

이대로라면 소연회장에서 연주할 때처럼 말로 떠들며 분위기를 잡을 필요가 없다.

막판에 가져오라고 시킨 속이 빈 대나무는 팥을 넣고 잘 밀봉한 셰이커(흔들어서 소리를 내는 악기)로 만들었다.

남미 악기 중 하나인 레인스틱Rainstick을 급조한 거다.

셰이커의 원조격인 녀석으로 빗소리와 유사한 소리를 내는 악기다.

현대에서의 무대라면 조명을 끄고 입장을 하겠지만 여기선 그게 불가능하다.

때문에 소혜는 등장부터가 무대의 시작이라 임팩트를 줘야 한다.

이제 열다섯의 여리여리한 소혜가 가늘게 떨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다가가 잘게 떨리고 있는 소혜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소혜야, 나비를 생각해.”

“네?”

“거친 바람을 뚫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나비를 떠올리라는 얘기야. 문사 청년이 낫길 간절히 염원하는 반요 여인의 염원, 그 염원을 담은 나비를 하늘 끝으로 보낸다고 생각하라고.”

입술을 깨무는 소혜에게 말했다.

“눈을 감고 떠올려 봐, 널 위해 대신 상처 입고 죽어가는 문사 청년을. 그리고 그를 살리기 위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염원하는 여인의 마음을.”

눈을 감은 소혜가 충분히 몰입하기를 기다렸다.

소혜의 어깨에서 전해지던 떨림은 서서히 잦아들었고, 그 자리를 묘한 열기가 대신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소혜는 어깨를 들썩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눈을 뜬 소혜의 얼굴에는 무대에 오르기 전의 열망이 담겨있었다.

“이제 됐네. 집중해. 지금 그 감정선을 놓치지 않게.”

“네. 공자님.”

준비된 소혜에게 눈짓을 하고 대나무 통을 기울이며 팥이 굴러가는 소리를 냈다.

낯선 소리에 좌중은 어리둥절해하며 고개를 돌려댔다.

약간의 웅성임은 이내 사라지고 낯선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빗소리 같기도 하고, 파도에 자갈이 부서지는 소리 같기도 한 팥 구르는 소리가 모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그에 맞춰 백의를 차려입고, 명주 천으로 만든 면사포를 쓴 소혜가 천천히 걸어들어와 태상 가주를 향해 천천히 읍을 했다.

나는 대나무 셰이커를 내려놓고 왼손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우연이라도 좋으니까 한 번 더 알았지?’

아침나절에 한 것처럼 비휴가 현에 기운을 실어주길 바라며 첫 음을 켜기 시작했다.

“아······!”

천천히 시작되는 전주에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건 보지 않아도 이미 한 번 들었던 여자애들 목소리다.

나는 애써 무시하고 범음(Hamonics)을 짚어가며 맑고 청아한 소리로 곡을 연주해 갔다.

전주가 끝나고 명월이 소簫(피리)로 메인 멜로디를 연주하기 시작하자 이번엔 청수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허어···참!”

그에 맞춰 소혜는 쥘부채를 펼쳐 들며 독고천이 보여주었던 현천구검의 초식을 변형한 접무蝶舞(나비 춤)의 춤사위를 펼쳐나갔다.

소혜의 가녀린 팔이 그려내는 춤사위는 화려하기보다 소박했다.

하지만 그 담백함 안에는 소혜를 통해 전해지는 염원이 담겨있었다.

뒤쪽에 드리웠던 천이 위로 솟아오르면서 현천구검의 검첨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춤사위는 이어졌다.

빠르게 솟아오른 명주천은 쥘부채를 쥔 소혜의 손을 따라 스러질 듯 위태위태한 모습으로 풍랑을 거스르는 모습이다.

나는 미리 지시한 신호를 덕삼이에게 보냈다.

덕삼이의 지시에 따라 등롱을 매단 줄을 잡고 있던 세가의 무사들이 등롱을 흔들었다.

흔들리며 일렁이는 불빛은 소혜가 펼쳐내는 춤사위의 아슬아슬함을 강조했다.

명월의 소가 꾸밈없이 청아한 소리로 춤사위를 이끌고, 화음의 빈자리를 내 칠현금 소리가 채워갔다.

그렇게 이뤄진 화음은 연회장을 가득 메워갔다.

합주가 이어지고 곡의 어울림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 내 왼손에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그리는 독고천의 검첨의 움직임이 뚜렷해지며 손에서 흘러나온 온기가 현을 타고 음에 녹아들었다.

칠현금의 소리는 깊고 청아해져 가는 데, 상대적으로 명월이 부는 소의 소리가 묻혀갔다.

명월도 이를 느낄 걸 알아 현을 짚은 왼손에 농현을 주며 조화를 맞춰갔다.

소와 칠현금의 합주가 춤사위를 펼치는 소혜를 하늘로 밀어 올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왼손에서 퍼져 나오는 온기가 음을 타고 연회장을 가득 채워갈 때, 의자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려진 발 너머로 독고천이 벌떡 일어서 있었다.

나는 가만히 미소 짓고, 연주에 집중했다.

곡이 절정을 향해 내달리자 소혜의 춤사위도 더욱 화려해졌다.

아침에 했던 연주에서 멈췄던 부분이 다가올 때는 헛숨을 삼키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때와 달리 한 달음에 절정에 올랐다.

마침내 독고천의 검식 시연에서 거슬렸던 부분을 지날 때는 독고천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간절함과 애달픔을 승화해낸 소혜의 몸짓은 연주와 어울려 마치 반요 여인의 절규를 표현하는 듯했다.

소혜의 마지막 손짓이 끝나고 그 뒤를 따르는 명주천이 나비가 나아갈 방향을 가리키며 곡은 끝이 났다.

대연회장 안은 내가 튕긴 마지막 음만이 가득 찬 정적을 밀어내는 것처럼 은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잠시간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정적은 소혜의 가쁜 한숨 소리와 함께 깨어졌다.

그와 동시에 연회장 곳곳에서는 탄식과 한숨이 흘러나온다.

개중에는 소매로 눈 끝을 찍는 여자애들도 보였다.

소혜가 면사를 걷고 정중한 공례를 올리며 태상 가주에게 절을 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


가쁜 숨을 몰아쉬던 소혜가 고개를 들고는 그대로 얼어 버렸다.

독고천이 눈에 핏발까지 세운 채 소혜를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휘장처럼 두른 발을 걷고 나가 소혜의 옆에 섰다.

가만히 소혜의 어깨를 토닥이자 안심한 듯 소혜가 숨을 골랐다.

절을 받은 태상 가주 독고명의 표정도 독고천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반쯤 벌린 입과 흔들리는 동공은 그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를 보여주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약과였다.

청수는 눈과 입을 활짝 벌린 채로 머리까지 감싸고 있다.

소혜와 함께 예를 올리고, 명월을 불러 세웠다.

사십 대의 기품 있는 명월의 얼굴에도 흥분이 내려앉았는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대연회장이 떠나가라 박수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공손히 읍을 하고 좌중을 둘러봤다.

열기 띤 얼굴로 박수를 치는 사람들을 본 순간.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진짜 살아있음을 실감했다.

그리고 만끽하고 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연출이 그려내는 감동이 주는 즐거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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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8. 벽라춘(碧羅春) NEW +1 3시간 전 133 13 16쪽
37 37. 세가의 칠현금(七絃琴)(2) +8 24.06.26 616 48 14쪽
36 36. 세가의 칠현금(七絃琴)(1) +2 24.06.25 791 42 16쪽
35 35. 대가代價(8) +5 24.06.24 898 49 13쪽
34 34. 대가代價(7) +5 24.06.23 927 51 13쪽
33 33. 대가代價(6) +7 24.06.22 971 57 13쪽
32 32. 대가代價(5) +2 24.06.21 1,010 50 14쪽
31 31. 대가代價(4) +4 24.06.20 1,084 54 14쪽
30 30. 대가代價(3) +1 24.06.19 1,110 55 17쪽
29 29. 대가代價(2) +1 24.06.18 1,088 53 19쪽
28 28. 대가代價(1) +2 24.06.17 1,131 53 15쪽
27 27. 무릇 사냥이라 함은(5) +1 24.06.16 1,117 52 16쪽
26 26. 무릇 사냥이라 함은(4) +2 24.06.15 1,124 50 17쪽
25 25. 무릇 사냥이라 함은(3) +2 24.06.14 1,141 54 13쪽
24 24. 무릇 사냥이라 함은(2) +1 24.06.13 1,143 48 14쪽
23 23. 무릇 사냥이라 함은(1) +3 24.06.12 1,202 51 14쪽
22 22. 작당作黨(2) +1 24.06.11 1,190 50 14쪽
21 21. 작당作黨(1) +1 24.06.10 1,256 59 17쪽
20 20. 검지(劍池)의 담로검((湛盧劍) 24.06.09 1,366 60 18쪽
19 19. 혼밥의 단초(端初) +1 24.06.08 1,327 61 14쪽
18 18. 신투(神偸) 비휴(豼貅) +1 24.06.07 1,376 72 13쪽
17 17. 무릇 내기라 함은(2) +1 24.06.06 1,369 63 14쪽
16 16. 무릇 내기라 함은(1) +1 24.06.05 1,401 58 15쪽
15 15. 천록(天禄)과 벽사(僻邪) 24.06.04 1,395 64 12쪽
» 14. 초월시공적사념(超越時空的思念) +4 24.06.03 1,407 69 16쪽
13 13. 현천접무(玄天蝶舞) +5 24.06.02 1,498 69 18쪽
12 12. 비휴(貔貅) 24.06.01 1,563 57 16쪽
11 11. 현천구검(玄天九劍) +2 24.05.31 1,630 67 15쪽
10 10. 세가의 가법(家法) +1 24.05.30 1,661 63 14쪽
9 9. 절단신공(切斷神功)(2) +6 24.05.29 1,682 72 14쪽
8 8. 절단신공(切斷神功)(1) 24.05.29 1,740 68 15쪽
7 7. 화벽주(和璧珠) 24.05.28 1,868 72 15쪽
6 6.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혼담(婚談) +2 24.05.28 1,955 74 14쪽
5 5. 그만해! +2 24.05.27 2,033 78 14쪽
4 4. 세가(世家)의 빈객(賓客)들 +2 24.05.27 2,012 82 12쪽
3 3. 기원(妓院)의 화화공자(花花公子) +2 24.05.26 2,129 82 13쪽
2 2.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2) +4 24.05.26 2,263 86 13쪽
1 1.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1) +7 24.05.26 2,906 8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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