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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편한인생

시한부 화화공자의 기묘한 여행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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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편한인생
작품등록일 :
2024.05.26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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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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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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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26. 무릇 사냥이라 함은(4)

DUMMY

슬슬 땅거미가 내려앉을 채비를 하고 있다.

쨍쨍하던 햇빛도 불그스름하게 옷을 갈아입었다.

호조영의 집을 둘러싼 관병은 더 늘어났다.

급기야는 창을 든 관병까지 동원되어 대치 중이다.

어찌 돌아가는지는 안 봐도 뻔하다.

안찰사와 절도사가 미묘한 기싸움을 하고 있겠지.

하여간 정치질하는 놈들 허세는 못 말린다.

공작새 새끼들도 아니고 뭔 놈의 폼을 저렇게 잡아, 싸울 것도 아니면서.

나로선 고맙기 짝이 없지만 어딘지 관전의 재미가 없다.

대치가 길어진다는 건 절도사 염지평이 아직 호조영의 호주머니를 털어보지 못했단 소리다.

서열상 안찰사인 증안표가 밀릴 그림인데 버틴다는 건 뒷배를 부르겠단 심산 같다.

절도사 염지평이 아직 정체를 드러낼 수 없으니 얍삽하게 그 틈을 노리는 걸 테지.

흐음, 그렇다면 염지평이 어깨에 힘을 좀 실어줘야겠다.

먹깨비를 불러내 이것저것 지시를 내렸다.

댓 발은 튀어나온 입으로 시선을 피하기 바빴지만 단칼에 제압해 버렸다.

협상 테이블에 검지의 담로검을 올리자, 가증스러운 놈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차 문을 열기 무섭게 덕삼이가 고개를 홱 돌렸다.

“공자님, 어찌 내리십니까요?”

“너, 세가로 돌아가서 노인네들한테 내가 관부에 잡혀 있다고 전해.”

“네? 그게 무슨······. 설마 저더러 거짓을 고하란 말씀 이십까요?”

“걱정하지 마. 바로 잡힐 예정이니까.”

“그······, 노인네라는 게······.”

“있잖아, 나 들들 볶지 못해서 안달 난 노인네들. 당가하고 무당 그리고 제갈 노인네.”

질겁한 덕삼이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저······, 공자님? 혹시 저기 관병들이 대치하고 있는 곳으로 가시겠다는 말씀은 아니시지요?”

“알면서 뭘 물어. 내가 움직이면 서둘러서 전해. 아, 그리고 소혜 귀에 들어가지 않게 조심해. 기겁할 수 있으니까. 세가 사람들에게는 알리지 말고.”

마른침을 꿀꺽 삼킨 덕삼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그건 못 하겠습니다요. 차라리 소인을 죽이십시오.”

우당탕하며 마차에서 뛰어내린 덕삼이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나는 품에서 당소백이 준 비휴 팔찌를 꺼내 덕삼이에게 내밀었다.

“딴 노인네는 몰라도 이걸 보여주면 당가 노인네는 올 수밖에 없을 거야.”

당소백은 안 올 수가 없다.

정혼도 정혼이지만 제 입으로 도움이 필요할 때 쓰라고 준 증표를 무시할 사람은 아니었다.

딴 노인네들이야 뭐, 오든 안 오든 상관없다.

아니, 오히려 오지 않는 게 낫다.

그래야 아쉬운 소리를 못 할 테니.

낯짝에 철판을 두른 제갈염이야 어떤 딴소리를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명색이 도산데 청수는 안면은 안 바꾸겠지.

엉큼한 노인네들이 날 어느 정도로 여기고 있는지를 확인할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물론 쌩까는 노인네들은 앞으로 열외다.

뭔 지랄을 하면서 부탁해도 부탁 이상의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절대 응하지 않을 작정이거든.

아니면 먹깨비 자식을 시켜서 따로 대가를 챙기던가.

안절부절못하는 덕삼이를 다그쳤다.

“별일 없을 테니 빨리 시키는 대로 해. 관병들 오기 전에.”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덕삼이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그로를 제대로 끌었는지 대치하던 관병들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내젓는 팔에 덕삼이는 마지못해 비켜섰다.

휘적휘적 걸어가며 말했다.

“타이밍······, 아니, 시기를 놓치지 않게 서둘러. 진짜로 내 송장 치고 싶지 않으면.”

아무리 사소한 걸로 싸운다고 할지라도 싸울 때는 모든 걸 다 거는 게 맞다.

설령 하나뿐인 목숨일지라도 말이지.

이게 내가 개털 아무것도 없으면서 대한민국 엔터계의 정점에 선 방식이거든.



*



사합원으로 지어진 호조영의 집.

크지 않은 그곳에는 빽빽하게 들어찬 수많은 관병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내원이 내다보이는 조당祖堂(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곳) 앞에 마주 앉은 염지평과 증안표는 말없이 찻잔만 기울이고 있다.

안찰사 증안표는 여유 있는 얼굴로 염소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찻잔을 입에 가져갔다.

반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앉아 있는 절도사 염지평은 찻잔에는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찻물을 목으로 넘긴 증안표가 입을 열었다.

“절도사, 언제까지 이리 계시려고 하십니까. 절도사께서 공연한 의심을 하시어 애먼 관병들만 욕을 보고 있습니다.”

“방자한 말은 삼가도록 하게. 아무리 삼 왕야의 외척이라 하나 지엄한 황법이 다스리는 관직까지 무시하는 언사는 안 될 일이니.”

증안표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아무런 증좌도 없이 무고한 수하의 집을 수색하겠다고 하니 내 어찌 가만있을 수 있겠소이까. 혹여라도 절도사께서 거짓 증좌라도······.”

“이런 발칙한! 감히 날 욕보이려 하는 것인가!”

염지평의 호통에도 증안표는 실소만 머금었다.

“이것 보시오, 절도사. 황가의 외척인 나를 핍박하는 것이 곧 황상을 능멸하는 것이라는 걸 어찌 모르시는 게요?”

염지평이 움켜쥔 주먹을 부들거릴 때 정문 쪽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기세를 잡은 증안표이 작은 눈을 휘며 웃었다.

“왠 소란이냐!”

시립하고 있는 관병들 사이로 입구를 지키던 관병이 호리호리한 청년 하나를 데리고 나타났다.

“대인, 이 청년이 호조영에게 용무가 있다며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호조영이란 이름에 증안표와 염지평은 동시에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먼저 입을 연 것은 염지평이었다.

“호조영에게 용무가 있다니, 무슨 일인가.”

청년은 정중하게 공예를 올리며 입을 뗐다.

“독고세가의 삼남 윤우라고 합니다. 무리한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음을 전하러 왔습니다.”

독고세가란 말에 증안표가 인상을 긁으며 호통쳤다.

“엄연한 관의 행사가 있음을 알고도 사사로운 일로 찾아오다니······, 정녕 목숨이 아깝지 않은 게로구나.”

증안표의 서슬 퍼런 말에 움찔한 독고윤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모, 목숨이 두려워 찾아왔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제안이 바로 황실과 관련된 일이라서입니다.”

안찰사 증안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라? 이놈이 감히 어디서 황실을 입에 담는 것이냐!”

잔뜩 겁을 집어먹은 모습임에도 독고윤우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함부로 입에 담아 서도 안되는 황실의 일에 관여할 것을 호조영이 제안했습니다. 왕야의 친서와 귀한 보물까지 증거로 내밀면서요.”

독고윤우의 말에 일순간 모두의 얼굴에 놀람이 가득찼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독고윤우는 야명주가 박힌 비수와 황실의 인장이 찍힌 친서를 품에서 꺼냈다.

친서와 비수를 본 안찰사와 절도사의 얼굴은 서로 다른 이유로 일그러졌다.



*



독고세가의 접객당.

당소백과 제갈염 그리고 청수 도장은 하나같이 무거운 침음을 흘리고 있었다.

바짝 긴장한 채로 벌벌 떨고 있는 덕삼이를 보며 제갈염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철이 없다손 치더라도 한낱 기녀 때문에 안찰사를 찾아가다니 혀를 차지 않을 수 없군.”

두 눈 가득 노기를 띤 청수 도장이 덕삼이에게 물었다.

“삼공자가 관병들 손에 이끌려 간 게 확실한 것이냐!”

“그, 그렇습니다요.”

“그 사실을 세가가 아닌 우리에게 전하라고 한 것도 한 치의 거짓 없는 사실이고?”

“소, 소인의 목숨을 걸고 모두 사실입니다요.”

당소백은 찌푸린 눈으로 덕삼이가 건넨 비휴 팔찌를 바라보았다.

당화련과의 정혼 사실을 알리며 팔찌를 넘겨줄 때 했던 말이 떠오르자 당소백은 눈을 질끈 감았다.

[당가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웬만한 일에는 손을 보태줄 걸세.]

한숨을 내쉬며 눈을 뜬 당소백이 코웃음을 쳤다.

“당돌한 놈이로군.”

무당의 청수 도장이 눈살을 구기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 이시오?”

“삼공자가 우릴 시험하는 모양이요.”

미간을 우그린 제갈염이 손바닥으로 다탁을 내리쳤다.

“건방진! 오냐 오냐 했더니 배분도 모르고······. 쯧.”

당소백은 가늘게 뜬 눈으로 제갈염을 바라봤다.

“제갈 장로께선 삼공자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으셨는가 보군요.”

당소백의 말에 제갈염이 어금니를 꽉 물었다.

이내 표정을 고친 제갈염이 콧방귀를 뀌었다.

“산식에 신통한 재주가 있어 귀엽게 보았을 뿐입니다. 하여 사천행의 길목에 있는 우리 세가에 들렀다 갈 것을 제안했을 뿐이지요.”

당소백이 담담한 눈으로 제갈염에게 물었다.

“삼공자가 찾아간 기녀, 제갈 세가에 들이기로 했다는 말이 있던데 아니었습니까?”

움찔한 제갈염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재주가 있는 데다 본 세가로 올 것을 청하여 논의 중이긴 했습니다. 확답을 전하기도 전에 안찰사가 기녀의 적을 옮겼다하여 무산됐지요.”

하얀 수염을 손으로 쓸며 당소백이 입을 열었다.

“제갈 장로의 질녀라는 아이에게 들은 것과는 다른 것 같소이다만.”

제갈염이 눈을 찌푸리며 당소백을 쏘아 봤다.

입가에 뜻 모를 미소를 머금은 당소백이 말을 이어갔다.

“아침에 기녀가 머무는 곳으로 가며 그러더군요. 그 기녀의 입적 사실을 알리기 위해 가는 중이라고.”

제갈염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직 어려 성급한 마음에 달려갔는가 보군요. 이미 삼공자와 기녀에게는 알아듣게 얘길 했습니다.”

당소백의 눈이 반짝였다.

“알아듣게 얘길 했는데도 삼공자가 안찰사를 찾아갔다라······. 바보가 아니면 다른 수가 있는 모양이로구먼.”

제갈염이 콧방귀를 뀌었다.

“흥! 나이 어린 치기를 못 이겼다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병약하다 하여 독고세가에서 너무 오냐오냐 키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갈 장로께서는 어찌하려는 게요, 삼공자의 요청을 무시하실 셈이오?”

“이건 무시가 아니지요. 외려 나서는 것이 세가의 일에 끼어 드는 것이 되어 빈객으로서의 예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눈썹을 씰룩인 당소백이 이번엔 청수 도장을 바라봤다.

“도장께선 어쩌시겠소이까?”

청수는 도포 자락을 쳐내며 얼굴을 딱딱히 굳혔다.

“속세의 일을, 그것도 기녀와 관련된 일에 무당이 나설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도 제자의 일인데 수수방관하시겠다는 말씀 이시오?”

“아직 배사지례拜師之禮조차 올리지 않은 아이외다. 더군다나 관과 얽힌 일이니 내외하지 않을 수 없는 법이고요.”

당소백은 입꼬리를 비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구려. 그럼 나 혼자 나서는 수 외에는 없겠소이다.”

제갈염이 눈살을 찌푸렸다.

“당 장로께서 나선다 함은 관의 행사에 개입하시겠다는 말씀 이십니까?”

“난 당가의 장로이기도 하지만 의원이오. 병마에 시달리는 삼공자를 살피지 않을 수 없소. 더군다나 내상까지 입은 아이를 나 몰라라 할 순 없소.”

당소백의 질책하는 눈초리에 제갈염은 다시금 어금니를 악물었다.

걸음을 옮기던 당소백이 제갈염과 청수를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본 삼공자는 어리석은 아이가 아니요. 듣도 보도 못한 연주와 공연이 신기하여 명월이라는 아이에게 물었더니 모든 게 삼공자의 생각이었다고 합디다. 그 수많은 사람의 심금을 한순간에 들었다가 놓는 아이가 생각 없이 일을 벌였다고 여긴다면 아마 오산일 거요.”

무당의 청수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렇다면 우릴 이용할 생각으로 일을 벌였다는 말씀 이시오?”

“이용하려는 게 아니라 시험하려는 거라는 게 맞지 않을까 싶소. 그러니 잘들 생각하시구려.”

제갈염은 콧방귀를 뀌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당가의 사위가 된다하니 엉덩이에 난 뿔도 고와 보이시나 봅니다. 허나 관과의 일은 잔재주로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안찰사 증안표는 삼 왕야의 외척이라 일이 잘못되면 그 화가 무궁할 것이니 당 장로께서도 숙고하는 편이 나을게요.”

당소백은 코웃음 쳤다.

“어디 두고 보십시다. 누가 맞는지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당소백은 바닥을 박차고 나갔다.

신법을 운용한 당소백은 순식간에 멀어지기 시작했다.

제갈염의 서늘한 시선과 청수의 답답한 한숨이 그 모습을 좇았다.



*



“네 이놈! 감히 어디서 헛수작질하는 것이냐!”

푸들거리며 손가락질하는 저놈이 문제의 안찰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생긴 대로 논다더니 세모꼴에 쭉 찢어진 눈만 봐도 밥맛이 뚝 떨어진다.

수염은 또 왜 저 지랄로 기른 건지 확 잡아 뜯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어떤 자리라고 제가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정히 의심되신다면 호조영과 대질 시켜주십시오. 명명백백히 밝힐 테니까요.”

“저, 저 방자한 놈이!”

비루먹은 쥐새끼처럼 생긴 안찰사 놈은 절도사가 있는 한 절대 대질을 못 시킨다.

왜 지금까지 시간을 질질 끌면서 대치 중이겠어, 당연히 호조영을 두고 줄다리기 중이겠지.

절도사가 잠자코 있는 걸 보니 아직 집안 수색은 손도 못 댄 것 같다.

뭐, 대질시켜도 상관없다.

정치질하는 놈들이 가장 잘하는 짓을 나도 꽤 하거든.

대가리가 갓을 걸어놓는 용도가 아니라면 누가 봐도 안다.

병치레를 달고 살게 생긴 나하고 뱀 새끼만도 못하게 생긴 놈 밑에서 빌어먹는 놈하고 누굴 더 신뢰해야 하는지를.

난장판이 되면 주도권은 절도사에게 넘어간다.

저 절도사 놈이 똥볼만 안 차면 이 판은 안찰사가 무조건 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 딱지 쳐서 절도사 자리를 딴 건 아닌지 절도사가 나섰다.

“그리하는 게 좋겠군. 호조영을 불러오게.”

안찰사 놈이 버럭 성질을 부렸다.

“아니 될 말씀이요! 어찌 저 오만방자한 놈의 말을 믿고 대질을 시킨단 말입니까!”

고개를 홱 돌린 안찰사 놈이 소리쳤다.

“여봐라! 장물을 쥐고 있는 저놈이 이 사달의 원흉인 듯하니 저놈을 당장 포박하라!”

선수를 치시겠다?

나야 좋지, 안 그래도 네 놈 사는 곳이 궁금했거든.

그 넓은 집구석을 살뜰하게 살펴야 할 이유도 있고 말이지.

그때 절도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지주사知州事는 듣거라. 내 친히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필요에 따라 추국推鞫(중죄인의 심문)할 터이니 관부로 압송하도록 하거라!”

안찰사 놈이 쭉 찢어진 눈을 더 길게 찢었다.

“절도사! 추국이라니요! 설마 이 일을 금부에 알리기라도 하시겠단 말씀 이시오!”

“삼왕야의 비수가 관련된 일이니 당연히 그리해야지.”

“날 핍박하시겠단 소립니까!”

“감히 내게 핍박이라 하였는가!”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고 있다.

더 싸워! 죽일 듯이 노려보지만 말고 칼도 좀 휘두르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더 거세게 지랄하라고.

그래야 누구도 알아보지 못할 진창이 되지.

부지깽이를 집어넣으려 내놓았던 비수와 친서를 냉큼 들어 끌어안았다.

그 모습을 본 안찰사 놈이 버럭 고함을 쳤다.

“네 이놈! 당장 내려놓지 못할까!”

“그러지는 못하겠습니다. 사실을 밝히려 제 발로 찾아온 저를 절도범으로 몰다니요. 내 직접 이것을 들고 왕부로 찾아가겠습니다. 가서 모든 사실을 밝히고······.”

“이런 발칙한 놈이! 여봐라, 당장 저놈의 목을 쳐라.”

안찰사의 염병에 참지 못한 절도사도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찌 증좌를 가지고 찾아온 증인을 죽이려 드는 것이냐! 지주사, 당장 증인을 보호하고 안찰사를 거처로 데려가도록 하라! 이후 안찰사는 장원에 머물며 사실관계가 확인될 때까지 일절 출입을 금할 것을 명한다."

“정녕 이리 나오시겠단 겁니까!”

안절부절못하며 눈치만 살피는 지주사를 보고 알았다.

이건 안찰사와 절도사의 싸움이 아니다.

황제의 자식새끼들이 하는 대리전이지.

그렇다는 건 이 칼이 갖는 의미가 적지 않다는 소린데, 뭐가 더 있는 거지?

일단 이건 나랑 상관없으니 패스.

당장 중요한 건 한 가지다.

저 안찰사라는 놈을 어떻게 요절낼지 내내 고민했다.

사실 직접 보기 전까지는 적당히 거지꼴로 만드는 선에서 끝낼까 했는데, 아무래도······, 죽여야겠다.

저런 놈은 살려뒀다간 뒤통수를 겨눈 총구를 달고 사는 꼴이 된다.

21세기 대한민국이라면 사회에서 매장하는 정도로 마무리했겠지만 여긴 아니다.

게다가 뭐? 누구 목을 베?

저놈을 그냥 뒀다간 겨우 덮어두었던 PTSD가 도질 것 같아 도저히 안 되겠다.

쌍놈의 새끼. 넌 내가 친히 삼도천을 건너게 해주마.

그때였다.

지주사가 결심한 것처럼 관병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관병들이 둘러싸자, 쭈뼛거리던 안찰사 놈의 수하들도 병장기를 빼 들었다.

여기저기서 뽑아 든 칼이 번쩍번쩍하며 일촉즉발의 상황이 펼쳐졌다.

소란을 틈타 슬그머니 소매 안으로 손을 넣었다.

당소백이 준 독분을 손가락으로 푹 찍었다.

‘어이, 먹깨비. 내 품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삼켜. 그리고 내가 독에 중독되어도 절대 흡수할 생각 마. 내가 신호할 때까지는 절대로.’

나는 먹깨비가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고 독분이 묻은 손을 천천히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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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43. 해태(獬豸)의 방울 NEW 6분 전 20 0 14쪽
42 42. 괴의(怪醫) +3 24.07.01 629 45 15쪽
41 41. 습격(襲擊)(2) +5 24.06.30 828 50 13쪽
40 40. 습격(襲擊)(1) +2 24.06.29 922 50 15쪽
39 39. 비익연리(比翼連理) +6 24.06.28 973 63 14쪽
38 38. 벽라춘(碧羅春) +4 24.06.27 1,063 59 16쪽
37 37. 세가의 칠현금(七絃琴)(2) +9 24.06.26 1,131 70 14쪽
36 36. 세가의 칠현금(七絃琴)(1) +3 24.06.25 1,216 57 16쪽
35 35. 대가代價(8) +6 24.06.24 1,272 59 13쪽
34 34. 대가代價(7) +6 24.06.23 1,276 61 13쪽
33 33. 대가代價(6) +8 24.06.22 1,305 68 13쪽
32 32. 대가代價(5) +3 24.06.21 1,342 59 14쪽
31 31. 대가代價(4) +5 24.06.20 1,420 65 14쪽
30 30. 대가代價(3) +2 24.06.19 1,438 66 17쪽
29 29. 대가代價(2) +2 24.06.18 1,412 64 19쪽
28 28. 대가代價(1) +3 24.06.17 1,467 63 15쪽
27 27. 무릇 사냥이라 함은(5) +2 24.06.16 1,455 63 16쪽
» 26. 무릇 사냥이라 함은(4) +3 24.06.15 1,461 60 17쪽
25 25. 무릇 사냥이라 함은(3) +3 24.06.14 1,487 65 13쪽
24 24. 무릇 사냥이라 함은(2) +2 24.06.13 1,473 59 14쪽
23 23. 무릇 사냥이라 함은(1) +4 24.06.12 1,550 61 14쪽
22 22. 작당作黨(2) +2 24.06.11 1,528 59 14쪽
21 21. 작당作黨(1) +2 24.06.10 1,617 68 17쪽
20 20. 검지(劍池)의 담로검((湛盧劍) +1 24.06.09 1,769 75 18쪽
19 19. 혼밥의 단초(端初) +2 24.06.08 1,725 76 14쪽
18 18. 신투(神偸) 비휴(豼貅) +3 24.06.07 1,775 84 13쪽
17 17. 무릇 내기라 함은(2) +2 24.06.06 1,763 73 14쪽
16 16. 무릇 내기라 함은(1) +2 24.06.05 1,796 71 15쪽
15 15. 천록(天禄)과 벽사(僻邪) +1 24.06.04 1,787 78 12쪽
14 14. 초월시공적사념(超越時空的思念) +5 24.06.03 1,813 85 16쪽
13 13. 현천접무(玄天蝶舞) +5 24.06.02 1,924 81 18쪽
12 12. 비휴(貔貅) +1 24.06.01 2,007 69 16쪽
11 11. 현천구검(玄天九劍) +3 24.05.31 2,073 79 15쪽
10 10. 세가의 가법(家法) +2 24.05.30 2,119 73 14쪽
9 9. 절단신공(切斷神功)(2) +7 24.05.29 2,132 84 14쪽
8 8. 절단신공(切斷神功)(1) +1 24.05.29 2,233 80 15쪽
7 7. 화벽주(和璧珠) +2 24.05.28 2,357 83 15쪽
6 6.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혼담(婚談) +3 24.05.28 2,470 86 14쪽
5 5. 그만해! +3 24.05.27 2,579 88 14쪽
4 4. 세가(世家)의 빈객(賓客)들 +3 24.05.27 2,563 95 12쪽
3 3. 기원(妓院)의 화화공자(花花公子) +5 24.05.26 2,715 95 13쪽
2 2.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2) +5 24.05.26 2,862 105 13쪽
1 1.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1) +8 24.05.26 3,644 9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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