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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편한인생

시한부 화화공자의 기묘한 여행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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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편한인생
작품등록일 :
2024.05.26 09:33
최근연재일 :
2024.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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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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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21. 작당作黨(1)

DUMMY

“그 안찰사가 대단한 곳에서 지낸다면서요?”

“우원耦园을 말하는 건가 보구먼. 오나라 때부터 대대로 유명하기로 소문난 곳이야. 원림이라는 커다란 정원을 품은 장원이지.”

노사공은 배를 모는 솜씨도 나쁘지 않았지만, 진짜는 입담이었다.

아는 것도 많고, 물길에도 매우 익숙해 보인다.

“노인장,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그 우원이라는 곳부터 구경해야겠어요.”

노사공은 콧방귀를 뀌며 삿대를 밀었다.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게. 자네 같은 사람은 종복으로라도 들어가기 힘든 곳이니.”

“그냥 밖에서 살짝 구경만 하려고요.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

그러나 노사공은 나를 슬쩍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가자니 데리고는 가 주겠지만 행여라도 엉뚱한 마음먹지 말게나.”

그러고는 노를 저어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관리를 상대하는 일은 절대 허투루 해선 안 된다.

고위직에 오를수록, 쥔 권한이 많을수록 소인배가 되는 것이 나라의 녹을 먹고사는 인간들이다.

어설프게 다뤘다가는 후환이 끝이 없다.

게다나 왕가와 연결되어 있다고 하니 잘못 건드리면 벌통을 쑤셔놓는 꼴이 된다.

이런 일은 뿌리까지 뽑아야 뒤탈이 없다.

이 기회에 이 바닥 관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좀 알아봐야겠다.


내가 쓸 수 있는 카드부터 떠올렸다.

한참을 떠올리다 한숨을 내쉬며 왼손바닥을 쳐다봤다.

빌어먹을 카드가 달랑 한 장이다.

그것도 꽝에 가까운 카드 한 장.

나도 모르게 코웃음이 났다.

내 팔자에 언제부터 편하게 살았다고.

늘상 하던 대로 머리를 쥐어짜 있는 거 없는 거 털어서 가는 거지.



*



은향의 원주 예월은 초로의 여인으로 다른 기녀들과 달리 수수한 복색을 하고 있었다.

부드러운 미소를 입에 띄운 예월이 안찰사의 명을 받고 온 부사副使 곡장명에게 완곡한 어조로 말했다.

“부사께서 이리 방문해 주신 연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곡장명은 무심한 얼굴로 다탁 위에 은자가 담긴 전낭을 툭 내려놓았다.

전낭을 본 예월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짐작되는 것이 없지 않았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이것이 무엇이옵니까?”

“어제 독고세가에서 춤을 추었다는 무희를 데려가려고 하네.”

예월은 놀란 기색을 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그 아이는 무희도 아닌 데다 이미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곡장명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다른 곳이라니?”

“제갈세가에서 그 아이를 데려가겠다 하였습니다.”

“이미 기적을 옮겼다는 것인가?”

“그런 것은 아니옵니다. 허나 무림맹의 군사 가문과 맺은 약속으로······.”

곡장명은 안도하며 코웃음을 쳤다.

“아직 임자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소리로군. 그 무희는 어디 있지?”

“독고세가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틀의 말미를 줄 테니, 우원으로 데려오게.”

“나으리, 그 아이는 예기藝妓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아이입니다. 나이도 이제 열다섯이고요.”

곡장명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한낱 기원의 원주 따위가 관의 행사에 토를 달다니, 목숨이 아깝지 않은 게로군.”

예월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뒤에선 명월도 입술을 깨물지 않을 수 없었다.

서슬 퍼런 눈으로 둘을 일별한 곡장명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틀까진 필요가 없겠군. 내일 오시午時까지 우원으로 데려오도록 하게. 그렇지 않으면 내가 직접 독고세가로 찾아갈 것이니. 만약 데려오지 않는다면 이중으로 기녀를 팔아 관을 능멸한 죄를 물을 터이니 잘 생각해야 할 것이네.”

곡장명은 던져둔 전낭을 그대로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 일어선 예월과 명월을 제지한 곡장명은 수하들을 이끌고 은향을 떠났다.

다시 자리한 예월은 고개를 저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 이런 일이 생기는지 모르겠군. 소혜 그 아이가 가무에 재능이 있다고는 하나 안찰사가 눈독을 들일 만한 아이는 아닐 터인데.”

한숨을 삼킨 명월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제의 공연에서 그 춤사위는 소혜의 재능이 아니었습니다.”

“소혜의 재능이 아니라니?”

“부끄럽지만 어제의 공연은 다시 재연하라고 해도 그 감동과 느낌을 살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계획하고 조정한 건 삼공자입니다. 대통에 팥을 넣어 빗소리를 내고, 등롱을 흔들어 너울거리는 분위기를 만든 것도 삼공자입니다. 소혜의 춤사위를 매만진 것도 하물며 소혜가 손에 든 쥘부채에 명주천을 단 것도 모두요.”

예월은 눈살을 찌푸리며 명월을 바라봤다.

“삼공자가 이곳에 머물 때 무희들의 춤을 본 적이 있는가?”

“설마요, 삼공자는 후원 처소에 머물며 간간이 아이들의 연주만 들었습니다.”

“자네 말만으로는 짐작하기도 어렵군, 그래.”

“그 자리에서 함께 합주한 저도 당시를 떠올리면 한바탕 꿈을 꾼 것만 같습니다.”

긴 침음을 흘린 예월이 고개를 저었다.

“일이 점점 더 복잡해지겠구먼.”

“어찌 그리 생각하십니까?”

“자네 말대로라면 안찰사가 소혜를 원하는 건 어제의 공연 때문일 텐데, 소혜의 춤사위를 본 연후에 마음에 차지 않을 것이 뻔하지 않은가. 그럼······.”

명월이 깜짝 놀라 물었다.

“원주님께서는 소혜를 우원으로 보내실 생각 이십니까?”

예월은 한숨을 내쉬었다.

“기일이 촉박하여 할 수 있는 것이 없네. 안찰사의 성에 찰 예물이라도 준비해야 말이라도 꺼내 볼 텐데 내일 오시까지는 어려워.”

“원주님, 이 일을 독고세가와 제갈세가에 무어라 알려야 할까요? 안찰사면 유하와도 얽혀 있어 일이 커지면 문제가 복잡해질 터인데요. 무엇보다 소혜는 하남 사마가의······.”

이마를 짚은 예월이 눈을 감았다.

“그것보다 독고세가의 삼공자가 어찌 나올 걸로 예상되는가?”

“소혜를 아끼는 듯하여 쉬이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혹시 삼공자가 소혜를 마음에 두고 있어 뵈던가?”

“그렇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소혜가 워낙 스스럼없이 대하다 보니 어린 누이를 보는 듯 하였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구먼.”

“원주님, 삼공자는······, 평소에는 유약해 보이나 작심하고 나서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어제의 공연을 말하는 겐가?”

“그도 그렇지만······, 원주께선 삼공자가 유하를 시비로 들이겠다 한 연유를 아십니까?”

“아이들 간의 다툼에 끼어들어 치기를 부린 일 아니었나?”

“유하에게 사정을 들어보니 정작 삼공자는 자신을 욕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고 하더군요. 외려 유하를 낮잡아 보자 바로 주희를 겁박하였다고 합니다.”

“자기 사람을 아낀다는 얘기로군.”

명월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걱정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상심하실 것 같아서요.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가뜩이나 안찰사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는 시점이라 당장은 어쩔 도리가 없네. 시일을 두고 소혜를 찾아오는 걸로 가닥을 잡아 궁리해 보는 수밖에. 삼공자가 날 찾아오겠다고 종복을 통해 언질을 보냈네. 소혜 일은 내가 전하도록 하지.”

가기家妓가 받는 처우를 아는 까닭에 명월의 한숨이 깊어졌다.

예기藝妓와 다르게 가기는 소속 가문의 가법을 따른다.

우원이라는 장원까지 사들여 가기를 모으는 안찰사의 성정으로 보아 소혜는 험한 일을 당할 것이 예견되는 탓에 예월도 명월의 한숨을 이해할 수 있었다.

눈을 깊게 감았다가 뜬 예월이 말했다.

“내 총령께 언질을 넣도록 할 테니 자네는 소혜를 만날 채비나 하게.”

“알겠습니다.”

대답과는 달리 명월의 얼굴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수심이 내려앉았다.



*



이동하는 배에 누워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안창살인지 안찰사인지 하는 추물을 어떻게 작살 내야 할까.

이거 옛날 생각나네.

현대의 대한민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비일비재했다.

어린 연예인 끼고 술 처먹으려는 추악한 것들이 있었으니까.

그중에는 민중의 부지깽이도 있었고, 나랏일을 한다는 명목으로 여의도에 기생하는 기생충들도 있었다.

내가 딱지 쳐서 대한민국 최고의 엔터 회사의 수장 자리까지 넘봤던 건 아니다.

날 믿고 따라주는 내 식구들을 그 추악한 놈들로부터 지켜냈고, 때에 따라서는 더 추악한 놈들을 이용해 다 치워버렸기 때문이다.

필요하다면 닥치는 대로 이용했다.

언론을 이용해 여론을 등에 업기도 했고, 추물들의 치부를 까발리기도 했다.

내가 뗀 금배지가 예닐곱 개는 된다. 무궁화는 뻥 좀 섞어 한주먹은 되고.

문제는 이곳이 내 기반이 있는 현대가 아니란 사실이다.

고작해야 허울뿐인 삼공자 타이틀에다가 철없이 처먹기만 하는 비휴가 당장 쓸 수 있는 카드의 전부다.

대충 흘러갈 스토리를 머릿속으로 그려봤다.

아직 세가 사람이 되지도 않은 소혜를 위해 제갈세가가 발 벗고 나설까?

제갈소소가 호언장담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늙은 추물이 끼어들기 전이다.

세가 어른들의 재가 어쩌고 한 것도 있으니 작정하고 발을 뺀다면 일도 아닐 테고.

독고세가도 마찬가지다.

며칠 있으면 세가를 떠날 날 생각해 소혜를 감싸준다?

어림없는 소리다.

기원인 은향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

어린 기녀 하나 인생 거꾸러지는 거야 흔하디흔한 일일 테니까.

아 씨, 갑자기 열받네.

좋아, 일단 미봉책이라도 써서 눈부터 돌려놓고, 제갈세가나 독고세가가 하는 꼬락서니 좀 봐야겠다.

만약 정떨어지는 행동을 하거나 밥맛없는 소리하면 깔끔하게 손절치는 게 낫다.

일단 먹깨비 자식을 이용해 싹 쓸어와 눈부터 돌려놓자.

잘됐네, 때마침 먼 길 떠나면서 노잣돈이 부족할 것 같았는데.

뭘 하든 돈은 있어야 하기에 우원을 털 궁리부터 했다.

비휴 놈하고 손발을 맞춰보고 검지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니 우선은 늙은 추물을 처리하는 데 집중하자.

잘하면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털어 불까지 땔 수 있겠다.

확실한 알리바이를 위한 대비책도 수립을 끝냈다.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려면 무엇보다 노사공이 필요하다.

원림으로 향하는 노사공에게 뱃삯을 넉넉히 치르며 말했다.

“노인장. 괜찮으시다면 돌아가는 길에도 노인장의 배편을 이용하고 싶은데요.”

“죽치고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어. 대략이라도 시간을 정하면······.”

나는 전낭에서 몇 푼 더 꺼내서 내밀었다.

노사공은 밝게 웃으며 천천히 구경하라며 여기저기 관광 포인트까지 알려줬다.

역시 물질 만능주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 통한다.


우원耦园이라고 현판이 달린 커다란 장원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소주 중심가에 위치한 터라 독고세가의 장원보다는 작았지만 물길을 따라 길게 늘어선 담장의 위용만 봐도 대단했다.

교차되는 수로의 모서리에 위치해 두 면이 수변과 맞닿아 있었다.

우원과 좀 떨어진 대나무 숲이 보이는 곳에서 내렸다.

큰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우원과 대숲은 마주 보고 있다.

한적한 길가를 따라가다 대숲이 나타나 손바닥을 펴고 먹깨비를 불러냈다.

이 자식도 기대가 되는지 재까닥 튀어나와서 눈을 반짝거린다.

“바쁘니까 짧게 얘기할 테니 잘 들어. 저기가 금은보화 맛집이래. 들키지 않게 조심하고 가서 싹 쓸어와, 알았지? 자, 출동!”

출동 명령이 떨어졌는데도 비휴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꼼짝을 안 한다.

기가 막히지.

저 쪼끄만 얼굴에 눈 코 입 다 달린 것도 신기한데, 감정까지 표현한다.

“왜? 입맛이 없어? 여자애들 노리개 따위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산해진미가 펼쳐져 있을 텐데 왜 표정이 그따위야?”

「픙!」

어쭈구리.

쥐 밤톨만 한 놈이 고개까지 모로 틀어가며 콧방귀를 뀐다.

“쯧. 하던 짓도 멍석 깔아놓으면 못 한다더니, 딱 그 꼴 이구만.”

내가 혀를 차며 슬그머니 염장을 질렀더니, 코딱지만 한 놈이 한숨을 푹 내쉰다.

그러더니 풀썩 뛰어내려 장원 쪽이 아닌 대숲을 가로지르며 달려 나갔다.

이 자식이 무슨 변덕인가 싶었는데, 기막힌 일은 그때 일어났다.

하얗고 조그만 놈이 눈에서 사라지고 잠시 후에 갑자기 손바닥에서 갑자기 돌아온 것이 느껴졌다.

응?

손바닥을 펼쳤더니, 먹깨비 자식이 쑤욱하고 나타났다.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인 채다.

제길.

이 자식 내가 있는 반경에서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질 수 없는 리미트가 걸려있나 보다.

“짜샤, 그럼 그렇다고 말로 할 것이······, 아, 미안. 너는 말을 못 하는구나.”

고개를 모로 틀고 시위하는 녀석을 보며 물었다.

“너, 혹시 어제도 내게서 멀리 떨어질 수 없어서 여자애들 장신구만 털어먹은 거냐?”

그러고 보니 내가 독고명과 대화를 나누던 정원에서 가까이에 있는 곳에 머물던 여자애들만 먹깨비 자식한테 털렸다.

비휴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처럼 날 바라봤다.

“오해해서 미안하다. 그래도 인마, 멋대로 털어먹은 건 나쁜 짓이야. 계획하에 응, 나랑 상의하고, 철두철미하게 알지?”

여전히 토라진 채로 꼼짝 안 하고 있다.

먹깨비는 잠시 신경을 끄고 필사적으로 머릴 굴렸다.

내가 저 우원 근처를 맴돌아야 한다는 소린데······.

그렇다면 우선 어느 정도나 떨어져야 내게로 다시 소환되는지부터 알아봐야 한다.

나는 손바닥에 앉아서 씩씩대는 놈을 가만히 바닥에 내려놨다.

“너, 여기 잠자코 있어봐. 얼마까지 떨어져 있을 수 있는지 보게.”

비휴가 있는 곳에서 큰 걸음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한걸음이 1미터 정도 된다고 보면 대략 몇 걸음 전후에서 소환되는지 확인하면 된다.

잠깐, 그렇다면 먹깨비 자식하고 가까운 거리에 있어야 한다.

아니면 실시간으로 먹깨비와 떨어진 거리를 가늠할 수 있어야 하거나.

그때 머리를 스친 건 위치추적 앱, 아니, 제갈소소에게 받은 주사위였다.

“야, 너 지난번 먹었던 주사위 좀 꺼내놔 봐.”

먹깨비 자식이 똥그란 눈을 찌그리며 날 노려본다.

“바쁘니까 빨리. 달라는 게 아니라 그걸 좀 써야 할 것 같아서 그런 거야. 빨랑 꺼내 봐. 너 저기 있는 금은보화 안 먹을 거야?”

살살 달랬더니 마지못해 주사위 두 개를 뱉어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 신기하다.

도대체 무슨 구조인지 배라도 갈라······, 아, 이건 너무 갔다. 어쨌든 제 덩치보다 큰 걸 꿀떡꿀떡 삼켜대는 건 언제 봐도 묘하단 말이지.

비휴가 꺼내놓은 주사위의 사용법은 간단했다.

눈이 하나인 면을 맞대 놓았다가 떨어뜨리면 세팅은 끝이다.

나는 주사위 하나를 먹깨비 근처에 놓고 거리를 떨어뜨려 가며 작동 방식을 확인했다.

주사위 눈은 서로 마주 보는 쪽을 향하다 대략 열 걸음 전후로 주사위가 홱 하고 눈 두 개짜리로 뒤집혔다.

그러고는 눈 두 개짜리 면이 떨어져 있는 주사위 쪽을 향한다.

오호. 주사위의 눈이 가리키는 방향이 다른 주사위가 있는 위치고, 눈 하나당 9미터니, 즉 여기 단위로 3장丈 정도 떨어지면 눈의 숫자가 바뀌는 방식이다.

주사위 눈이 3으로 바뀌면 먹깨비 자식이 소환되는 걸 보니 대략 27미터 전후가 한계인 모양이다.

“너 다시 삼켜봐.”

주사위 하나를 내밀자 비휴가 냉큼 삼켜버렸다.

역시나 먹깨비 자식 배 속에 있을 땐 작동을 안 한다.

제갈소소가 못 찾은 이유가 이거 때문이었다.

고민하다 입고 있는 마의의 속적삼을 묶는 끈을 뜯어내 비휴의 등에 주사위를 묶어줬다.

쪼그만 놈이 얼마나 앙탈을 부리는지, 산더미처럼 쌓인 금은보화 얘길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식욕을 자극하고서야 간신히 묶어 줄 수 있었다.

“너하고 내가 호흡을 잘 맞춰야 크게 한탕······, 아니,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는 거니까, 잘해야 해. 알았지?”

고개를 틀어 싫은 내색을 하던 녀석이 마지못해 날 쳐다봤다.

“네 속도를 알아야 거리를 가늠할 수 있으니까 일단 편하게 달려봐.”

쪼그만 녀석이 등에 주사위를 짊어지고 짧은 다리를 놀리며 달리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이 자식, 비눗갑 다리만큼 짧은 다리로 참 날쌔게 달리기도 한다.

내가 성큼성큼 뛰어도 그보다 빠르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비휴 자식은 소환이 되는데 주사위는 함께 소환되지 않았다.

여차하면 주사위를 꿀떡 삼키고 잽싸게 튀라는 당부를 하고, 두어 번 연습을 끝으로 준비를 마쳤다.

슬슬 발을 옮겨 대숲을 빠져나왔다.

우원과 대숲 사이에 난 관로를 마주하고 먹깨비에게 말했다.

“너, 하나 알아야 할 게 있는데, 금덩이 은덩이에만 목숨 걸지 말고, 종이로 된 전표도 싹 쓸어와,”

전표가 뭔지 몰라 하는 것 같아 간단히 설명했다.

“그냥 금은보화하고 같이 있는 종이들은 다 삼켜 오면 돼. 그럼 내가 그걸 금덩이로 바꿔 줄게.”

비휴가 까만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까딱였다.

장원의 두 면은 수로와 닿아 있고, 나머지 두 면은 널찍한 관로에 접해있다.

일단 관로에 닿은 쪽부터 훑어가야 한다.

관로를 따라 담장 옆을 걸어가다 먹깨비에게 말했다.

“출동!”

밥 먹으러 가면서 왜 저딴 결연한 표정을 짓는지 모르겠지만, 비휴는 풀쩍 뛰어내려 담 아래 쥐구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난 손바닥 위에 올려둔 주사위를 주시하며 빠르게 발을 옮겼다.

이게 뭐라고 어째 두근두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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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43. 해태(獬豸)의 방울 NEW +1 1시간 전 110 9 14쪽
42 42. 괴의(怪醫) +3 24.07.01 655 45 15쪽
41 41. 습격(襲擊)(2) +5 24.06.30 838 51 13쪽
40 40. 습격(襲擊)(1) +3 24.06.29 929 50 15쪽
39 39. 비익연리(比翼連理) +6 24.06.28 977 64 14쪽
38 38. 벽라춘(碧羅春) +4 24.06.27 1,066 59 16쪽
37 37. 세가의 칠현금(七絃琴)(2) +9 24.06.26 1,134 70 14쪽
36 36. 세가의 칠현금(七絃琴)(1) +3 24.06.25 1,219 57 16쪽
35 35. 대가代價(8) +6 24.06.24 1,275 60 13쪽
34 34. 대가代價(7) +6 24.06.23 1,279 62 13쪽
33 33. 대가代價(6) +8 24.06.22 1,309 69 13쪽
32 32. 대가代價(5) +3 24.06.21 1,347 59 14쪽
31 31. 대가代價(4) +5 24.06.20 1,426 65 14쪽
30 30. 대가代價(3) +2 24.06.19 1,443 67 17쪽
29 29. 대가代價(2) +2 24.06.18 1,418 65 19쪽
28 28. 대가代價(1) +3 24.06.17 1,473 64 15쪽
27 27. 무릇 사냥이라 함은(5) +2 24.06.16 1,461 64 16쪽
26 26. 무릇 사냥이라 함은(4) +3 24.06.15 1,467 61 17쪽
25 25. 무릇 사냥이라 함은(3) +3 24.06.14 1,492 66 13쪽
24 24. 무릇 사냥이라 함은(2) +2 24.06.13 1,478 60 14쪽
23 23. 무릇 사냥이라 함은(1) +4 24.06.12 1,555 62 14쪽
22 22. 작당作黨(2) +2 24.06.11 1,532 60 14쪽
» 21. 작당作黨(1) +2 24.06.10 1,620 69 17쪽
20 20. 검지(劍池)의 담로검((湛盧劍) +1 24.06.09 1,770 75 18쪽
19 19. 혼밥의 단초(端初) +2 24.06.08 1,726 76 14쪽
18 18. 신투(神偸) 비휴(豼貅) +3 24.06.07 1,778 84 13쪽
17 17. 무릇 내기라 함은(2) +2 24.06.06 1,765 73 14쪽
16 16. 무릇 내기라 함은(1) +2 24.06.05 1,797 71 15쪽
15 15. 천록(天禄)과 벽사(僻邪) +1 24.06.04 1,789 78 12쪽
14 14. 초월시공적사념(超越時空的思念) +5 24.06.03 1,817 85 16쪽
13 13. 현천접무(玄天蝶舞) +5 24.06.02 1,929 81 18쪽
12 12. 비휴(貔貅) +1 24.06.01 2,011 69 16쪽
11 11. 현천구검(玄天九劍) +3 24.05.31 2,079 79 15쪽
10 10. 세가의 가법(家法) +2 24.05.30 2,126 73 14쪽
9 9. 절단신공(切斷神功)(2) +7 24.05.29 2,138 84 14쪽
8 8. 절단신공(切斷神功)(1) +1 24.05.29 2,240 80 15쪽
7 7. 화벽주(和璧珠) +2 24.05.28 2,364 83 15쪽
6 6.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혼담(婚談) +3 24.05.28 2,476 86 14쪽
5 5. 그만해! +3 24.05.27 2,583 88 14쪽
4 4. 세가(世家)의 빈객(賓客)들 +3 24.05.27 2,570 95 12쪽
3 3. 기원(妓院)의 화화공자(花花公子) +5 24.05.26 2,719 95 13쪽
2 2.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2) +5 24.05.26 2,867 105 13쪽
1 1.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1) +8 24.05.26 3,655 9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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