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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농곰의 서재입니당

리드리스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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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농곰
작품등록일 :
2018.01.26 10:19
최근연재일 :
2018.09.30 17:30
연재수 :
206 회
조회수 :
67,683
추천수 :
957
글자수 :
1,177,611

작성
18.01.26 10:31
조회
922
추천
8
글자
11쪽

수련의 시작 2

DUMMY

“이걸 차라구요?”


그 물건을 보자마자 내 입에서 단번에 불만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이건 누구라도 불만이 튀어나올 수 밖에 없을 물건이라고 감히 장담할 수 있었다. 하쉬가 내게 건넨것은 누구라도 그럴만한 물건이었다.

모양은 팔찌와 닮았다. 아니, 실제로 팔찌일거다. 장식품이 아니라는것만 빼곤 말이다. 이 팔찌는 무식해보일 정도로 두껍고 무겁다.

들고만 있는거라면 몇분이고 들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하쉬가 요구한건 이걸 착용하고 생활하라는 것이었다.


“혹시 절 검동이 아니라 소로 키우고 싶은건가요?”


당장에라도 밭이라도 갈라고 말할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한다. 하쉬는 고개를 까닥까닥거렸다.


“그래, 맞다. 앞으로는 그걸 언제나 착용하고 있으면 된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


소리치려다 멈췄다.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절대로 농담같은게 아니었다. 식은땀이 이마에서 뺨으로 흘러내린다. 앞으로의 고생길을 상상하는건 결코 어렵지 않았다.


“어, 언제나요?”


내 물음에 하쉬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다분히 과한 몸짓이었다.


“으··· 대체 왜 이런게 필요한건데요?”


“그야 수련이지.”


그리 말하고 고개를 올려 하늘을 쳐다본다. 낡씨가 맑구나. 하며 내게 신경쓰지 않았다. 내가 이걸 착용할거라 그렇게 굳게 믿는건가? 아님 그렇게 하겠다는건가? ···후자겠지.

하지만 지금 항의하지 않으면 앞으로 검동이 아니라 정말로 소가 될 것 같다. 그런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만큼의 무게가 두 가지 의미로 이 쇠팔찌에 있었다.


“난 어정쩡한걸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하쉬의 목에 걸린 로자리오가 반짝인것만 같았다. 차마 말은 못하겠지만 하고싶은 말이 태산같이 있었다. 내가 생각한 수련은 멋들어지게 검을 휘두르면서 엄청난 기술을 배우는 거였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걸 군말없이 착용하는것은 조금··· 억울했다. 그런 내 눈빛을 읽었는지 하쉬가 한숨쉬며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네 눈빛을 보니 말 안해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다. 누구나 처음부터 강해질 수는 없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고, 첫 걸음도 걸음마부터야.”


기본을 갈고 닦으라며 거기서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아이를 타이르는듯한 말에 조금 울컥했지만 삼켜냈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상관이냐구요!”


삼켜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걱정 안해도 된다. 그게 수련의 전부는 아니니까. 그건 그냥 ‘준비과정’에 불과하다. 그 멋들어진 기술··· 어차피 질리도록 배울거다.”


“······.”


갑자기 머리가 아파왔다.

이게 준비과정에 불과하다는 소리인가?

이 쇠팔찌들의 무게는 결코 적지 않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반발하는 이유는 이딴게 수련이냐! 라는 것도 분명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이걸 차고 생활하면 일상생활에 애로사항이 꽃필것만 같았다.

왠지 빵을 쥐고서 팔을 들지 못해 먹질 못하고있는 그런 장면이 자연스레 그려진다.


“좋다. 그럼 인심썼다. 잘 때는 빼주지.”


“······.”


아니, 잘때도 채울 생각이었던건가? 이제와서 살짝 하쉬를 따라간게 후회된다. 정말로 옳은 선택이 맞았던걸까?


“타협은 여기까지다. 안 차면 강제로 채울테니까 알아서 해라.”


그리 말하고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것이 두려웠다. 설마 이 성기사가 나를 가축으로 키우려는건 아니겠지? 다시 의심이 들었지만 불만을 토로해봐야 손해보는건 이쪽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내 양발과 양팔에 쇠팔찌가 모두 채워져있었다.

도대체 어느 틈에? 한눈판건 정말 잠깐이었는데.


“일상이 수련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얼마나 좋으냐?”


하쉬는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하쉬가 웃는건 처음보는것 같은데··· 조금만 젊었어도 여자 여럿 울리지 않았을까? 그렇게 잘생긴 얼굴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웃는걸 보니 그게 또 달랐다. 신을 믿는 성기사라는 사람이 웃는것만 보면 흡사 카사노바였다.

그게 매력적인 웃음이다. 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건 그 한순간 뿐이었다.


“우선··· 넌 오늘부로 그 쇠팔찌를 벗을 수 없다.”


···없다?


“내가 벗겨주지 않는 한, 절대로 빠지지 않을거다.”


하쉬는 열쇠를 내 눈앞에서 흔들었다. 점점 이미지가 변하고 있다. 방금까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던 미소는 악마적이기 그지없었고, 신실한 성기사라는 이미지는 혹시 흑기사가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변질되고 있었다.


“절대로! 벗겨지지 않는다. 그리고 일주일마다 점점 더 무거운 팔찌로 바꿀 생각이니 안심해도 좋다. 절대로! 수련이 시시해질 일은 없을테니. 이건 내 명예를 걸고 장담하마.”


하쉬는 자신의 가죽 배낭을 툭툭 건드렸다. 배낭을 두 개나 메고 있었는데, 가죽 배낭을 툭툭 건드리자 철렁철렁 하는 무거운 금속음이 들린다.

그게 무엇인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그 팔찌를 찬 채로 체력단련을 해야겠지.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특별히 시킬일은 없으니까. 그저 내가 가는길을 너도 따라오면 되는거다. 그것 뿐이야.”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 길이 조금 멀긴 하겠지만” 란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내 귀가 잘못된것이길 바란다.


“교국에는 행군이라는게 있다. 원래 기사들이 갑옷을 착용하고 짐을 짊어지고 먼 거리를 이동하는건데 너는 갑옷과 짐 대신에 쇠팔찌와 내 칼을 들고 걸으면 되겠구나.”


하쉬는 자신의 칼을 내게 건네주었다. 허리춤의 벨트에서 꺼낸 칼을 하쉬는 한손으로 건네주었지만, 나는 두 손으로 받아서도 떨어뜨릴 뻔 했다.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다.

농담이 아니라 지금 착용하고 있는 쇠팔찌들을 다 합친것만큼은 무거웠다.

벌써부터 팔과 다리가 저려왔다.


“무, 무리에요! 이건 어떻게봐도 할 수 있을리가 없다고요!”


“교국에는 이런 말이 있다.”


하쉬는 미소짓던게 거짓말인것 처럼 일순간에 표정을 싹 하고 바꿨다. 그걸 보고 나는 조금 실례되는 생각이지만, 정신병자같다고 생각했다.


“하면 된다.”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시킬거라면 말할 기력도 아끼는게 낫다는걸 실감하고 있었으니까.


나와 하쉬는 곧 영주성을 떠나 다른 영지로 출발하게 되었다. 이 곳, 호센 남작령에서 우라드 자작령까지 이동한다고 말했다.

솔직히 들어도 몰라서 굳이 말해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말을 타고는 이틀정도 걸리는 거리지만, 걸어서는 일주일은 걸린다고 알려주었다. 중간에 작은 산도 넘어야하니 각오를 다지란다.

떠나기 전에 하쉬와 왕자는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는데,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영주성인만큼 영주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나는 영주님의 얼굴을 그 때 처음 보았다. 영주는 되게 묘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하쉬는 입고 있던 순백의 갑옷을 벗고는 영주에게 건넸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갑옷을 입을 필요가 없으니 영주에게 맡긴거라고 했다. 다시 이곳에 올 생각인걸까?

갑옷을 벗은 그는 제법 단촐한 차림이었다.

평범한 검은색 셔츠에 갈색 가죽 조끼를 입고 있었는데, 털이 덥수룩한 그것이 무슨 가죽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가죽 재킷의 왼쪽 가슴에는 하얀 방패속에 붉은 칼이 그려진 문양이 있었다. 처음 보는 문양이라 그게 무엇이냐 물어보았더니 이게 교국의 문양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러고보니, 교국이 뭔가요?”


“아, 거기서부터군.”


하쉬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뭐라고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걸까?


“쉽게 말하자면··· 신을 믿는 나라라고 보면 된다. 정식 명칭은 '듀란드 신성제국' 이지만, 우리들은 신의 가르침敎을 받잡는다 하여 교국敎國이라고 부른다. 나는 그 교국의··· 그렇지, 기사 되는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교국의 기사라···


“그럼 저도 나중에 그 문양을 달아야하는 건가요?”


“······.”


하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게 마치 어딘가 찔리는 부분이 있는듯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디자인이 나쁘지 않아요. 세련되보여요.”


하쉬는 갑작스레 비틀거렸다. 현기증이라도 도진걸까? 길게 한숨을 내쉰다.


“후우··· 그래, 그렇지···.”


땅이 꺼져라 한숨쉬는 하쉬와 함께 나는 생에 최초로 내가 살던 영지를 벗어났다.



레너 왕자는 영주에게 말한다.


“그리 쳐다보지 말라고 했잖은가?”


영주는 자신의 집무실에 원래 자신의 자리였던 책상의자에 보란듯이 앉은 왕자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왕자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걸 처음 보았기에···”


“후후, 재밌는 아이잖는가? 나는 그가 마음에 든다네.”


왕자는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영주가 성심성의껏 키운 이름 모를 꽃을 미안한 기색도 없이 꺾어버린다. 영주는 그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더욱 고개를 조아릴 뿐이었다.


“그리고 하쉬 경은··· 모르는 것 같더군.”


“왕자님의 말씀대로 하쉬 경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합니다. 그리고 그것과는 별개로 이번일은 무척이나 위험했습니다. 왜 굳이 ‘그들’ 을 도발하신겁니까?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하셨습니다.”


영주는 왕자의 행동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왕자의 목숨을 노리는 세력,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일부 귀족' 들을 노리는 세력이 있다는 것은 뻔히 알고 있다.

그런데 경계를 그리 소홀히 하고 사두 마차의 위에서 나보라는 듯이 손을 흔들면 그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뻔했다.


“만약 그들이 하쉬 경의 앞에서 나불댔다면 곤란을 겪는건 저희들도 마찬가지였을겁니다.”


레너 왕자는 꺾은 꽃을 검지와 엄지로 비볐다. 문드러진 꽃에서 흘러나온 즙이 손가락을 물들였다.


“하지만 결과는 최상이지 않은가? 난 살았고, 놈들의 간부 하나가 잡혔네. 게다가··· 그 소년같은 인재를 발견했으니 더할 나위 없지.”


영주는 불안했다.

레너 왕자는 마치 주변의 모든것을 게임과도 같이 생각했다. 그 자신의 목숨조차도 가볍게 생각하는 그 사고방식에는 온갖 미치광이를 만나본 영주조차도 기가 질리고 겁에 질려버린다.


“부디 자중해주십시오.”


“···걱정말게. 이제 우리는 ‘사냥’ 할 일만 남았다네. 하쉬 경과 소년이 이 영지를 나서면 모렉 공작에게 연락하게. 슬슬 날짜를 잡아야지.”


왕자는 씩 웃으며 꽃에 물들여진 손가락을 핥았다.


“이제 곧 사냥할 시간이라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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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신전에서 3 18.01.26 509 6 11쪽
16 신전에서 2 18.01.26 632 7 14쪽
15 신전에서 18.01.26 580 6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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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소년은 눈물 흘리는 법을 배운다 5 18.01.26 643 5 10쪽
12 소년은 눈물 흘리는 법을 배운다 4 +1 18.01.26 690 6 13쪽
11 소년은 눈물 흘리는 법을 배운다 3 18.01.26 738 6 11쪽
10 소년은 눈물 흘리는 법을 배운다 2 18.01.26 789 7 10쪽
9 소년은 눈물 흘리는 법을 배운다 +1 18.01.26 842 7 10쪽
8 수련의 시작 3 18.01.26 870 7 13쪽
» 수련의 시작 2 18.01.26 923 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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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빈민가의 꼬마 18.01.26 1,927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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